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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성노동자회 회원소모임 '페미워커클럽'은 2021년을 맞아 힘들었던 한해를 거치고 우리에게 용기와 힘을 준 책 6권을 선정했습니다. 책을 함께 읽고, 코로나19 이후 단절이 부각된 세상에 '우리'가 어떻게 맞닿아 있는지를 페미워커의 시선으로 담아냅니다.[기자말]
고향으로 돌아온 것은 예정에 없던 일이었다. 대학 진학과 함께 성공적으로 시골집을 탈출한 나는 웬만해선 본가에 돌아갈 일을 만들지 않았다. 십대 시절에도 상경 이후에도, 중요한 일들은 모두 서울에서 일어난다고 여겼다.

코로나 확산세가 수도권 중심으로 일어나면서 그 '중요한 일'들이 점차 줌으로 대체되기 시작했다. 기숙사에 계속 거주하기 위해서는 내가 서울에 머물러야만 하는 이유를 서류로 증명해야 했다. 그러나 내가 이 공간에 계속 연결되어 있고 싶다는 것을, 사람들과 닿아야 한다는 것을 근거로 서류를 발급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귀향은 그렇게 떠밀리듯 결정되었다. 줌으로 대체된 모든 만남들이 실은 끝내 대체될 수 없는 영역을 갖고 있다는 것을 한 학기 동안 느낀 끝엔 휴학을 신청했다. 이전처럼 온전한 시간들이 머지않아 다시 가능하리라는 믿음으로.
 
무너짐 이후, 계속해서 살아가기 무너짐 이후, 계속해서 살아가기
▲ 무너짐 이후, 계속해서 살아가기 무너짐 이후, 계속해서 살아가기
ⓒ 신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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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이후 경험한 '다른 시간성'

수도권까지 편도로 5시간이 걸리는 지방 거주민의 입장에서는 줌으로의 대체가 각종 행사들의 접근성을 상승시켜준 면도 있었다. 언젠간 읽어야지 생각하던 책의 세미나, 관심 있는 단체의 토론회와 강좌 소식들을 SNS로 즉각 받아보고 참가 신청을 했다. 녹취만 잘 한다면 동시간에 진행되는 행사도 기기 두 대로 동시에 참가할 수 있었다! 마치 몸이 두 개인 것처럼.

그러나 빼곡히 들어찬 플래너 중 그 내용을 온전히 소화한 것은 채 절반이 되지 않았다. 일정이 빈 날이 있어서는 안 될 것 같은 강박과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것에 대한 스트레스. 그것은 이미 만성적이었고 공간을 바꾸어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런 날들이 몇 달간 이어졌다. 결국은 다 놓고 생활만 남게 되는 시점이 있었다. 한 번도 플래너에 적어본 적 없던 일들이었다. 밥을 만들고, 먹고, 설거지하고, 강아지를 돌보는 일. 가끔 운동을 하거나 온라인으로 사람을 만나고 잠에 드는 일. 그것 뿐인 날들이 이어졌다.

시간이 어디 묶여 있지 않으니 그런 일들에 공을 들이게 되었다. '조리 가능' 수준이던 요리 실력이 스스로의 한 끼를 만족스럽게 챙길 정도로 올라왔다. 1분을 뛰는 것도 버겁던 지구력으로 시작한 달리기도 거듭하면 한계를 조금씩 밀어낼 수 있다는 것을 체험하며 몸의 향상 가능성을 믿게 되었다. 부실했던 생활의 뼈대가 튼튼해지고 있다는 뿌듯함이 들었다.

책 <페미니스트 라이프스타일>에서 저자는 "현대 자본주의의 시간 통제 아래 우리 자신의 노동력과 건강, 감정을 건강하게 재생산하는 데 필수적인 시간을 빼앗기게 되었다"고 말하며 이를 되찾아와야 한다고 한다. 그 방법 중 하나는 사람의 생존과 성장을 위한 노동인 자활노동을 중심으로 시간을 재배열하는 것이다.

이전엔 일정과 일정 사이에 마지못해 처리하는 것에 불과하던 일들이 사실은 생활을 '건강하게 재생산'하는 데에 필수적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런 시간이 충분히 지속되자 진짜 삶을 유예하는 중이라는 조급함이 사라지고 새로운 의미의 '온전한' 시간에 대한 감각을 알게 되었다.
 
<페미니스트 라이프스타일> 김현미 지음, 반비 펴냄 <페미니스트 라이프스타일> 김현미 지음, 반비 펴냄
▲ <페미니스트 라이프스타일> 김현미 지음, 반비 펴냄 <페미니스트 라이프스타일> 김현미 지음, 반비 펴냄
ⓒ 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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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의 경험

내가 알던 '온전한 시간'이 허물어진 것은 단지 그 의미에서만은 아니었다. 그 '온전함'이란 시간이 선형적으로 흐름을 상정한 것임을 이전에는 몰랐다. 외부로부터의 자극이 거의 멎자 내부에서 무언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충분히 소화하지 못한 채 묻어두었던 기억들과의 대면이었다. 과거의 각주로만 현재가 쌓이는 날들이 한동안 계속되었다.

대학 안에서 페미니스트로서 싸웠던 날들은 내가 겪은 가장 밀도가 높은 나날이었다. 그 시기를 함께 겪은 이들이 지금은 모두 그 판에서 떠났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었다. 들려오는 근황들로 모두 쉽지 않은 시간을 보내고 있구나 짐작하게 된다. 죄책감과 원망이 뒤섞인 감정이 따라온다.

돌아간다면 나는 다르게 행동할 수 있을까? 기억은 매번 이 질문과 함께 반복되었다. 책은 '감정과 친밀성을 나눌 수 있는' 여성 연대의 방식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한다(p.141). 그 부분에서 한참을 머물러 생각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내 실패가 무엇보다 내 주위의 여성들과의, 페미니스트들과의 관계맺음의 실패였기 때문이었다.

큰 문제들과 나를 직접 연관시키는 방식으로만 생각하는 동안 내 주변과 어떤 방식으로 관계맺을 것인지, 먹고 사는 일에서 어떻게 페미니즘적 가치를 실현할 것인지의 고민은 부족했다. <페미니스트 라이프스타일>을 통해 저자는 바로 그 고민에서부터 정치가 시작해야 한다는 사실을 말한다.

내 에너지를 누구와 무엇을 모색하며 어떤 희망과 목적을 갖기 위해 만들어낼 것인가를 고민하는 일, 무엇이 중요한 일이며 기쁜 일인지에 대한 '참조 체계'를 바꾸는 과정이 바로 '라이프스타일로서의 페미니즘'이다.

서울로 돌아가면 나는 어떻게 될까?

불안은 여전하다. 다시 서울로 돌아가면 나는 같은 이유로 무너지지 않을 수 있을까? 내가 아무리 나를 잘 돌보고 살아도 이런 세상에선 장기계획이 무용한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내가 인식하는 현실과 미래전망은 너무 비관적이어서 차라리 병증 탓인 것이면 좋겠다는 생각도 여전하다.

그러나 <페미니스트 라이프스타일>이 말하듯, 그 현실을 당장 바꿀 수는 없어도 불안을 다루는 태도는 달리할 수 있다. 그런 태도를 자기 것으로 갖게 되고 안정을 찾는 것은 결코 선형적으로 진행되는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지향점을 알게 된 지금, 더 이상 예전처럼 불안하게 표류하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페미니스트로서 싸우는, 여전히 페미니스트가 되어가는 중인 이들을 생각한다. 그 사람들이 흔들리면서도 자기 길을 내고 가꿔온 과정에 대한 이야기가 듣고 싶다. 그 삶에 응원을 보낸다고, 나도 잘 살아가겠다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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