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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제주살이 4년차에 접어들었다. 그 사이에 거셌던 제주 러시 현상은 다소 진정된 듯하다. 그러나 아직도 제주 이주를 꿈꾸는 사람들이 적지 않고, 제주 1년 살이 혹은 1달 살이에 대한 관심은 여전히 뜨겁다. 이 글은 동아일보 기자와 세종대 초빙교수를 지내고 은퇴한 후 제주로 이주한 한 개인의 일기이자 제주에서의 생활을 소재로 한 수필이다. 어떤 이유에서든 제주도에 관심을 가진 독자들에게 제주의 자연환경,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그리고 한국현대사의 축소판이라 할 제주사회를 이해하는 데 유익한 읽을거리가 되길 기대한다.[기자말]
오랜만에 대평리를 찾았다. 직장 업무로 서귀포에 거주 중인 후배 S와 낚시를 하기로 약속하고 장소를 떠올리다가 서귀포와 애월 중간쯤에 해당하는 안덕면 대평리 바닷가로 정했다.

제주 이주를 앞두고 있던 무렵 바다낚시 장비를 한 세트 샀다. 본래 낚시 취미가 있다거나 경험이 많은 것도 아니었다. 다만 사면이 바다인 제주에서 살기로 한 만큼 슬기로운 제주생활을 위한 필수과목으로 바다낚시를 지목한 것이다.

그러나 작심과는 달리 바다낚시에 익숙해지기가 쉽지 않았다. 채비도 어렵고, 몇 차례 애월 바닷가로 나가봤지만, 조황이랄 것도 없이 허탕만 치다 보니 흥미도, 의욕도 반감됐다. 큰맘 먹고 장만한 낚싯대는 바닷바람도 쐬지 못한 채 내 일상에서 멀어져 갔다.

회사에서 낚시동호회 회장을 역임한 낚시 베테랑 S가 모처럼 함께하자는 제의를 해와 무척 기뻤다. 든든한 낚시 가이드와 함께 하루를 보낼 생각에 모처럼 들뜬 기분마저 느꼈다.

정겨운 마을

낚시도 기대됐지만 오랜만에 대평리를 간다고 하니 마음 한구석에 묘한 감흥이 일었다. 대평리는 제주도에서 '사귄' 첫 상대다. 2009년 신문사를 그만두고 허전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섬진강을 걸었다. 그리고 다시 제주로 건너와 제주올레를 걷기 시작했다.

제주올레가 막 생겨나 새로운 코스를 개척해나가던 시기였다. 올레 8코스를 마치고 대평슈퍼 아래 민박에 짐을 풀었다. 마을을 돌면서 곧 마음을 빼앗겼다. 널찍한 난드르에서는 마늘밭 감자밭이 펼쳐졌고, 마을 골목길은 정겨웠다. 버스 차부가 있었고, 대평슈퍼에서 바닷가로 나가는 좁은 길가에 영화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으로 알려진 장선우 감독의 '물고기' 카페가 순박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모두가 초면이지만 낯설지 않게 맞아주었다.

주민들도 친절했다. 아침 일찍 군산 오름에 가려고 민박을 나서는데 마침 마주친 대평슈퍼 사장님이 자동차로 입구까지 태워주는 호의를 베풀었다. 민박도 겸했던 대평슈퍼에 빈방이 없어 다른 민박집을 구한 것인데, 이런 특급대우를 받았으니 감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음 날 아침에는 서울서 급히 내려온 친구와 대평포구로 나가 바다낚시를 했다.
 
2009년 첫 방문시 박수기정 위로 올라가다가 촬영한 풍경이다.
▲ 박수기정 길에서 본 대평포구 일대 2009년 첫 방문시 박수기정 위로 올라가다가 촬영한 풍경이다.
ⓒ 황의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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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평슈퍼 부부가 결혼한 사연도 들었다. 아내가 고교시절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왔다가 현지인 남편을 만난 게 인연이 됐다고 한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이들 부부와 친해졌다. 서울로 돌아가서도 연락을 하고 귤을 택배로 주문하기도 했다.

대평리는 순박한 사람들만큼이나 빼어난 경관도 나를 사로잡았다. 첫인상이 널찍하면서도 안온했다. 호방하면서 정겨웠다. 산 모양이 군막을 쳐놓은 듯하다 해서 붙은 군산 꼭대기에서 바다 쪽으로 펼쳐진 용왕 난드르, 대평리를 굽어보니 문외한이 보기에도 천하의 명당이었다.

바다 쪽으로 넓고 길게 평평한 들판이 뻗어나간 지형은 제주의 다른 곳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들다. 바다를 향해 들판이 뻗어 있지만 오름과 계곡이 막아주고 절벽이 감싸니 평화롭고 정겨운 것이다.

이곳의 옛 이름 용왕 난드르는 용왕이 나온 넓은 들판(大坪)이란 뜻이다. 이런 전설도 전해진다. 옛날 용왕의 아들이 대평리에 살았단다. 용왕의 아들은 이 마을의 학식 높은 선비에게 글을 배웠는데, 서당 근처에 창고내라는 냇물이 밤낮없이 시끄럽게 흘러 공부에 방해가 됐다.

3년 동안 글공부를 마친 용왕의 아들이 스승에게 소원 하나를 들어주겠다고 했더니, 냇물 흐르는 소리가 공부에 방해되니 없애달라고 했다. 이에 용왕의 아들은 이곳에 박수기정을 만들어 방음벽을 설치했고, 군산을 만들어주고 떠났다. 그 뒤로 더 이상 물소리가 들리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대평리로 들어오는 입구에 우뚝 솟은 군산. 옆으로는 안덕계곡이 지나고 있다.
▲ 대평포구에서 본 군산 대평리로 들어오는 입구에 우뚝 솟은 군산. 옆으로는 안덕계곡이 지나고 있다.
ⓒ 임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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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은 대평리 북쪽을 막고 있는 제법 큰 오름이다. 마치 수호신처럼 우뚝 솟아 있다. 군산 옆으로 안덕계곡이 울창한 숲을 이루며 계곡물을 바다로 보낸다. 바닷가에는 박수기정이 압도적인 자태로 대평포구를 감싸 안았다. 바가지로 마실 샘물(박수)이 솟는 절벽(기정)으로, 130m 높이의 주상절리 벼랑이다. 제주도에서 가장 잘생긴 절벽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샘물(박수)이 솟는 절벽(기정)이란 뜻의 주상절리 벼랑으로 높이가 130m에 달한다.
▲ 박수기정 샘물(박수)이 솟는 절벽(기정)이란 뜻의 주상절리 벼랑으로 높이가 130m에 달한다.
ⓒ 황의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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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벽 뒤로 난 길을 통해 박수기정 위로 오르면 수만 평은 됨직한 대평원이 펼쳐진다. 이 대평원을 지나 안덕계곡을 건너면 화순, 산방산으로 이어진다. 제주올레 9코스 길이다. 박수기정 위에서 내려다보는 풍경 역시 압도적이다. 대평포구와 마을, 멀리 서귀포 쪽으로 보이는 섬과 바다에서 쉽사리 눈길을 떼기 어렵다.

이렇게 인연을 맺은 대평리는 제주도에 올 때마다 꼭 시간을 내서 들러보는 장소가 됐다. 당연히 제주로 이사를 오게 된다면 이곳에 집을 짓고 살면 좋겠다는 꿈을 꾸기 시작했다.

제주도 문제의 축소판

그러나 대평리에 대한 호감이 안타까움으로, 또 실망감으로 바뀌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제주도 이주 열풍이 불면서 대평리가 순식간에 육지 사람들의 타깃이 되어버렸다. 대평리에 대한 호감은 나만 가진 게 아니었다. 시간이 갈수록 소문이 나면서 외지인이 하나둘 찾아들더니 몇 년 사이에 확 뜨고 말았다.

마을로 들어가는 큰길은 말할 것도 없고, 골목마다 외지인들이 집과 땅을 사들이고, 세를 내 게스트하우스며, 카페며, 식당이며, 무슨 체험이며 등등 잇달아 '오픈'을 해댔다. 군산과 계곡과 절벽이 막아주던 '난드르 요새'가 '외세'로 인해 활짝 오픈된 셈이다.

대평리를 찾아갈 때마다 모습이 바뀐다. 전망 좋은 곳에는 예외 없이 2층, 3층 신축건물이 들어섰다. 마을 원주민들 대신 외지에서 온 업소 주인들이 더 많이 눈에 띈다. 주거 단지들이 속속 빈 땅을 메웠다.

얼마 전 제주 KBS를 보니 대평리의 이주민과 원주민이 서로 알고 지내자는 취지에서 함께 돌담 쌓기 작업을 하고 있었다. 카메라 앞에 선 대평리 이장은 이주민이 60%를 넘어가면서 주민들 간에 서로 몰라보는 경우가 많아 이런 공동작업 이벤트를 마련했다고 고충을 토로하는 것이었다.

요즘 대평리는 제주도 전역에서 구좌읍 월정리와 함께 가장 뜨거운 곳으로 꼽힌다. 이젠 어쩌다 대평리를 가도 낯선 느낌이 드니 점점 마음에서 멀어진다. 10여 년 전의 짧지만 강렬했던 대평리의 추억은 이제 빛이 바래고 말았다.
 
크고 작은 집들이 꽉 들어찬 최근의 대평리 풍경(왼쪽)과 2009년 촬영한 한적한 모습의 대평리(오른쪽)
▲ 10여 년 사이에 달라진 대평리 전경 크고 작은 집들이 꽉 들어찬 최근의 대평리 풍경(왼쪽)과 2009년 촬영한 한적한 모습의 대평리(오른쪽)
ⓒ 황의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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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대평리가 맞고 있는 상황은 어찌 보면 제주도가 당면한 문제의 축소판일 것이다. 풍광 아름다운 곳에 사람들이 몰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니 외지인들을 탓할 수만도 없는 일이다. 다만 최소한의 기준만은 지켰으면 하는 것이다. 고유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환경을 보전하기 위한 마지노선 같은 것 말이다. 이런 일 하라고 정치가 있고 행정이 있고 자치가 있는 것 아닌가.

후배 S와 만나기로 한 낚시 장소는 박수기정 앞 넓게 뻗어나간 갯바위였다. 이른 시간이었는데도 제법 낚시꾼들이 많았다. 박수기정을 바라보면서 낚시를 한다는 것 자체가 묘한 감흥을 불러일으켰다. 밑밥도 던지고, 민낚싯대에 새우 미끼를 달아 가까운 바닷속을 공략했다.

모처럼 대평리에 관한 이런저런 상념들을 떨쳐버리고 낚시에 집중하려 했지만, 그조차도 얼마 못 가 중단하고 철수해야 했다. 며칠 전부터 괭생이모자반이 중국 쪽에서 제주 해안으로 밀려들고 있다는 뉴스를 보았는데, 대평리 바닷가에도 빠른 속도로 밀려든 것이다.

모처럼의 대평리행은 이렇게 싱겁게 끝나고 말았다. 다른 지역으로 이동해볼까 하다가 맥이 풀려버렸다. 점심이나 먹고 가자며 들어간 대평리의 식당에서도 예전의 맛을 만날 수는 없었다. (2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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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년의 언론계 생활과 7년의 대학 초빙교수 생활을 끝내고 2018년 봄 제주로 이주했다. 애월읍의 한 생태마을에 거주하면서 제주의 아름다운 자연과 그곳에서 사는 사람들 그리고 제주현대사의 아픔에 깊은 관심과 연대의식을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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