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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시절부터 신용협동조합 조합원으로 활동한 이창호 대표(가운데)
 20대 시절부터 신용협동조합 조합원으로 활동한 이창호 대표(가운데)
ⓒ 이창호 대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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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신용협동조합(아래 신협)을 사랑합니다. 왜냐구요? 우선 신협의 주인은 타인이 아닌 바로 나이기 때문입니다. 은행의 주인은 예금주가 아니라 주주, 신협의 주인은 조합원입니다. 이것이 신협을 영원히 발전시킬 수 있는 원동력인 것입니다. 은행에 예금을 많이 하면 의료혜택을 줍니까? 그러나 신협은 조합원(가족 포함)이면 누구나 다 혜택을 받을 수 있습니다." 
- 이창호 <나의 신협> 가운데, 중앙신협회보 1978. 02. 15


은행의 주인은 주주이며, 신협의 주인은 조합원인 나라는 말이 꽤 설득력이 있게 느껴진다. 1978년이면 이창호 더불어사는 사람들 대표가 22살 때다.

이창호 대표에겐 따라붙는 수식어가 한두 개가 아니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벼랑 끝에 놓인 어려운 사람들에게 무이자, 무보증, 무담보로 대출을 해주는 사람이다. 3무(무이자, 무담보, 무보증) 대출? 그런 곳이 있나 싶지만, 확실히 있다.

단, 조건이 있다. 아파트를 사거나 큰 차를 사기 위한 대출이 아니라 당장 아파서 병원 갈 돈을 구하지 못하는 사람, 쌀 살 돈이 없어 굶고 있는 사람, 적은 월세마저 못 내서 거리로 나앉아야 하는 사람 등이 궁여지책으로 빌릴 수 있는 금액이어야 한다. 적게는 5만 원부터 크게는 200만 원 정도의 돈을 빌릴 수 있다.
 
환한 웃음으로 대담하는 이창호 대표.
 환한 웃음으로 대담하는 이창호 대표.
ⓒ 이윤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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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호 대표는 20대 시절부터 신협에 깊은 관심과 애정이 있었다. 그런 그가 2011년,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과 '사단법인 더불어사는 사람들'을 설립하고 본격적인 취약계층 사람들에게 소액대출을 시작했다.

이 소액대출에 대한 정식 이름은 없지만, 기자는 이를 편의상 착한 대출로 부르겠다. 착한 대출의 조건은 무엇일까? 신뢰할 것이라고는 '열심히 일해서 갚겠다는 의지' 하나다.
  
2011년, 자본금 3천만 원으로 시작해 첫 대출은 2012년에 이뤄졌다. 모두 36건으로 총 3천만 원을 대출해줬다. 5년이 되던 2016년에는 326건의 대출에 대출금은 1억 원을 넘어섰다. 대출액의 증가는 착한 대출의 선행에 동참한 사람들의 후원금으로 충당되었다.

성장을 거듭하면서 착한 대출은 2021년 7월 기준, 총 누적 대출액 14억 5천만 원, 상환금은 11억 8천만 원에 이뤘으며, 4232건의 대출 실적을 보였다. 1인 평균 대출은 약 34만 원, 상환율은 약 88%다.

제도권 금융기관에서 돈을 빌리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담보 능력을 갖춰야 한다. 신용 대출 역시 어지간한 직장이 아니면 빌려주지 않는다. 이러한 계층에 속하지 못한 이른바 취약계층 사람들에게 소액의 돈 몇십만 원은 어쩌면 제도권 사람들의 수천만 원보다 크게 느껴질지 모른다.

그만큼 절실한 금액이다. 이들의 아픈 마음을 헤아려 10년째 착한 대출을 부여잡고 봉사 정신을 발휘하는 이창호 대표를 지난 28일 만났다. 다음은 이창호 대표와의 일문일답이다.
     
어려운 사람들 위한 소액 대출, 설립 10년 된 더불어사는 사람들
 
2010년 10월, 연세대학교 경영학과에서 ‘마이크로크레딧’ 과목을 강의하는 이창호 대표.
 2010년 10월, 연세대학교 경영학과에서 ‘마이크로크레딧’ 과목을 강의하는 이창호 대표.
ⓒ 이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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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벼랑 끝 사람들에게 대출을 해줘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은 언제부터인가?

"20대 때 GM코리아자동차 부평공장에 다닐 때 신협 조합원이 되어 그 장점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신협은 조합원이 주인일 뿐더러 저축 외에 급전이 필요하면 빌려주고 가족을 포함한 여러 가지 혜택이 있었다. 은행이 돈의 창고라면 신협은 '인간 냄새나는 이웃' 같은 존재라고 생각했다. 돌아보면 그 시절 신협 조합원이 된 것이 큰 자양분이다. 지금 하는 일은 40여 년 전부터 꿈꾸던 일이었다고 봐도 무난하다."
   
- 소액대출을 구체적으로 실천에 옮긴 것은 언제부터인가?

"사단법인 더불어사는 사람들을 만든 것은 2011년이다. 올해 꼭 10년을 맞았다. 지금 하는 소액대출은 제도권 금융회사와 거래하기 힘든 저소득층에게 담보 없이 대출해주는 제도로, 다른 나라에서는 '마이크로크레딧(Microcredit)'이란 이름으로 운영 중이다.
        
마이크로크레딧은 2006년 노벨평화상을 받은 방글라데시 사회운동가 무함마드 유누스씨로부터 시작한 운동이다. 유뉴스씨는 1973년 단돈 20달러 때문에 고리대금업자의 횡포에 시달리던 빈민의 생활을 보고 자신의 돈을 빌려주기 시작했다.

당시 유누스씨는 자신이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더 많은 빈민에게 담보 없이 소액신용대출을 해주었다. 그 이름이 '그라민은행 프로젝트(Grameen Bank project)'다. 여기서 그라민은 방글라데시말로 마을을 뜻한다. 나도 유누스씨를 직접 만나 여러 이야기를 나눈 바 있다."
 
2009년 6월 이화여대에서 촬영한 무함마드 유누스씨와 이창호 대표.
 2009년 6월 이화여대에서 촬영한 무함마드 유누스씨와 이창호 대표.
ⓒ 이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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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리를 못 구한 청년들이 도움 호소할 때 마음 아파"
     
- 주로 어떤 사람들이 소액대출을 이용하나?

"절박한 사람들이 문을 두드리고 있다. 이들에게 10만 원, 20만 원은 큰돈이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1만 원을 다급하게 빌리는 사람도 있다. 그날의 끼니를 마련하기 위한 사람들일 것이다. 라면이라도 사서 끓여 먹고 하루 일자리를 알아보려고 하는지도 모른다.

생각보다 소액대출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생활고에 시달리는 분들이 많다. 일가친척이나 지인들에게조차 손을 벌릴 수 없어 소액대출을 신청하는 것이라고 본다. 말하자면 그들에게 소액대출은 생의 최후 보루인 셈이다."

- 대출 조건은 까다롭지 않나?

"사실 조건이 까다롭다면 소액대출로는 의미가 없다. 조건도 없고 복잡하지도 않다. 처음에는 직접 만나 사연을 들어보고 갚을 의지가 있는지를 파악했지만, 그 이후에는 전화 통화로 확인한 뒤 빌려준다. 초기에는 상환율이 92%에 육박했다. 현재는 88% 선이다.

이 일이 널리 알려져서 돈을 빌리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런데 빌려줄 수 있는 돈이 한계가 있어 소액이나마 빌려주지 못할 때가 가장 안타깝다. 특히 코로나19 상황이다 보니 일자리를 못 구한 청년들이 몇십만 원이라도 도움을 받고 싶다는 전화를 받을 때마다 가슴이 아프다."

- 자본금 3천만 원에서 시작하여 올해는 약 2억 원으로 늘었다. 재원은 어떻게 마련하나?

"더불어사는 사람들이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전국에서 관심을 두고 후원해 주는 분들이 늘어났다. 무이자인 데다가 상환율이 100%가 아니라서 후원금이 없으면 운영이 어렵다. 이만큼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끊임없는 관심과 기꺼이 주머니를 열고 후원해 주는 후원자들의 덕분이다.

무이자지만 긴요하게 돈을 쓰고 감사의 뜻으로 이자를 내는 사람들도 더러 있다. 이 자리를 빌려 어려운 이들을 돕는 일에 후원의 손길을 내밀어 주는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지난 10년 동안 뛰어온 발자취를 보여주며 설명하는 이창호 대표
 지난 10년 동안 뛰어온 발자취를 보여주며 설명하는 이창호 대표
ⓒ 이윤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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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 같은 후원은 삶이 절박한 사람들에게 큰 힘"     


- 돈 말고도 병원 치료나 쌀 등의 생필품으로도 돕는다고 들었다. 상황은?

"어떤 분이 전화를 걸어와 상담해보니, 어머니가 중환이라 병원에 가서 MRI를 찍어야 할 상황인데 돈이 없다는 것이다. 빌려주면 꼭 갚겠다고 부탁하는 모습을 보고 돈을 빌려주는 방법 말고 혹시 후원 병원을 찾아보면 어떨까 해서 시작한 것이 재능기부다.

병원에서는 무료로 치료를 맡아주고, 편의점에서는 쌀을, 의류업체에서는 옷 등을 후원하고 있다. 심지어 돈이 없어 과자는 엄두도 못 내는 가정에 간식용 과자를 후원하는 분들도 있다. 돈은 빌리면 갚아야 하지만 병원 치료라든지 쌀 같은 후원은 삶이 절박한 사람들에게 큰 힘이 되고 있다. 후원자들과 취약계층을 연결하는 작업도 보람 있는 일이다."

- 앞으로 착한 대출이 어떻게 성장하길 바라는가?

"'손발이 부르트도록'이란 말이 실감이 나는 10년이었다. 빌려달라는 사람들은 많은데 자본금이 열악하다 보니 후원을 받아내는 일이 쉽지 않았다. 또 대출을 원하는 사람들을 일일이 보살피고, 상환 상황도 점검하는 등 하루 24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뛰어왔다.

3천만 원에서 약 2억 원에 이르는 자금을 마련했지만, 돈을 빌리고자 하는 사람에 비하면 턱없이 모자란 금액이다. 무상사무실에서 직원도 없이 혼자 봉사의 정신 하나로 버텨온 지난 10년은 힘들었지만, 보람된 시간이었다. 앞으로 이 일에 관심 있는 분들과 함께 제2의 도약을 꿈꿔본다."

덧붙이는 글 | 우리문화신문에도 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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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박사. 시인. 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장, 한국외대 외국어연수평가원 교수, 일본 와세다대학 객원연구원, 국립국어원 국어순화위원, 민족문제연구소 운영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냄 저서 《사쿠라 훈민정음》, 《오염된국어사전》, 여성독립운동가를 기리는 시집《서간도에 들꽃 피다 》전 10권, 《인물로 보는 여성독립운동사》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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