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현대인에게 일상이 되어버린 커피
 현대인에게 일상이 되어버린 커피
ⓒ 픽사베이

관련사진보기

 

커피와 관련해 우리나라는 몇 가지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에 근접해 있다. 커피 원두 수입량에 있어서 세계 5~6위권이고, 1인당 커피 소비량에서는 세계 평균의 3배 이상이다. 지난해 초부터 시작된 코로나19 팬데믹 속에서도 커피 수입이 지속적으로 증가한 유일한 OECD 국가가 대한민국이다.

그뿐 아니다. 커피 바리스타 자격증 소지자는 인구 100명 당 1명을 넘어선 지 오래고,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커피 감별사 자격증인 큐그레이더(Q-Grader) 소지자가 세계적으로 6천 명 정도인데 그중 15%인 9백 명 이상이 한국 국적자다. 북한 국적자가 3명이라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다. 세계에 커피박물관이 24개 정도 있는데 그중 11개가 우리나라에 있다.

한국은 이색 카페의 천국이기도 하다. 자고 나면 커피 축제나 커피 쇼가 열린다. 강릉, 서울, 부산, 대구 등에 이어 최근에는 춘천에서도 커피 페스타가 시작되었다.

커피에 있어서 우리나라는 대단한 나라가 틀림없다. 인구로는 세계 28위, 영토로는 107위인 나라라는 것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이런 흐름에 비례해 우리나라 사람들의 커피 취향 혹은 커피 선택 기준 또한 매우 높아진 것이 사실이다. 스페셜티 커피가 더 이상 스페셜하지 않은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골목마다 로스팅 카페, 스터디 카페가 즐비하다.

커피 천국 한국 그런데 책은?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커피 연구 수준이나 커피 관련 저서의 수준은 어떤가? 아쉽게도 그리 높다고 할 수는 없다. 20년 전부터 시작된 커피 열풍으로 많은 커피 관련 책이 출간되어 왔지만 대부분의 책이 유사한 주제, 유사한 내용을 담고 있는 편이다. 독창적인 연구 결과라고 할 만한 책이 많지 않다.

특히 커피 역사나 커피 인문학 분야에는 읽을 만한 책이 드물다는 것이 현실이다. 외국 학자들의 저술을 번역하거나, 이렇게 번역된 내용을 가공하여 출판하는 일이 다반사다. 그래서 한 두 권의 책을 읽고 나면 더 이상 읽을 책이 없다는 자조적인 이야기가 커피 분야 종사자들 사이에서 널리 퍼져 있다. 커피 관련 단체를 이끌고 있는 필자로서도 늘 아쉬웠던 일이다.

이런 아쉬움 속에 마치 가뭄에 내리는 단비와 같은 책이 출판되었다. 바로 이길상 교수의 <커피세계사 + 한국가배사>(푸른역사)가 그것이다. 이 책을 쓴 이길상 교수는 커피 분야 종사자가 아니다. 오랫동안 교육학, 그중에서도 교육사를 연구하고 가르쳐 온 인물이다. 이런 그가 커피 역사 책을 쓰게 된 동기는 매우 단순하다. 한국커피협회 주관 바리스타 자격증을 얻기 위해 필기시험 용 교재를 읽은 것이 출발이었다고 한다. 커피 역사 분야 서술이 흥미로웠을 것이다.

이후 이 교수는 큰 기대감을 갖고 이런저런 책을 구입해 읽게 되었으나 곧 실망감이 찾아왔다고 한다. 책 내용이 대부분 비슷했고, 출처가 대부분 몇 권 안 되는 유명한 외국 저술들이었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외국인들이 쓴 커피 인문학 관련 저서들을 구입해 읽기 시작했고, 몇 권의 책을 읽으면서 깨닫게 되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커피 역사는 서구인들의 시각으로 쓴 서구 중심 역사 이야기라는 사실 말이다. 그들이 쓴 커피 역사 속의 서구인들은 로맨틱하고 용기 있고 지혜로운 모습으로 그려졌지만, 비서구인들은 우스꽝스럽거나 폭력적이거나 비이성적인 모습으로 그려져 있었다.

이런 커피 역사 서술을 그대로 번역하거나 옮겨 적는 일본인, 중국인, 한국인들이라는 것을 느낀 순간 이 교수는 직접 커피 역사책을 쓰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프롤로그에 나와 있는 단순하지만 가슴 뭉클한 저술 동기다.

<커피세계사 + 한국가배사>는 이런 동기가 잘 반영되어 집필된 책이다. 오리엔탈리즘으로 물든 커피사를 바로잡아보려는 저자의 의욕이 반영된 책인 것이다. 물론 의욕만으로 좋은 책을 쓸 수는 없다. 의욕을 채워줄 충분한 자료가 필수적이다. 이 책의 참고문헌과 주석을 보면 저자가 얼마나 많은 자료를 찾아서 읽고, 얼마나 긴 시간을 들여 분석을 하고, 집필에 임했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커피 관련 자료뿐 아니라 유럽, 중남미, 북미, 아시아, 아랍 등 세계 각 지역의 역사 관련 저술들, 문화사 관련 저술들, 신문 기사, 학술지 등을 섭렵한 흔적이 역력하다.

세계 커피사를 다룬 앞부분에서는 우리가 알고 있던 커피의 탄생 설화가 어떻게 나타났고 변형되어 왔는지를 흥미롭게 설명하고 있다. 17세기에 작성된 라틴어 자료를 토대로 염소 목동 칼디 전설의 원형과 그 전파 과정을 소개한 세계 최초의 글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글이 한국인에 의해 발굴되고 소개되었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에티오피아와 예멘에서 시작된 커피 문화가 터키를 거쳐 유럽으로 전파되고 대중화되는 과정도 매우 상세하게 다루고 있다. 대부분의 커피 역사 서술에 나오는 이야기이지만 이 책에서 다루는 방식은 매우 다르다. 서구인들의 시각에서 서술된 왜곡된 내용에 대한 철저한 검증이 시도되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이 터키에서의 커피 탄압설이다. 역사적인 사실과 일치하지 않는 내용을 찾아내고 바로잡는 일을 하기 위해 오스만 터키 역사를 공부하고, 터키 학생들의 도움을 받아 터키어로 된 자료를 해독하는 일을 서슴지 않은 저자의 노고가 느껴지는 장면이다. 커피를 통해 세계사를 배우고 세계사를 통해 커피를 이해하는 데 부족함이 없는 것이 세계 커피사 부분이다.

책의 후반부는 한국 커피사를 다루고 있다. 지금까지 한국 커피의 역사를 체계적으로 다룬 책이 없었다는 점에서 이 책의 출판 자체만으로도 그 의미가 적지 않다. 나아가 이 책은 커피와 관련된 1차 자료들을 망라해 수집하고 체계적으로 분석했다는 점에서 한국 커피사를 풍성하게 만들 여지가 있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1852년에 작성된 우리나라 최초의 커피 기록, 1861년에 한양에 도착한 최초의 커피 원두, 1895년 최초의 커피 광고, 1908년 최초의 끽다점, 1911년 최초의 카페 등 수없이 많은 '최초'가 등장한다. 대부분 최초로 소개되는 내용들이기에 신비롭기까지 하다. 우리가 몰랐던, 알았더라도 단편적으로 이해했던 1930년대 전후의 커피와 다방 이야기가 한 편의 영화처럼 그려져 있어 쉽고 흥미롭게 읽힌다.

이 책은 해방 이후 우리나라 커피의 역사를 세계 커피의 역사와 궤를 같이해 서술함으로써 우리나라 커피의 역사를 세계 커피의 역사 속에 처음으로 진입시켰다. 커피 제1의 물결부터 제3의 물결까지의 흐름 속에 우리나라 커피 문화의 발달 과정을 자연스럽게 스며들게 한 것이다. 결코 쉽지 않은 시도로 보이는 일을 매우 설득력 있게 성취했다는 점에서 저자에게 감사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나라 커피의 역사가 비로소 세계 커피의 역사 속에 자리를 잡을 수 있는 작은 계기를 마련한 것이 바로 이 책인 것이다.

뛰어난 커피 인문학서
  
교육학자 이길상 교수가 쓴 <커피세계사 + 한국가배사>(푸른역사)
 교육학자 이길상 교수가 쓴 <커피세계사 + 한국가배사>(푸른역사)
ⓒ 푸른역사

관련사진보기

 
<커피세계사 + 한국커피사>는 한 권으로 세계 커피사와 한국 커피사를 읽을 수 있는 가성비 높은 책이다. 두 권의 책으로 간행되기에 충분한 분량의 원고를 한 권에 담은 것은 아마도 한국 커피의 역사가 세계 커피의 역사와 단절되어 전개된 것이 아니라 연계되어 전개된 것이라는 점을 보여주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저자의 이런 의도를 충분히 느낄 수 있다.

물론 아쉬운 점이 없지는 않다. 저자도 에필로그에서 밝혔듯이 이 책에서는 커피의 미래, 커피 산업의 미래를 이야기하지 않았다. 많은 독자들, 특히 커피 관련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주제라는 점에서 아쉽다. 저자의 다음 저술이 기대되는 점이기도 하다.

아쉬운 점을 이야기하기에는 이 책이 우리나라 커피 인문학의 수준 향상에 기여한 점이 너무도 크다. 저자의 바람처럼 이 책을 토대로 커피 인문학 분야에서 보다 훌륭한 저술들이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 한국커피협회 회장, 한림성심대학교 교수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모든 시민은 기자다!" 오마이뉴스 편집부의 뉴스 아이디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