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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기자 글쓰기 그룹 '대체왜하니?'는 초4에서 중3까지 10대 사춘기 아이들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엄마 시민기자들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편집자말]
"얘들아, 여기 정말 좋지 않니? 이런 풍경이라니. 엄만 눈물이 날 것 같아."

계룡산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풍경은 황홀 그 자체였다. 청푸른 바다 위, 섬들이 편안한 굴곡을 이루고, 깨끗한 하늘 위 구름은 뭉텅뭉텅한 솜뭉치를 붙여놓은 듯, 비현실적인 광경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제 아무리 표현에 인색한 사람이라도 이 광경을 마주하면 감탄의 문구 몇 마디쯤은 자연스레 하게 될지언데, 어찌 된 일인지 나의 아들딸은 오줌 마려운 강아지 마냥 계속 언제 가냐고 나를 재촉했다.   
 
이 풍경을 건성으로 보고 온 정신이 뽑기에 가있던 아이들
▲ 계룡산 정상  이 풍경을 건성으로 보고 온 정신이 뽑기에 가있던 아이들
ⓒ 조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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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나 세상에~ 정말 그림 같다 그치? 얘들아, 이런 풍경은 아무 때나 만날 수 있는 게 아니야 눈에 실컷 담아놔."

오바스러운 표현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민망함이 밀려온 건 아이들 반응이 먹다 남은 탄산수처럼 밍밍했기 때문이다.

"난 다 봤어. 그러니까 엄마, 언제 가?"

도착한 지 10분도 채 안 되었는데 자꾸 언제 가냐고 보채는 아이들, 나는 슬슬 열이 오르기 시작했다.

"대체 왜 저래? 뭔 일 있나?"

갸우뚱하며 내가 묻자 남편이 그 답을 친절히 알려주었다.

"뽑기 하고 싶어서 그런 거잖아."
"뽑...기?"


동전 몇 개로 행복할 수 있는 시절
 
동전 몇 개로 행복할 수 있는 시절은 짧다.
 동전 몇 개로 행복할 수 있는 시절은 짧다.
ⓒ 최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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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산명수려한 경관 앞에서도 아이들이 무감각한 것은 바로 산 정상 휴게실에 있던 뽑기 기계 때문이었다. 대체, 무엇 때문에 산 전망대에 뽑기 기계를 일렬종대로 세워놓은 건지는 알 수 없으나 지자체의 기가 막힌 상술 덕분에 아이들은 알록달록 캡슐이 잔뜩 들어 있는 뽑기 기계에 온통 정신이 팔리는 낭패를 겪고 말았다.

결국, 각자 손에 5천 원씩을 쥐어주고 맘껏 뽑기를 시켜준 후에야 아이들은 시원하게 소화된 눈빛으로 한려수도의 아름다움에 찔끔 반응했다. 뽑기 기계에서 튕겨 나온 작은 캡슐을 양 손에 꼭 쥐고서 말이다.

뽑기와의 전쟁. 아이를 키우면서 겪어보지 않은 이는 없을 것이다. 문구점 앞, 편의점 앞, 각종 관광지에 놓여진 다양한 뽑기 기계들. 인형 뽑기부터 사탕 뽑기, 피규어 뽑기 등등 아이들 눈에 띄었다 하면 다음 일정은 잠시 늦추는 것이 현명하다. 뽑기로 탕진하지 말고 원하는 인형을 사주겠다고 제안을 해도 아이들은 요지부동. 무조건 뽑기로 승부를 내야 직성이 풀린다.

아니, 왜??? 이러다 나중에 병이 점점 더 심각해져 사행성 도박이나 한탕주의로 전락하는 게 아닌가, 걱정도 더러 했었다. 그런데 또래 아이들 대부분이 뽑기 기계 앞에서 비슷한 실랑이를 벌이는 모습을 보며 아이들 고유의 특성임을 깨닫고 슬며시 안도했다.

오백 원짜리 동전 두 개를 동전 넣는 칸에 넣고 레버를 있는 힘껏 돌릴 때 아이들 표정을 본 적 있는가? 또르륵, 굴러 떨어지는 캡슐 안의 내용물을 살며시 뜯어볼 때 아이들의 눈빛을 본 적이 있는가? 그 안에 아이들의 천국이 있다.

저게 무어라고 저렇게 좋아하는지, 저게 무어라고 저렇게 기대를 하는지, 내 눈엔 하등 쓸데없는 예쁜 쓰레기일지라도 아이의 눈에는 무엇보다 간절하고 소중한 그 무엇이다.

그렇다 해도 나는 뽑기가 싫다. 그걸 만든 업체에게는 죄송한 말이지만, 아이들의 코 묻은 돈을 뜯어가는 일진 같다고 생각한다. 가격대비 효율성이 너무 낮다. 원하는 아이템을 쉽사리 건질 수도 없다. 좀처럼 고운 눈으로 봐지지가 않는다. 뽑기를 할 때마다 아이들에게 잔소리 하는 내게 종국엔 남편이 한 마디를 건넸다.

"너무 그러지 말고, 아이들한테 뽑기의 기쁨 정도는 누릴 수 있게 해 주자. 애들이 크면 큰 돈을 들여도 저렇게까지 좋아하는 모습을 보지 못 할 거야."

듣고 보니 동전 몇 개로 행복할 수 있는 시절은 짧다. 이후부턴 아이들의 기분 값이라 생각하며 아이들이 원할 때 뽑기용 동전 몇 개씩을 쥐어주곤 했다. 아무리 기대하며 뽑아도 원하는 것이 나오기 어렵다는 것을 아는 순간, 아이는 어른이 되어갈 것이다.

그 많던 뽑기 방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싸구려 반지, 허술한 장난감, 좋고 나쁨에 연연하지 않는다. 확률의 계산 없이 기대하고 설렌다.
 싸구려 반지, 허술한 장난감, 좋고 나쁨에 연연하지 않는다. 확률의 계산 없이 기대하고 설렌다.
ⓒ 최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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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뽑기 열풍이 불었던 적이 있다. 당시엔 아이들뿐만 아니라 청소년, 성인, 취업준비생들까지 뽑기에 열과 성을 다했다. 동네 곳곳에 빈 상가엔 우후죽순 뽑기 방들이 생겨났고, 전문가들은 이 같은 열풍이 성취와 인정에 메말라 있는 현대인들의 심리를 건드린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 많던 뽑기 방들은 지금 거의 자취를 감췄다. 나는 그 이유가 유행의 끝이 아니라 인형을 뽑으며 작은 성취 따위를 아무리 누려보아도 내 지갑만 얇아질 뿐. 달라질 게 없다는 것을 사람들이 깨달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상대적으로 주식이나, 부동산으로 진짜 한탕을 이뤄낸 이들을 보며 뽑기로 인정받고자 했던 자신의 비참함을 들켰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어른들의 뽑기 열풍은 왔다가 사라지는 신기루라지만 아이들 세계에서 만큼은 그 인기가 유효하다. 아이들은 성취와 인정을 다 떠나서 정말 순수하게 뽑기의 행위 그 자체에 열광한다. 싸구려 반지, 허술한 장난감, 좋고 나쁨에 연연하지 않는다. 확률의 계산 없이 기대하고 설레고 손에 쥐어지는 물성에 기뻐하는 것이다. 내 아이가 뽑기 기계 앞을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면 잔소리 대신 안심하자.

'엄마가 사달라고 조르면 속상해 하실 테니 그냥 지나가자', '이건 다 짜고치는 고스톱이야', ' 뽑기의 액세서리 원가는 내가 투자한 돈의 10분의 1도 안 될 거야'라며 뽑기 기계를 아무렇지 않게 지나치는 아이가 있다면 무작정 좋아할 일도 아니다. 어른이 되어 가고 있다는 것이니.

취업, 결혼, 내집 마련 같은 평범한 삶도 극도의 노력을 하지 않고선 이뤄내기 힘든 이 시대에 뽑기가 가지는 사회적 의미를 따지지 않고 단순한 재미로 과감하게 베팅할 수 있는 아이의 세계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언젠가 아이들이 뽑기 기계 앞을 무심히 지나치면 왠지 서글퍼질 것도 같다. 그땐 동전 몇 개로는 절대 채워지지 않는 욕구와 더 큰 욕망을 갖게 된다는 뜻일 테니. 더 나아가 아이들이 뽑는 주체가 아닌 뽑히는 객체가 될 거라는 뜻이기도 할 테니 말이다.

위대한 절경보다 조잡한 뽑기에 감탄하는 아이들이여. 절경은 쉽사리 변치 않아 다음을 기약하면 될 것이다. 하지만 뽑기를 향한 그 마음은 금세 변해 버릴 테니 그 날의 행태는 너그러이 이해해 보겠다. 하지만 유년의 추억이 담긴 가족 여행도 못지 않게 중요하니 다음부터 최소한 가족 사진은 찍고 나서 뽑기에 매진하도록 부탁한다.

group대체왜하니 http://omn.kr/group/teen_why
초4에서 중3까지 10대 사춘기 아이들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엄마 시민기자들의 콘텐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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