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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아무리 먹어도 배가 부르지 않게 되어서 더 많은 음식을 실컷 탐할 수 있길?바라는 사람이었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아무리 먹어도 배가 부르지 않게 되어서 더 많은 음식을 실컷 탐할 수 있길 바라는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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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오면서 신기한 이들을 종종 만나왔다. 내 입장에서 그중 빼놓을 수 없는 한 부류는, 먹는 것이 세상 가장 귀찮다는 사람들이었다. 살아야 하니 의무적으로 먹긴 하지만 필요한 영양소를 단번에 섭취할 수 있는 알약이 생긴다면 제일 먼저 먹겠다는 이들. 세상에나!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아무리 먹어도 배가 부르지 않게 되어서 더 많은 음식을 실컷 탐할 수 있길 바라 왔으니, 영 딴 세상 이야기로 들릴 수밖에. 나 역시 손가락 하나 까딱하고 싶지 않은 날이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먹는 게 싫은 건 아니었다. 끙끙 앓아누운 날조차 머릿속에는 먹고 싶은 음식이 둥둥 떠다녔다. 

그러니 비건을 지향하려고 마음먹은 뒤, 내 스스로 무척 불리한 입장에 놓였다고 멋대로 생각했다. 먹는 것 자체에 흥미가 적다면 보다 수월하지 않을까, 나처럼 식탐이 강하고 먹는 것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사람이 평생 먹던 것을 과연 끊을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을 가졌던 것이다. 

그 핑계로 몇 번씩 무너지기도 했지만 몇 년이 흐른 지금, 식탐이 오히려 이점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아가고 있다. 말하자면, 나에게는 번거로움을 불사할 수 있는 열정과 새로운 맛에 대한 호기심이 무궁무진한 것이다. 그러니 굳이 고기가 아니어도 식탁은 다채로울 수 있다는 것을 매일 체험 중이다.

동물을 소비하지 않고도 욕망을 채울 수 있다 

처음에는 멸치나 새우 없이 어떻게 국물을 낼 수 있을까 난감했지만 이제 다시마와 무만 있어도 충분하다는 것을 안다. 그때그때 양파 껍질이나 파뿌리, 버섯 등 상황에 맞게 재료를 가감하면 더 좋다. 또, 내가 즐기던 음식의 상당수가 육류 자체의 매력보다는 양념이 주는 즐거움이라는 것을 깨닫기도 했다. 

양념치킨은 닭이어서가 아니라 달달하고 매콤 짭짤한 튀김이기 때문에 맛있다. 그러니 버섯이나 두부로 대신해도 충분히 만족스럽다. 이따금 고기와 같은 질감이 당기는 날에는 그와 흡사하게 만들어진 대체육을 찾아도 좋다. 어떤 것들은 소나 돼지, 닭으로 만든 것보다 더 고기 같아 놀랍기도 하다. 

한때는 동물을 소비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으로서 비건을 지향하기 시작했는데 그것을 모사한 음식을 먹는 것이 뜨악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니 정 고기가 먹고 싶다면 그 마음을 거부하거나 숨길 것 없이, 진짜 고기를 먹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생각했던 적도 있을 정도다.

하지만 이제 그런 입장은 말끔히 버렸다. 나는 동물을 괴롭히고 싶지 않은 것일 뿐, 평생의 기억을 모두 잊기로 한 것은 아니다. 그러니 좋은 추억이 담긴 음식들이 먹고 싶을 때면 비슷한 식물성 음식들을 찾는 것으로 내 나름의 행복을 만끽한다. 동물을 소비하지 않고도 내 욕망과 향수는 충분히 채워진다. 

물론, 보다 건강하게 비건을 지향하기 위해서는 극도로 가공된 것보다는 최대한 원래의 형태를 그대로 유지한 것이 내 몸에 더 잘 받는다는 것도 서서히 알게 되었다. 두부는 좋은 음식이지만 콩을 익혀서 그대로 먹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이 내 판단이다. 채소나 과일 등 대부분의 것들이 내 몸엔 마찬가지였다. 

비건을 지향하기 전에는 내게 어떤 것이 잘 맞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체하거나 변비에 걸리지 않는 이상 내 몸이 보내는 신호에 무감각했고, 그런 일은 극히 드문 일이라서 아무 거나 먹고 마시며 내 몸을 돌보는 데 소홀하기만 했다. 하지만 이제 몸이 보내오는 신호를 조금은 더 예민하게 잡아낼 수 있게 되었다. 

내가 먹는 것의 정체가 무엇인지, 동물에게서 온 것은 아닌지 섬세하게 따지게 되면서부터 시나브로 내 몸을 더 자세히 알게 된 것이다. 단 하나의 생명이라도 살리고 싶어 시작한 채식이, 그 누구보다 나를 살리고 있다고 하면 어떨지. 

점점 더 비건에 가까워지는 내가 좋다 
 
 나는 점점 더 비건에 가까워지는 내가 좋다.
 나는 점점 더 비건에 가까워지는 내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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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몸에 무리를 가하면서도 과식을 일삼던 습관도 조금씩은 줄여가고 있다. 여전히 탐욕에 무너지는 날이 적지 않지만, 적어도 내 몸에 좋을 게 없다는 것을 알게 된 이상 그 이전과 같을 수는 없다. 절제하는 법을 배우는 것 또한 비건지향적인 삶에 가까워지는 것 같아 적잖이 만족스럽다. 

아직은 불완전하지만, 육식을 거부하는 것은 점점 본능에 가까워지는 것만 같다. 처음에는 감성과 이성으로 피해왔는데, 점차 몸이 먼저 알고 그런 것들을 물리친다. 코와 혀가 먼저 알아보니 매번 머리를 써가며 고민할 일이 줄어드는 것이다. 

여전히 사람들을 만날 때면 당황스러울 때도 있고 때로 타협하기도 하지만, 나는 점점 더 비건에 가까워지는 내가 좋다. 무척 제한적이겠지만 내 경험에 비추어 말하자면 식탐이 강해도, 살아 있는 동물보다 죽은 동물이 더 친숙하다 해도 채식은 할 수 있다고 본다. 

그렇다면 음식에 대한 열정이 없고 먹는 것이 번거롭게 느껴진다면, 채식이 불가능할까.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그런 사람들 역시 나름의 장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진정 하고자 하는 마음만 있다면 말이다. 

9월 9일이 지났다. 닭의 울음소리에 착안한 '구구데이'라며 그 판매를 올리려는 것과 '한국 고양이의 날'임을 홍보하는 것을 동시에 볼 수 있었다. 누군가를 비난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에게 더 많은 육류 소비가 필요할까. 닭과 고양이의 '울음'소리를 떠올리며 한 번쯤 고민해 보면 어떨까 싶다.  

태그:#채식, #비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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