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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부터 10일까지 서울 성수동 오매갤러리에서 열리는 <자수살롱>展은 조금 특별한 전시다. 2019년 <자수신세계>展으로 <자수공간> <자수잔치> 그리고 외전격인 <안녕! 바다 씨!>까지 네 번에 걸쳐 꾸준히 변화하고 성장해 현재 2021년 <자수살롱>展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살롱에 참여한 열 명의 작가와 인터뷰를 진행했다.[편집자말]
이건 작은 변화였다. 그저 조금 더 내 색을 보겠다는 마음이었을 뿐. 그런데 거기서 바탕의 추상적 표현이 나왔다. 저게 꽃밭을 나는 나비인지 구름 위의 나비인지 구분이 안 됐다. 나비 아래 흐르는 부드러운 큰 곡선이 강인지 혹은 꽃잎 안의 틈인지도...

그 해석은 점차 관객의 몫으로 넘어갔다. '저 나비는 어디를 날고 있을까?' 그런 질문에 나비는 깨어났다. "나비가 제게 말을 걸어와요!" 하고 그림을 본 관객이 한정혜 작가에게 물어왔다. 정혜가 되물었다. "나비가 무슨 말을 하던가요?"
 
나비 시리즈. 왼편 작품의 나비는 추상화된 형태의 성긴 바느질로, 오른편 자수는 정교한 금실 등으로 세밀하게 새겼다.
▲ 자수살롱 전시장에서 작품 앞에선 한정혜 작가 나비 시리즈. 왼편 작품의 나비는 추상화된 형태의 성긴 바느질로, 오른편 자수는 정교한 금실 등으로 세밀하게 새겼다.
ⓒ 원동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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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 날개짓이 어딘가에선 폭풍을 일으킨다는데

"오랜 시간 자수를 하다보니까, 기존 원단보다 제 스스로가 만든 바탕을 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해서 페인팅을 하게 됐죠. 물감을 섞으면 나오는 컬러가 있죠. 파랑과 빨강을 섞으면 보라가 되는 것처럼. 마르는 과정도 다 다른 거예요. 우연의 법칙이 작용한다고 할까? 예측을 못하죠. 과정을 반복하다 보니 이제 감으로 나오긴 하지만… 아직도 퀘스천 마크죠. 온도, 습도 그런 게 다 거기에 작용을 하니까." 

<자수살롱>에 걸린 한정혜 작가의 나비는 다채롭다. 4장의 얇은 린넨의 나비들은 천 위에 앉은 것처럼 생동한다. 햇살이 비추고 바람이 통하는 이 전시장 벽이 천을 살랑살랑 흔들어대기 때문이다.

그리고 왼편과 오른편에 좌청룡 우백호처럼 배치된 액자는 대조적이다. 동편 액자는 바탕에서 추상을, 서편 액자는 나비 그 자체가 추상화했다. 성긴 바느질이 만든 실자국만이 그게 나비임을 암시한다. 저 그림들 안에서 어떤 이는 호접지몽을, Temptation 두 그림에서 어떤 이는 블랙홀을 상상할 수도 있겠다(매력이란 끌려 거부할 수 없다는 점에서).

전시가 한창 진행 중인 10월 2일 토요일 오전, 오매갤러리에서는 라방이 진행됐다. 그렇다. 이미 젊은 스마트폰 유저들에게는 필수가 됐다는 라이브방송, 라이브커머스다. 기획 진행자인 김이숙 오매갤러리 대표는 손꼽히던 IT스타트업 투자자였지만, 라방은 처음.

무턱대고 시작한 이날 첫 방송에 한정혜 작가가 자리에 앉았다. "아무도 하지 않겠다는 거예요. 그래서..." 한 작가는 해야할 일이 있다면 손을 든다. 그리고 대략 대개 해내고 만다. '포부는 능력의 증거'라는 말은 괜한 게 아니다. 

피아노 건반 거닐던 손, 바늘을 들고 천 위에서

이쪽 '자수업계' 사람들에게 장영란 수원대 교수는 주목할 만한 인물이다. 천여 점의 자수 유물을 소장하고 있는 그를 김이숙 대표가 처음 찾아갈 때 동행한 사람은 한정혜였다. 그 자리에서 지속할 수 있는 자수인들 모임과 전시와 <월간 민화>에의 대표작 소개 등 굵직한 사업이 일사천리로 이뤄졌는데, 그 일을 두루 맡아서 진행을 해준 이 역시 한정혜였다.

갤러리 대표를 직접 만나거나 전화해서 묻기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작가들은 한정혜를 거친다. 평평한 세상에서 일곱 번이면 모든 사람이 연결될 수 있는 건, 수많은 노드와 링크들 중 중심노드라 할 수 있는 허브 덕분인데, 한정혜는 그런 허브다. 
 
한정혜_Breeze1.2.3.4_Mixed media on silk_160x56x4cm_2021
▲ 오매갤러리는 바람과 햇살이 통하는 전시장이다. 여기에 걸린 한정혜 작가 작품 한정혜_Breeze1.2.3.4_Mixed media on silk_160x56x4cm_2021
ⓒ 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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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이 끝난 후, 정혜는 딸과 통화했다. "엄마 라방 봤어. 좀 늦게 봤지만. 내가 그동안 엄마를 너무 낮춰보고 있었고만!" 둘째딸이 말했다. 한정혜 작가가 "이런 일을 다 해낼 수 있도록 나를 단련해준 아이!"라고 한 그 딸이었다.

4층에, 엘리베이터가 없는 이곳 오매갤러리에는 올 수 없는 딸이다. 태어날 때부터 생사를 넘나들었던 아이. 오랜 동안 아팠던 아이. 의사를 찾아 정혜는 미국의 신경외과 전문의를 샅샅이 뒤진 적도 있더랬다. 그 아이가 지금은 정혜의 가장 큰 친구이자 선생이자 참모다.

"32년째죠, 자수는. 그전까지 평생 피아노를 치고 살 줄 알았어요. 아이가 아프니까 피아노를 칠 수가 없는 거였죠. 8년간 라디오 클래식 음악조차 듣질  않았어요."

자수가 정혜에게 온 건 어머니 덕분이었다. 시집간 딸들에게 자수 활옷을 맞추어 주시려는데, 댕기에 자수 대신 금박이 왔다. 그 댕기에 직접 자수를 놓겠노라고 나선 게 엄마였고, 정혜도 그 옆에서 따라 배웠다. 붉은 주머니에 금실로 수를 놓아 자신의 딸에게도 주고 싶었다.

지금 정혜의 딸들 중에 자수하는 아이가 있는 건 아니지만 첫딸 소영은 정식으로 수틀에 바느질 작품을 남겨놓았다. 한정혜 작가가 <니들 스튜디오>를 열고 있는 이유는, 그렇게 대와 대를 이으며 내려온 자수의 '밈-문화적 유전자' 때문인지 모른다. 
 
한정혜 작가의 작업실 니들 스튜디오에서. 딸 소영이 다섯 살 무렵 놓았던 자수를 들고 있다. 한정혜 작가가 자수작가가 된 계기도 엄마가 선물해준 자수 댕기 때문이었다.
▲ 밈은 문화적 유전자지만 피를 타고 흐르는 기운 역시 무시 못한다.  한정혜 작가의 작업실 니들 스튜디오에서. 딸 소영이 다섯 살 무렵 놓았던 자수를 들고 있다. 한정혜 작가가 자수작가가 된 계기도 엄마가 선물해준 자수 댕기 때문이었다.
ⓒ 원동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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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졌던 실을 끊어내면 나비가 날아갈 듯

"니들 스튜디오는 2010년에 열었고, 2015년부터는 2년마다 회원전을 열어 있어요. 2015년 사색전(思色展), 2017년 사색전2, 2019년 자수책거리전, 2021년 <꽃 그리고>. 4회를 하고보니 다들 너무나 잘하시는 거예요. 20대 후반부터 30대 초반이 오시는 분들의 70%쯤 되고요.

한국을 배우러 오는 유학생이 오기도 하고요. 영국 세인마인, 드 보네이, 프랑스 벽지, 중국 묘족의 페이즐이나 소수민족이 사용하는 패턴, 에르메스 조각보 이런 것도 참조가 되죠. 결국 우리들은 우리의 책거리를 갖고 유럽을 돌 거예요."


니들 스튜디오의 작품들은 한결같다. 화려하지만 경박하지 않고, 균형이 온전하지만 흥미로운 공간의 풍경을 보여준다. 공방 전체가 이러기는 쉽지 않을 텐데도... 한정혜가 공을 들이는 또 하나는 출판이다. 출처도 없이 돌아다니는 정체불명의 복사본 도안은 늘 아쉬운 부분이었다. 창작 도안과 기존 있던 자수도안은 출처를 밝혀 명료히 정리했다.

회원전을 할 때도 회원들의 창작은 최종적으로 한 작가가 도안을 매듭짓고, 책을 낸다. 전통을 갈무리하고 또 한 시대의 실마리 역할에 대한 작은 책임감이 있다. 자신이 온 데가 어딘 줄 아니까. 경이롭고 궁금했다. 이 작가님의 가슴에 심긴 씨앗들은 어떤 것인가?

"자수공부를 본격적으로 하자고 대학원 과정에 들어갔어요. 그때 논문 주제가 복온공주의 활옷이었어요. 순조임금 둘째 딸인데 열세 살 때 결혼하면서 입은 옷이 아직 남아있어요. 191년 된 옷인데, 우리에게 기록과 함께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옷일 거예요."

열다섯 살에 죽은 그 복온공주 자수도 한정혜는 도안으로 남길 예정이다. 큰 재능에 큰 시련에 큰일들이 타래에서 실 풀리듯 했고, 천 위에 또렷하게 새겨져 온 게 그의 지난 삶이었다. "(힘들어서) 이제는 도망쳐야죠!" 했지만, 주머니 속 송곳이 어디로 숨겠는가. 노선 작가가 만든 그의 동영상 마지막 장면은 수놓은 나비를 마치고, 실을 '툭' 끊어내는 가위의 모습이었다. '나비는 혹시 날아가지 않을까?' 한참이나 여운이 남았다.  

[관련기사 : 천 위에 펼쳐진 무한한 세계... 이런 자수 보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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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읽고 글 쓰고, 그림 그리고 사진 찍고, 흙길을 걷는다. 글자 없는 책을 읽고, 모양 없는 형상을 보는 꿈을 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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