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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위적이고 시대를 앞선 자유로운 영혼의 예술가들이 1916년 스위스 취리히 볼테르 카바레에서 펼쳤던 다다운동(1918년 '다다 선언')의 정신이 2021년 10월 인사동에서 다시 펼쳐졌다.

전시 총괄기획을 맡은 윤진섭이 전시장을 오는 동안 받은 전단지 제목인 '건강연대'를 전시명으로 사용하기로 이구동성 찬성한 것부터 이 전시가 범상치 않음을 예고했다. 이것은 의도적인 것을 배제하고 우연적 요소를 적극 도입하며, 무의미성에서 참다운 존재성을 발견하고자 하는 다다정신과 매우 친밀한 연계성을 드러내는 지점이다.

물질욕이나 기존 가치에 빠진 통상적인 작업은 시대를 선도하는 진정한 예술가가 아니다. 이번 전시와 행위미술은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진취적 미술가들이 대중보다 한 발짝 앞서서 더 나은 세계와 더 나은 삶을 향해 선도적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강렬한 외침의 장인 것이다.

사진, 행위미술, 드로잉이 '개념'과 시대정신으로 버무려져, 기존의 가치와 인식에 대한 역설, 전복, 낯설게 하기 등의 방법으로 '새로운 눈'을 제시한다. 이 새로운 눈은 보통 사람들의 일상에 커다란 정서적 파장을 그릴 것이며, 그 파장은 한국미술사의 한 획으로 기록될 것이 분명하다.

2일 오후 17시에 참여작가 8명이 각각 행위미술을 하였으며, 전시장엔 행위와 연계된 사진과 개념미술적 관점이 동반된 사진, 설치작업이 전시돼 있다. 전시는 갤러리 INDEX(02-822-6635)에서 11일까지 열린다.
 
<예술사망선언>, 2021, 인사동 거리
윤진섭이 <예술사망선언서>를 낭독하는 행위를 하고 있다. 우산을 들고 있는 행위자는 지나 손이다.
▲ 오더(윤진섭) <예술사망선언>, 2021, 인사동 거리 윤진섭이 <예술사망선언서>를 낭독하는 행위를 하고 있다. 우산을 들고 있는 행위자는 지나 손이다.
ⓒ 윤진섭. 지나손, 이혁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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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인간에게 따뜻한 감각의 촉수를 뻗는다

털 옷의 가슴 부분을 동그랗게 오려낸 부분만큼의 털이 봉긋하게 밥공기에 담겨 있다. 그 오려진 부분은 초록의 자연이 되었다. 옆 모니터에는 들판에서 하얀 돌을 던지며 원형을 도는 행위가 이어진다.

이 작품은 우리가 매일 먹는 밥 한 끼에도 그 먹거리가 어디에서 어떻게 마련돼서 온 것인지에 대해 생각하며 살라고 말한다. 탐욕스러운 인간들에 의해 공장식 사육으로 길러지는 가축들을 생각하라고 말한다.

사소한 생명체부터 식물에까지 따뜻한 시선을 가져야 하며 안분지족하라고 말한다. 지구상에서 인간에게 주어진 부분만큼만 취하며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며 모두 더불어, 어울렁더울렁 살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사진, 행위미술, 개념미술이 버무려진 이 작품은 미술이 할 수 있는 최대치의 지적, 미학적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유의 공모전이 있다면 우수작에 뽑힐 것이다. 이런 작품을 감상하면 기분이 좋아진다.
 
< 밥 한 공기의 부피 : The volume of a bowl of rice >, 110x 80cm 사진, 밥공기 속의 털과 풍금 의자 반쪽, 2021/ 모니터 영상: 지나 손, <허공을 드로잉하다-돌>, 5’00, 안동, 2021
▲ 지나 손(Gina Sohn) < 밥 한 공기의 부피 : The volume of a bowl of rice >, 110x 80cm 사진, 밥공기 속의 털과 풍금 의자 반쪽, 2021/ 모니터 영상: 지나 손, <허공을 드로잉하다-돌>, 5’00, 안동, 2021
ⓒ 지나 손/ 이혁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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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 손의 행위는 책을 한 장 한 장 넘겨 가며 먹칠을 한다. 책은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다. 먹칠은 부정이며, 죽음이다. 기존의 모든 미술의 가치를 부정하는 것이다. 그 온갖 사변들에 조종을 울리는 것이다. 그래서 이 시점에서 미술의 진정한 가치를 되새김질해보며, "미술은 왜 하는가?", "미술의 역할은 무엇이어야 하는가"의 근원적 질문으로 다시 돌아가 보고자 하는 것이다.

자신의 다양한 역할을 긍정하라

한 여성이 가진 다양한 역할, 'mother', 'woman', 'daughter' 등의 글자를 빨간 루즈로 얼굴에 쓰고, 다시 지우는 행위를 하였다. 엄마이자 딸이고, 한 남자의 부인이자 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이며, 작가인 행위자는 각 역할의 무게가 버겁지 않냐고 자신과 관객에게 물어본다.

한 역할이 다른 역할을 침범하고 혼재되어 조금씩 벌겋게 된다. 역할끼리 충돌, 갈등, 지분(배분) 싸움의 현장은 선혈이 낭자해진다. 이 붉은 얼굴을 다시 깨끗이 지움으로써 역할의 갈등이나 역할의 무게감을 싹 떨쳐내 버린다. 원상회복, 지금의 현실을 긍정태로 받아들인다. 붉은 얼굴은 묻는다. '어떤 순간은 힘들었지?'라고. 지워진 얼굴도 말한다. '좋게 생각해, 모든 게 좋아질 거야'.
 
<Red face> 60x50cm, 2004/ 행위 <Red Face>, 갤러리 INDEX, 2021
▲ 윤정미  60x50cm, 2004/ 행위 , 갤러리 INDEX, 2021
ⓒ 윤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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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온난화에 대한 강력한 시청각적 경고

지금 추세로 지구온난화가 이어진다면, 기온과 해수면이 상승해 바다와 인접한 세계가 물에 잠기게 될 것이며 폭풍, 폭염, 가뭄, 홍수, 질병이 창궐하게 될 것이라 한다. 서울도 바닷물에 잠기는 상황이 오리라는 것이다.

UStudio의 사진 작품은 광화문, 에펠탑, 자유의 여신상, 이순상 동상, 미륵사지탑 등 탑, 동상, 유명 건물들이 넘실거리는 파도에 잠기려는 장면이 연출된 사진 12장이 전시돼 있다. 이 사진이 나온 원본인 8분짜리 동영상에는 파도가 기념탑과 건물을 완전히 삼킨다. 반면 마지막 부분엔 인간들이 이 기후 온난화를 잘 극복할 것이라는 희망적 메시지와 올라왔던 파도가 썰물처럼 빠지고 예전의 당당한 광화문으로 원상회복되는 영상으로 마무리된다. 경고와 희망의 공존.

행위는 지구의 온도가 올라가는 문제점과 기후위기에 대해 경고를 하고, 바닷물이라 상징시킨 수 천 개의 탁구공들을 3층 계단에서부터 쏟아부었다. "타타타타탁" 소리와 함께 통통 튕기며 아래로 쏟아져 내린다.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을 탁구공에 적게 한다. 기후위기로 이 소중한 사람들을 모두 잃을 수 있으니 그들을 지키기 위해 우리 모두 지구온난화에 대비해야 하고 인식전환을 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하는 것이다.

이 작품은 작가가 지구온난화의 속도를 늦추기 위해 "내 아들과 지구의 미래를 위해 작가로서의 일부를 활동가로 이바지하겠다"고 마음먹고 해온 작업의 일환이다. 예술의 선한 사회적 기능이 발현된 사회운동적 예술 활동은 홍익인간의 개념을 실천하는 매우 가치 있는 작업인 것이다.
 
<Deadline 1.5>, 2,040mm× 885mm, 2021
▲ UStudio(이경호, 이창희, 정성혁, 김길수) , 2,040mm× 885mm, 2021
ⓒ 이경호, 이창희, 정성혁, 김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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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 전복으로 그 가치를 되새김질하게 한다

윤진섭의 사진작품은 여러 채소를 얼굴에 두른 <채소인간>이란 작품이다. 이 사진은 배금사상, 물질 만능 사고가 판을 쳐 모든 것이 물질화, 상품화되는 천민자본주의 시대의 초상화이다. 또한, 비대면 디지털 사회, 0과 1의 그 무한한 조합 사이의 어디쯤에서 소외되고 익명화되어 점점 개인의 존재감과 존엄이 줄어들고 있는 이 시대 인간의 극사실초상화이다. 이 초상화로 인간의 탐욕을 꾸짖고, 개개 인간의 존엄을 되찾자고 주장하는 것이다.

한편 견물생심이라고, 맛있어 보이는 풍성한 채소들에, 그 풍요한 물질의 세계로 가고 싶어하는 내 탐욕의 혓바닥이 날름거림에 당혹스럽다.
 
<Very Funny>/ <채소인간(Vegetable Man)>, A4 size 30장, 2021
▲ 윤진섭/ G.P.S(윤진섭) / <채소인간(Vegetable Man)>, A4 size 30장, 2021
ⓒ 윤진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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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진섭의 행위는 '예술사망선언서'를 낭독하는 것이었다. 집 앞 골목에서 주워온 액자 안 사각 매트를 주워와 다른 전시를 위한 오브제로 만들면서 예술사망선언서를 쓰게 되었다는 것이다. "자본주의의 거센 물살에 표류하고 있는 예술의 사망 소식을 알리면서 이 오브제로 된 부고장을 돌린다"고 선언한다.

예술의 사망을 외치면서 '진정한 예술이 무엇이냐'고 다시 한번 되물어보는 것이다. 물질에 천착된 천박한 자본주의를 우아한 방법으로 맹비난하는 것이다. 기존 가치의 전복으로 돌아보게 하고 새롭게 앞으로 나아가자고 주장하는 것이다.

우리는 세상을 제대로 읽고 있는가라는 질문

1986년 성능경의 <신문 읽기>라는 행위를 촬영한 아래 사진엔 '신문읽기'라는 글자를 흰 배경에 빼곡히 써놓았다. 글자의 크기와 형태가 조금씩 다른 수많은 '신문 읽기'는 해석의 다양함을 말함인가? 선별 읽기의 강조인가?

위 사진엔 종이테이프를 부분 부분 붙이고, 그 위에 각국의 '신문읽기'라는 단어를 쓴 후 그 테이프를 뜯어내 알 수 없는 문자들이 잘린 형태로 흰 배경을 차지하고 있다. 이제 이 단어는 기의와 기표 모두를 잃고 즉 언어를 잃고 조형적 요소로 변환되었다.

왜곡된 신문기사가 난무하는 시대에 그 왜곡을 비판한 행위를 이 시대에 다시 돌아보며 다시금 신문이나 언론매체가 올바르게 정도를 걷는지 되묻는다. 또한, 매체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은 어디쯤 있는 것인가를 묻는다. 신문이 갖는 역할의 문제와 언어가 갖는 소통의 문제를 '신문 읽기'로 다시금 돌아보는 것이다.
 
<신문 읽기>, 사진 위에 글씨, 2021
▲ 최건수 <신문 읽기>, 사진 위에 글씨, 2021
ⓒ 최건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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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레 든 과일을 스스로 떨어뜨리는 나무의 지혜

최건수는 어두운 공간에서 촛불을 켜고 경건하게 자신의 두툼한 사진집을 태우는 의식을 진행했다. 아주 좋은 작품이 실린 2013년에 발간된 사진집이다. 왜 소중한 작품집을 태우는가?

기존의 문법, 기존의 가치를 무너뜨려야 새로운 것이 생성된다. 일신우일신, 새롭게 살려고 해야 겨우 조금 새로워질 수 있을 것이다. 이제까지 살아오며 누적된 삶의 태도와 관점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과일나무는 벌레가 든 과일을 스스로 떨어뜨린다. 나무는 가을에 낙엽을 떨어뜨려 겨울을 난다. 식물의 씨는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새 생명에 넘기고 산산이 썩어 문드러진다. 우리 삶도 오늘 하루를 산산이 썩어 문드러져야 내일 싱싱한 이파리가 난다. 버림으로 취할 수 있다. 죽어야 산다.

불완전 인간이 갖는 삶의 무상함과 허무의 노래

문재선의 작품에서, 발바닥만 겨우 닿는 면적의 좁다랗고 길쭉한 나무 상자 위에서 행위자는 제한된 움직임을 보인다. 거기서 불완전한 인간이 갖는 원초적 고독과 '허공을 가르는 자맥질 같은 인생'에 대해 온몸으로 발현한다. 또 "삶의 무상함과 허무"를 노래한다.

작은 갈쿠리로 모아진 콩을 흩트려 드린다. 빗자루로 다시 쓸어 모은다. 밀물과 썰물의 끊임없는 반복으로 존재하는 바다를 떠올려본다. 자연의 순리를 생각해보고 우주의 존재 이유를 물어본다. 그리하여 우리 삶과 존재의 필연성에 대해 근원적 질문을 던져본다. 자신에게, 관객에게 반복적으로. 제 맘대로 콩콩 튀며 구르는 콩 한 알이 구르는 데로 눈을 쫓으며.
 
<왕복 Round-trip>, 퍼포먼스, 빗자루, 운동화 끈, 콩, 젓가락, 대나무 갈쿠리, 2021
<왕복 Round-trip>, 혼합매체, 가변크기, 2020
▲ 문재선 <왕복 Round-trip>, 퍼포먼스, 빗자루, 운동화 끈, 콩, 젓가락, 대나무 갈쿠리, 2021 <왕복 Round-trip>, 혼합매체, 가변크기, 2020
ⓒ 문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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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년 행위 내공과 세상의 통찰에서 길어 올린 지혜로운 말씀

성능경의 사진 작업은 대변을 볼 때마다 그 밑을 닦은 휴지를 촬영한 다음 아름답게 색을 변환시킨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사진 작업이 아니라 개념미술이고, 행위미술의 흔적이기도 한 것이다. 이 작업에도 성능경의 역설이 잔뜩 존재한다. 더럽다고 생각하는 똥을 보석 같은 화려한 색깔로 치환, 반전시켜 새로운, 아니 제대로 된 인식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똥을 잘 눠야 건강하게 살 수 있고, 예전에는 좋은 거름이 되기도 하였으며 똥개의 먹거리이기도 하였다. 또 똥은 순환의 진리를 가장 잘 보여주는 위대한 것이다. 똥을 못 볼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찬란한 색깔 그림으로 변환시켜 똥의 가치를 새롭게 일깨워주는 것이다.
 
<밑그림>, 2020/ <부채질>, 갤러리 INDEX, 2021
▲ 성능경 <밑그림>, 2020/ <부채질>, 갤러리 INDEX, 2021
ⓒ 선능경, 이혁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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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채의 가운데를 오려내어 "알맹이는 물렀거라"며 던져 버리고 테두리만 남은 부채로 부채질을 하며 "껍데기만 남았거라" "이 세상은 스타일이 지배하나니"를 외친다. 50년이 넘는 행위미술 업력이 내공 만땅이 되는 지점에까지 이르렀으니, 성능경의 경구 하나하나는 세상에 대한 예리한 통찰의 말씀이며 지혜로운 큰 말씀이 되었다.

역설법의 대가, 성능경은 역설적 경구와 테두리만 남은 부채로 부채질하는 행위로 겉모습만 중시하는 시대에 대한 통렬한 일갈을 한 것이다. 행위작품의 교과서 한 부분을 장식할만한 이 작품은 또 한 '쪽'의 전설을 만들었다. 부채에 불을 붙여 부채질하는 작업만큼의 멋진 수작이었다.
 
<스타킹-몸철학적 관점에서>, 갤러리 INDEX, 2021
▲ 이혁발 <스타킹-몸철학적 관점에서>, 갤러리 INDEX, 2021
ⓒ 이혁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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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바지를 입고 다리를 번쩍번쩍 들어 올리는, 몸, 정신 모두가 팔팔한 78세 청년, 성능경의 행위작업은 이번 전시명 '건강 연대'와 매우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건강'이란 단어에서 청년 정신이 생각나기 때문이다. 이 전시가 우리 사회에 팔팔하고 건강하고, 선한 영향력을 바이러스처럼 널리 퍼트려지기를 바란다.

태그:#행위미술, #행위예술, #사진, #개념미술, #전위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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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화, 행위미술, 설치미술, 사진작업을 하며 안동에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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