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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중앙에 우물이 놓여 있다.
 마을 중앙에 우물이 놓여 있다.
ⓒ 최육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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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 청소? 항상 우리 여자들이 하제. 남자들은 저~그 길 옆 풀 베고 마을 청소, 울력허제, 울력(여러 사람이 힘을 합해 일을 함)."  

생전 처음 보는 시골 마을의 '우물 두레질'이다. 두레에 길게 연결한 줄을 맞잡고 땀 흘리는 이들은 전부 여성이었다. 마을 주민들은 '청소를 위해 두레로 우물물을 퍼내는 행위'를 "우물을 품는다"고 표현했다.

지난 5일 오전 6시 30분 무렵, 전북 순창군 풍산면 지내마을에서 주민들의 삶을 들여다봤다.

우물가에서 만난 강곡례(85)씨는 "올해 팔십 일곱인데, (순창군 풍산면) 상촌에서 스무 살 때 여기로 시집왔으니까 벌써 65년 됐다"고 웃으며 말을 이었다.

"여태까정 요놈 물 먹고 살았제. 빨래도 여그서 다 빨고, 막 시집왔을 땐 (우물가에) 늦게 나오면 사람들이 하도 많아서 처신도 못 혔어. 옛날에는 한 달에 한 번씩 두레질을 했지. 우물 품는 마을은 인자, 순창에서 우리 마을 밖에 없을 거여."

식수도, 빨래도 우물에서 해결

우물 두레질은 최급분(87), 정계래(84), 김양순(73), 김필분(70), 임채순(63)씨 등이 맡았다. 어린(?) 나이의 임채순씨가 우물 안으로 먼저 발을 디뎠다.

반시간이나 지났을까. 우물물이 얕아지자, 두레질 하는 주민들 사이에서 한바탕 소란이 벌어졌다.

"줄을 더 잡아 댕겨 봐봐."
"이 짝이 아니고 그 짝이 길어."
"아따, 그 짝을 댕겨야 한다고."


수십 년간 호흡을 맞춘 일임에도 두레에 연결된 줄은 '우물을 품는' 동안 물에 젖은 손아귀를 빠져나가 길어지기도 짧아지기도 하는 모양이었다. 소란은 잠시, 이내 능숙하게 줄을 정렬하고 두레질을 이었다.

지내마을의 우물은 두 곳으로 나눠져 연결돼 있다. 두 우물물의 원천은 같지만 위쪽 하나는 식수용으로 덮개를 덮어놓았다. 아래쪽 우물은 쌀과 채소를 씻고 빨래하고 청소하는 용도다. 청소용 우물은 식수 우물 쪽 사각형 벽 윗부분에 구멍을 뚫어 위쪽 우물과 연결돼 있다. 구멍을 막았다 열었다 하면서 물의 양을 조정한다.

정계래(84)씨는 식수용 우물을 가리키며 우물에 얽힌 사연이 복잡한 듯 말했다.

"예전에 우리들이 많이 들어갔어. 시암(우물)에. 마을 주민 모두 함께 먹고 마시는 시암이라 깨끗하게 하려면 별 수 있남? 여자라도 들어가야지. 우물이 깊은데도, 젊었을 때라 사다리 놓고 들어가서 청소하고 그랬제."

'우물'에서 시작하는 새댁의 첫 하루 일과

 
“1971. ?. ?. 착공. 3. 3. 준공.” 우물에 돌담을 쌓은 연도와 날짜가 희미하게 새겨져 있다.
 “1971. ?. ?. 착공. 3. 3. 준공.” 우물에 돌담을 쌓은 연도와 날짜가 희미하게 새겨져 있다.
ⓒ 최육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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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주민 중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최급분(87)씨는 "시암 품는 게 날이 갈수록 힘이 든다"면서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여기가 태자리여. 시집도 여그서 하고, 평생을 이 마을에서 살았제. (기자 : 남편 분이 동네 오빠였겠네요?) 그라제. 헤헤헤. 시암 두레질은 평생 했제. 우물은 동네 생겼을 때부터 있었제. 마을에 물이라곤 이 우물 하나여. 64년도인가, 진짜 가물 때에도 이 우물은 멀쩡했어. 그 때 (옆 동네) 대가리에서 물 길으러 오고 그랬으니께."

강곡례(85)씨는 막 시집와서 새댁의 고단했던 첫 하루 일과를 '우물'에서 시작했다고 말했다.

"아침에 눈 뜨면 제일 먼저 여글 와야 여. 세수 먼저 하고, 저 동이로 물 하나 받아 놓고, 다음 마을 주민 오시면 양동이 바꿔서 또 받아 놓제. 주민 분들이 한 명씩 모이면 안부 인사드리고 그랬제. 마을의 뭔 소식이라도 들으려면 시암에 와야 했지."

지내마을 우물은 돌담이 둘러싸고 있다. 돌담에는 "1971. ◯. ◯. 착공. 3. 3. 준공"이라고 연도와 날짜가 희미하게 새겨져 있다. 돌담의 나이도 어느덧 오십이 넘었다. 돌담을 바라보던 강곡례(85)씨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시집 와서 식구들 먹고 살라니까 비 맞고 눈 맞으면서 우물을 사용했제. 근데 겨울바람이 을매나 맵던지 하루는 왠지 모르게 서럽더라고. 이야기를 안 했는데 남편이 내 속마음을 알았던지, 어느 날 지게에다가 산에서 돌덩이를 하나씩 옮겨서 돌담을 쌓데. 에구, 말도 말아. 그 때 바깥양반이랑 남자 분들이 을매나 고생을 했는지 몰른당게."

겨울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우물
 
'우물 품기를 마치고, 위쪽 식수용 우물에서 맑은 물을 받고 있다.
 "우물 품기를 마치고, 위쪽 식수용 우물에서 맑은 물을 받고 있다.
ⓒ 최육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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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 지붕은 언제 씌운 것일까. 최급분(87)씨는 담담하게 과거를 회상했다.

"한 30년 됐을라나? 비 오고 그럴 때 맞지 말라고 만들어줬지. 근데, 저 지붕을 만들어놓으니까 우물에 햇볕이 안 들어가. 그 전엔 그런 적이 없었는데, 어느 날부터 우물에 이끼가 끼더라고. 여기 지붕을 유리나 빛이 들어가는 걸로 고쳐주면 안 될까?"

옆에 있던 김양순(73)씨는 "그건 그렇고, 인자는 두레로 안 품고 기계로 품을 수 있게 도와줄 수 없는감?"이라며 기자에게 물었다. 난감해 하고 있는데 한 남성 주민이 단호한 목소리로 대화를 막아섰다.

"공짜 좋아하면 못 써. 힘들어도 일을 해서 우리가 우리 마을우물을 지켜야제. 공짜로 물을 쓰려고 하면 쓰남?"

지내마을 주민은 현재 40명이 안 된다. 강곡례씨가 시집왔을 때인 65년 전, 1956년 무렵에는 40가구 정도 되었다고 한다. 그 때는 한 가구에 부모님, 아내와 남편, 자식 다섯 정도가 평균이었단다. 지내마을의 우물은 그 당시 어림잡아 250여 명 주민들에게 생명수 역할을 했을 터였다.

소정희(72)씨는 '다시 보자'는 다짐을 마치 핑계거리로 매달아 우물에 던져놓고 나중에 꺼내보려는 듯 기자에게 말했다.

"우리 마을 우물이 신기한 게, 겨울에는 물이 따듯해서 언 빨래 갖고 와서 빨면 녹아. 빨래도 잘 돼. 우물에서 김이 모락모락 올라온다니께. 겨울에 와서 꼭 봐야 혀."

꼼짝없이 다시 오게 생겼다. 별 도리 없이 마을주민들에게 "겨울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라고 인사를 드렸다.  

덧붙이는 글 | 전북 순창군 주간신문 <열린순창> 9월 9일에 보도된 내용을 수정, 보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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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순창군 사람들이 복작복작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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