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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의 사물함 안에 넣어둔 마니또의 작은 선물과 손편지입니다.
 친구의 사물함 안에 넣어둔 마니또의 작은 선물과 손편지입니다.
ⓒ 진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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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학년인 우리반 아이들이 무척 좋아하는 게임이 있다. 학교폭력예방 교육활동의 하나로 우리는 한 달에 한 번씩 이 게임을 한다. 이건 80년대 생인 나도 학교 다닐 때 해봤던 놀이다. 마니또 게임. 제비뽑기를 하여 정해진 친구에게 자기를 드러내지 않고 몰래 선물이나 선행을 베푸는 활동이다.

우리반에서 마니또 게임을 할 때는 우리만의 규칙이 있다. 마니또는 친구에게 2000원이 넘지 않는 작은 선물과 손편지를 줘야 한다. 아이들은 대개 선물로 초콜릿, 쿠키, 음료수 등의 군것질거리나 연필, 수첩, 스티커 같은 문구 팬시용품을 줬다.

이 게임에서 중요한 것은 '손편지'다. 마니또 게임을 하면 자칫 선물 주고받기로 끝날 때가 많다. 나는 그보다 아이들이 이 게임을 통해 손편지를 쓰면서 서로 마음을 주고받길 바랐다. 정성을 담아 마음을 표현하는 일이 우리를 얼마나 따뜻하고 다정하게 만들어주는지를 알아갔으면 했다.

편지에는 친구의 장점, 칭찬을 꼭 쓰도록 했다. 또한 친구에게 힘이 되는 응원의 메시지도 전하게 했다. 친구의 좋은 점을 쓸 때는 두루뭉술하게 '넌 착해', '넌 잘해'라고 쓰지 말고, 작은 것이라도 좋으니 콕 집어 최대한 구체적으로 풀어 쓸 것을 강조했다. 그래야 친구가 감동을 받는다고. 마니또는 친구를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임무다.

마니또 게임은 들키지 않는 게 관건이다. 아이들은 친구가 안 보는 사이 재빠르게 책상 서랍이나 사물함에 선물과 편지를 넣어둔다. 준비물을 꺼내러 무심코 사물함 문을 열었는데 거기에 달콤한 초콜릿과 노란색 편지 한 통이 놓여 있다면. 그럴 땐 조용하고 내성적인 아이도 슬며시 나에게 다가와 속삭이듯 말했다.

"선생님, 저 마니또한테 선물이랑 편지 받았어요."

반달이 된 아이 눈을 보니 아이의 마니또는 미션을 성공한 것 같았다.

그동안 마니또 게임을 하며 아이들은 편지를 여러 번 썼다. 문자, SNS 등 쉽고 편하게 용건을 전할 수 있는 수단이 있었지만 조금 더 느리고, 조금 더 신중해지는 편지를 써보았다.

처음에는 연습장을 쭉 뜯어 편지를 쓰던 아이들이 차츰 예쁜 편지지를 준비해 와 쓰기 시작했다. 평소 성격이 급해 휘날리는 글씨를 쓰던 아이도 편지를 쓸 때는 한 글자 한 글자 단정한 글씨로 썼다. 뭘 써야 할지 모르겠다며 편지를 선뜻 채우지 못하던 아이들도 이제는 사각사각 연필 소리만 내며 오랫동안 편지쓰기에 열중한다.

천천히 다가가, 깊숙한 진심을 전하는 일
 
아이들이 마니또 게임을 하며 쓴 편지입니다.
 아이들이 마니또 게임을 하며 쓴 편지입니다.
ⓒ 진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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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시간 '우리 지역의 공공기관' 단원을 배우는데 '공공기관 견학해보기' 활동이 있었다. 우리는 견학 장소를 학교 가까이에 있는 작은 우체국으로 정했다. 이 우체국은 이용객이 점점 줄어들어 폐국 위기에 처했었는데 주민들이 반대 서명을 하여 지켜냈다고 한다. 우리는 마니또에게 쓴 편지를 우체국에 가져가 우표를 직접 붙여 보내보기로 했다. 받는 사람의 주소에는 학교 주소를 써서 편지가 우리반으로 배송되도록 했다.

우체국에서 우표를 붙이는데 아이들은 어디에 어떻게 붙여야 할지 몰라 헤맸다. 우표를 실제로 처음 봤다는 아이들도 많았다. 그런 아이들을 보며 초등학교 시절 우표를 주기적으로 사 모으고, 전학 간 친구와 수십 통의 편지를 주고받았던 나는 새삼 세대 차이를 느꼈다. 우체국에 가서 알게 된 사실인데 요즘은 우체국에서 편지를 보낼 때 우표를 붙이기보다 편지 규격과 무게에 맞게 금액이 찍혀 나오는 우편 라벨을 많이 이용한다고 한다.

우체국에 다녀오고 며칠 뒤 우리반으로 편지가 도착했다. 아이들은 우체국에서 집배원님의 손을 거쳐 자기에게 온 마니또 편지를 받고 설레어 했다. 우체국 소인이 찍힌 편지를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편지를 다 읽고 나서 한 아이는 말했다.

"선생님, 저는 이 편지를 제 보물상자에 넣어둘 거예요."

최근 학부모 상담을 하는데 한 학부모님께서 자녀의 교우관계를 말씀하시면서 지난 방학 때 있었던 일을 들려주셨다. 아이는 방학 때 친구와 편지를 주고받으며 지냈다고 한다. 코로나 때문에 직접 만나서 노는 것이 조심스럽다 보니 아이는 친구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편지로 써 간식과 함께 친구 집 우편함에 넣어두었다고 한다.

그랬더니 얼마 후 그 친구도 답장과 간식을 아이 집 우편함에 넣어두었고, 그렇게 둘은 편지를 여러 번 주고받았다고 한다. 학부모님께서는 아이들이 편지로 소통하며 우정을 쌓아가는 모습이 너무 기특하고 예뻐 보였다고 말씀하셨다.

시키지 않았는데도 아이들은 스스로 종이를 꺼내 편지를 썼다. 유튜브 세대 아이들이 편지를 쓴 이유는 뭘까? 전화, 문자, 메신저로는 대신할 수 없는 것이 편지에는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아이들은 손편지만의 매력에 조금씩 빠져들고 있었다. 모든 것이 빠른 시대, 천천히 상대방 마음에 다가가는 것. 상대방을 오랫동안 떠올려보고 나의 깊숙한 진심을 전하는 것. 기다림의 시간을 가져보는 것. 편지란 그런 거다.

박준 시인은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없겠지만'(난다, 2017)에서 '편지를 받는 일은 사랑받는 일이고, 편지를 쓰는 일은 사랑하는 일'이라고 했다. 내가 아이들에게 편지를 쓰게 하는 가장 큰 이유도 그와 같다. 나는 아이들이 '편지 쓰는 사람'으로 자라길 바란다. 저마다의 보물상자에 편지가 수북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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