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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1년 쓰인 책 <해동제국기>에 표시된 일본지도
 1471년 쓰인 책 <해동제국기>에 표시된 일본지도
ⓒ 김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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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해동제국기(海東諸國紀)>는 1471년 신숙주에 의해 완성되었는데, 일본에서도 높은 사료가치가 있는 문헌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책이 주목받는 이유는 당시 일본과 오끼나와가 조선에서는 어떻게 비춰지고 있는가에 대한 관심 때문이고, 또 다른 이유로는 중세일본의 역사, 지리와 풍속, 언어 등에 대한 기술이 있어 학술적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오끼나와보다는 일본 본토에 대한 서술로 채워져 있다.

이 책의 편찬 목적은 고려시대 후반기 이후 왜구에 의한 해적질이 끊이질 않았던 1443년 신숙주가 일본에 통신사로 다녀온 지 28년만에 수정보완하여 일본에 대한 외교지침을 세우기 위해서였다.

1443년 대마도와 계해약조가 성립된 후, 대일통교체제는 안정되는 듯 보였다. 하지만 1460년대에 들어서 삼포에 왜인이 증가하면서, 일본과의 통교에 관한 제규정을 정비할 필요가 생기게 되었다. 

조선의 대일관계 목표 

당시 조선이 목표로 한 대일관계는 왜구의 금압과 통교체제를 확립시키는 것이었다. 조선은 건국초기부터 왜구에 의한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막부와 교섭을 계속해 왔는데,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했다.

이 책에서는 일본정부의 왜구에 대한 통제력을 기대하면서, 일본 답사를 통해 철저한 현장분석으로 일본 통치구조의 실체를 파악하려고 했다. 상대적으로 왜구를 의식하면서 한반도에 가까운 지역에 대한 기술이 상세하게 취급되고 있다. 예를 들면 대마도와 잇끼 등의 섬에 대해 많이 할애되어 있다. 

이 책에서 대일통교는 백제, 고구려, 신라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조선에 건너온 일본인들 중에서 큐슈, 대마도, 잇끼 출신의 일본인이 많이 등장하고 있다. 한편 천황이 거주하는 쿄토와 류큐의 국도(國都)에 대한 설명도 자세하게 덧붙이면서, 조선과에 관계에 주목하고 있다.

이 책은 조일간의 평화로운 관계를 모색하면서, 이를 위해서는 어떠한 외교적인 규범이 필요한가에 대해 상세하게 기술하고 있다. 왜인에 대한 접대규정에 주목하면서 그 시행과정에서 모순이 없었나 살피고 있다. 성종초 왜인에 대한 접대규정을 제도로서 완성시키는데, 해동제국기의 조빙응접기(朝聘応接紀)가 규범이 되었다. 왜인을 평화적인 통교자로 삼기 위해, 조선의 통교체제에 순응시키려 한 것이다. 

한편 전란을 막기위해서는 외정(外征)보다는 내치, 조정의 기강이 중요하다고 했는데, 마치 121년후 임진왜란을 예견한 듯한 혜안이 돋보인다. 문관이었음에도 1456년 남해 해안가에 출몰하는 왜구를 격퇴하였으며, 그 해 병조판서를 제수받게 된다.

대일관계에서 교린외교의 중요성을 지적하면서 경계를 게을리하지 말 것을 당부하고 있다. 신숙주는 임종 직전 성종에게 "일본의 동태를 예의주시하되, 저들과의 화호(和好)만은 끊지 마십시오"라는 유언을 남기고 있다. 
 
경기도 의정부시에 있는 신숙주묘.
 경기도 의정부시에 있는 신숙주묘.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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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한일관계를 참조해서 이 책을 긍정적인 의미로 해석해보면, 경계하면서 선의의 경쟁을 하되, 협력을 아끼지 말라는 음성으로 들리고 있다. <해동제국기>가 출판된 후 550년이 지난 지금, 혐한에 대한 일본의 사고와 의식을 살피려는 이유는 평화로운 한일관계를 모색하기 위함이다. 

달라지는 일본 학생들의 답변들 

일본 젊은이들의 사고의 변화를 기말시험 답안지를 통해 얻고 있다. 한일관계의 미래에 대한 물음에 대답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이들은 최근 불편한 한일관계를 의식해서인지 일본이 한국과 동일선상에서 선의의 경쟁을 하면서, 자국의 미래를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답안이 많아졌다. 20년전과는 사뭇 다르다는 인상을 받았다. 

일본이 한반도에서 무엇을 잘못했는가라는 반문으로 시작하여, 조선침략은 일본과 조선의 안전을 위해서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답안도 아직 보이지만, 이는 이전보다는 소수가 되었다. 

대신에 일본 대학생들 다수의 사고가 근대사에서 일본의 침략을 인정하면서, 과거의 모순을 되풀이하지 말아야 하고, 이를 반면교사로 삼아 주변국과 우호정책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에 가깝다. 공교롭게도 이는, 과거 신숙주가 성종에게 유언으로 남긴 대일관에도 가깝게 다가선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첨부파일
GBW-21 (21).do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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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외형적인 성장과 함께 그 내면에 자리잡은 성숙도를 여러가지 측면에서 고민하면서 관찰하고 있는 일본거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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