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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50을 1년 남짓 남긴 요즘 사는 게 참 지루하다. 중년살이는 원래 이렇게 지루하고 무료한 법인지, 다들 그렇게 사는지 궁금해진다. 설렘으로 눈뜨고, 만족스러운 피곤에 잠들던 때가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난다. 기계적이고 소모적인 하루, 하루가 흘러간다.

일상을 소중히 여기려는 마음을 다잡아 자가발전으로 어렵사리 생성해 낸 나의 온기와 생기를 식구들에게 나눠주는 일에 이젠 진이 빠진다. 정서적 방전 상태다. 신체의 활력과 건강도 정서 못지않게 쇠락중이다. 잇몸은 내려앉고, 어깨와 허리는 노상 무거우며, 손목은 늘 저리다. 잃어가는 것들에 비례해 씁쓸한 회한과 연민이 부풀대로 부풀다 왠지 모를 분노가 된다. 그래서 요즘 나는 늘 조금 화가 난 상태다.

일이 잘못되면 뭐든 엄마 탓하며 투덜대는 딸이 밉고, 사이가 좀 좋아졌다 싶으면 대번 함부로 대해서 상처주기를 반복하는 남편이 밉다. 말로는 엄마 손목 괜찮냐면서 자기 먹은 뒷설거지 안 하고 개수대를 뜨는 아들이 밉다. 변변한 사회적 커리어도 없고, 책읽기도, 글쓰기도 어설프기만 하며 치열하게 살아내지 못하는 나 자신이 그중 가장 밉다. 이 상태로 30년쯤 더 살지도 모른다는 게, 생각만으로도 끔찍하다.
 
  산의 터줏대감처럼 다소곳이 서 있는 한 쌍의 돌탑들
  산의 터줏대감처럼 다소곳이 서 있는 한 쌍의 돌탑들
ⓒ 이지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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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다니는 산길에 2m 정도 높이로 각이 잘 맞게 쌓인 돌탑 한 쌍이 나란히 서 있는 곳이 있다. 오르막 계단이 시작되는 길옆으로 잠시 펼쳐진 땅에 자리를 잡고, 산의 터줏대감처럼 우두커니 서 있다. 과연 저 돌탑을 누가 쌓았을까? 오가는 사람들이 상의 없이 하나씩 크고 작은 돌들을 던져 쌓은 게 저리 탑이 되었을까? 아니면, 어떤 한 사람이 밑단부터 공들여 쌓아 올려 만든 완성품일까?

어떤 연유인지 알 수는 없지만, 기왕이면 많은 사람들이 던진 돌에 저리 쌓아진 것이리라 믿고 싶었다. 한 사람의 공으로만 돌리기엔 그 산길을 좋아하는 많은 사람들을 모두 소외시키는 것 같았고, 사람들의 작은 손길과 바람이 수없이 모여 의미 있는 뭔가를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게 훨씬 기분 좋기 때문이다. 돌탑에 그런 많은 사람들의 보이지 않는 마음들이 함께 담겨있다고 생각하면 공연히 숙연해지기까지 했다.

돌탑의 다소곳한 자세는 나도 뭔가를 빌고 싶게 만들었고, 작년 큰 애의 대입 원서접수를 앞두고 나도 돌멩이를 보탰다. 처음에는 그저 손이 닿는 곳에 돌멩이를 올려놓았는데, 나중에는 꼭대기에 가깝게 놓고 싶어 껑충 뛰어 돌멩이를 던졌다. 왠지 꼭대기에 가까울수록 더 좋은 대학에 붙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던진 돌멩이가 기분 좋게 한 번에 돌무더기 꼭대기 언저리에 쏙 들어앉는 걸 보면, 마치 큰 애 일이 술술 풀릴 것처럼 개운했다. 어떤 날은 돌멩이가 다른 돌멩이들에 맞고 함께 튕겨나갈 때도 있었다. 그런 때는 아차 싶어 떨어진 돌들을 허겁지겁 주워 있던 자리에 도로 올려놓았다. 내 욕심 채우자고 남의 소중한 바람을 하찮게 여기고 싶지 않았다. 돌 던지는 게 뭐라고 근거 없는 상상과 욕심을 부려보는 자신이 스스로도 우스웠지만, 아무렴 어떠랴 싶었다.

그렇게 산에 오를 때마다 빠뜨리지 않고 작고 이쁜 돌멩이를 골라 주워 돌탑에 오가며 던졌다. 그리고 정말 신기하게도 큰 애는 가고 싶던 대학에 운 좋게 합격했다. 논리적으로 말은 안 되지만 혹여 던진 돌멩이들이 정말 효험을 발휘했던 건 아닐까 잠깐 생각했다. 큰 애 합격 이후로 돌멩이 던지기는 자연스레 중지했지만 지날 때마다 한동안 흐뭇했다.

흐뭇함이 많이 무덤덤해지고, 늘 조금 화가 난 상태인 근래 어느 날 돌탑 중 하나가 반이 넘게 우르르 앞으로 무너져 내린 걸 목격했다. 어떻게 저 무거운 돌덩이들이 한꺼번에 와르르 무너졌을지 궁금했다. 마치 사람들의 바람과 소원이 함께 무너져 내린 것 같아서 안타깝기도 했다. 작년, 돌탑과 중차대한 일을 공유했던데서 오는 가벼운 책임감으로 '나라도 돌을 다시 올려놓아야 하나' 갈등했지만, 그냥 외면했다. 그런 데에 쓸 상냥함이 바닥난 지 오래였기 때문이다.

아쉬울 때는 그리도 자주 오르락내리락 맴돌며 애틋해하고 의미 부여하더니, 제 볼일 끝났다고 상관없는 풍경 취급하며 차갑게 돌변하는 스스로의 태도가 참 간사하다고 느껴졌다. 지나는 사람들 마음이 다들 나와 같은지 그 뒤로 며칠이 지나도 돌탑은 무너진 그대로였다. 그 산길과 돌탑을 아끼는 많은 사람들이 있을 거라 믿었던 마음마저 금이 가고, 돌탑을 그대로 둔 나와 사람들이 실망스러웠다. 세상살이란 게 다 이 모양인 건지 허망했고 한껏 씁쓸해했다.

그날도 해 질 무렵 산행 중이었다. 돌탑 옆에 60대쯤으로 보이는 남자 한 분이 서 계셨다. 깜짝 놀랐다. 그분은 사람 머리 두 배 만한 돌을 돌탑 중간에 단단히 아귀를 맞추어 괴고는, 다시 무너진 돌무지에서 맞춤한 돌을 골라 고심하며 쌓는 중이었다. 그분의 진지한 표정과 동작을 천천히 눈에 담자 갑자기 차가운 마음을 꽁꽁 결박하던 밧줄들이 스르르 풀어지면서 울컥했다.

나와 사람들이 버린 돌탑을 거둬주시는 것 같았고, 각박하고 인정머리 없는 세상 속에서도 좋은 사람, 따뜻한 사람이 여전히 실재한다는 것을 증명해 주는 것만 같아 진심 고마웠기 때문이다. 그 분을 만나니 돌연 조금 힘이 났다. 화나던 마음도 조금 누그러졌다. 생각해보니, 이 분처럼 눈에 띄지 않는 작은 일이지만, 다른 이들에게 힘이 되는 일을 하는 분들이 주변에 있음을 깨닫는다.

이른 아침 미끄러운 빙판길에 염화칼슘을 뿌리고 눈을 치워 등굣길, 출근길을 터 놓아주시는 동네 이웃이 그런 분이고, 둔턱에 걸린 어르신의 무거운 짐수레에 달려가 도와드리고 훌쩍 떠나는 동네 청년도 그런 분이다. 비 맞고 가는 남의 아이에게 우산 기울여 함께 씌워주는 동네 아줌마도 그런 분이고, 놓고 내린 손님의 짐을 잘 맡아 주었다가 찾아주는 마을버스 기사님도 그런 분이다.

표도 안 나고, 아무런 보상도 없는 일이지만 서슴없이 자신의 손길을 보태 주위를 밝히는 행동들이다. 잘 안 보이지만 우리는 그런 주변의 상냥하고 친절한 마음들에 의지하며 생의 온기를, 에너지를 긴급 수혈받고 있는지도 모른다.  

물론, 사람들의 작은 상냥함과 호의가 나의 화를, 나의 미움을 해결해 줄 수는 없다. 친밀한 사람들에게서 삶의 에너지를 주고받지 못하고, 사람들의 지나치는 작은 호의에 의지해 살아갈 수도 없는 일이다. 다만, 때로는 누군가의 작은 호의가 어떤 절박한 마음에 닿아 비상발전기를 돌릴 충전기는 되어줄 때도 있겠구나 싶다.
 
   한 분이 돌을 쌓아 올린 후, 날이 갈수록 점점 돌탑이 높아지고 있었다
  한 분이 돌을 쌓아 올린 후, 날이 갈수록 점점 돌탑이 높아지고 있었다
ⓒ 이지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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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산행에서 돌탑이 지난번보다 한결 높아져 있었다. 그 분을 따라 힘을 내어 나도 돌덩이 몇 개를 얹어 보았다. 돌덩이를 얹고 나자, 마음의 결이 약간 달라진다. 회의적이던 마음이 약해지고, 조금 뿌듯해진다. 이 뿌듯함으로 화만 내던 스스로에게 조금의 아량을 베풀 여유가 슬며시 생기는 것 같기도 하다.  

충전된 비상발전기 덕분에 마음을 다독이며 생기 없는 하루를 인내하는 마음으로 또 살아내 본다. 살고 살아도 별 뾰족한 수는 없을 것 같지만, 생각을 집요하게 파고들다 끝에 다다른 어느 날, 멀찍이 미뤄둔, 꼭꼭 묻어둔 나만의 욕망을 결행할 용기가 솟는 날을 혹여 만날지도 모르니 말이다.

덧붙이는 글 | 기자의 브런치에도 함께 게재되었습니다.


태그:#중년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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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궁금한 게 많아 책에서, 사람들에게서 답을 찾아가는 여정을 즐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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