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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란을 일으킨 데 대해서 이 자리에서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모든 책임은 저에게 있으며 대단히 죄송합니다.", "저 스스로도 그렇고(...) 플랫폼의 성공에 있어서 중요한 부분을 간과하고 있었습니다."

지난 10월 5일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은 국회 국정감사에 출석해 위와 같은 발언을 하며 연신 고개를 숙였다. 국정감사장에서 김 의장은 최근 사회적 이슈로 부각됐던 대리운전 골목상권 침해 논란과 관련하여 의원들로부터 거센 질타를 받았고 이에 대한 시정을 약속했다.

갑이 을에게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모습이지만 그 대상에도 포함되지 못한 '병'들이 존재한다. 실제 현장에서 노동을 하는 기사들이 바로 '을'보다 못한 '병'들이다. 카카오의 문어발식 확장으로 기존 대리운전 업체들이 신음을 내고 있다면 기사들은 카카오와의 관계에서 신음조차 내지 못하고 고통을 감내하고 있는 상황이다. 김주환 전국대리운전노동조합 위원장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카카오와 기존 대리운전 업체 간 문제는 결국 '이윤'의 문제죠. 그런데 정작 더 중요한 기사들의 '생존' 문제는 외면받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유령의 삶

대리운전 기사들은 흔히 '유령'이라고 불린다. 분명히 노동을 하고 있음에도 법과 제도적 차원에서는 마치 없는 사람처럼 취급되어 노동자로서 제대로 된 권리를 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2000년대 초반, 대리운전업계가 본격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한 시점부터 대리운전 업체들은 기사들의 이러한 상황을 악용하여 불합리하고 불공정한 대우를 지속해왔다.

우선 계약서 작성과 관련한 문제가 있었다. 대리운전 업체는 기사와 도급 또는 위탁 계약을 맺고 노무를 제공받는데 계약 체결과정에서 기사에게 제대로 계약 내용을 고지하지 않았다. 대면으로 만나는 과정 없이 전화통화를 통한 구두 합의와 운전면허증 송부만으로 계약 체결이 이뤄지는 경우도 빈번했다. 만약 기사가 계약 내용의 고지를 업체에 요구할 경우, 업체는 기사의 고용을 거부하였다. "계약서 한 장 달라고 말하면 그건 아예 아웃이에요. 왜냐하면, 이 내용을 이해하고 나면 문제 제기할 수 있으니까요."

대리운전 기사들은 노동의 대가를 지급받는 과정에서도 부당한 대우를 받아왔다. 법적으로 대리운전 기사는 '근로자'가 아니기 때문에 대리운전 업체는 노동을 알선한다는 명목으로 기사들이 얻는 수입에 각종 비용을 부과했다. 기본적으로 기사들이 배정받는 콜에 일정비율의 수수료를 부과했는데 20%가 평균이었으나, 많게는 40% 이상에 이르렀다. 또한 업체들은 기사들의 호출 프로그램 사용에 있어 월 1만 5천원에서 2만원 수준의 이용료를 내도록 하였으며 심지어는 출근비 명목으로 일정 금액을 납부받기도 했다.

대리운전 보험과 관련한 문제도 있었다. 대리운전 기사는 운전 중 발생할 수 있는 사고 시 대물·대인배상을 할 수 있도록 대리운전 보험에 가입해야 한다. 월평균 보험료가 약 12만원에 달하는 등 비용 자체만으로도 부담이 되는 상황에서 기사들은 이러한 보험을 2~3개씩 가입해야만 했다. 기사들은 대체로 하나의 업체가 아닌 여러 업체와 계약을 맺고 노동을 제공하는데 각 업체마다 자신들이 운영하는 보험에 가입하도록 강제하기 때문이다. 즉, 기사들은 업체들의 편의를 위해서 다수의 업체와 계약을 맺었지만 체결과정에서 그들의 편의는 고려되지 않은 채 오히려 보험 중복 가입과 같은 불합리한 관행이 이어져 왔던 것이다.

카카오가 내민 당근

2016년, 기사들이 기존 업체들의 위와 같은 횡포로 인해 고통받던 와중 카카오가 대리운전 서비스 시장에 새롭게 진입하였다. 기존 업체들은 골목상권 침해라며 강력히 반발했지만 기사들의 반응은 그리 부정적이지 않았다. 카카오가 대리운전 업계의 불합리한 기존 관행을 타파하겠다며 기사들에게 여러 혜택을 제공하기로 약속하였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은 "기존 업체들은 사실상 기사 입장에서는 골목깡패들인데 골목시장을 운운할 자격이 있나 싶었죠. 그런데 이렇게 불만이 쌓여가던 와중에 카카오가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하면서 가입을 해 달라고 하니 우리로선 반가울 따름이었어요"라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실제로 카카오는 사업을 시작한 이후 최고 수수료를 20%로 제한하고 수수료 이외의 대리운전 보험료, 프로그램비 등 모든 비용을 자체적으로 부담하였다. 또한 기사들과의 계약에 있어서 사회적 협약을 통해 결정된 표준계약서 도입을 합의하였다. 노동조합을 인정하고 각종 사업방침 결정에 있어 기사들의 요구를 반영하겠다는 취지로 자문위원회를 설치하기도 했다. 이러한 카카오의 모습을 보고 기사들은 드디어 "노동의 대가를 온전히 가져갈 수 있겠다", "주체적인 노동환경을 만들어 나갈 수 있겠다"라는 희망을 가졌다.

어쩌면 뻔했던 결과

그러나 카카오는 대리운전 기사들의 희망과 믿음에 배신으로 응답했다. 시장점유율이 상승세를 타자 기존에 자신들이 약속했던 합의사항을 교묘한 방법으로 어긴 것이다. 우선 카카오는 우선배차권을 주는 프로서비스를 도입하여 월 2만 2천원의 프로그램비를 기사들로부터 받기 시작했다. 명목상으로는 가입 여부를 기사들의 자율에 맡겨두었지만 실질적으로 기사들은 생계를 위해 해당 프로그램을 설치할 수밖에 없었다. 김 위원장은 "한 콜이라도 더 받기 위해 기사들은 프로그램을 깔 수밖에 없었어요. 이용 기사 비율이 70%를 넘어가면서 우선배차의 의미는 사라지고 아무 의미 없이 추가적인 비용만 내게 되었어요"라고 설명하였다. 정부의 '대리운전 보험 단일화' 정책을 악용하여 자사의 보험상품을 판매하고 보험료를 기사들에게 전가하기도 했다. 또한 기사들의 의견을 듣겠다는 취지로 설치한 자문위원회는 형식적으로만 개최되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했다.

2020년, 위와 같은 카카오의 행보에 반발하여 노동조합은 카카오를 상대로 단체교섭을 요구했다. 그러나 카카오는 기사들과 고용관계를 맺고 있지 않고 따라서 자신들이 사용자가 아니라는 이유를 들며 교섭에 나서길 거부하였다. 이후 지방노동위원회, 중앙노동위원회의 심의를 통해 카카오모빌리티가 단체교섭의 당사자임이 명확해졌지만 카카오는 심의 결과의 수용을 거부하고 법적 소송 절차를 밟았다.

"시간끌기를 한 거예요. 돈이 있는 카카오는 대법원 판결까지 시간만 끌면 되지만 우리 기사들은 당장 진척되는 것도 없고 몇 년씩 이어지면 힘들고 지치거든요. 그걸 노렸던 겁니다."

카카오 역시 기존 대리운전 업체들과 유사한 불통과 횡포의 모습을 보여주고 기사들을 노동자가 아닌 '유령'처럼 대한 것이다.

상생? 갈 길은 멀다    

다행히 지난 10월 7일 카카오는 단체교섭 거부 행보를 중단하고 대리운전 노조와 '성실교섭 협약'을 체결했다. 카카오와 대리운전 기사 간 갈등이 일련의 과정을 거쳐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 것이다. 기사들은 여전히 생존의 문제를 외면받고 있고 온전한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의미 있는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을까?

다양한 방안이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사항은 대리운전 기사들 스스로 역량과 목소리를 높여나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기사들 사이의 단결이 강화되어야 한다. 비록 회전문 효과로 인해 노조원 모집이 쉽지 않은 측면이 있지만 최근 노조설립필증의 발급, 산재보험 전속성 요건 폐지 등으로 여러 법적 권리가 보장되며 조직 확대의 저변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향후 보다 강화된 단결력을 기대할 수 있다.

"플랫폼 노조의 특징은 사회제도가 어떻게 바뀌었느냐에 따라서 노조원이 증가하는 겁니다. 아무것도 없던 곳에서 뭔가 기댈 때가 있기 시작하면 다들 모이는 거예요."

한편 궁극적으로는 사회적 연대가 필요하다. 대리운전 기사 혼자 힘만으로는 본인들의 요구를 관철하는 데 있어 불가피하게 한계가 존재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깝게는 노무제공방식과 업무환경이 유사한 다른 특수고용노동자 및 플랫폼노동자들과 규합하고 더 멀리는 일반 시민사회와도 이슈에 따라 연대해 효과적으로 목소리를 키우고 사회적인 동의를 얻어내야 할 것이다. 가는 화살도 여러 개 모이면 꺾기가 어렵다는 말처럼 대리운전 기사들이 단결과 사회적 연대를 통해 보다 단단해질 수 있기를 희망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한국비정규노동센터에서 자원활동하는 최한림 학생이 쓴 글로 한국비정규노동센터 홈페이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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