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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 오후 서울대학교 국가전략위원회는 2022년 대선 이후 대한민국이 나아갈 방향을 놓고 상당히 규모 있는 학술대회를 열었다. '코리아 리포트 2022: 다음 정부의 길'이라는 주제로 열린 제18회 국가정책포럼이 바로 그것.

온·오프라인으로 진행된 이 행사에서는 정치사회, 국제관계·남북관계, 기후변화·탄소중립, 과학기술, 교육, 보건의료, 경제·사회·복지, 자치분권, 사회안전이라는 9대 분야에서 42명의 학자들이 공동 연구한 성과들이 소개됐다. 언론사 논설위원들과 이재명·윤석열 대선후보 캠프 관계자들도 행사에 초대됐다.

이 학술대회의 두 번째 발표는 국제관계 및 남북관계에 관한 것이었다. 서울대 박철희(국가전략위원회 위원)·김상배·안덕근·이정철 교수의 공동 연구를 정리하는 이 발표는 박철희 교수의 브리핑을 통해 소개됐다. 참고로 박철희 교수는 지난 9월 22일 발표된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의 정책자문 전문가 그룹 외교·통일·안보 분과 소속으로 이름을 올렸다. 

한국이 "너무 갈등에만 초점을 맞췄다"?
 
발표에 나선 박철희 교수. 유튜브 화면 캡처.
 발표에 나선 박철희 교수. 유튜브 화면 캡처.
ⓒ 서울대 국가전략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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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학자가 차기 정부에 제안한 것 중 하나는 한일관계 개선이다. 네 사람을 대표해서 박철희 교수는 "한일 갈등을 굉장히 심화시켜놔서, 올해 들어와서 조금 바뀌고는 있지만 화합과 협력의 가능성이 단절돼 있는 형국이 계속 지속되고 있다"라는 말로 지금의 한일관계를 진단했다.

그런 뒤 파국의 원인을 "일본과의 정상적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 우리 대외관계에 굉장히 플러스가 되는 부분이 많은데, 너무 갈등에만 초점을 맞췄다"고 평가했다. 일본과의 협력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갈등적 요소에 집중한 결과로 지금의 사태가 초래됐다고 보고 있다.

이런 발언에서 느낄 수 있듯이, 공동연구 참여자들은 한일관계 파탄 원인을 주로 한국의 태도에서 찾고 있다. 위 발언에서 긍정적으로 언급된 '올해 들어와서 조금 바뀌고는 있다'는 대목 역시 그런 인식을 드러낸다.

이 대목은 지난 1월 18일 대통령 신년기자회견 및 1월 23일 외교부 입장 변화를 통해 '일본에 대해 정부 차원에서는 어떤 추가적 청구도 하지 않는다'는 공식 방침이 나온 일과 관련이 있다. 한국 정부의 후퇴를 긍정적으로 언급한 것은 네 학자들이 한일관계 해법을 어디서 찾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발표에 사용된 파워포인트. 붉은색 사각형은 강조를 위해 첨가.
 발표에 사용된 파워포인트. 붉은색 사각형은 강조를 위해 첨가.
ⓒ 서울대 국가전략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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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학자들의 의견대로라면, 한일관계 회복을 위해 필요한 것은 한국의 태도 변화라는 말로 귀결된다. 갈등적 요소인 위안부·강제징용 문제를 한일관계 테이블에 내놓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로도 읽힐 수 있다.

이런 의견을 많이 접할 수 있는 곳이 일본 내각관방 홈페이지다. 일례로, 가토 가쓰노부 관방장관은 지난 3월 1일 "중요한 것은 (문제) 해결을 위해 한국이 현안에 대해 책임을 갖고 구체적인 대응을 하는 것"이라고 발언했다. 그가 말한 한국의 '구체적 대응'이라는 것은 역사문제가 한일관계 테이블에 오르지 않도록 한국 정부가 협조해주는 것을 지칭한다.

네 학자가 촉구한 대로 한일관계는 당연히 회복돼야 한다. 하지만 일본 정부와 전범기업들의 사과·반성 없이 이대로 봉합되면 일본과의 관계는 1965년 체제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다.

일본의 사과·반성 없이 1965년 한일기본조약 및 부속 협정들을 체결한 일로 인해 일본은 한국을 더욱 더 가볍게 여기고 한국 경제를 자국 경제의 하부에 종속시켰다. 위안부·강제징용 피해자들의 눈물 어린 절규도 외면했다. 지금 한국이 백기를 들게 되면 한일관계는 그 상태로 회귀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과거사 문제를 무조건 덮는다고 한일관계가 좋아지는 게 아니라는 점은 1965년 이후의 무수한 사례들을 통해 이미 충분히 입증됐다. 이런 역사적 사실을 무시한 채 '갈등에만 초점을 맞추지 말자'고 차기 정부에 촉구하는 것은 무책임해 보인다.

한일관계와 관련해 네 학자가 균형감각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점은 "한일관계가 사실은 남북관계의 하부 구조처럼 이해돼 가고 있어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신뢰 구축에 너무 올인하고 있는 느낌이 든다"는 발언에서도 인지할 수 있다. 남북관계가 한일관계보다 중시되는 것이 당연한데도 이에 대해 이의를 갖고 있다는 것은 이들이 일본과의 관계 재개에만 지나치게 '올인'하는 결과라고 평할 수 있다.

미국도 궁극적으로는 자국 문제를 가장 우선시한다

쉽게 납득하기 힘든 점은 남북관계에 대한 언급에서도 나타난다. 박철희 교수는 북한과의 대결 구도를 지양하고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추구되는 지금 상황과 관련해 "지역 질서도 전부 다 바뀌고 있는데, 우리는 한반도를 중심으로 보고 있다" "현 정부의 정책을 보면 기본적으로 너무 한반도에 갇혀 있다"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신뢰 구축에 너무 올인하고 있는 느낌"이라는 평가를 내놨다.

네 학자는 북한과의 평화 프로세스보다는 다른 것을 우선시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세계적인 안보·통상·기술 같은 큰 그림을 우선적으로 보자는 것이다. 박철희 교수는 "(한국은) 굉장히 희망적인 사고에 매몰돼 있어서, 어떻게 보면 우리 문제에 국한하는 우물 안 개구리 대응을 하고 있는 게 아니냐"라고 비판한다. 한반도 평화라는 희망에 매몰돼 우물 안 개구리 식 대응을 하고 있다는 의미다.

한국보다 훨씬 더 글로벌한 세계전략을 구사하는 미국도 궁극적으로는 자기 문제를 가장 중요한 위치에 놓는다. 이 점에 관한 한, 예외가 되는 나라는 존재하지 않는다. 박철희 교수도 발표 중에 그런 발언을 했다. 현재의 국제질서를 브리핑하는 대목에서 "바이든 행정부도 굉장히 점잖기는 하지만, 미국의 국익을 중심으로 한, 특히 중산층을 위한 외교를 지속적으로 추구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자국 문제를 중시하는 것이 '우물 안 개구리'식 대응이라면, 바이든 행정부의 모습도 '우물 안 바이든'이라고 표현돼야 마땅하다. 미국 같은 나라도 자기 문제를 첫째 자리에 놓는다면, 한국 같은 나라는 훨씬 더 그러해야 마땅하다.

한국이라고 해서 오로지 자기 문제에만 집중하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여타 국제문제에도 당연히 관여하고 있다. 일례로, 지난 6월 25일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화상으로 열린 제4차 한·중미통합체제(SICA) 정상회의에 참여했다. 청와대가 표명한 바와 같이, 이 회의에 참가한 목적은 중남미 외교의 지평을 넓히기 위해서다. 이런 식의 외교 활동은 아프리카를 상대로도 전개되고 있다.

지금 한국에 시급한 것은 전 지구적 차원의 현안들에 관심을 기울이되, 한반도의 불안 요인을 우선적으로 제거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만약 한반도 불안 요소를 방치한 채 여타 문제들로 눈길을 돌리게 되면, 한국 경제가 불안정해지는 것은 물론이고 글로벌 문제들에 제대로 집중할 여유도 없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선택할 수밖에 없는 문제다. 이런 한국의 모습을 두고 우물 안 개구리라고 표현하고 있으니, 필자는 무책임하다는 평가를 할 수밖에 없다.

박철희 교수는 미국의 중국 압박 전략인 인도·태평양 전략과 관련해 "막 뛰어 들어가는 것은 조심해야" 한다면서도 "유연하면서도 원칙을 가진 참여"가 필요하다는 말로 한국의 참여를 촉구했다. 발표 때 그가 가장 강조한 것은 바로 이 인도태평양전략 참여다. 미국·일본이 주도하는 이 흐름에 참여하는 데에 국가적 역량을 투입하자는 것이다.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비중을 낮추자는 발언이 나오게 된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지금 한반도의 상황은 어떤가
 
인도태평양전략 참여를 주장하는 박철희 교수. 붉은색 사각형은 강조를 위해 첨가.
 인도태평양전략 참여를 주장하는 박철희 교수. 붉은색 사각형은 강조를 위해 첨가.
ⓒ 서울대 국가전략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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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는 세계의 일부이므로 보다 글로벌한 시각을 유지하고 남북관계의 비중을 낮춰야 한다는 식의 주장은 일견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지금 상황에서 한반도 불안 요인을 방치한 채 중국 견제에 동참하게 되면, 한국이 훨씬 더 위험해질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네 학자의 제안대로 한일관계의 본질을 덮은 채 관계 회복에만 집중하게 되면 한일관계의 위험 요소가 항상 남게 된다. 장기적 관점에서 볼 때, 이는 한일관계를 오히려 더 위험하게 만드는 일이다. 

또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비중을 떨어트리고 남북관계의 비중을 낮추게 되면, 예전처럼 육·해상의 군사분계선이 불안해질 가능성이 있다. 또 남북관계의 불안 요인을 그대로 둔 채 인도태평양전략에 가담하게 되면 중국까지 적으로 돌리게 돼 한국의 부담이 커지는 것은 물론이다. 또한 북한을 신경 쓰느라 중국에도 제대로 대응할 수 없게 된다.

이렇게 되면 한국은 삼면이 적들로 둘러싸인 나라가 될 가능성도 있다. 지금보다 훨씬 위험한 안보환경이 조성되는 것이다. 서울대학교 국가전략위원회가 내놓은 국제관계·남북관계 해법은 대한민국을 훨씬 더 위험한 길로 내모는 수라고 평가된다.

태그:#서울대 국가전략위원회, #박철희, #한일관계,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인도태평양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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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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