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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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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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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기사] 제주도에 왔는데 사진은 3장만? 뇌가 비명을 질렀다 

대학생 때, 처음으로 필름 카메라를 얻었다. 흔히 말하는 아버지의 '장롱 카메라'였다. 오랜 시간 장롱 속에서 잠을 자고 있던 카메라를 4~5년 동안 목에 걸고 사진을 찍었다. 물론 그 당시에도 디지털 카메라는 있었다. 하지만 지금과 비교하면 민망할 정도로 화소가 낮았다. 

필름카메라는 한 롤(roll)에 24장만 찍을 수 있었다. 게다가 현상을 하고 또 인화를 해야 했다. 필름을 구입하고 현상 비용을 내고 인화 비용까지 이중, 삼중의 비용과 시간이 들었다. 그렇기에 사진 한 장 한 장이 곧 돈이자 시간이었다. 

이제 이미지를 소유하는 건 너무나 쉬운 일이다. 카메라 기능은 모든 스마트폰 제조사의 핵심 경쟁 요소가 됐다. 전화나 인터넷은 너무나 당연한 기능이고 부각되는 건 오로지 카메라다. 삼성이나 애플이 신제품 시연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것도 카메라 부분이다. 수천만 화소, 심지어 억 단위의 초고해상도와 수백 기가의 용량, 심지어 클라우드까지 결합하면 평생을 찍어도 될 듯하다. 

그 덕에 가장 편리해지면서 동시에 퇴화하는 게 있다. 바로 기억력이다. 과거에 무언가를 보고 기억하기 위해서는 눈을 부릅떠야만 했다. 누군가에게 길을 알려주기 위해 약도를 그리기도 했다. 이제는 사진을 찍고 캡쳐하면 모든 것이 끝난다. 이제 스마트폰은 제2의 뇌가 되었다. 기억할 필요가 없어졌다. 그저 기억하고 싶은 대상에 대고 셔터 버튼을 터치하면 된다.

여행에서 수백, 수천 장의 사진을 찍고 다시본 적이 있는가? 많은 사람들이 짧은 휴가를 마치고 다시 미칠듯이 바쁜 일상으로 돌아온다. 그 와중에 사진을 지인들과 카톡으로 공유하고 인스타에 올린 후, 다시 사진첩을 보는 건 얼마나 될까? 대부분 몇 년이 지나도록 열어보지 않을 것이다.

매일 수십 장의 사진을 찍고, 소유해야 할 것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그저 찍었다는 사실에 만족해 버린다. 마치 홈쇼핑에서 물건을 사고서 포장조차 뜯지 않는 사람들처럼 말이다. 그 순간을 저장했다는 만족감으로 더 이상의 집중과 관찰은 없다.

'소유'하고 싶은 욕망을 포기해봤더니 

린다 헨켈 심리학 교수는 미술관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했다. 눈으로 작품을 감상한 그룹과 사진기를 쥐어준 그룹을 나누어 관찰했다. 관람이 끝나고 작품에 대한 기억력 테스트를 했다.

눈으로 감상한 아이들은 작품의 세부적인 내용도 맞췄지만 카메라로 찍은 그룹은 그렇지 못했다. 이를 '사진 찍기 장애 효과'라고 불렀다. 헨켈 교수는 "순간을 기억하려 셔터를 누르는 것은 기억을 외부에 위탁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런 행동이 계속되면 인지처리 능력이 떨어져 기억력이 감퇴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제주도 여행에서 디지털 디톡스를 하기 위해 하루 3장만 사진을 찍기로 했을 때 미칠듯한 금단 증상이 찾아왔다. '소유'하고 싶은 순간들은 많은데 내가 정한 규칙에 옴싹달싹도 할 수 없었다. '이게 과연 찍을만한 가치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내가 풍경들이나 대상을 사진으로 찍은 건 정말 좋아서가 아니었다. 그저 '소유'했다는 단순한 만족감으로 찍어왔던 것이다. 
 
홀로 걷다 찍은 제주도 귤밭. 귤 냄새가 너무나 진하고 탱글탱글 귤들이 수천개 달려 있는 모습이 신기해 찍었다. 이 때의 풍경이 너무나 좋아 그림으로도 그렸다.
▲ 고민해서 찍은 사진 1장을 공개한다. 홀로 걷다 찍은 제주도 귤밭. 귤 냄새가 너무나 진하고 탱글탱글 귤들이 수천개 달려 있는 모습이 신기해 찍었다. 이 때의 풍경이 너무나 좋아 그림으로도 그렸다.
ⓒ 고용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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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생각 없이 나무에 달려 있는 귤을 찍고 싶었다. 하루에 3장만 찍을 수 있는 기회를 쉽게 써버리고 싶지 않았다. 사진 대신 그냥 보기로 했다. 그 자리에 서서 나무를 뚫어져라 바라봤다. 가상의 레이저 포인터를 나무에 발사해 나무 뿌리부터 천천히 외곽선을 따라 관찰했다. 나무에 달린 귤을 바라보며 그 풍경을 '암기' 했다. 

대략 2~3분 정도 서서 대상을 관찰했다. 그러자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이전에 보지 못한 나무의 디테일이 보이기 시작했다. 줄기의 굴곡, 귤에 있는 수많은 까만 점들, 잎사귀의 둥근 형태, 태양빛을 반쯤 통과시키면서 보이는 반투명해지는 초록 나뭇잎 등 새로운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충분히 관찰을 끝냈을 때 더이상 '사진 찍고 싶다'라는 욕구가 생기지 않았다. 이전까지 계속 스마트폰으로 향하려 했던 두 손도 조용해졌다. 

집중, 관찰은 '내 것'으로 만드는 방법이다. 여행이 굉장히 느려졌다. 천천히 걸으면서 모든 것을 눈에 담으려고 노력했다. 마치 오늘이 생에 마지막 날인 사람처럼 많은 것들을 찍는 대신 내 앞에 있는 것을 하나하나 세밀히, 선과 색, 그리고 명암을 보려고 노력했다.

신기하게도 집중할수록 사진으로 남겨야겠다는 욕구가 점차 사라졌다. 물론 마음 속 한구석에서는 '나중에 다 잊어버리면 어떻하지?'라는 걱정이 끊임없이 솟아올랐다. 망각에 대한 두려움이 엄습하기도 했다. '남는 건 사진이다'라는 말이 계속 머릿속에서 떠올랐다. 

그때의 풍경은 지금도 눈을 감으면 생생히 살아난다. 코로 들어오는 공기의 냄새부터 바닷가의 소리, 파도의 거품까지 생생히 살아난다. 만약 수백 장의 사진으로 가지고 있다면 훨씬 더 많은 것을 소유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처음 말한 것처럼 미치도록 바쁜 현대 사회에서 수백 장의 사진을 다시 하나하나 보고 있을 시간이 어디 있을까. 가장 좋은 것, 소중한 것은 메모리가 아니라 아예 머릿속에 저장하는 것이 좋다. 

하루 3장, 6일간 총 18장의 사진들
 
수백, 수천장의 사진을 찍었다면 다시 열어보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였을 것이다. 하지만 워낙 적은 사진만 찍어서 한장 한장 소중히 다시 보고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여유도 생겼다.
▲ 찍었던 사진 다시 관찰하기 수백, 수천장의 사진을 찍었다면 다시 열어보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였을 것이다. 하지만 워낙 적은 사진만 찍어서 한장 한장 소중히 다시 보고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여유도 생겼다.
ⓒ 고용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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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생활을 하다 보면 어떤 프로젝트를 설명할 때 구구절절 이야기하는 것보다 한 줄로 설명하는 것이 더 대단한 능력임을 깨닫는다. 수백 장의 사진 대신 한 장의 사진에서 모든 것이 기억나는 때가 있다. 지금도 사진첩에 있는 18장의 사진은 너무나 간결하다. 사진 한 장 한 장을 기준으로 그때의 기억들이 되살아난다.

그리고 이것을 또 그림으로 그렸다. 그러자 더 강렬하게 그때의 공기와 팔 위로 쏟아지던 햇빛까지 다시 느껴졌다. 그 순간을 진하게 기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많은 사진을 찍어서가 아니라 그 순간에 관찰하고 집중한 결과다.

기억력의 본질은 관찰과 집중이다. 지금도 우리 뇌에서는 매일 수많은 정보를 받아들인다. 그리고 뇌 속의 해마는 수많은 이미지들 중에서 장기기억과 단기기억을 분류한다. 그 기준은 바로 우리의 집중력이다. 오래 보고 집중할수록 해마는 중요한 정보로 인식하고 장기기억으로 이동시킨다.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는 게 나쁘다는 게 아니다. 찍었다는 것 자체에 만족해 버리는 태도가 나쁘다. 제대로 보지도 않고 셔터를 터치하고 바로 다음 대상을 향해 나아가는게 나쁘다. 마치 부페에서 음식을 제대로 음미하지 않고 계속해서 이것저것 먹어보다 결국 무엇하나 제대로 먹지 못하는 것과 같다.
 
원래라면 바로 셔터를 눌렀겠지만 사진 대신 눈으로 관찰하고 손으로 그리기 시작했다. 등대 앞에 앉아 계속해서 바라봤다. 지금도 사진만큼이나 생생하게 이 때의 풍경, 공기의 냄새, 주변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들린다.
▲ 이호테우 해변의 등대 원래라면 바로 셔터를 눌렀겠지만 사진 대신 눈으로 관찰하고 손으로 그리기 시작했다. 등대 앞에 앉아 계속해서 바라봤다. 지금도 사진만큼이나 생생하게 이 때의 풍경, 공기의 냄새, 주변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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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포함해서 많은 사람들이 망각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다. 남는 건 사진 뿐이다라는 말이 괜히 나온게 아니다. 결국 기억력에는 한계가 있고 우리는 많은 것을 잊어버릴 것이다.

하지만 잊어버리면 어떤가? 대신 가장 소중하고 행복했던 순간만을 남기면 되지 않을까. 어차피 많이 찍은 사진은 나중에 열어보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다. 거기서 또 사진을 고르는 것 자체가 피곤한 일이다.

때론 망각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고 대상을 가만히 바라보자. 집중해 보자. 숨을 들이쉬고 천천히 세부적인 선과 색을 감상해보자. 사진을 찍었다면 결코 발견하지 못할 세상이 보일 것이다. 그 때의 발견은 사진보다 훨씬 오래 우리 머릿속에 남아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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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디지털 기기 추종자였지만 지금은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적절한 조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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