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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작년까지, 정확히는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이 발생하기 전까지 우리 사회의 중요한 화두 중 하나는 '4차 산업혁명'이었다. 교육계에서도 4차 산업혁명은 커다란 이슈 중에 하나였다. 미래 사회 대비를 위해 어떤 교육을 해야하는지, 학생들에게 어떤 역량을 갖추게해야할 것인지 등이 주요 잘문이었다.

당연히 4차 산업혁명으로 마주하게 될 사회의 모습은 어떠할 것인지에 대한 예측으로 가득하였다. 로봇이 인간의 일을 대신할 것이다, 아니 빼앗을 것이다, 로봇이 대체할 일자리는 이런 것이다, 로봇이 대체하기 어려운 것은 저런 것이다, 일을 못하는 사람들이 많아질 수도 있는데 그럼 소득은 어떻게 할 것인가 등등의 질문들도 관심사였다.

하지만 코로나19는 4차 산업혁명이라는 단어를 우리 뇌 속에서 지워버린 듯하다. 지난 2년 동안은 획기적인 시간이었다. 일상은 사라졌고, 상상도 하지 못했던 것이 현실이 되었고, 우리가 관례적으로 하던 것들이 재편되고 재해석되었다.

학교에서 원격수업은 상상할 수 없었던 것이다. 책을 통해 인터넷으로 수업을 한다는 소식을 접하기는 하였지만, 그것은 특수하거나 일부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지, 학교에서 전면적으로 할 것이라고는 단 1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원격수업은 오히려 대면 수업의 필요성을 인식하게 해주었다. 아니 어쩌면 학교의 진짜 역할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게 해주었다. 학교에서 교과적인 지식말고 무엇을 더 다루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던져준 것이다.

사람은 서로의 온기를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인간의 활동을 멈추니 지구가 살아나고 있음을, 위기는 누구에게나 오지만 그로 인한 피해는 평등하지 않다는 사실을, 로봇으로 인해 일자리를 잃게 되면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야하는지, 국가는 어떤 역할을 해야하는지, 위기 상황에서 인권과 민주주의는 어떻게 지켜지고 어떻게 무너지는지 등에 대해서 말이다.

코로나19는 노동 현장에도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노동의 방식이 변했다. 무조건 출근을 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는데, 출근을 하지 않고도 일을 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로 인해 주거 방식에 대한 틀도 흔들렸다.

새로운 노동이 부상하고, 기존의 노동 중이 일부는 퇴화한다. 최근 2년 사이에 플랫폼 노동이란 단어는 아주 친숙해졌다. 플랫폼 노동 중에 특히 배달 노동은 이제 우리 사회에서 필수 노동이 되어 버렸다. 사회적거리두기로 인해 심야노동은 약화된 듯하다. 심야노동은 2급 발암물질이라고 말할 정도로 위험한 것이었는데, 코로나19로 인해 노동자들이 심야노동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물론 이로 인해 임금이 삭감된다거나, 다른 형태의 불이익이 없어야겠지만.

한편 온라인이 활발해지면서 일부에서는 노동자들의 일자리가 위협을 당하기도 한다. 최근 모 자동차 회사에서는 새로운 제품을 출시하면서 온라인으로만 판매를 하기로 하였다. 이는 자동차 영업사원들의 일자리가 없어질 것이라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당장 영업사원에 대한 인건비가 절약되기에 차를 좀 더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또는 내 가족이 취업을 자리가 줄어들 것이라는, 그래서 우리 가정의 수입이 줄어들 것이라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영세자영업자도 마찬가지이다. 이들은 코로나19로 인해 직격탄을 맞은 이들이기도 하다. 치열한 경쟁으로 인해 안 그래도 힘든 상황인데, 더 힘들어진 것이다. 자영업자 모두가 힘든 것은 아니다. 일부는 오히려 지금 이 시기에 매출이 오르기도 하고, 새로운 분야가 개발되기도 한다. 순식간에 퍼진 밀키트 상점이 대표적이다. 일부 지역에서는 카페 숫자만큼 증가하였다.

우리나라 자영업자의 비율은 약 25% 정도로 OECD 국가중에서도 상위권이다. OECD 평균치보다 10% 이상 높다. 특히 G7이라고 불리는 나라들과 비교하면 가장 높다. 미래 사회에서 일자리가 증가할 것인지 아니면 감소할 것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만일 일자리가 줄어든다면 상대적으로 자영업자의 비율이 증가할 것이다. 자영업자는 노동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정부는 시민들의 소득이 줄어들어 소비가 이루어지지 않는 것 때문에 전국민재난지원금을 지급하였다. 이는 4차 산업혁명과 관련된 논제 중에 하나였던 기본소득에 대한 실험이기도 하다.

플랫폼 노동이 급증하면서 노동자의 권리에도 빨간불이 켜지기도 하였다. 노동을 하지만 노동자라 부르지 못하는 현실. 그리고 그 현실은 단순히 거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노동3권을 비롯한 노동자의 권리에 대한 미적용으로까지 미치게 된다. 이는 안 그래도 우리 사회의 약자인 노동자들을 더 어려운 상황으로 몰고가는 것이다,

그런데 문득 의문이 든다.

누군가 배달을 해주는 덕분에 집에서 편하게 음식과 물건을 받는다. 배달음식이 싫으면 밀키트 상점에서 반조리 음식을 사와 끓이기만 하면 된다. 상점에 더 이상 서빙을 하는 노동자가 필요 없고, 키오스크 덕분에 계산원이 필요 없어졌다.

하지만 명심해야할 것이 있다. 비록 일자리가 줄어들었을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사회를 유지하는 노동의 총량은 줄어들지 않았다는 사실을. 온라인과 키오스크 같은 기술 때문에 일자리 줄어들었지만, 그로인해서 노동이 줄어들었거나 노동의 가치까지 줄어들었는지는 모르겠다. 엄마가, 아빠가 하던 음식은 다른 누군가의 노동으로 대체되었고, 계산을 하던 노동은 키오스크를 만드는 노동으로 대체되었고, 직접 매장으로 가서 물건을 구입하던 수고를 누군가의 노동으로 대체한 것이다.

노동의 가치는 미래사회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사실을 학교에서 꼭 알려주어야 한다. 그리고 변화하는 노동의 형태에 대해서 두 눈 똑바로 쳐다보며 살피고 고만해야한다는 사실을 알려주어야 한다. 원격수업이 학생들간에, 교사와 학생간의 관계를 왜곡시켰듯이, 재택근무는 노동자간의 관계, 즉 연대를 무너뜨리고, 사용자와 노동자간의 수직관계만 더 강화시키는 것은 아닐지 걱정이다.

지난 2년 동안 우리 사회는 엄청난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 있다. 학교에서는 어쩌면 지금이 학생들에게 노동과 민주시민에 대해 고민을 던지고, 교육을 할 수 있는 기회일 수도 있다. 인간(人間), 사람 인(人), 사이 간(間). 인간은 사람들 사이에서 존재할 때 인간이라는 사실을 4차 산업혁명이 도래하기 전에 깨달을 기회를 준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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