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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년 8월 영보자애원 개소식 당시 모습
 85년 8월 영보자애원 개소식 당시 모습
ⓒ 서울시 사진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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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충격에 빠뜨린 일명 '도가니 사건(광주인화학교 성폭력 사건)' 이후 장애인복지시설에 대한 인권조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졌고 정부 또한 대대적인 실태 조사에 나섰다. 발달장애인 인권을 위해 활동하는 단체에 소속돼 지역사회 장애인 시설을 조사했던 나는 그 경력을 바탕으로 2017년 서울시의 노숙인 시설 정기인권조사에 참여했다. 당시 내가 조사를 위해 찾은 곳은 용인에 위치한 여성노숙인요양시설인 서울시립 영보자애원이었다.

당시 시설 관계자는 "1986년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정부에서 대대적으로 부랑인들을 단속했는데, 현재 여기 있는 사람 대부분은 그때 여성 부랑인으로 들어온 이들이다"라며 "사회로 환원하신 분들도 있고, 돌아가신 분들도 있고, 다른 시설로 가신 분들도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과거엔 대방동에 있는 현 여성프라자건물 위치에서 생활하다가 용인에 대형시설을 신축하여 이전하였다"라며 "현재 이용자들은 대부분 장애를 갖고 있다. 시설은 전액 서울시 예산으로 운영된다"라고 말했다.

1985년 '부랑인 시설 영보자애원'으로 개원한 이곳은 2005년 3개시설로 기능을 분화(자애원 550명, 정신요양원 200명, 노인요양원 100명)했다가, 2013년 '노숙인요양시설 영보자애원'으로 전환돼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홈페이지에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2021년 8월 현재 이곳에 입소한 이들은 총 331명으로, 이 중 51~70세가 다수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내가 정기인권조사 참여 당시 이야기를 나눈 이들은 50대~60대의 여성분들이었다.

"결혼해 서울에 사는 언니 집에 가러 서울역에서 내렸어요. 버스를 어디서 타는지 몰라 여기저기 왔다 갔다 했어요. 그런데 갑자기 어떤 남자들이 잡아서 차에 태워 어디론가 갔어요. 그게 대방동이었어요. 그리고 여기 용인에 와서 이제껏 살았어요."

"동작구 흑석동 어딘가에 살았어요. 어릴 때 좀 모자란다는 소리를 들었어요. 언젠가 골목에서 놀고 있는데 통장 아저씨와 어떤 아저씨 몇 명이 와서 데려갔어요."


시설 입소자 몇몇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과거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이곳에 오게 된 이들이 적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지난해 말 출범한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2기'에서 재조사할 것으로 알려진 형제복지원 사건과 단순 비교하긴 어렵지만, 본인의 의사에 반해 시설에 입소하게 되었다면 시설 내 인권유린과 별개로 그것 또한 국가폭력이 아닌가란 생각이 짙어졌다. 더구나 홈페이지 내 '가족을 찾습니다'에는 입소자 200명의 사진과 합께 입소일이 적혀 있는데, 약 90%가 1985년에 입소해 이곳에 살고 있는 것으로 돼 있었다.
 
전두환이 총리에게 보낸 지휘서신
 전두환이 총리에게 보낸 지휘서신
ⓒ 형제복지원 대책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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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실태조사에 참여한 이후 무엇인가 해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했다. 그러다 신안염전노예 사건을 변호한 최정규 변호사에게 관련 자료를 보냈고 그를 매개로 장애인 인권 전문단체인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와 형제복지원 사건 해결에 큰 기여를 한 '장애와인권 발바닥행동'의 활동가를 만났다. 이들을 만난 뒤 국가폭력과 관련된 여러 자료들을 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자료를 통해 과거 국가가 부랑인들을 어떻게 대해왔는지 알 수 있었다.

서울대학교에서 지난 5월 발간한 <절멸과 갱생 사이-형제복지원의 사회학>에 따르면, 박정희 정권은 '내무부 훈령 410조', 전두환 정권은 메모 형식의 '총리지휘서신'을 통해 도시하층민을 '부랑인'이라고 낙인찍고, 외관상 홈리스와 술에 취해 공원에서 잠깐 잠들었을 수도 있는 보통 사람들, 가족 친지를 만나기 위해 역에 내린 사람들, 귀가하는 청소년, 장애인 등을 무차별 단속 납치하여 시설에 격리하였다.

지난해 국가인권위원회와 인권의학연구소가 낸 <강제수용 인권침해 피해자 인권증진에 대한 모니터링 사업> 보고서에 따르면, 서산개척단-선감학원-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을 조사한 결과 일정한 거주지가 없었던 경우는 10% 미만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70% 이상이 경찰과 공무원에 의해 강제 수용되었다고 돼 있다.

2020년 12월 유진-박경규-김일환-김아람-김재형이 한국형사정책연구원에서 발표한 논문 <과거사 청산을 위한 국가폭력 연구(II)>에 따르면, 1962년에서 1974년에 단속된 부랑인은 전국 36개 시설에 1만~3만여 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중 진짜 거지나 부랑자들은 10%도 되지 않았다는 당시 언론의 보도도 있다. 형제복지원 출신 한종선과 전규찬-박래군이 함께 쓴 책 <살아남은 아이> 따르면, 1980년 당시 보건사회부는 전국 보호 대상 부랑인을 1만1500명으로 추산했다고 한다.

보건복지부 자료에 의하면, 2021년 현재 노숙인 재활시설과 노숙인 요양시설로 구분되는 과거 부랑인 수용시설에 남은 인원은 6400여 명으로 집계되고 있다. 물론 현 입소자 전원이 과거 몇 십 년 전에 강제 입소한 분들은 아니다.

과거 국가는 대부분 보통 시민이었던 수십만 명의 신체권을 강제로 빼앗아 어디엔가 숨긴 채로 아시안 게임과 올림픽을 개최하였다. 그리고 87년의 대통령 직선제가 실현되었다. 35년이 지난 지금은 정상적인 민주국가로 성장하였다.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으로 발전하였고, 한류 문화에 자긍심을 가져도 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긴 세월에 그들의 존재는 우리 사회에 없었다. 그들은 왜 아무 잘못 없이 수십 년간 갇혀 살다가 죽어야만 하는가? 그들을 계속 외면해도 되는 권리가 우리에게 주어졌는가? 정상 국가에 사는 우리가 또 다시 이 질문에 외면한다면 우리는 정상 국가의 국민이 아니다. 그리고 피해자들의 명예를 회복시키고 자유인으로 사회 속에서 살아가게 하지 않는 한, 우리가 사는 곳은 '인권국가'라고 할 수 없다.

사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따로 있다. 과거 국가에 의해 신체의 자유를 잃은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서다. 그들을 찾기 위해서다. '진실과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기본법'은 '피해 당사자와 당사자의 친족, 진실규명 사건을 경험 또는 목격한 자와 경험 또는 목격한 자로부터 그 사실을 직접 전해 들은 자'가 추가조사의 진정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즉 피해 당사자나 친족이 진정을 해야 조사를 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2012년 형제복지원 출신 한종선씨는 국회 앞에서 '형제복지원 진상조사'를 요구하는 1인 시위를 시작했고 전규찬 교수, 여준민 인권활동가 등이 관심을 가지고 공동보조를 맞추면서 형제복지원 사건의 해결 실마리를 찾았다.

이 사례에서 보듯이, 거기 살았던 피해자가 나서거나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이 나서서 강제수용 경위부터 증언해야 한다. 그리고 여기에 사회가 협력할 때 진상이 밝혀지고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

증언된 기록들은 2기 진실화해위에 추가 진정을 하고, 피해자들의 명예 회복·보상 등 향후 지원에 사용하고자 한다. 피해자나 그들의 가족들이 하루 빨리 자신들에게 주어진 권리를 찾을 수 있길 바란다.

* 과거 국가에 의해 신체적 자유를 빼앗긴 피해자 혹은 피해자 친족들은 전화(02-2043-6910)나 이메일(energypark@naver.com)로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 개인신상정보는 보호됩니다.

태그:#영보자애원, #형제복지원, #부랑인강제수용, #여성부랑인강제수용, #국가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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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이가 들어가며 사회에 하고싶은 말은 해야겠다고 맘먹은사람 2. 원광대학교 , 서울시립대대학원 사회복지학 석사, 숭실대학교 사회복지학 박사과정수료 3.장애인복지시설 임마뉴엘의 집 인권지킴이단장, 특수학교 한국육영학교 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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