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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무실 분리수거함에 우유팩 수거통이 별도로 생겼다. 사소하지만 더 큰 변화를 위한 의미 있는 첫 걸음이다.
 교무실 분리수거함에 우유팩 수거통이 별도로 생겼다. 사소하지만 더 큰 변화를 위한 의미 있는 첫 걸음이다.
ⓒ 서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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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단은 교무실의 쓰레기 관급봉투와 폐지함에 버려진 우유 팩들을 보고서다. 아직도 그런 사람이 있느냐고 반문할지 모르겠지만, 우리 주변엔 쓰레기 분리배출에 관심이 없는 이들이 적지 않다. 정확히 말하자면, 방법을 몰라서가 아니라 귀찮고 번거로워서다. 

우유나 주스를 담은 종이팩이나 테트라팩 겉면을 유심히 들여다본 적이 있는가. 업체명과 영양 성분을 적은 표시 아래에 분리배출 마크와 함께 '재활용 우수'라는 글자가 적혀 있다. 주변에 재활용이 가능한 물건이야 널리고 널렸지만, '우수'라는 수식어를 단 건 많지 않다. 

비우고 헹궈 펼치고 말리면 고급 티슈 등으로 100% 재활용되는 소중한 자원이라는 이야기다. 그런데도 쓰레기 관급봉투에 죄다 욱여넣는다. 이것저것 따져볼 필요 없이 간편한 데다 죄의식도 적다. 관급봉투를 사는 것으로 처리 비용을 지불했으니 의무는 다했다는 생각에서일까.

애초 정부가 관급봉투 제도를 시행한 취지는 쓰레기의 총량을 줄이고 분리배출을 유도하여 환경을 보존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경제적 부담에 시나브로 둔감해진 탓인지 경각심이 느슨해지고 있는 듯하다. 금연을 유도하기 위한 담뱃값 인상의 효과가 지속되지 않는 것과 유사하다. 

천릿길도 한 걸음부터, 당장 교무실에서 우유 팩 분리배출 캠페인을 전개하기로 했다. 교무실무사의 도움으로 쓰레기 분리수거함 주변을 비롯한 교무실 곳곳에 홍보물을 붙였다. 지금껏 익숙한 대로 아무 생각 없이 버린 이들이라도 홍보물을 보면 뜨끔해 멈칫할 것이다. 

우유 팩 분리배출로부터 시작하지만 이후 계획만큼은 창대하다. 얼마 전 <한겨레 21>의 특별기획으로 주목을 받아 최근 단행본으로 출간된 <쓰레기 TMI>를 교무실과 교실에 비치할 생각이다. 교사와 아이들이 돌려 읽다 보면 '귀차니즘' 극복에 큰 보탬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뒤이어 코로나로 잠시 유예된 종이컵 사용도 제한하고, 이면지 사용도 의무화하도록 공감대를 넓혀갈 계획이다. 비닐봉지와 일회용 플라스틱 사용도 자발적으로 억제할 수 있도록 동료 교사들을 차분히 설득해나갈 것이다. 서둘지 않되 멈추지도 않을 것이다. 

이 모든 건 어느 정도 불편을 감수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견뎌낼 수 없는 고통이라면 모를까, '자발적 불편'은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만든다. 비유하자면,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을 이용하고 승용차 대신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건 불편하고 힘든 일이지만, 건강엔 이롭다. 

교육 기관인 학교가 먼저 도입해야 할 제도
 
교실의 쓰레기통을 치운 대신 복도에 대형 분리수거함을 설치했다. 초기라 '부작용'이 있지만, 조만간 쓰레기 줄이기 실험은 성공하리라 확신한다.
 교실의 쓰레기통을 치운 대신 복도에 대형 분리수거함을 설치했다. 초기라 "부작용"이 있지만, 조만간 쓰레기 줄이기 실험은 성공하리라 확신한다.
ⓒ 서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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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장의 동의를 얻어 1학년을 대상으로 '실험'이 시작됐다. 업무 중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쓰레기와 분리배출이 가능한 재활용 자원을 제외하고는 다른 쓰레기를 버릴 수 없도록 하는 것이다. 관급봉투가 씌워진 쓰레기통을 작은 것으로 대체하고, 종국에는 치우게 될 것이다. 

교실마다 비치된 쓰레기통도 치웠다. 대신 복도에 학년 공용 쓰레기통 하나만 남겨놓았을 뿐이다. 각자 쓰레기를 버리려면 복도까지 나와야 하는 번거로움을 감수해야 한다. 머지않아 이것마저 치우게 될 것이다. 지금 교실 뒤엔 재활용 자원별로 세분화한 분리수거함만 놓여 있다. 

매점이 운영되고 있는 학교에서 그게 과연 가능하겠느냐는 반론도 있다. 알다시피,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 매점 주변은 '쓰레기 천국'이다. 종일 온갖 과자 봉지와 빈 음료 캔이 나뒹굴고, 흘린 음식물이 바닥에 으깨져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럴진대 쓰레기통을 없앤다고? 

개인적으로는 학교 내 매점 운영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급식소에서 점심과 저녁까지 꼬박꼬박 챙겨주는 마당에, 매점에서 취급하는 주전부리가 아이들의 건강에 좋을 리 없다는 생각에서다. 굳이 매점이 필요하다면 학용품 등을 판매하는 데 그쳐야 한다는 게 내 지론이다. 

그렇다고 매점 운영을 이유로 쓰레기 줄이기가 어렵다고 하는 건 핑계일 뿐이다. 매점에서 주전부리를 사는 건 음식물과 함께 겉봉지도 함께 사는 거라는 점을, 지속적인 교육을 통해 아이들에게 주지시켜야 한다. 자신의 구매 행위가 쓰레기를 발생시켜 환경에 해를 끼치고 있다는 걸 깨닫게 해야 한다. 

예컨대, 국립공원의 등산로는 말할 것도 없고 하루 묵어가는 대피소에도 쓰레기통은 없다. 쓰레기통은커녕 재활용 자원을 모으는 분리수거함조차 없다. 등산객들은 배낭에 자신의 쓰레기를 담아 되가져 가는 걸 불편해 할지언정 당연시한다. 산행 전 짐을 최대한 줄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국립공원과 학교가, 등산객과 아이들이 다를 게 뭔가. 어쩌면 교육 기관인 학교가 더 먼저 도입해야 할 제도였을지도 모른다. 아이들이 자신의 쓰레기를 가방에 넣어 집으로 되가져 가는 분위기가 정착된다면, 쓰레기 발생량이 현저히 줄어들 건 명약관화다. 

미래를 살아갈 아이들에게 절실한 일

정착되기까지 과도기적 혼란은 불가피하다. 아무 데나 쓰레기를 버리는 아이들이 숱할 테고, 단속하고 지도하는 교사들의 고생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책상 서랍이나 개인 사물함이 쓰레기통처럼 사용될 거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풍선 효과'가 나타날 거라며 섣부른 계획이라고 볼멘소리를 한다.

지나친 낙관일지는 모르나, 쓰레기 문제에 관한 한 모든 교사가 한 목소리로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혼란이 그다지 오래가진 않을 것이다. 아이들은 교사의 가르침을 따르기보다 교사가 보여준 행동에 감화된다. 무릇 교사란 '가르치는' 직업이 아니라 '보여주는' 직업이다. 

우유 팩은 소중한 재활용 자원이라고 백날 떠들어 봐야 소용없다. 아이들 앞에서 교사가 우유 팩을 비우고 헹구고 펼치고 말리는 모습을 보여주면 된다. '백문이 불여일견'인 법이다. 교사가 자신의 쓰레기를 되가져가면, 아이들도 불평 없이 따르게 될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교육의 본령 아니겠는가.

어쨌든 '실험'이 시작된 지금, 쓰레기 분리배출을 두고 서로 눈치를 보며 요령을 묻는 데까진 이르렀다. 이젠 우유 팩을 그대로 쓰레기 관급봉투나 폐지함에 던져 넣는 이는 거의 없다. 욕심을 부린다면, 이참에 쓰레기가 나오는 걸 부끄럽게 여기는 문화가 정착되었으면 좋겠다.

'환경운동가로 데뷔하셨냐'며 비아냥거리기는 아이들도 있다. 썩 유쾌하진 않지만, 조롱하면서도 자신이 버리는 쓰레기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하게 될 테니 기꺼워할 수 있다. 다만 안타까운 건, 이것이 미래를 살아갈 자신들에게 절실한 일이라는 걸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환경운동가로 낙인찍힌 김에 생색을 내야겠다. 사비로 대나무 칫솔을 사서 동료 교사들에게 선물할 요량이다. 종이컵은 종이가 아니고, 플라스틱 칫솔은 재활용이 안 된다는 사실을 새삼 강조할 참이다. 어떻든 학교의 '실험'이 멈추지 않고 계속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분명 아이들의 생각과 행동은 변할 것이고, 변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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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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