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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가지들을 따서 물에 담갔다가 뜯어내고 다시 씻어서 사용
▲ 소나무에서 딴 솔잎들 솔가지들을 따서 물에 담갔다가 뜯어내고 다시 씻어서 사용
ⓒ 김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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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안 해도 되는 타국에서의 추석. 기어이 지인들과 송편을 빚기로 하고, 또 유학생 아가씨를 불러다가 식사를 함께 하기로 정하고 나서는 "아니, 늘 바쁘다고 종종거리면서 나는 또 일을 만든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래도 이런 일을 하자면 장보기부터 시작해서 잔손 가는 일이 많으니 말이다.

남편은 정원에서 소나무 잔가지를 하나 잘라 주었고, 나는 깨를 사서 볶아두고, 송편에 물 들일 쑥 가루와 고구마 가루도 챙겨두었다. 저녁 손님 초대는 간단히 몇 가지 전과 나물, 갈비구이 정도로 생각했지만 그 역시 손이 안 갈 수 없기에 전날은 밤늦게까지 분주했다. 

추석 아침, 부지런한 아줌마들 다섯 명이 각자 맡은 재료와 먹거리를 챙겨 들고 10시부터 모였다. 환하게 웃는 얼굴로 들어서는 모습들을 보니 시작부터 기분이 좋아졌다. 요 며칠 날씨가 계속 궂었는데, 모처럼 화창한 가을 날씨까지 협조를 했다.

솔잎부터 뜯어 정리하며 일을 시작하다 보니, 사실 이 모든 일이 즐겁자고 하는 것 아니겠는가! 그래서 일단 데크에 읹아서 지인이 부쳐온 연근전과 내가 부친 녹두전을 놓고 작업 전 원기 채우기를 했다. 연신 웃으면서 서로 밀린 이야기를 나누고 접시를 싹 비웠다.
 
녹두부침개와 연근전으로 간식을 삼는 추석
 녹두부침개와 연근전으로 간식을 삼는 추석
ⓒ 김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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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부들이 모이면 일이 무섭지 않다. 당번을 딱히 정한 것도 아닌데, 한쪽에서 물 끓이고, 깨를 빻고, 떡 반죽을 하고, 집에서 챙겨 온 찜기를 불에 올리며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입식 생활이 기본인 서구식 집이지만, 역시 이런 일은 바닥에 앉아서 해야 제맛이 아니겠는가! 우리는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부엌 바닥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작업을 시작했다. 
 
서양식 사고로는 이해가 안 되는 작업방식이다. 남편이 이 사진을 보더니 막 웃었다. 그만큼 그들에겐 바닥에서의 생활이 생소하다.
▲ 바닥에 둘러앉아 송편 만드는 모습. 서양식 사고로는 이해가 안 되는 작업방식이다. 남편이 이 사진을 보더니 막 웃었다. 그만큼 그들에겐 바닥에서의 생활이 생소하다.
ⓒ 김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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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을 빚으면서는 웃음꽃이 피었다. 캐나다에 오기 전까지는 서로 만난 적도 없는 사이들이기에, 고향도 모두 달랐고, 따라서 떡 모양도 다 달랐다.

"어머나! 떡을 이렇게 빚으니 너무 귀여워요!"
"아유, 저는 그게 더 예쁜걸요! 그렇게 해보려고 해도 저는 잘 안 되네요!"

 
다양한 모양의 송편들
 다양한 모양의 송편들
ⓒ 김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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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으로 꾹 쥔 강원도식 송편도 있고, 동글동글한 서울식 송편도 있고, 그리고 옆으로 길쭉한 것은 어디 식이었을까? 어렸을 때에는 깨 들은 것만 골라 먹다가, 나이 들으니 달지 않은 콩 송편이 더 맛있더라는 이야기도 나누며 빚었다.

쑥을 넣은 녹색과, 자색고구마 가루를 넣은 보랏빛 송편도 있었고, 소는 손에 잡히는 대로 녹두 소까지 세 가지를 넣는 바람에, 정말 어느 송편에 뭐가 들었는지 알 수 없는 미스터리 송편들이 순식간에 준비되었다.
 
송편 찌기. 솔잎이 들어가니 향이 달랐다
 송편 찌기. 솔잎이 들어가니 향이 달랐다
ⓒ 김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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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쪽에서는 떡을 쪄내고 씻어서 참기름을 바르는 일을 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떡을 계속 빚었다. 그리고 맛을 보니 정말 고향의 맛이었다! 송편은 사 먹으면 이 맛이 나지 않는다. 방앗간에서 만드는 방식은 무엇이 다른지 모르겠지만 이 뭔가 구수한 맛은 집에서 빚은 송편에서만 가능하다.

대부분 아이들이 아직 학교에 다니는 엄마들인지라, 마차가 호박으로 변하기 전에 집으로 가야 했다. 아이들 픽업 시간을 맞춰야 하기 때문이다. 떡을 다 찌고 나서 뒷정리까지 후다닥 해내는 주부들의 저력은 정말 멋지다.

시간을 보니 아직 30분 정도 남았길래, 배가 불러도 디저트는 먹고 가야 하지 않겠느냐고 붙잡아서, 다시 커피와 수정과와, 어제 특별히 만들어 둔 초콜릿 실크 파이, 지인이 준비해온 과일까지 또 넉넉히 먹었다. 이렇게 풍요로우니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구나 싶은 기분이었다.
 
다양한 색과 모양의 송편이 완성되었다
 다양한 색과 모양의 송편이 완성되었다
ⓒ 김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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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송편을 조금씩 챙겨서 떠나고 나자, 나는 다시 다음 코스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저녁에 초대한 유학생 아가씨 릴리한테는 마음이 또 남다르다. 한국을 떠난 지 3년이 되었고, 가족과 계속 떨어져 지내니 이럴 때면 얼마나 한국 음식 생각이 날까 싶어서, 되도록이면 그걸 느낄 수 있도록 해주고 싶었다. 

마당에서 딴 호박으로 호박전을, 깻잎으로 깻잎 고기전을 했고, 동그랑땡과 대구전도 했다. 일 년에 딱 한 번만 끓이는 토란국과 평소에 잘하지 않는 묵나물도 했다. 시간이 부족해서 계획했던 만큼의 가짓수를 만들지는 못했지만 녹두부침개와 갈비구이를 얹어서 간단한 명절 식사가 되었다. 세 사람이 먹을 것인데 뭘 이렇게 많이 하느냐는 남편의 질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녹두전도 세장을 부치고, 다 조금씩 넘치게 만들었다. 

한국에서 명절을 지내느라 친척들이 모일 때면 늘 음식을 넉넉히 해서, 돌아가는 손에 이것저것 들려 보내는 것이 우리네 풍습이 아니던가. 그걸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와서 맛있게 먹고, 또 챙겨가서 며칠 동안 식사 걱정 안 하고 먹게 해주고 싶은 엄마 마음이었다.
 
간소하지만 배부르게 차린 추석상. 남편은 와인과 소주를 함께 준비해두었다.
 간소하지만 배부르게 차린 추석상. 남편은 와인과 소주를 함께 준비해두었다.
ⓒ 김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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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리는 음식들을 보더니 깜짝 놀랐고, 정말 맛있게 잘 먹었다. 그 모습을 보니 너무나 기분이 좋았다. 취나물, 고사리나물은 캐나다에 온 이후로 처음 먹어본다고 했고, 깻잎전은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라 했다.

사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닌 집밥을 먹게 해주는 것이 나의 제일 큰 목표였는데, 정말 음식 하나하나를 즐기며 집에서 먹는 맛이 난다고 해서 나를 기쁘게 해 줬다. 원래 내가 만든 음식은 내 입에 들어가는 것보다, 상대방 입에 들어가는 게 더 맛있지 않은가! 

한국에 계신 부모님이 추석 걱정을 하시길래, 이렇게 우리 집에 올 거라고 말씀을 드렸더니 너무 기뻐하셨다는 이야기도 해주는데 듣는 나도 가슴이 뭉클했다. 부모님 마음이 어떨지 너무나 뻔하기 때문이었다. 

디저트까지 마치고 났는데, 급히 음식 준비하느라 만수산이 되어버린 부엌을 보면서, 릴리는 자기가 설거지를 해도 되겠느냐고 물었다. 괜찮으니 걱정 말라고 하는데도, 세 번을 연거푸 묻길래, 생각해보니 같이 치우는 게 어쩌면 그녀도 마음이 더 편할지도 모르겠다 싶어서, 나란히 서서 부엌 정리를 했다.

이 생소한 모습에 남편은 어리둥절해하면서 막 웃었다. 원래 손님 초대 후 뒷정리는 늘 전부 간 후에 우리 부부의 몫이었는데, 마치 내 집 살림 인양, 정리를 적극적으로 돕는 그녀의 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한 것 같았다. 

깨끗이 정리된 부엌을 보면서 좋아하는 그녀의 모습이 참 사랑스러웠다. 그리고는, 종일 피곤하셨을 텐데 자기가 가야 우리가 쉴 수 있다며 부랴부랴 짐을 챙겼다. 오늘 상 차리고 남은 음식들을 이것저것 담고는 송편까지 챙겨서 가져가라 주었는데, 우리가 먹겠다고 냉장고에 쟁이는 것보다 훨씬 기분이 좋았다. 요모조모 한다고는 했지만, 한국 차례음식에 비하면 정말 아무것도 아닌 정도의 일로 이만큼의 기쁨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이 감사했다.

떠나는 그녀를 보내고 돌아서면서 남편이 껄껄 웃었다.

"딸이 하나 더 생긴 것 같은 기분이네. 세상에! 자식이 다섯이라니!" 

캐나다에 와서 보낸 세 번째 추석은 이제 정말 명절의 자리를 잡아가는 듯하다. 비록 한국의 가족들도 못 만나고, 미국에 있는 딸과도 못 만났지만, 가족 같은 이웃사촌들과 이렇게 보내는 것이야말로, 타국에서 보낼 수 있는 최대한의 추석이 아닐까? 한국에서도 어차피 코로나 때문에 고향에 못 가고 영상통화로 차례를 지내기도 했다는데 이 정도면 남부럽지 않게 한가위같이 보냈다고 생각된다. 

덧붙이는 글 | https://brunch.co.kr/@lachouette/ 에도 함께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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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에 거주하며, 많이 사랑하고, 때론 많이 무모한 황혼 청춘을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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