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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이웃 중에 '알맹상점'이 있다. '껍데기는 가고 알맹이만 오라'는 의미란다. 오늘 나는 대놓고 여기서 하는 일을 알리고자 한다(그렇다고 내가 이곳과 무슨 연관이 있냐 하면 그건 아니다. 나는 다만 매일 마시는 물을 제공하는 정수기 필터를 어떻게 하면 재활용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다가 나보다 먼저 그 일을 하는 곳을 알게 되어 딱 한 번 리필제품을 구매한 소비자일 뿐이다).

식구가 많지 않은 집은 생수를 묶음으로 사서 먹기가 애매하다. 그렇다고 매번 물을 끓여 마시자니 입맛에 맞지 않았다. 그냥 맹물을 시원하게 마시고 싶었다. 이것이 내가 머나먼 유럽의 어느 나라에서 만들어진 '브리타'란 정수기를 사게 된 이유였다.

처음 정수기를 쓰기 시작했을 때 필터 교체 시기라고 뜨면 바로 사서 바꿨다. 그때는 단가가 좀 비싸다는 생각을 어렴풋이 했던 것 같다(물론 생수를 사 먹는 것과 비교해보면 별 차이가 없다고 한다). 새로 사지 않으면 정수기를 쓸 수 없으니 인터넷 발품을 팔아 최저가로 몇 개씩 쟁여놓았고 다 쓴 것은 별생각 없이 그냥 버렸다.  

그러다 어느 날 칫솔의 플라스틱이 눈에 밟히기 시작했고 그 생각은 정수기 안에 있는 플라스틱 필터에까지 미쳤다. '저 필터 안에 들어있는 게 뭐지? 왜 다른 것들처럼 리필제품을 사서 다시 채워 쓸 수 없을까? 껍데기가 플라스틱이니 재활용에 버리면 되나? 그러면 안에 있는 내용물은 재활용이 될까?' 이런 꼬리에 꼬리를 무는 궁금증이 생겼다.

입소문을 타고 알려진 '필터 해킹'
 
얼마 전 새로 산 엄마 정수기. 정품 필터가 들어가 있다.(왼쪽), 내가 쓰는 정수기는 해킹 필터로 사용중이다.(오른쪽)
 얼마 전 새로 산 엄마 정수기. 정품 필터가 들어가 있다.(왼쪽), 내가 쓰는 정수기는 해킹 필터로 사용중이다.(오른쪽)
ⓒ 박정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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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에서 만든 정수기 하나에 이렇게 관심을 쏟게 되다니..."

검색을 해 보니 플라스틱 껍질, 안에 있는 야자 활성탄, 이온수지가 모두 섞여 있는 형태라 어떻게 버려야 할지 난감하다는 글이 보였다. 그렇다고 뚜껑이 쉽게 열리지도 않았다. 필터 껍질은 플라스틱이라 종량제 봉투에 버리기도 찝찝하다. 이 일을 어쩌지?

그런데 나만 그런 생각을 한 것이 아니었다. 나보다 먼저 그 부분에 대해 고민한 사람들이 있었고 나는 후발대에 속하는 것 같았다. 야호!

십년후연구소, 알맹상점 등등에서 이미 나와 같은 고민을 작년부터 하고 있었고 여러 가지 방법으로 해결책을 찾아가고 있는 중이었다.

그들은 '브리타 어택'(플라스틱 어택에서 나온 말인 듯하다) 운동을 시작했다. 미국, 캐나다, 호주, 유럽 등에 있는 이 회사에서는 이미 폐필터를 수거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었지만, 브리타 코리아에선 '필터를 재활용할 수 없냐'라는 질문에 '안타깝게도 아직 시스템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라는 답변만 하고 있어 결국 사용자들이 자발적으로 움직인 것이다.

회사에서 자체 수거를 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를 찾다가 '필터 해킹'이라는 방법을 생각해 냈고 동영상까지 찍어 알리고 있었다. 입소문을 타고 직접 해 봤다는 글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해킹 방법은 필터가 생명을 다 하면 잘 말려서 몸체 가운데를 드릴로 뚫고 그 속에 있는 다 쓴 활성탄과 이온수지를 쏟아부은 다음, 똑같은 비율로 다시 채워 넣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의 성공담과 실패담이 있었다. '세상에, 나보다 먼저, 이런 일을, 소리 소문도 없이 하고 있었구나.' 반갑고 뿌듯한 마음으로 해킹 방법을 열심히 봤다. 물론 똥손인 나는 결국엔 만들어진 리필 통과 내용물을 사서 채워 넣기만 했다. 그래도 '역시 한국 사람들 멋져!'를 외치며 구입처에 사용기를 남겼다. 나와 같은 생각으로 찾아왔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며.  

부푼 마음으로 해킹한 필터를 끼워 넣고 물을 내린 뒤 마셔봤다. 수돗물 냄새도 없고 늘 먹던 그 맛과 비슷해서 만족스러웠다. 그러다 다시 재활용 필터 안을 씻어 말리고 보충제를 채워야 할 시기가 다가왔고 며칠 내로 바꿔야지 생각을 하던 차에 브리타코리아가 '자원순환의 날'인 9월 6일부터 필터 재활용 회수 프로그램을 시작한다는 소식을 접하게 됐다. 

얼른 알맹상점 블로그로 달려가 내용을 보니 어떤 식으로 수거, 재활용되는지 적혀있었다.

"브리타 판매처와 희망 수거처에서 수거 시행/ 브리타 필터 정기 배송 소비자 문전 수거 시행/ 수거된 브리타 필터는 테라 사이클의 관리로 내용물은 산업폐수 정화로, 플라스틱 껍데기는 팔레트 등으로 재활용"

브리타코리아는 공식 홈페이지에서도 '그린리프 멤버십'이란 이름으로 이 운동을 알리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필터 해킹'이라는 또 다른 선택지도 있다.

반가운 마음에 (특정 회사나 가게와 아무 관련도 없는 내가) 정수기 필터 회수 프로그램을 알리고는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사용하는 플라스틱 양은 여전히 많을 것이다. 그래도 이런 노력들이 모여 2030년 내가 살고 있는 동네가 바닷물에 잠기는 일을 막을 수 있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이 일을 앞장서서 하고 있는 분들을 소개하며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고맙습니다! 덕분입니다!

* 브함사(브리타 필터 재활용 캠페인에 함께 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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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필터회수프로그램, #알맹상점, #플라스틱줄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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