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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향리역사관 앞마당에는 족히 사람 키의 2배는 될 만한 어마어마한 규모의 포탄들이 쌓여있다.
▲ 매향리역사관 마당에 쌓여 있는 수많은 포탄들 매향리역사관 앞마당에는 족히 사람 키의 2배는 될 만한 어마어마한 규모의 포탄들이 쌓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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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활하게 펼쳐진 갯벌, 철새들이 무리를 지어 지나가는 평화로운 마을 매향리는 2005년까지 54년 동안 미 7공군 사격장으로 사용되던 곳이다. 매향리의 옛 지명인 고은리를 미군 편의상 쿠니로 불렀고, 쿠니사격장이란 이름으로 하루가 멀다 하고 폭격과 사격이 수시로 일어나면서 이 마을의 주민들은 큰 피해를 입었다.

원래 매향리는 굴 양식은 물론 다양한 해산물이 풍부하게 널려 있어 화성에서도 가장 부촌으로 손꼽히기도 했던 마을이었다. 하지만 1951년 한국전쟁 당시 미군의 사격장이 들어서게 되면서 이 마을의 운명은 순식간에 바뀌었다.     

매향리의 주민들은 생활의 불편함은 물론 생업에도 큰 지장을 받았다. 미 공군이 바다 건너 섬을 타깃으로 잡고, 그나마 사격 중지를 알리는 빨간 깃발을 드는 늦은 저녁 시간만 바다에 들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1969년, 그마저도 못하게 됐다. 서해안에 상륙하는 무장공비를 핑계로 경인지역 바닷가에 야간 통행금지를 내린 것이다.

마을 주민들은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바다에 몰래 들어갔지만 군인에게 걸려 구타를 당하기도 했다. 그렇게 매향리의 어부들은 낮에는 미군들에게 밤에는 한국군에게 앞바다를 빼앗겼다.

하지만 또다른 문제가 있었다. 바다뿐만 아니라 육지에서 더 큰 피해가 찾아온 것. 그들이 농작물을 일구고 심었던 논, 밭에는 탄피가 촘촘히 박히게 되었고, 모든 땅을 헐값에 넘겨버렸다.     

전시를 살아온 주민들의 고통은 끝났지만 
 
매향리 역사관 자리는 수많은 주민들이 투쟁의 본부로 삼았던 곳이기도 하다. 공군기지가 욺겨가면서 비극은 사라졌지만 우리는 그 기억을 잊지 말아야 한다.
▲ 매향리 역사관 외벽의 벽화그림들 매향리 역사관 자리는 수많은 주민들이 투쟁의 본부로 삼았던 곳이기도 하다. 공군기지가 욺겨가면서 비극은 사라졌지만 우리는 그 기억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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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 비행기의 폭격이 시작될 때마다 그 굉음으로 인해 마을 주민들의 집이 금이 가고, 유리창이 깨지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오인 사격이나 불발탄으로 인해 주민 13명이 숨지고 22명이 중상을 입는 등 매향리 주민들은 전시(戰時)를 살아온 것이다.

주민들은 갖은 항의 수단을 동원해 보았지만 미군 측이나 한국 정부는 묵묵부답의 상태를 이어갔다. 그러다가 2000년 kbs <추적 60분>이란 프로그램에서 이 사태를 집중적으로 다룬 이후에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됐다. 결국 2005년에 매향리, 쿠니 사격장은 폐쇄되면서 그 막을 내렸다.    

비록 고통은 끝났을지 몰라도 너무 먼길을 돌아온 것 같다. 나도 몇 년 전까지 공항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산 적이 있었다. 1시간에 한 대 꼴로 비행기가 드문 드문 지나갔지만 그 소음은 마치 온 천지를 울리는 듯해서 발끝에도 진동이 느껴질 정도였다. 그런 아픈 기억들은 주민뿐만 아니라 모두가 기억해야 한다고 본다.

이제 평화의 상징이 된 매향리 포구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가건물로 지어진 매향리 역사관이 조촐하게 있었다. 이곳은 매향리 주민들이 모여 실제로 투쟁을 벌였던 본부였다고 한다. 2005년 훈련장 폐쇄와 함께 주민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매향리 평화역사관'을 열면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우선 역사관의 마당으로 가면 난데없이 녹슨 무언가가 적어도 수천 개 이상 쌓여 있는 것이 보인다. 가까이 가서 보니 다름 아닌 포탄이다. 군 복무 시절에도 좀처럼 보기 힘들었고, 전쟁기념관에서 조차 드문드문 보이던 포탄이 돌무더기처럼 쌓여 있는 것이다. 미디어에서만 들어서 실감이 나지 않았던 일이 현실로 다가오는 오싹한 순간이다.

아쉽게도 기념관 문은 현재 닫혀 있었지만, 그 주변에는 포탄이나 탄피 등 매향리에서 발견된 것들을 이용해 만든 평화를 상징하는 조형물이 있다. 다시는 이러한 비극이 반복되지 않기를 기원하고 있다. 가건물 같은 임시 전시장을 벗어나 제대로 만들어진 역사관과 평화공원이 조성되길 바라지만 아직 갈길은 멀다.      
 
매향리에 떨어진 미사일들로 만든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 매향리에 떨어진 미사일들로 만든 작품들 매향리에 떨어진 미사일들로 만든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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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관의 건너편엔 엉뚱하게 거대한 야구장 몇 개가 들어서 있다. 잔디밭과 조명의 상태나 시설로 봤을 때 프로야구팀의 연습장으로 쓰여도 될 만큼 손색없어 보였다. 화성드림파크라고 불리는 야구 테마파크다.

국내 최대 규모의 총 4면의 리틀 야구장, 3면의 주니어 야구장, 여성 야구장이 한 곳에 모여있다. 실제로 2014년부터 2018년까지 히어로즈 프로야구팀의 2군 경기장으로 쓰였다고 한다. 다만 수백억 원을 들여서 기념관 대신 뜬금없는 야구장을 굳이 이 자리에 지었어야 했는지는 의문이 든다.      

평화공원으로 재탄생할 준비를 하고 있는 매향리 
 
표적이 햇갈린다는 이유로 종탑에 십자가를 철거한 매향교회는 그동안 공군기지의 피해를 고스란히 받아왔다. 현재는 새로 교회를 지었고, 예술창작센터로 새롭게 태어날 준비를 하고 있다.
▲ 공군기지의 피해를 고스란히 받은 매향교회 표적이 햇갈린다는 이유로 종탑에 십자가를 철거한 매향교회는 그동안 공군기지의 피해를 고스란히 받아왔다. 현재는 새로 교회를 지었고, 예술창작센터로 새롭게 태어날 준비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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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향리 마을로 들어오면 선착장을 중심으로 작은 동네가 형성되어있다. 예전의 상처를 이겨내고 새롭게 도약할 준비가 한창이다. 옛 미군기지, 쿠니사격장 터에 남아있는 미군이 사용하던 숙소와 식당, 사무실 건물들을 활용해서 평화공원을 조성할 준비를 하고 있다.

또, 포탄의 파편에 맞아 크게 훼손된 매향 교회도 경기도 아트 창작센터로 새롭게 거듭난다고 한다. 비록 코로나19 상황으로 많은 프로젝트가 진행되지 못하고 있지만 조만간 활발한 논의가 거듭나길 기대해 본다.  
 
화성호는 방조제가 건설되면서 생긴 인공호수다. 하지만 철새를 비롯한 생태자원의 보고로 알려졌다.
▲ 생태 자원의 보고 화성호 화성호는 방조제가 건설되면서 생긴 인공호수다. 하지만 철새를 비롯한 생태자원의 보고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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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매향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한 화성방조제를 향해 이동하려고 한다. 1991년부터 시작된 경기도 화성시의 화옹지구 간척사업을 통해 건립한 방조제이고, 총길이 9.8km의 꽤나 긴 거리를 자랑한다.

이 방조제가 건설되면서 화성에는 여의도 크기 2배의 인공호수인 화성호가 생겼다. 인공으로 건설된 곳은 보통 생태계에 악영향을 끼치곤 하지만 화성호가 생기면서 수만 마리 철새들의 중간 기착지가 되었다. 

청둥오리, 기러기, 쇠기러기 등 다양한 철새를 탐조할 수 있으며 만조 때에는 멸종 위기 조류인 알락꼬리 마도요도 만날 수 있다. 게다가 화성호의 주변으로 광활한 갈대습지와 초원이 펼쳐져 있다.    

한국에서 보기 힘든 탁 트인 시야의 코스라 드라이브를 즐기는 사람들이 종종 찾는 명소가 되었다. 이곳을 고요히 달리다 보면 철새들이 군무를 지으며 멀리 서해바다로 향하는 장면을 쉽게 목격한다. 근현대시기 여느 도시보다 슬픈 과거를 지녔던 땅 화성, 이 고장에도 어느새 평화가 찾아온 것이다.

덧붙이는 글 | 9월초 <우리가 모르는 경기도 : 경기별곡 1권>이 출판됩니다. 많은 사랑 관심 부탁드립니다. 이번주부터 팟케스트 탁피디의 여행수다에서 경기별곡 라디오가 방영될 예정이니 많은 청취 부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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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인문학 전문 여행작가 운민입니다. 현재 각종 여행 유명팟케스트와 한국관광공사 등 언론매체에 글을 기고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모르는 경기도 : 경기별곡 1편> 저자. kbs 경인 <시사인사이드> 경인방송 <책과 사람들> 출연 강연, 기고 연락 ugzm@naver.com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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