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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서 수십 년을 살다가 올 3월 소도시 경북 영천으로 이사 왔다. 지칠 대로 지친 상태에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가득 안고 낯선 도시, 아는 이 한 명 없는 이곳에 왔다.

혼자 사는 몸이니 사람들과 대화 한 마디 할 일이 없었다. 무언가에 집중해야만 살 수 있을 것 같아 한 달 동안 청소만 했다. 고맙게도 먼지, 곰팡이, 묵은 때가 나에게  일거리를 준 셈이다. 결국 내 손은 나무 등걸처럼 되고 말았지만.

18년 동안 대구에서 학원 운영을 하다가 코로나19 발생으로 두 달 동안 휴업을 했다. 제조업을 수십년 하고 있는 오빠의 제안으로 사업을 같이 시작했지만, 끝이 좋지 않았다. 목으로 밥을 넘기는 것조차 힘들었다.

살은 사정없이 빠지고 밤마다 식은땀이 물 흐르듯 했다. 나이 60에 성실하게 살아 온 인생이 순식간에 곤두박질쳤다. 작년 초 코로나가 처음 발생했을 때도 암담했지만 주위 사람들의 도움으로 절대 쓰러지지 않겠다고 공언을 했는데, 이렇게 되었다. 

관련기사 : 목젖이 아팠던 순간들... 나는 절대로 쓰러지지 않을 겁니다
http://omn.kr/1mzcr


결국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 인터넷을 수없이 뒤지고 영천시에서 운영하는 취업지원센터에도 등록을 했다. 이 나이에 할 수 있는 일은 제한적이고 55세 이상은 오라는 데도 없는 게 현실이었다.
 
2주 전에 뿌린  열무와 상추가  이쁘게  자란다
 2주 전에 뿌린 열무와 상추가 이쁘게 자란다
ⓒ 박해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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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아웃소싱 업체를 통해 식품회사에서 근로자로 일하게 되었다. 내가 사업 실패를 겪고 나니, 사업을 하며 고용을 창출하는 대표님들이 존경스럽고 다시 보인다.
그 고뇌와 무거운 어깨를 알기에.

인생 하반기에 새로 시작한 육체노동은 정신건강에 너무 좋다. 시키는 대로만 열심히 하면 되니까. 새로운 세상을 알게 되었고, 그다지 힘들지도 않다. 동료들은 그 말을 믿지 못한다지만 난 일할 수 있음에 감사해선지 피곤한 줄 모르겠고 그저 즐겁다.

회사가 바쁠 때면 언제든지 나가서 일하겠다는 마음도 진심이다. 출근이 힐링이 된다면 믿어질까만 사실이다. 단순노동이 딱 내 체질인가 보다. 조금이라도 일찍 나가 할 일을 찾아 본다.

마당 청소도 하고 정원 귀퉁이에 열무도 뿌려 놓았다. 회사가 계속 성장하고 나도 미력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며 오래도록 여기에서 일하고 싶다. 매일 아침 일터로 나가는 발걸음이 가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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