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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가 끓여준 우럭탕을 먹고 그림하나 건넸다
▲ 딸의 우럭탕그림 할머니가 끓여준 우럭탕을 먹고 그림하나 건넸다
ⓒ 박향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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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후배랑 낚시 한번 하고 싶은데 우리 마님이 허락해 줄랑가? 요즘 유부도에 우럭이 좀 낚인다네. 어머니가 끓여주는 우럭탕처럼 맛난 보약이 없지. 아마도 어머니도 드시고 싶을 것 같은데."

지난 주말 남편은 갑자기 낚시가 '태고적부터 내려온 남자들의 본능'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천고마비의 계절에 바다물고기도 살이 찐다고 지금이 싱싱하고 살찐 물고기를 맛볼 수 있는 때라고 밤낚시를 간청했다.

친정아버지의 안강망 배(100톤급)는 서해와 남해바다로 내려가서 조기, 갈치, 병치, 아구 등의 물고기를 잡았는데, 고향섬으로 돌아간 뒤에는 아주 작은 통발배(3톤)로 색다른 어종을 잡았다. 대표 종으로 횟집에서 들어봄직한 우럭, 놀래미, 돌게, 낚지, 바다장어 등이 있었다.

두 어선이 잡는 어종의 차이점이 있다. 하나는 잡은 고기가 살아서 오지 못하고 냉동되어 사람을 만난다. 다른 하나는 팔닥거리는 모습, 소위 '활어'라는 명찰을 달고 온다. 아버지 생전에 고향섬을 방문할 때마다 새벽 4시경만 되면 달그락 소리가 났다. 딸과 사위 가족은 곤히 잠을 자라고 아버지와 엄마는 조심스럽게 통발배를 타고 나가실 준비를 하셨다. 설 잠을 깬 우리들은 두 분을 배웅하고 아침을 기다렸었다.

어느 날은 두 분의 환한 미소가 먼저 보이고, 어느 날은 무거운 발걸음이 먼저 보였다. 그래도 언제나 그물망과 통 속에는 팔팔 뒤는 활어들이 들어 있었다.

"오늘은 우리 김 서방 좋아하는 우럭과 낙지가 들었고만. 어판장에 갖다 팔면 뭐하겄는가? 오랜만에 온 우리 사위가 잘 먹으면 최고지."

사위 사랑 장모라고, 아버지는 생선을 손질하시고 엄마는 싱싱한 생선탕을 끓여 우리의 밥상을 차리셨다. 결혼 후 지금까지 엄마는 사위의 부엌 출입을 막는 옛날 어른이다. 비록 아버지가 안 계셔도 남편은 장모님한테 대접받는 사위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일상을 소담스럽게 말한다는 점이다. 둘 다 시인이 되어 자연을 바라보고, 의인화를 시켜 표현하기를 좋아한다. 말없이 듣기만 하는 딸보다도 끊임없이 엄마를 칭찬하는 사위가 예쁠 수밖에 없다.

사위가 잡아온 우럭, 장모님이 만든 우럭탕 

사실 남편의 취미는 특별히 고집부리는 것이 없다. 환경운동가답게 새, 풀, 바다, 산, 바위, 꽃, 흙 등을 보며 대화하고 누구라도 함께 즐기는 것이 취미다. 본인의 해박한 지식을 들어주고 나눌만한 사람이 곁에 있다면 더없이 족하다. 야속하게도 각시인 내가 그 상대가 되지 못하여 때때로 남편은 허전함을 느낀다고 한다.

낚시도 마찬가지다. 꼭 하고 싶은 취미라서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지인들과 함께 가더라도 본인의 관심은 부모님과 가족에게 있다. 통발배를 그만둔 후 당신이 잡았던 활어 생선탕을 드시지 못하니 낚시를 해서 장모님을 기쁘게 해드리고 싶은 마음이 첫째라고 말한다. 오늘 아침 엄마는 처음으로 코로나 검사를 받은 딸의 상황을 위로할 겸 사위가 낚시한 우럭으로 점심에 우럭탕을 끓인다고 건너오라고 하셨다.

"자네는 눈도 나쁜디 바위에서 미끌어지면 어쩔라고 낚시 가는가? 큰일나네. 먹고 싶으면 시장가서 사다 먹으면 되지. 하긴 시장에는 양식한 우럭들만 있지. 색깔이 시커먼 것이 양식한 거고 이렇게 희끄무리하게 얼룩져 있으면 자연산이네. 그나저나 고생했네."

사위는 장모님을 생각하며 밤새 잡아온 우럭을 보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엄마는 사위가 애써서 잡아온 우럭이니 맛있게 끓여 먹자고 했다. 어부마님 울엄마의 생선탕 요리는 말 그대로 뚝딱하면 나오는 마법의 선물 같다. 비린내 하나 없이, 고기 살 하나 바스러지지 않게, 끓여내는 기술은 가히 최고다. 입만 살아 있는 나는 이런 맛을 보고 자랐으니, 아무리 유명한 횟집이라 해도 생선탕을 맛있게 먹은 적이 없다.

우럭을 깨끗이 손질한 후 각종 파 마늘 그리고 특별히 고사리나 고구마순 같은 나물을 준비한다. 팔팔 끓는 물에 된장과 고추장을 1:1로 넣고 우럭을 통째로 넣는다. 우리 집의 비법 양념인 10년산 액젖으로 살짝 간 맞추면 끝이다. 다 된 요리에 통깨를 살살 뿌리면서 후루룩 입맛 다셔가며 간을 본다. 두 번 간 볼 필요가 없다. "으흠 굿. 최고예요."

"맛이 어떤가? 살이 토실거리고 쫄깃거리고만. 곡식 익을 때가 뭐든지 맛있는 법이네. 벼가 살이 차듯이 생선도 이때가 살이 차오른다네. 사람이나 동물이나 가을에 잘 먹어두어야 겨울을 건강하게 나는 법이니. 가을 생선은 보약보다 더 좋은거라네."

장모와 사위는 서로 많이 먹으라고 우럭을 내밀고, 사이에 낀 나는 아무 말도 않고 우럭탕에서 생선머리를 먹느라 정신이 없었다. 자고로 어두육미라고 하지 않던가. 생선 하나는 내가 제대로 먹을 줄 아는 거다. 두 사람의 대화 속에서 어부지리로 보약보다 더 좋은 건강한 음식을 먹고 나니 배가 불렀다. 그런데도 옆에 놓인 홍시로 눈이 갔다. 과일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것이 홍시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입맛을 닮았는지 홍시만 보면 저절로 손이 간다.
 
홍시를 좋아하셨던 아버지가 생각나던 점심을 먹고.
▲ 홍시닮은 새 입 홍시를 좋아하셨던 아버지가 생각나던 점심을 먹고.
ⓒ 박향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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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가심으로 홍시를 물면서 아버지 얘기도 하고, 시댁의 안마당에 서 있던 홍시나무 얘기도 했다. 가을이면 며느리에게 크고 붉은 홍시를 따서 광주리마다 챙겨 놓으셨던 시부모님도 그리웠다. 우럭탕과 홍시를 먹은 기념으로 글과 그림을 남겨놓고 싶었다. 그림 그리기에는 영 재주가 메주여서 항상 딸에게 그려달라고 하는데 때마침 한국화 숙제가 있어서 홍시를 그렸다. 딸은 휴대전화로 우럭탕을 스케치해서 건네줬다.

가을이 무럭무럭 자란다. 20살 청춘의 아름다움을 가득 담고 매일매일 운동으로 피어나는 딸의 미소처럼 가을도 토실토실하게 익어간다. 장모님 음식 솜씨를 두고 음식을 그릴 줄 아는 분이라고 칭찬하는 사위의 말솜씨와 사랑도 풍성하다. 낚시에 걸리는 것이 어디 고기뿐이던가. 엄마의 처녀시절부터 끌려 나온 고래 적 추억도 양념이 되니 우럭의 참맛이 여기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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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과 희망은 어디에서 올까요. 무지개 너머에서 올까요. 오는 것이 아니라 '있는 것'임을 알아요. 그것도 바로 내 안에. 내 몸과 오감이 부딪히는 곳곳에 있어요. 비록 여리더라도 한줄기 햇빛이 있는 곳. 작지만 정의의 씨앗이 움트기 하는 곳. 언제라도 부당함을 소리칠 수 있는 곳. 그곳에서 일상이 주는 행복과 희망 얘기를 공유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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