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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관광시장으로 유명한 신포시장은 닭강정을 비롯해 만두, 쫄면, 공갈빵 등 다양한 먹거리가 많다.
▲ 신포국제시장의 입구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관광시장으로 유명한 신포시장은 닭강정을 비롯해 만두, 쫄면, 공갈빵 등 다양한 먹거리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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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편리한 대형마트에 밀려 한동안 쇠퇴를 면치 못했던 전통시장이다. 하지만 천편일률적인 대형마트와 달리 그 고장의 정서와 향토색을 담고 있거나 여기서만 할 수 있는 구경거리와 먹거리 등의 특색을 갖춘 시장들이 새로운 명소로 주목받고 있다.

서울의 광장시장이 파전을 비롯한 수많은 먹을거리로 주목을 받고 있고, 속초여행에서 속초중앙시장은 빠질 수 없는 명소가 되었다. 오래된 도시마다 유명한 시장은 하나 이상은 존재하기 마련인데 인천 구도심을 여행객이라면 꼭 찾는 재래시장이 있다. 동인천역 또는 신포역에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신포 국제시장이 바로 그곳이다.       

닭강정, 공갈빵, 쫄면... 먹거리 천국 신포시장 
 
인천의 차이나타운에서 벗어나면 신포시장 주변에 오래된 중국집이 많다. 중화루는 인천을 대표하는 3대 중국집 중 하나로 명성이 대단했다.
▲ 인천의 대표적인 중국집 중화루 인천의 차이나타운에서 벗어나면 신포시장 주변에 오래된 중국집이 많다. 중화루는 인천을 대표하는 3대 중국집 중 하나로 명성이 대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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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포시장은 규모는 큰 편이 아니지만 일반 재래시장과 구분되는 몇 가지 차이점이 보인다. 우선 신포시장의 입구로 들어오자마자 닭 튀기는 기름진 냄새가 바람을 타고 나의 코를 유혹한다. 그렇다. 신포시장의 명물 닭강정집이다. 물론 속초나 영월의 닭강정도 유명하지만 이 시장의 닭강정은 매콤한 고추가 통째로 들어있어 매운맛이 다른 닭강정보다 강하다.

시장을 둘러보다 보면 유난히 베이커리 가게가 많은 것을 볼 수 있는데 일반 빵은 물론 중국식 공갈빵을 함께 파는 곳이 있다. 공갈빵은 겉으로 보기에는 엄청 빵빵해 보이는데 막상 속은 텅 빈 과자라 보면 된다. 이것을 먹으려면 비닐에 담겨있는 공갈빵을 손으로 부숴 조각난 과자를 집으면 되는데 특히 꿀에 찍어 먹으면 금상첨화가 따로 없다.     

그리고 쫄면의 발생지가 바로 이 근방인 동인천역 일대다. 한 가게에서 냉면을 뽑다가 사출 구멍을 잘못 써서 굵은 면발이 나오게 되었고, 근처 분식집에서 이 면을 고추장 양념에 비빈 뒤 양배추 등을 넣어 만든 게 쫄면의 시작이라는 설이 있다. 신포시장에도 지금은 전국적 체인점으로 자리매김한 신포 우리 만두가 있어서 한 번쯤 가볼만 하다. 

이 일대엔 시장 말고도 연혁이 깊은 노포들이 많다. 인천의 평양냉면으로 그 명성이 대단한 경인 면옥과 메밀국수로 이름난 청실홍실도 잊지 말고 가볼 식당이다. 신포시장에서 북쪽으로 조금 떨어진 삼치거리도 추천할만한 곳이다. 
 
신포시장 주변으로 오래된 맛집들이 많다. 특히 청실홍실의 모밀국수는 인기가 높아 항상 사람들로 붐빈다.
▲ 신포시장 근처의 대표적인 맛집 청실홍실의 모밀국수 신포시장 주변으로 오래된 맛집들이 많다. 특히 청실홍실의 모밀국수는 인기가 높아 항상 사람들로 붐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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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배를 채웠으니 다시 가던 길을 돌아서 이번엔 인천역 방향으로 천천히 걸어가 보기로 하자. 청실홍실에서 맞은편 횡단보도를 건너기만 하면 낡아 보이는 서양식 건물이 보이기 시작한다. 얼마 전까지 인천 중동우체국으로 쓰였던 (구) 인천우체국이 바로 그곳이다.

지금은 건물 곳곳에 녹이 슬고 건물 주위에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고 있지만 건물의 생김새와 크기로 미뤄 볼 때 예전의 위세는 꽤 대단했으리라 짐작된다. 1923년 완공된 이 건물은 그 당시 유행하던 서양식과 일본식의 절충 양식이고, 화강암을 거칠게 다듬는 방식으로 처리해 기단으로 보이게 하면서 그 위에 벽돌을 쌓아 올린 2층 건축이다.       
 
얼마전까지 인천중동우체국으로 쓰이다가 현재는 빈건물만 남은 (구)인천우체국이다. 인천의 근대문화재로서 그 당시 양식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 얼마전까지 인천중동우체국으로 쓰이다가 현재는 빈건물만 남은 (구)인천우체국 얼마전까지 인천중동우체국으로 쓰이다가 현재는 빈건물만 남은 (구)인천우체국이다. 인천의 근대문화재로서 그 당시 양식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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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까지 우체국으로 쓰였지만 현재는 마땅한 쓰임새를 찾지 못해 건물이 텅 비어져 있었다. 지금이야 그 중요성이 훨씬 줄었지만 근대 발전에 있어 우편의 역할이란 이루 말할 수 없이 중요했다. 인천을 대표하는 근대 건물이라 할 수 있는 (구) 인천우체국을 하루빨리 적절한 활용 방안을 찾아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으면 한다.

이제 우체국에서 인천항 방향으로 한 블록 내려가면 빨간 벽돌 건물들이 눈에 아른거린다. 이곳은 인천세관 구 창고와 부속 동이다. 현재 창고 한 동과 건물 두 채로 이루어져 있다. 원래 이 일대를 세관 거리라 불렀는데 일제강점기 때부터 세관은 물론 상선회사, 해운회사들이 즐비했었다고 한다.      

이 장소는 수인선 신포역을 통해 쉽게 접근할 수 있다. 눈여겨볼 점은 2번 출구를 통해 올라온다면 지하철 출구가 세관 창고와 비슷한 양식의 붉은 벽돌 건물을 취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도 부속동은 인천본부세관의 사무실로 이용되고 있고, 여전히 세관 직원들이 수시로 드나들고 있었다.

현재 이 일대를 인천세관역사공원으로 조성하고 있고, 예전 창고 건물을 세관박물관으로 개관하기 위한 준비가 한창이었다. 신포역에서 시작하는 역사여행의 출발지로 손색이 없으니 앞으로 좀 더 알려진다면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을 만한 장소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파란만장한 역사를 품고 있는 월미도 
 
수인선 신포역에 내리자마자 만날 수 있는 인천세관역사공원이다. 현재는 개관을 위한 준비가 한창이다.
▲ 인천의 개항과 함께 그 역사를 함께 한 인천 세관 수인선 신포역에 내리자마자 만날 수 있는 인천세관역사공원이다. 현재는 개관을 위한 준비가 한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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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인천 중구 일대에서 빠질 수 없는 관광지인 월미도로 향하려고 한다. 전철만 타면 쉽게 바다를 볼 수 있는 장소라서 재학 시절 데이트하러 수시로 방문했던 추억이 있을 것이다. 특히 월미도 일대에 자리 잡은 바이킹과 회전목마 등의 놀이동산과 서해 바다는 물론 영종도 일대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2층 카페, 횟집 거리 등 수많은 즐길거리가 있는 유원지로 흔히들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곳 역시 근현대사의 파란만장한 역사무대의 배경이 되었다. 현재는 매립돼 육지의 일부분이지만 예전에는 인천 앞바다에 떠 있는 한적한 섬이었다. 하지만 근대 격변기에 들어와 이 섬을 무대로 열강들의 치열한 쟁탈전이 잇달아 일어나게 되었다.

1866년 프랑스는 대원군의 병인박해에 항의하기 위해 군함을 이끌고 온다. 그때 프랑스의 로즈 제독이 이 섬을 발견하면서 그 명칭을 자신의 이름을 따 로즈섬이라 불렀다고 한다. 그래서 한동안 '장미섬'이라 불렸다는 웃지 못할 일화가 있었다. 

그리고 제물포 개항장 일대를 조망하기 좋은 장소일 뿐만 아니라 원료를 공급하기 최적의 위치이기 때문에 일본이 1891년 일본군의 석탄 저장고 기지를 만들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러시아 해군과 미국의 스탠더드 석유회사도 석탄 저장고와 석유 저장고를 건조하는 등 열강들의 요충지로 분할되는 수모를 겪기도 한 섬이다.

이후 1918년 일제는 월미도를 풍치지구로 지정하고 월미산 중턱에 공원을 조성하고 벚나무와 아까시나무 등을 심고 가꾸었다. 그와 동시에 둑길을 축조해 육지와 섬을 이으면서, 더이상 월미도는 섬이 아니게 되었다.

1920년에는 해수욕장도 개장했다. 하지만 월미도의 명성이 높아졌던 결정적인 이유는 철도국이 소형 해수풀과 해수를 데운 이른바 공동목욕탕식의 조탕을 만들고 임해 유원지로 개발한 뒤였다.     

당시 알려진 휴양지인 원산의 송도원, 부산의 해운대를 제치고 월미도는 전국 최고의 명소로 거듭나게 되었다. 봄에는 월미산 중턱을 지나는 도로에 만발한 벚꽃을 보러 여름에는 해수욕을 즐기는 인파로 월미도는 항상 붐볐다. 하지만 해방 후 6.25 전쟁의 피해를 온몸으로 겪어야 했던 곳이 월미도다. 

인천 상륙작전의 첫 상륙 목표 지점으로 월미도가 선택돼 집중포화를 받아서 월미도 주민 수백 명이 사망했고, 이때 섬을 떠난 주민들이 현재도 월미도로 귀향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역사가 남아 있는 월미도에는 관광거리를 조금만 벗어난다면 그 흔적들을 고스란히 볼 수 있다. 이제 한번 본격적으로 월미도를 향해 떠나보도록 하자.     

덧붙이는 글 | 9월초 오마이뉴스에 연재한 내용을 바탕으로 경기별곡 시리즈 1권이 출판됩니다. 많은 사랑,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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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인문학 전문 여행작가 운민입니다. 현재 각종 여행 유명팟케스트와 한국관광공사 등 언론매체에 글을 기고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모르는 경기도 : 경기별곡 1편> 저자. kbs 경인 <시사인사이드> 경인방송 <책과 사람들> 출연 강연, 기고 연락 ugzm@naver.com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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