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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말로 산내면에서는 무시무시한 학살을 자행했습니다, 현장 근처가 온통 피바다였습니다" (1950년 6.25 당시 골령골  총살집행책임자 중 한 사람이었던 변홍명(가명)의 주요 증언 ,충남도경찰청 소속 사찰 주임)
▲ 14일 대전 골령골 민간인학살 피해자 유해발굴 현장 "정말로 산내면에서는 무시무시한 학살을 자행했습니다, 현장 근처가 온통 피바다였습니다" (1950년 6.25 당시 골령골 총살집행책임자 중 한 사람이었던 변홍명(가명)의 주요 증언 ,충남도경찰청 소속 사찰 주임)
ⓒ 심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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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골령골 살해현장. "더 올라가면 이승만 대통령이 아니고 누가 그런 명령을 내릴 수 있겠어." 1950년 6.25 당시 골령골 총살집행책임자 중 한 사람이었던 변홍명(가명)의 주요 증언, 충남도경찰청 소속 사찰 주임
 골령골 살해현장. "더 올라가면 이승만 대통령이 아니고 누가 그런 명령을 내릴 수 있겠어." 1950년 6.25 당시 골령골 총살집행책임자 중 한 사람이었던 변홍명(가명)의 주요 증언, 충남도경찰청 소속 사찰 주임
ⓒ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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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광역시 동구 골령골에서는 한국전쟁 직후 군인과 경찰에 의해 집단 살해된 민간인들의 유해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관련기사 : 미국이 '흉악한 조작'이라던 대전 골령골에서 쏟아져 나온 유해 http://omn.kr/1v5j1)

대전 골령골에서는 한국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6월 28일부터 7월 17일까지 3차례에 걸쳐 국민보도연맹원과 대전형무소 수감 정치범을 대상으로 최소 4000여 명, 최대 7000여 명의 대량 학살이 벌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가해자들은 충남지구 CIC(방첩대), 제2사단 헌병대, 대전지역 경찰 등으로 민간인들은 법적 절차 없이 집단 살해됐다.

발굴 작업은 행정안전부와 대전 동구청의 의뢰로 선사문화연구원과 동방문화연구원이 맡고 있다.

사진은 14일 골령골 유해발굴 현장 모습이다.
 
14일 대전 골령골 민간인학살 피해자 유해발굴 현장 대전 골령골에서는 한국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6월 28일부터 7월 17일까지 3차례에 걸쳐 국민보도연맹원과 대전형무소 수감 정치범을 대상으로 최소 4000여 명, 최대 7000여 명의 대량 학살이 벌어졌다.
▲ 14일 대전 골령골 민간인학살 피해자 유해발굴 현장 대전 골령골에서는 한국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6월 28일부터 7월 17일까지 3차례에 걸쳐 국민보도연맹원과 대전형무소 수감 정치범을 대상으로 최소 4000여 명, 최대 7000여 명의 대량 학살이 벌어졌다.
ⓒ 대전 동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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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대전 골령골 민간인학살 피해자 유해발굴 현장 "지금도 잊지 못하는 것은 대상자들 중엔 20세 미만의 아이들이 상당수 있었습니다." 1950년 6.25 당시 골령골  총살집행책임자 중 한 사람이었던 변홍명(가명)의 주요 증언, 충남도경찰청 소속 사찰 주임
▲ 14일 대전 골령골 민간인학살 피해자 유해발굴 현장 "지금도 잊지 못하는 것은 대상자들 중엔 20세 미만의 아이들이 상당수 있었습니다." 1950년 6.25 당시 골령골 총살집행책임자 중 한 사람이었던 변홍명(가명)의 주요 증언, 충남도경찰청 소속 사찰 주임
ⓒ 심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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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대전 골령골 민간인학살 피해자 유해발굴 현장 "사람을 한 번 죽여본 사람은 사람 목숨 알기를 파리목숨으로 알게 돼요. 극단에 가면 사람 죽이는 거 아무것도 아니에요. 심리가 그렇게 돌아가더라고요." 1950년 6.25 당시 골령골 총살집행책임자 중 한 사람이었던 변홍명(가명)의 주요 증언, 충남도경찰청 소속 사찰 주임.
▲ 14일 대전 골령골 민간인학살 피해자 유해발굴 현장 "사람을 한 번 죽여본 사람은 사람 목숨 알기를 파리목숨으로 알게 돼요. 극단에 가면 사람 죽이는 거 아무것도 아니에요. 심리가 그렇게 돌아가더라고요." 1950년 6.25 당시 골령골 총살집행책임자 중 한 사람이었던 변홍명(가명)의 주요 증언, 충남도경찰청 소속 사찰 주임.
ⓒ 심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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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대전 골령골 민간인학살 피해자 유해발굴 현장 "보통 대각선으로 뒤통수를 쏘게 되는데 골이 튀어나와 온몸에 튀겨요. 직통으로 쏘면 머리가 박살이 나지요."  1950년 6.25 당시 골령골 총살집행책임자 중 한 사람이었던 변홍명(가명)의 주요 증언, 충남도경찰청 소속 사찰 주임
▲ 14일 대전 골령골 민간인학살 피해자 유해발굴 현장 "보통 대각선으로 뒤통수를 쏘게 되는데 골이 튀어나와 온몸에 튀겨요. 직통으로 쏘면 머리가 박살이 나지요." 1950년 6.25 당시 골령골 총살집행책임자 중 한 사람이었던 변홍명(가명)의 주요 증언, 충남도경찰청 소속 사찰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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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대전 골령골 민간인학살 피해자 유해발굴 현장 골령골 유해발굴과정에서 드러난 가로 4.5m, 세로 6m 규모의 숯자리. 숯덩이 속에 여러 점의 유해가 섞여 있었다. 당시 희생자들의 것으로 보이는 불에 탄 섬유조직, 안경알, 군경이 살해에 사용한 탄피 등이 함께 발굴됐다.
▲ 14일 대전 골령골 민간인학살 피해자 유해발굴 현장 골령골 유해발굴과정에서 드러난 가로 4.5m, 세로 6m 규모의 숯자리. 숯덩이 속에 여러 점의 유해가 섞여 있었다. 당시 희생자들의 것으로 보이는 불에 탄 섬유조직, 안경알, 군경이 살해에 사용한 탄피 등이 함께 발굴됐다.
ⓒ 대전 동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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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대전 골령골 민간인학살 피해자 유해발굴 현장 "처음에는 정치범들을 사형목(나무기둥)에 세운 뒤 손을 묶어 총살 후 미리 준비한 장작더미에 던져 50~60구씩 모아지면 화장을 했습니다.".1950년 6.25 당시 골령골 총살집행책임자 중 한 사람이었던 변홍명(가명)의 주요 증언, 충남도경찰청 소속 사찰 주임
▲ 14일 대전 골령골 민간인학살 피해자 유해발굴 현장 "처음에는 정치범들을 사형목(나무기둥)에 세운 뒤 손을 묶어 총살 후 미리 준비한 장작더미에 던져 50~60구씩 모아지면 화장을 했습니다.".1950년 6.25 당시 골령골 총살집행책임자 중 한 사람이었던 변홍명(가명)의 주요 증언, 충남도경찰청 소속 사찰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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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대전 골령골 민간인학살 피해자 유해발굴 현장  "나는 경찰이었으니까... 죽이고 싶었겠습니까, 시키니까 할 수 없이 쏘았을 뿐입니다." 1950년 6.25 당시 골령골  총살집행책임자 중 한 사람이었던 변홍명(가명)의 주요 증언, 충남도경찰청 소속 사찰 주임
▲ 14일 대전 골령골 민간인학살 피해자 유해발굴 현장  "나는 경찰이었으니까... 죽이고 싶었겠습니까, 시키니까 할 수 없이 쏘았을 뿐입니다." 1950년 6.25 당시 골령골 총살집행책임자 중 한 사람이었던 변홍명(가명)의 주요 증언, 충남도경찰청 소속 사찰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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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대전 골령골 민간인학살 피해자 유해발굴 현장 "내가 어떻게 알겠는가? 당시 현장에서 느낀 바로는 신성모 국방부 장관 그런 사람들이 지시하지 않았겠는가?" 1950년 6.25 당시 골령골  총살집행책임자 중 한 사람이었던 변홍명(가명)의 주요 증언, 충남도경찰청 소속 사찰 주임
▲ 14일 대전 골령골 민간인학살 피해자 유해발굴 현장 "내가 어떻게 알겠는가? 당시 현장에서 느낀 바로는 신성모 국방부 장관 그런 사람들이 지시하지 않았겠는가?" 1950년 6.25 당시 골령골 총살집행책임자 중 한 사람이었던 변홍명(가명)의 주요 증언, 충남도경찰청 소속 사찰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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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대전 골령골 민간인학살 피해자 유해발굴 현장 "정말로 산내면에서는 무시무시한 학살을 자행했습니다, 현장 근처가 온통 피바다였습니다." 1950년 6.25 당시 골령골 총살집행책임자 중 한 사람이었던 변홍명(가명)의 주요 증언, 충남도경찰청 소속 사찰 주임.
▲ 14일 대전 골령골 민간인학살 피해자 유해발굴 현장 "정말로 산내면에서는 무시무시한 학살을 자행했습니다, 현장 근처가 온통 피바다였습니다." 1950년 6.25 당시 골령골 총살집행책임자 중 한 사람이었던 변홍명(가명)의 주요 증언, 충남도경찰청 소속 사찰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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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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