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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제주살이 4년차에 접어들었다. 그 사이에 거셌던 제주 러시 현상은 다소 진정된 듯하다. 그러나 아직도 제주 이주를 꿈꾸는 사람들이 적지 않고, 제주 1년 살이 혹은 1달 살이에 대한 관심은 여전히 뜨겁다. 이 글은 동아일보 기자와 세종대 초빙교수를 지내고 은퇴한 후 제주로 이주한 한 개인의 일기이자 제주에서의 생활을 소재로 한 수필이다. 어떤 이유에서든 제주도에 관심을 가진 독자들에게 제주의 자연환경,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그리고 한국현대사의 축소판이라 할 제주사회를 이해하는 데 유익한 읽을거리가 되길 기대한다.[편집자말]
생김새와 표정이 각기 다른 다양한 돌하르방을 감상할 수 있다.
▲ 돌하르방 야외전시장 생김새와 표정이 각기 다른 다양한 돌하르방을 감상할 수 있다.
ⓒ 임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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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80년대만 해도 제주에서 가장 인상적인 관광지 중의 하나가 탐라목석원이었다. 당시 제주 관광은 볼거리가 넘쳐나는 요즘과는 달랐다. 제주시에서 용두암과 삼성혈을 보고 서귀포로 넘어가 몇 군데 폭포를 감상한 뒤 성산일출봉과 감귤밭 정도 구경하면 대강 끝났다.

그런 시절에 사설 관광지로 인기를 끌었던 곳은 탐라목석원이 유일하지 않았나 싶다. 목석원은 다양한 모양의 돌을 이용해 '갑돌이의 일생'을 보여주었다. 갑돌이가 갑순이와 결혼하고, 아이 낳고 부자가 되어 살다가, 바람을 피우고, 다시 뉘우치고 돌아와 갑순이와 행복하게 살았다는 해피엔딩 스토리다. 이런 주제를 그럴듯하게 생긴 돌들을 등장시켜 보여주었으니 이른바 스토리텔링의 효시인 셈이다.

2년 전 친구와 함께 돌문화공원을 찾았을 때의 일이다. 엄청나게 넓은 공원 여기저기 전시된 돌들을 구경하면서 문득 오래전 탐라목석원에서 봤던 재미있게 생긴 돌의 기억이 되살아나 공원 관계자에게 물어보았다. 혹시 목석원이 이곳으로 이전하면서 확장한 게 아니냐고 말이다. 막연한 느낌으로 물어본 것인데 사실이었다. 목석원의 돌과 전시품이 이곳에 기증돼 지금의 돌문화공원으로 발전하게 됐다는 것이다.

이날은 돌문화공원이 이처럼 광활한 부지에 조성된 것을 모르고 갔다. 공원이라고 하길래 산책한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갔다가 너무 힘이 들어 수박 겉핥기식으로 대충 둘러보고 나왔다.

참 넓다
 
돌문화공원에 입장하면 양쪽에 도열한 거대한 돌의 통로가 나온다. 여기를 지나 본격적인 관람이 시작된다.
▲ 전설의 통로 돌문화공원에 입장하면 양쪽에 도열한 거대한 돌의 통로가 나온다. 여기를 지나 본격적인 관람이 시작된다.
ⓒ 임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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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와서 돌문화공원 사이트를 검색해보고 자세한 조성 경위를 알 수 있었다. 탐라목석원의 백운철 원장이 제주시에 돌박물관을 건립할 것을 제안했고, 1998년에 제주시가 이를 받아들여 사업계획을 확정하면서 새 역사가 시작됐다는 것이다. 백 원장은 이후 목석원이 보유한 진기한 자연석과 민속품 2만여 점을 무상으로 기증해 오늘날 돌문화공원의 기초가 됐다.

백운철 원장은 자료 기증은 물론, 최근까지도 돌문화공원 건립의 기획단장을 맡아 왔다고 한다. 그래서 돌문화공원은 민관합동으로 건립되었다는 것이다.

한때 대단한 인기 관광지였던 탐라목석원은 이런 연유로 10여 년 전 문을 닫아 이제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대신 훨씬 더 크고 풍부한 자료를 갖춘 돌문화공원이 생겨났으니 잘된 일이 아닐 수 없다. '제주 DNA가 흐르는 세계적인 문화공원'이 백운철 원장이 꿈꾸는 돌문화공원의 목표라고 한다.

코로나19 시국에 관광객이 몰리는 장소 말고 갈 만한 곳이 어디 있을까 생각하다가 돌문화공원이 떠올랐다. 워낙 넓은 곳인데다 아직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지 않아서 관람객도 적은 편이라고 하니, 요즘 같은 시기에 딱 좋을 것 같았다. 오늘은 지난번과는 달리 단단히 준비하고 아내와 함께 집을 나섰다. 간식거리와 음료수를 배낭에 챙겼고, 등산화도 신었다.

돌문화공원을 두 번째로 둘러보면서 "참 넓다"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원래 돌문화공원은 교래자연휴양림 부지 안에 속해 있다. 교래휴양림 전체 면적은 약 100만 평이고, 그중 돌문화공원이 약 30만 평에 달한다. 구석구석 다 돌아보려면 발품을 꽤나 많이 팔아야 할 듯하다.

공원은 모두 3개의 코스로 이루어졌다. 전체 관람코스 길이가 3.3㎞에 소요 시간 2시간 40분으로 안내도에 나와 있지만, 실제로는 왔다갔다 하다 보니 4㎞는 될 듯싶다. 전시물 감상하고 사진 찍고 도중에 지쳐서 카페에 들러 커피 마시며 쉬다 보니 3시간 반이나 걸렸다. 설문대할망 전시관이 오픈하면 4시간도 더 걸릴 듯하다.

설문대할망 전설
 
설문대할망을 상징하는 용암석. 돌문화공원의 맨 마지막 관람 코스인  '어머니의 방'에 전시돼 있다.
 설문대할망을 상징하는 용암석. 돌문화공원의 맨 마지막 관람 코스인 "어머니의 방"에 전시돼 있다.
ⓒ 황의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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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문화공원은 설문대할망으로 대표되는 제주의 전설을 주제로 삼았다. 공원 전체가 설문대할망을 핵심 주제로 펼쳐진다. 설문대할망은 백록담을 돌베개 삼아 누워 낮잠을 자기도 했다는 전설의 거녀(巨女)다. 스스로 빠져 들어간 돌 가마솥에서 사랑의 죽이 되고, 그것을 먹은 아들들은 오백장군 바위가 되었다는, 모성애와 효심이 배어 있는 아름다운 사연이 전해 내려온다.

돌문화공원 관람이 시작되는 1코스부터 설문대할망의 전설이 등장한다. 커다란 돌이 양쪽에 늘어선 '전설의 통로'를 지나면 갑자기 커다란 '하늘연못'이 나타나는데, 한라산 백록담과 설문대할망이 빠졌다는 영실의 죽솥 그리고 물장오리 오름을 상징한다.

돌박물관 옥상에 물을 가득 담은 지름 40m, 원둘레 125m의 대형연못을 만든 발상이 기발하다. 돌로 만든 원형의 이 하늘연못이 주변의 멋진 풍경과 어우러지는 장관을 처음 보는 순간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이 연못은 연극, 무용, 연주회 등이 펼쳐지는 수상 무대로도 활용된다.

설문대할망 전설을 주제로 한 기획 의도는 공원 관람을 마칠 무렵 나타나는 오백장군 군상에서 절정을 이룬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인 야외전시물이다.
 
커다란 자연석 몸체 위에 머리에 해당하는 돌을 얹어 형상화한 오백장군이 일렬로 길게 늘어서 위용을 과시한다.
▲ 오백장군 군상 커다란 자연석 몸체 위에 머리에 해당하는 돌을 얹어 형상화한 오백장군이 일렬로 길게 늘어서 위용을 과시한다.
ⓒ 황의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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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문대할망의 아들을 상징하는 오백장군 석상들은 모두 자연석을 조합해 만들었다. 거대한 돌이 몸체가 되고 그 위에 머리에 해당하는 돌을 얹어 장군의 위용을 느끼게 하는, 이 절묘한 자연석상들이 제각각 독특한 모습으로 기립해 있다. 전설 속의 오백장군이 살아나 도열한 듯한 압도적인 규모다.

설문대할망을 주제로 삼은 돌문화공원은 공사 중인 설문대할망 전시관이 완성되면 볼거리가 더욱 풍부해질 것 같다. 이 대형 전시관은 위에서 내려다보면 길게 누운 할망의 형상이다. 제주의 전설·역사·민속을 담아낸다는 원대한 취지를 내걸고 무려 1천억 원을 들여 10여 년에 걸쳐 조성 중이다. 현재 건물은 다 지었고, 전시물 준비가 끝나는 2022년 하반기에 개관한다고 하니 기대된다.

콕 짚어 강추하고 싶은 곳
 
돌박물관의 돌갤러리에 가면 관람객의 시선에 따라 돌들이 짓는 표정이 바뀌는 특이한 경험을 할 수 있다.
▲ 돌갤러리에 전시된 기묘한 자연석들 돌박물관의 돌갤러리에 가면 관람객의 시선에 따라 돌들이 짓는 표정이 바뀌는 특이한 경험을 할 수 있다.
ⓒ 황의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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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문화공원에 설문대할망 전설을 상징하는 거석들만 버티고 있는 건 아니다. 아기자기하고 재미있는 작품들도 곳곳에 널려 있다. 표정과 생김새가 조금씩 다른 돌하르방을 모아 놓은 야외전시장도 볼만하다.

또 사내아이의 형상을 새겨 무덤 앞에 마주 보게 세웠다는 제주 동자석(童子石)도 흥미로운 볼거리다. 탐라목석원 시절 인기를 끌었던 사람 머리 모양을 한 두상석(頭像石)도 보인다.

돌문화공원엔 돌 말고도 볼 것들이 많다. 선사시대부터 삼국시대 고려·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주거·농사·토속신앙 등에 관련되는 각종 민속품을 망라하고 있다. 아예 전통 마을을 그대로 재현해놓기도 했다.
 
돌문화공원에는 곳곳에 야외전시장을 설치, 맷돌 항아리 동자석 등 다양한 민속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
▲ 돌민속품 야외전시장 돌문화공원에는 곳곳에 야외전시장을 설치, 맷돌 항아리 동자석 등 다양한 민속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
ⓒ 임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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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곳의 전시물들을 둘러보고 나면 돌문화공원은 제주의 민속과 생활사를 보여주는 종합박물관에 더 가깝다는 느낌이 든다. 돌을 매개로 한 제주의 문화를 총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한라산 자락 광활한 숲속에서 제주의 전설을 형상적으로 재현해내고 제주 고유의 문화를 보여주는 돌문화공원은 온갖 관광자원들이 넘쳐나는 제주도에서도 콕 짚어 강추하고 싶은 곳이다. 더구나 요즘 같은 코로나 시대, 사람들에게 부대끼지 않고 활보할 수 있는 공간이라면 말이다. (20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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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년의 언론계 생활과 7년의 대학 초빙교수 생활을 끝내고 2018년 봄 제주로 이주했다. 애월읍의 한 생태마을에 거주하면서 제주의 아름다운 자연과 그곳에서 사는 사람들 그리고 제주현대사의 아픔에 깊은 관심과 연대의식을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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