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눈꽃 빙수'. 빵집 문 앞에 붙은 포스터를 보고 무작정 안으로 들어섰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며칠 전이었다. 팥빙수 망고빙수 딸기빙수가 있는데 팥빙수는 품절이라 망고빙수를 주문했다. 눈꽃처럼 부드러운 빙수와 샛노란 망고 한 조각을 숟가락으로 떠서 입안에 넣었다. 시원하고 달콤한 맛이 동시에 녹아들었다.

1994년도에 브라질에서 처음으로 망고를 먹어봤다. 우리가 살던 집 정원에는 왜소한 망고나무가 한 그루 심어져 있었다. 격년으로 열매를 맺는 이 망고나무에서 한 해 동안 알이 굵은 망고 11개를 수확한 적이 있다. 바람 불면 쓰러질 것 같은 비루한 수형에도 불구하고 검붉은 색과 연녹색이 감도는 아주 먹음직스런 망고를 선사해준 그 망고나무가 아직도 생각난다. 고마움을 표하고 싶다. 

햇빛이 따사롭게 내리쬐는 정오, 콜롬비아 의사 우르비노는 망고나무에 올랐다가 실족한다. 자신이 81세 노인이라는 사실을 잊은 채 앵무새를 잡으려 나무에 오른 결과는 참혹했다. 그는 나무에서 떨어지자마자 숨을 거둔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소설 <콜레라시대의 사랑>에 나오는 우르비노 박사는 그렇게 망고나무와 함께 최후를 맞는다. 그 대목을 읽으면서 나는 브라질 정원의 비루하기 짝이 없던 우리 망고나무를 그리워했었다.  

두 번째 숟가락을 입에 넣었다. 빙수와 망고의 시원하고 달콤한 맛이 부드럽게 뒤섞여 더위가 가시는 느낌이다. 첫 숟가락을 먹었을 때와 강도는 다르지만 시원하고 달콤한 맛은 여전했다. 노란색 망고 과육을 보니 베트남의 후덥지근한 아열대 풍경이 떠올랐다.

흐엉(Huong)은 하노이 교육대학에 다닌다. 베트남에서 가장 소득수준이 낮다는 하띤 출신이다. 어머니는 그곳에서 농사를 짓는다. 사진을 보니 40대 중반이라는데 얼굴에 기름기라고는 전혀 없고 삐쩍 말라서 마치 60대 할머니처럼 보였다. 흐엉은 대학을 졸업하고 베트남 내 한국 기업에 취직하는 게 꿈이다. 그런 흐엉에게 나는 한글을 가르쳐주었다.

고향에서 방학을 지내고 하노이로 올라온 흐엉이 어느 날 내게 묵직한 비닐 봉지 하나를 건넸다. 그 안에는 신문지로 둘둘 싼 뭉치들 다섯 개와 연 잎으로 정성스레 포장한 정방형 꾸러미 하나가 들어있었다.

신문지를 풀어 보니 노랗게 익은 망고가 모습을 드러냈다. 흐엉은 땀에 젖은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쓸어넘기며 고향에서 직접 따온 망고라고 씩씩하게 말했다. 그 날 이후로 노란색 망고를 볼 때면 땀으로 범벅졌던 흐엉의 얼굴이 떠오른다. 

세 번째 숟가락. 이번에는 빙수만 떴다. 입안에서 빙수가 사르르 녹았다. 시원했다. 망고는 너무 달아 두 번 이상 먹기 힘들다. 망고는 갈증 해소에 도움이 될까? 글쎄다, 별 도움이 안되는 것 같기도 하고. 잠깐! 갈증 해소에 도움이 되기도 한다. 녹색 망고라면 말이다.

무더위로 몸이 나른해지는 오후 하노이. 내가 일하던 유치원 선생님들인 린(Lien)과 응옥(Ngoc), 쑤언(Xuan)은 휴식 시간이면 설익은 망고를 길쭉하게 썰어 내게 건네곤 했다. 우리는 신맛 나는 망고를 붉은 빛이 도는 칠리솔트에 찍어 야금야금 먹었다. 새콤하고 달콤하며 짭짤하고 매콤한 그 맛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설 익은 녹색 망고의 신맛은 사라지고 오히려 개운한 맛이 들면서 갈증이 해소되는 느낌이랄까. 오후의 나른함을 떨치는 데에도 그만이었던 것 같다. 맛의 화학작용을 과학적으로 설명할 재간은 없지만 경험상 설익은 망고가 갈증을 해소해주었던 건 틀림없어 보인다. 

베트남에서는 흔하디 흔한 과일의 하나일 뿐인 망고를 소금에 찍어 먹는 맛이 무에 그리 맛있었다고 이리 떠들었나 모르겠다. 어쩌면 나는 말 하나 통하지않던 그곳에서 그들이 내게 보여준 따듯한 우정을 그리워하는지도 모른다. 그걸 되새기려 애쓰고 있다. 아무리 하찮은 과일이라도 같이 먹으면 맛있다는 걸 그때 절감했으니까.

인간이 맛을 느끼는 건 한 뼘도 안되는 혀를 통해서일까 아니면 경험과 기억을 통해서일까. 에어컨 바람이 시원하게 나오는 곳에서 망고빙수를 다 먹고나니 뱃속까지 서늘해지는 느낌이다. 빵집을 나서며 생각했다. '빙수는 역시 팥빙수가 제격이지. 그리고 망고는 설익었을 때 칠리솔트에 찍어 먹는 게 제격이고.'
 
수채화
▲ 망고 수채화
ⓒ 홍윤정

관련사진보기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5,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미술애호가, 아마추어화가입니다. 미술에 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씁니다. 책을 읽고 단상글을 쓰기도 합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