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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기자 글쓰기 그룹 '반려인의 세계'는 반려동물에 대한 고민과 반려동물로 인해 달라지는 반려인들의 삶을 다룹니다. 이번 주제는 '유기견, 유기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편집자말]
메르스의 여파로 어수선했던 2015년 6월 19일 금요일. 나는 아직도 생생하게 이 하루를 기억한다. 그날 나는 하루 종일 부산했다. 반려견 돌봄에 관한 책을 오전 내내 정독했고, 오후엔 반려동물 용품점을 방문해 강아지를 입양하는 데 필요한 물건들을 사왔다. 집을 청소하고 새 식구의 공간을 만들었다.

그리고 저녁 6시 무렵. 남편, 아이, 나 우리 세 식구는 은이가 임시보호(아래 '임보')되어 있던 집으로 갔다. 세 번째 방문이었다. 은이는 우리를 보자마자 달려와 반기더니 이내 배를 드러내며 누웠다. 나는 은이를 쓰다듬어 주며 말했다.

"은이야, 오늘부터 너는 우리 가족이야."

우리는 서약서를 쓰고 책임비를 지불한 뒤 은이와 함께 집으로 왔다. 그날 은이는 조금 불안해 보였고, 밤새 낑낑댔다. 하지만 다음 날 아침이 되자 밥 한 그릇을 뚝딱하더니 온 집안을 탐색했다. 배변패드에 소변을 보는 데도 성공했다. 입양 3일째쯤 되자 적응을 마친 듯 집안을 활보했다. 은이는 그렇게 우리 가족의 삶 속으로 들어왔다.
  
은이는 어딜가나 늘 함께하는 우리의 가족이다. 캐나다 빅토리아를 여행할 때 함께 묵은 숙소의 푹신한 이불을 즐기는 은이의 모습
 은이는 어딜가나 늘 함께하는 우리의 가족이다. 캐나다 빅토리아를 여행할 때 함께 묵은 숙소의 푹신한 이불을 즐기는 은이의 모습
ⓒ 송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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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이의 사연

은이를 알게 된 것은 대구의 한 민간 유기견 보호소를 통해서였다.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이었던 2015년 우리 가족은 한 달에 한 번 생명을 존중하는 자원활동을 하기로 마음을 먹고 유기견 보호소를 방문했다.

처음 봉사를 갔던 날, 개들이 한꺼번에 꼬리를 치며 달려와서 조금은 놀랐었다. 하지만, 개들은 전혀 공격적이지 않았고 저마다 친밀함을 표시하기 위해 애를 썼다. 아이도 금세 개들과 어울렸다. 우리 가족은 소형견 축사를 청소하고, 개들을 산책시키는 일을 했다. 봉사를 마치고 집에 갈 준비를 하고 있을 때 보호소의 매니저가 슬쩍 말을 꺼냈다.

"여기 있는 강아지들 한 마리 거두어 주시는 게 더 큰 봉사예요."

우린 흘려들은 척하며 집으로 왔지만, 계속해서 이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아이가 개와 놀던 모습도 아른거렸다. 하지만, 개를 잘 돌볼 수 있을지 불편한 일은 생기지 않을지 온갖 고민들이 밀려왔다.

한 달 후 마침내 결심이 섰고, 보호소에 연락을 해 입양 의사를 밝혔다. 그리고 임보 중이던 은이를 소개받았다. 보호소 매니저는 입양 전 몇 차례 임보 가정을 방문해서 만나보길 권했고, 아직 어린 아이가 동물을 대하는 태도도 잘 살펴보라고 했다.

우리는 임보 가정을 방문했고, 임보자님과의 인연도 시작되었다. 은이는 산에서 6개월 정도를 떠돌다 구조되었는데 당시 은이는 귓속에 벌레가 가득하고 피부병도 앓고 있었다. 그런데도 유난히 사람을 따랐다.

임보자님이 보호소를 방문했던 날 은이는 이 분의 품에 안겨 떠나질 않았고 도저히 데리고 오지 않을 수가 없었다고 했다. 그렇게 은이는 가정에서 지내며 귓병과 피부병을 치료했고, 건강해졌다.

그 후 은이는 혼자 사시는 할머니에게 입양을 갔었다. 하지만, 할머니는 몇 달 되지 않아 중풍에 걸렸고 은이는 파양돼 임보가정에 돌아와 있는 상태였다. 우리와 만난 건 은이가 파양의 상처에서 회복돼 다시 밝게 지내고 있을 때였다.

은이의 임보자는 은이의 사연을 들려주었고, 은이의 성격이나 특징은 물론 초보 반려인에게 필요한 모든 것들을 A4 두 장 분량에 빽빽하게 적어주셨다. 우리 가족은 이분께 많은 걸 묻고 배우며 점차 능숙한 반려인이 되어갔다.

지금도 종종 연락을 하며 지내는데 가끔 급한 일이 생겼을 땐 선뜻 은이를 맡아 돌봐주시기도 한다. 가까이 계시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든든한지 모른다. 임보는 유기견들이 가정생활에 쉽게 적응할 수 있도록 돕고, 입양 확률을 높이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유기견들과 함께 해주는 임보자들에게 감사를 전한다.

은이가 우리에게 알려준 것들

가족이 된 은이는 우리에게 정말 많은 것을 알려줬다. 먼저 생명은 결코 수단이 될 수 없음을 가르쳐줬다. 입양을 결정했을 때 나와 남편은 줄곧 "외동인 아이에게 좋을 거야"라는 말을 하곤 했다. 은이를 아이를 위해 존재하는 수단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은이와 함께 하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은이의 존재 자체가 너무나 고맙게 느껴졌다. 지금 우리 가족은 안다. 그 어떤 생명도 다른 생명을 위한 수단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또한 '무조건적인 사랑'이 어떤 것인지도 은이에게서 배웠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이라고 해도 사람들은 서로의 기대와 바람, 욕구를 투사하고 이것이 충족되길 바라는 조건적인 사랑을 한다. 하지만, 은이는 다르다.

은이는 우리를 아무런 편견 없이 대한다. 자신의 욕구를 투사하지도 않고, 기대를 충족시켜주지 않았다고 미워하지도 않는다. 그저 함께 산다는 이유만으로 매일 같이 무조건적인 사랑을 열정적으로 표현해준다.

나 역시 '조건 없이' 은이를 사랑한다. 가끔씩 신발을 물어뜯거나 이불에 실수를 해도 화가 나기는커녕 마냥 예쁘기만 하다. 아마도 나의 아이가 말썽을 피웠더라면 대번 목소리 톤이 높아졌을 텐데 은이는 무엇을 해도 사랑스럽다. 이런 '무조건적인 사랑'은 솔직한 내 모습을 마주하게 해준다.

은이 앞에서 나는 그 어느 때보다 가장 편안한 나의 모습으로 있을 수 있다. 완벽하게 비밀보장을 해주는 은이에게 속상하고 힘든 마음을 털어놓고 나면 정말로 위로를 받는 기분이 든다. 은이 덕분에 '무조건적인 사랑'의 참맛을 알아가고 있다.
  
SBS <어바웃펫 어쩌다 마주친 그 개>의 한 장면. 이 프로그램은 저마다 다른 상처를 지닌 유기견들이 사람과 함께 하면서 상처를 치유해가는 과정을 잘 보여주었다.
 SBS <어바웃펫 어쩌다 마주친 그 개>의 한 장면. 이 프로그램은 저마다 다른 상처를 지닌 유기견들이 사람과 함께 하면서 상처를 치유해가는 과정을 잘 보여주었다.
ⓒ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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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을 대하는 태도는 결국 사람을 대하는 태도 

또 하나. 은이와 함께 하면서 알게 된 가장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태도'가 동물도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은이는 입양 당시 사람에 대한 경계는 없었지만, 다른 개들에 대한 경계가 몹시 심했다. 산책을 나가면 반대편 건널목에 개가 보여도 짖어댔고 우리는 다른 개들이 없는 곳을 찾아다녀야 했다.

하지만, 은이와 함께 밴쿠버에 2년간 머물렀을 땐 도저히 개를 피해 다닐 수 없었다. 집 앞 산책로를 걷는 사람의 3분의 1은 개를 데리고 다녔고, '펫 프렌들리'한 사회 덕에 관공서든 은행이든 학교든 어디를 가도 개를 만났다.

처음 몇 주간 나는 무척 긴장했다. 은이가 짖지 않도록 안고 다닌 적도 많았다. 하지만, 그곳의 개들은 은이가 짖어도 공격적으로 다가오지 않았고, 보호자들도 그런 은이에게 "겁이 많나 보네요"라고 말해줄 뿐이었다.

이렇게 우호적인 분위기 속에서 한 달이 지나자 변화가 생겼다. 은이가 다른 개들을 보고 짖지 않게 된 것이다. 그리고 다시 몇 달이 지나자 은이는 다른 개에게 다가가 꼬리를 치고 냄새를 맡으며 친근감을 표시할 수 있게 됐다. 

나는 이런 은이를 보면서 깨달았다. 사람과 마찬가지로 동물도 우호적이고 편견 없는 태도로 대하면 긍정적으로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또한, 밴쿠버에서 나는 느낄 수 있었다. 은이를 존중해주던 그 태도로 사람들도 서로를 대한다는 것을.

유기견, 잡종견, 장애견을 편견없이 대하던 그 사회는 이민자, 성소수자, 장애인 등 소수자에 대한 편견도 한국보다 훨씬 덜했다. 개를 존중해주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 역시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다양성을 더 잘 받아들였다. 

그리고 최근 나는 브라이언 헤어와 바네사 우즈가 쓴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를 읽다가 이것이 나의 느낌만이 아님을 알게 됐다. 책에 인용된 심리학자 고든 호드슨과 크리스토프 돈트의 연구에 따르면 동물보다 사람이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일수록 사람 중에도 우월한 집단과 열등한 집단이 있다고 여기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또한, 동물과 사람을 분리해서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이민자와 같은 외집단을 '비인간화' 했다. 사이코패스로 진단된 사람들의 상당수가 동물학대 경험이 있다는 수많은 연구들을 떠올려봐도 동물을 대하는 태도가 사람을 대하는 태도로 이어짐은 자명해 보인다.
  
SBS <어바웃펫 어쩌다 마주친 그 개>의 한 장면. 처음부터 유기견인 개는 없다. 세상의 모든 개는 반려견이다.
 SBS <어바웃펫 어쩌다 마주친 그 개>의 한 장면. 처음부터 유기견인 개는 없다. 세상의 모든 개는 반려견이다.
ⓒ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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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우리가 유기견을 대하는 태도를 점검해봐야 하지 않을까. 유기견은 어딘가 하자가 있어 키우기 힘들 것이라 지레 짐작하는 것은 결국 상처를 경험한 사람을 '하자 있다' 여기는 태도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결핍 없이 자라나는 사람은 없다. 우리는 저마다의 상처를 지닌 채 성장한다. 개들도 마찬가지다.

가족 안에서 자랐다 해도 상처받고 잘못된 습관을 갖게 되는 경우도 많다. 우리가 그렇듯, 유기견도 상처를 경험한 소중한 생명이다. 그러니 유기견에 대한 편견 따위는 버려야 할 것이다. 아마도 유기견과 시간을 보내본 사람을 곧 알게 될 것이다. 은이가 우리에게 가르쳐준 가치들(생명의 소중함, 조건 없는 사랑, 편견 없는 존중의 태도)이 얼마나 우리의 삶을 따뜻하게 하는지를.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의 말미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개에게서 사랑을 받아본 사람이라면 그 사랑이 다른 사랑만 못하다는 생각은 결코 들지 않았을 것이다. 우정은 세상에서 가장 위대하고 평등한 사랑이다. (299쪽)

이 '위대하고 평등한 사랑'을 맛보는 최선의 방법은 유기견과 함께 하는 것이다. 유기견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입양하는 것 자체가 좀 더 평등한 세상을 만들어 가는 일일 테니 말이다.

'사지 않고 입양하는 일'은 유기견이 양산되고 동물을 물건처럼 대하는 원인이 되는 '펫 팩토리'를 근절시키는 방법임을, 생명 존중을 실천하며 조건 없는 사랑을 경험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임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이 모든 것을 알게 해 준 은이에게 다시 한번 고마움을 전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필자의 개인블로그(https://blog.naver.com/serene_joo)와 브런치(https://brunch.co.kr/@serenity153)에도 실립니다.


반려동물에 대한 고민과 반려동물로 인해 달라지는 반려인들의 삶을 다루는 콘텐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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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 상담심리사. 심리학, 여성주의, 비거니즘의 시선으로 일상과 문화를 바라봅니다. 모든 생명을 가진 존재들이 '있는 그대로 존중받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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