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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서남단 가거항의 아침이 밝아오고 있다. 목포에서 145km가량 떨어진 먼 섬이지만 최근 직항로가 생겨 멀지만 가까운섬이 되었다.
▲ 가거도항의 아침 우리나라 최서남단 가거항의 아침이 밝아오고 있다. 목포에서 145km가량 떨어진 먼 섬이지만 최근 직항로가 생겨 멀지만 가까운섬이 되었다.
ⓒ 정윤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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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국경의 동쪽 끝에 독도가 있다면 최서남단에는 가거도가 있다. 가거도는 우리나라 최서남단을 지키는 국토지기인 셈이다. 목포에서 직선거리로 145km, 보통 5시간 이상 걸려야 도착할 수 있는 멀고도 먼 섬이다. 지난 16일, 이곳을 방문했다. 

가거도를 가보지 않은 사람은 아득한 절해고도의 섬으로만 느껴진다. 지금도 바람이 세서 풍랑이 거세지면 고립무원의 섬이 된다. 3대가 덕을 쌓아야 가거도에 갈 수 있다는 말이 있지만 지금은 쾌속선이 씽씽 다니고 있어 그 말은 다소 과장된 듯하다.

현재 만재도를 경유하여 가거도까지 가는 직항 노선은 3시간 20분이면 도착할 수 있다. 날씨만 좋다면 멀지만 가까운 섬이 된 것이다. 바람이 없는 날이면 바다 위의 배는 마치 고속도로 위처럼 흔들림 없이 가거도를 향해 달린다.

목포항에서 3시에 출발하는 남해고속페리호를 타면 배는 해가 뉘엿뉘엿 져가는 어슴푸레 한 시간인 6시 20분경 가거도항에 도착한다. 배에서 저물어가는 해를 보는 것도 멋진 풍경이다. 

방파제가 맞이하는 가거항
 
가거도의 서쪽편에 반도처럼 길게 뻗어 있는 섬등반도는 최서남단의 꼭지점을 형성하고 있으며 저녁노을이 아름다운 명승 제117호다.
▲ 가거도 섬등반도 가거도의 서쪽편에 반도처럼 길게 뻗어 있는 섬등반도는 최서남단의 꼭지점을 형성하고 있으며 저녁노을이 아름다운 명승 제117호다.
ⓒ 정윤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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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거도항에 도착하면 성벽 같은 거대한 방파제가 지키고 서 있다가 문을 열어준다. 40년째 공사를 하고 있다는 이 방파제는 완공을 거의 앞둔 2년 전에도 태풍으로 훼손되어 다시 마무리 공사를 하고 있다. 거대한 크레인과 중장비들이 동원되어 진행되고 있는 모습은 공사 규모가 얼마나 큰가를 짐작할 수 있다.

방파제 공사 현장 때문인지 가거도항은 다소 어수선한 모습이지만 독실산(639m)이 아늑하게 감싸고 있다. 정박해 있는 배들과 부두의 시설을 보면 오지낙도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 꽤 규모 있는 항구다. 잘 정비된 도로가에는 상가들과 차들이 즐비하게 정차해 있다.

가거도는 9.18㎢ 면적의 섬으로 낙도치곤 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다. 3개 마을 290여 가구에 550여 명이 살고 있고 이중 대부분이 가거도항 대리마을에 살고 있다.

섬등반도 가는 길
 
섬등반도 항리의 본 마을로 절벽위에 선 것처럼 아득하고 유럽풍이다.
▲ 섬등반도 항리마을 섬등반도 항리의 본 마을로 절벽위에 선 것처럼 아득하고 유럽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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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거도 여행의 하아라이트는 뭐니뭐니 해도 섬등반도다. 가거도에서도 가장 서쪽에 길게 반도를 이루고 있는 섬등반도는 최서남단의 끝점이라는 상징적 의미와 함께 아름다운 경관이 여행의 백미를 보여준다. 지난 2020년 이곳이 국가명승 제117호로 지정되었으니 그 자연 경관의 가치를 인정 받은 셈이다.

섬등반도를 가기 위해서는 가거도항 대리마을에서 독실산의 중턱쯤에 있는 샛개재를 넘어가야 한다. 일찍 나선다면 고갯마루에서 가거항 위로 서서히 떠오르는 아침 해를 볼 수 있다. 동쪽의 붉은 노을 속에서 서서히 아침을 맞이하는 가거항이 아름답다.

샛개재는 섬등반도와 독실산으로 가는 갈림길이다. 이곳에는 재미있는 이정표 비가 있다. 이 비에는 비석을 세운 시기가 단기로 쓰여있고 가거도의 간략지도, 거리, 방향표시 등 기본적인 사항이 다 들어있는 종합안내판 격이다. 비에 이런 사항들을 다 넣으려고 했다니 놀랍다. 비는 1961년 세운 것으로 '중앙통신학우회 가거도지부 세움' 이라 쓰여 있다. 글씨가 다소 조잡해 보이기는 하지만 다양한 정보들을 담고 있어 보존 가치가 많은 것 같다.

샛개재에서 독실산 아래쪽 능선을 따라 개설되어 있는 일주도로는 서쪽 바다를 조망하면서 걷기에 일품이다. 비교적 완만한 길이 섬등반도까지 이어져 최고의 워킹코스다. 혼자 걸어도 결코 외롭거나 지루하지 않을 길이다. 시멘트 길이라 다소 운치가 떨어지기는 하지만 대신 걷기는 아주 편하다. 

섬등반도는 서해 바다쪽을 향해 길게 뻗어 있는 반도 형태의 지형이다. 능선 쪽은 세찬 바람 때문인지 나무는 거의 보이지 않고 풀과 키 작은 관목류들 뿐이다. 전체가 기암절벽으로 이뤄진 암봉과 병풍처럼 펼쳐진 가파른 해안 낭떠러지로, 섬등반도 능선에 서면 수평선 밖에 보이지 않는 넓은 서해 바다다. 섬등반도의 명물 중 하나가 해 질 무렵 낙조다. 망망한 서해바다 위의 낙조보다는 섬등반도를 낀 낙조 포인트를 잡는다면 멋진 장면을 사진에 담을 수도 있다.

이곳은 현대적인 건물의 민박집이나 주택들이 눈에 띄지만 가거도 등대 방면 산책길로 조금 넘어가면 항리 옛 마을이 나온다. 멀리서 보면 마치 벼랑 위에 선 마을처럼 아득하게 자리 잡고 있다. 높은 절벽 위에 옹기종기 자리한 집들이 유럽풍이다. 현재 15가구 정도의 집이 있지만 대부분 빈 집이고 4, 5가구만 살고 있다. 경관은 멋있지만 이곳에서 살았을 사람들을 생각하면 아득하기만 하다.

<극락도 살인사건> 영화 촬영지
 
섬등반도 언덕바지에 가거도 항리분교가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독서하는 소녀상이다.
▲ 섬등반도 폐교부지의 독서하는 소녀상 섬등반도 언덕바지에 가거도 항리분교가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독서하는 소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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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등반도가 시작되는 언덕바지에는 경사진 지형을 깎아 만든 학교 건물 터가 남아있다. 배움에 대한 열망 때문이었을까? 가르치기 위한 정책 때문이었을까. 이 외진 학교로 발령 받은 여선생님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생각해 보면 그야말로 영화 같다.

이 학교는 1960년 4월 가거도 항리분교로 개교한 이래 1998년 2월 폐교되었다. 이곳이 학교였음을 보여주는 것은 교실 앞에 있었던 독서하는 소녀상과 이승복상이다. 이런 동상은 80년대 시골학교 어디에서나 어김없이 볼 수 있었다. 동상을 없애지 않아 지난 역사의 흔적을 만나는 것 같아 반갑다. 섬등반도 학교에서 뛰어놀았을 아이들의 모습을 떠올려 보면 안쓰럽고 반갑다.

영화 <극락도 살인사건>이 가거도 항리분교와 섬등반도 일대에서 촬영되었다. 지난 2007년 개봉된 미스터리 스릴러의 주목할만한 영화였다.

이 영화를 보면 섬 사람들의 모습이 잘 그려져 있다. 그러나 깊이 있게 들여다보면 섬사람들에 대한 편견 같은 것이 알게 모르게 숨어 있다. 살인이라는 제목이 주는 이미지 때문인지 한때 이 지역 섬을 실화로 했다는 이야기가 나돌아 이를 부인하는 반론이 제기되기도 했다. 영화를 보고 섬등반도를 가면 세월의 흔적과 함께 변해 있는 현재의 모습을 반추해 볼 수 있다.

<극락도 살인사건>은 한국적인 시대성과 역사성을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영화의 배경은 1980년대 제5공화국 말기다. 영화를 보면 학교 교실에서 마을 사람들이 회의를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칠판 위에 근엄한 모습의 전두환 사진이 걸려 있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교실 앞 독서하는 소녀상, 다희네 민박집, 맞은편 언덕 등은 영화속 숨은 그림찾기다.

옛 영화를 추억하며 섬등반도에 올라서면 멀리 그야말로 무망한 바다만 바라보인다. 해지는 노을을 감상하며 이 우주 속에서 작은 자신을 발견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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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연구활동을 하고 있다.저서로 '해남윤씨가의 간척과 도서경영' <민속원> 2012년, '녹우당'<열화당> 2015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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