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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인권위가 여론조사 기관에 의뢰해 조사-발표한 '온라인 혐오표현 인식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절반 이상이 '코로나19 이후 혐오와 차별이 증가했다'고 답했습니다. 코로나 사태가 시작된 지 1년 8개월여, 오마이뉴스는 '일상의 혐오'를 통해 불과 몇 년 사이 우리 삶에 깊숙이 파고든 혐오의 맨얼굴을 시민기자들의 경험담을 통해 마주하고자 합니다. 다른 시민기자들의 글도 적극 환영합니다. [편집자말]
인터넷 구직 사이트 A에 접속하면, 현재 등록된 전체 채용공고는 자그마치 16만 건으로 표시된다. 하나하나 꼼꼼하게 살펴보기에 너무 많은 숫자다. 지원 자격에 '지원자격 - 대졸 이상'으로 표시된 게 워낙 많아서, 고졸이 최종 학력인 나는 '상세검색' 메뉴에서 '학력 - 고등학교 졸업'을 선택해 다시 검색해야 한다.

검색 결과는 3만 3154건으로 줄어들고, 남은 채용공고의 대부분은 기계 정비, 건설 노동, 생산직 등으로 분야도 좁혀진다. 

다른 구직 사이트 B에 접속해봐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일 할 사람을 구한다는 내용의 채용 정보 게시물이 무려 21만 5617개나 올라와 있지만, 학력을 '고졸'로 설정하고 다시 검색하면 게시물 숫자는 2만 0577건으로 대폭 줄어든다. 지원 가능한 일자리는 대체로 물류센터 택배 상하차, 공장 노동, 콜센터 등이다.

현장에서 일해야 하는 일자리들 중에도 대학교를 졸업한 사람을 원한다고 조건을 걸어놓은 회사가 꽤 있다. 그렇기 때문에 고졸자가 지원할 수 있는 곳은 더욱 줄어든다. 남은 목록에서 일자리를 찾다 보면, 근로계약서 조항이 터무니없거나 몇 달을 근무해도 일요일 외 휴무일이 전혀 없는 일터를 종종 만나기도 한다. 
 
웹 드라마 '좋좋소' 중 '근로계약서'를 작성하는 장면. 중소기업 근무 환경 등을 현실적이고 적나라하면서도 코믹하게 다뤘다는 호평을 받고 있다.
 웹 드라마 "좋좋소" 중 "근로계약서"를 작성하는 장면. 중소기업 근무 환경 등을 현실적이고 적나라하면서도 코믹하게 다뤘다는 호평을 받고 있다.
ⓒ 유튜브 "이과장" 채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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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초반, 경제적 상황이 좋지 않았기에 다니던 전문대를 졸업하지 못하고 자퇴해야 했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지냈던 시기는 점점 길어졌고, 3년간 20여 종류가 넘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그때그때를 '버티듯이' 지냈다. 최저임금 정도의 빠듯한 생활비로 '하루 라면 하나'로 끼니를 때우던 시기를 거쳤고, 한때 몸무게가 지금보다 10kg 이상 적은 50kg대까지 내려가기도 했다.   

"대학을 안 나오셨는데... 나이가 꽤 있네요?"

'창고 관리직인데 대졸자를 구한다고?' 

호주에서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지내는 동안 1년 가까이 여성 의류업체 창고에서 근무한 적이 있던 나는 귀국 후 구직 사이트에서 '창고 관리자 - 경력자 우대'라는 공고를 발견하고 곧장 지원했다. 지원자격 설명에서 '대졸자'를 구한다는 내용을 보았지만, 실무 경력이 있으니 도전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결과는 '서류 전형 탈락'이었다. "저희가 대졸인 분을 찾고 있어서, 아쉽게도 다른 분을 채용하게 됐습니다"라고 탈락의 이유를 설명해준 곳은 그나마 친절했다고 할까. 창고-매점 관리를 맡는 일자리에 더 지원해봤지만 거의 서류 탈락이거나, 면접에서 떨어지기 일쑤였다.

면접에서 "혹시 대학교를 안 나온 이유가 있나요?" 하고 굳이 묻는 말에 어색한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한 적도 있다. 고졸 신분으로 일하자니 아르바이트를 2~3년간 더 해야 했고, 그러는 동안 면접 도중 듣는 말이 몇 가지 늘었다. 

"대학을 안 나오셨는데... 나이가 꽤 있네요?"
"알바만 계속했다고요? 차라리 일하면서 전문대를 야간으로라도 다니지 그래요?" 

 
MBC <무한도전> 프로그램 중 무한상사 면접 장면.
 MBC <무한도전> 프로그램 중 무한상사 면접 장면.
ⓒ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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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마음을 바꿔 고졸을 채용하는 일자리를 찾아 지원했다. 주로 마트·병원·은행에서 보안요원으로 근무했고, 그 전에는 통영에 위치한 조선소와 구미 공단 지역의 휴대전화 부품 공장 등 일을 찾아 지역으로 향한 적도 있다.

김용균과 구의역 김군의 일자리

공장에서 일하다가 손가락이 으스러져서 퇴사하고, 조선소에서 근무하던 중 동료의 사망 소식을 듣고 떠나기로 마음먹었던 날을 기억한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구의역 김군과 김용균씨 사망 사건을 뉴스 기사로 보며 생각했다. 내가 직접 산업재해 사망 당사자가 되지 않았던 건 그저 운이 덜 나빴던 것일 뿐이고, 언제든지 나의 일이 될 수도 있었다고 말이다. 

물론 표면적으로 산재 사고의 원인은 '위험한 일터'에 있다. 누군가는 '학력 차별'과 산재가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물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비정규직으로 육체노동 현장에 들어가 몇 년간 일하며 쌓은 기억들을 떠올려보면, 전혀 동떨어진 사안이 아니라고 말하게 된다.

산재의 뿌리엔 분명 '위험의 외주화'라는 요소가 있지만, 사방으로 뻗은 다른 뿌리를 끄집어내면 비정규직 처우 문제가 같이 엮여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비정규직을 두고 흔히 '임금을 덜 받고도 더 위험한 일을 해도 마땅하다'고 보는 인식은 곧 '그런 직종엔 못 배운 사람들이 가는 것'이라는 편견과 일정 부분 맞닿아있다. 학력이 낮거나, 학벌이 좋지 못하거나, 지방 전문대를 졸업했다는 이유로 누군가에게 '기피 직종'인 것이 어떤 사람들에겐 '감당해야 할 현실'로 뒤바뀌곤 한다.

만약 산재를 겪거나 겪을 가능성에 놓인 수많은 노동자들에게 '다른 직종의 일자리를 선택할 자유'가 보장된다면 어떨까? 학력이 높지 못하다는 이유로 많은 사람들은 폭넓은 일자리를 선택할 기회조차 출발선에 서기 전에 잃는다. "억울하면 출세하라" 같은 댓글이 산재 관련 기사에서 흔히 보이는 오늘날, '열악한 일자리'와 '위험한 일자리' 같은 선택지만 주어진 상황은 단지 '그럴싸하게 재포장한 차별'에 지나지 않는다.

학력 차별 정당화하는 '능력주의'의 시대, 차별금지법이 필요하다
 
드라마 <미생> 예고편 중. 장그래는 고졸 출신으로 인턴기간을 거쳐 신입사원이 되는 인물이다.
 드라마 <미생> 예고편 중. 장그래는 고졸 출신으로 인턴기간을 거쳐 신입사원이 되는 인물이다.
ⓒ CJ 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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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웹툰 원작의 드라마 <미생>이 인기리에 방영되던 시절, 사람들은 임시완이 연기하던 주인공 '장그래'를 응원하곤 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 바둑에 매달리다가 무역회사에 인턴으로 취직해 힘겹게 살아가는 그의 모습은 짠하면서도 한국의 비정규직 현실을 잘 담아냈다. 장그래를 향한 응원은 가히 전국민적인 열풍에 가까웠고, <미생>은 당시 방영 드라마 중 시청률 1위를 기록했다(2014년 12월 기준).

하지만 몇 년이 흐른 2021년 한국에서는 장그래를 손가락질하는 사람이 꽤 많을 것 같다는 생각에 씁쓸해진다. 지난 2020년 인천국제공항 비정규직 정규직화 과정을 두고 비난이 쏟아졌던 일을 돌아보면 그렇다. 당시 이준석은 "공부하지 않고 노력하지 않아도 가재·게로 살아도 된다는 민주당의 가짜 평등과 맞서겠다"라고 발언했고, 최근 능력주의에 대한 확신을 펼친 끝에 당대표가 되었다(관련 기사 : '능력주의' 앞세운 이준석... 법원 판결은 달랐다 http://omn.kr/1ub5l).
 
2012년부터 2019년까지의 국가 장학금 신청 현황에 의하면 고려대·서울대·연세대 학생의 40%, 국내 의과 대학 재학생의 48%가 고소득층이란 사실은 우리 사회에서 개인의 '일신 전속적 능력'이란 것이 일신을 넘어선 일가족의 능력에 가깝다는 현실을 보여준다.

한편에서는 가족의 모든 자본을 총동원해 전투적 태세로 치열한 교육 경쟁을 벌이고 다른 한편에서는 온갖 난관에 시달리며 배움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는 교육 양극화 현상 속에서, 능력에 따른 교육이란 능력을 이유로 사회 불평등을 온존시키는 장치가 되기 십상이다. - <능력주의와 불평등> 51쪽 중에서 

하버드대 교수 마이클 샌델은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대학 학위가 품격 있는 직업과 사회적 명망의 조건이라는 생각을 근거로 정치를 하니 민주주의는 훼손될 수밖에 없다"라며 진보-보수 구분 없이 능력주의를 이상화하는 미국 정치계를 꼬집기도 한다. 또한 마이클 샌델은 불평등이 개인의 책임으로 떠넘겨질수록 연대 의식이 사라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마이클 샌델의 비판은 '차별을 없애는 것은 공정하지 못하다'라는 착각이 퍼지는 한국에도 고스란히 적용될 듯하다. 각박한 현실을 핑계 삼아 사회를 갈라놓는 차별이 더 깊어지지 않도록,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이 이뤄지길 바란다. 학력이나 성별·인종·장애 유무로 고용과 교육 등의 영역에서 차별받지 않도록 한다면, 자신의 업무 능력을 증명한 장그래가 고졸 신분 주제에 정규직 자리를 노린다며 '공정의 매'를 맞을 일도 없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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