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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를 통해 15일 서울공항에 도착한 홍범도 장군의 유해가 하기 되고 있다. 2021.8.15
▲ 한국 도착한 홍범도 장군 유해 특별기를 통해 15일 서울공항에 도착한 홍범도 장군의 유해가 하기 되고 있다. 2021.8.15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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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익소송을 진행한다는 글을 올린 지 하루도 안 되어 소송에 동참한 시민이 600명이 넘는다. 윤서인에 대한 분노가 얼마나 거대한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독립운동가 윤기섭 선생의 후손이자 광복회 고문인 정철승 변호사가 "웹툰작가 윤서인씨에 대한 공익소송을 진행한다"라고 밝혔다.

정 변호사는 17일 <오마이뉴스>와 한 인터뷰에서 "윤서인처럼 살면 안 된다는 사실을 시범케이스로 만들려 한다"면서 "윤서인 같은 부류들이 우리 사회에서 어떻게 몰락하고 파멸할 수 있는지를 이번 공익소송을 통해 보여줄 것"이라고 말했다.

16일 웹툰 작가 윤서인은 사후 78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온 홍범도 장군의 유해 봉환 사진을 자신의 SNS에 올린 뒤 "홍범도는 공산주의 투사 아니냐. 대한민국 건국을 위해 한 일이 도대체 뭔데. 평생 공산주의밖에 모르던 소련 공산당원을 대전 현충원에다 묻는 문씨(문재인 대통령) 미쳤네"라고 적었다.

그러면서 그는 "이대로 백선엽 같은 인물들 파묘하고 홍범도 같은 인물들 파묻다 보면 대전현충원이 공산주의 혁명열사릉으로 바뀌는 것도 시간문제겠네. 공산주의자들과 싸우다 전사한 호국영령들 제대로 능욕 당했다"라고 덧붙였다.
  
이에 정 변호사는 16일 오후 "(윤서인의 발언은) 홍범도 장군에 대한 명예훼손, 모욕과 더불어 '홍 장군의 현충원 안장이 백선엽 같은 호국영령을 능욕한 것'이라며 역사적, 사회적 정의를 전도했다"면서 "홍범도 장군 등에 대한 명예훼손, 모욕 등을 자행한 윤서인에 대해 참가자 1인당 50만 원의 위자료를 청구하고, (고소권자인 유가족들의 동의가 있을 경우) 형사고소까지 제기하는 공익소송을 하고자 한다"라고 자신의 SNS에 게시글을 올렸다. 공익소송 비용은 인당 5만 원이다.

공익소송은 국가나 단체 등이 피해자를 대신해 소송을 제기한 뒤 배상 판결이 나면, 배상 받은 금액을 피해자들에게 배분하는 제도다. 

"공익소송, 온 가족 참여... 윤서인 혼내줘라"
   
허위 사실을 유포해 고 백남기 농민 유족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만화가 윤서인씨(사진)와 전 MBC 기자 김세의씨가 2018년 10월 26일 오전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 선고에서 각각 700만원 벌금형을 받았다. 김세의씨가 선고결과에 대해 인터뷰를 하는 동안 윤서인씨가 멀리 떨어진 채 기다리고 있다. (자료사진)
▲ 김세의 기다리는 윤서인 허위 사실을 유포해 고 백남기 농민 유족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만화가 윤서인씨(사진)와 전 MBC 기자 김세의씨가 2018년 10월 26일 오전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 선고에서 각각 700만원 벌금형을 받았다. 김세의씨가 선고결과에 대해 인터뷰를 하는 동안 윤서인씨가 멀리 떨어진 채 기다리고 있다. (자료사진)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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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변호사가 '공익소송을 진행한다'는 글을 올리자 그의 SNS에는 "온 가족 모두 참여한다", "윤서인을 단단히 혼내야 한다" 등의 댓글이 이어지고 있다. 

이에 대해 정 변호사는 "처음에는 몇 백 명 정도만 해도 큰 성과라 생각했는데 이 상태라면 이번주 안에 공익소송 참여자가 1000명이 넘을 것 같다"면서 "솔직히 몇 천 원도 아니고 (공익소송에 참여하려면) 5만 원이라는 적지 않은 돈을 내야 한다. 그런데도 줄을 잇는다. 윤서인을 혼내주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정 변호사는 윤씨가 잇따른 소송에도 계속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발언을 이어가는 것에 대해 "윤서인은 그렇게 밖에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서 "윤서인의 밥줄이 되는 사람들이 이러한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윤서인은 이들에게 무언가를 계속 보여줘야 먹고 살 수 있다. 그러니 이런 몰지각한 발언들이 이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여천 홍범도 장군 생전 모습.
 여천 홍범도 장군 생전 모습.
ⓒ 홍범도장군기념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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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통화에서 정 변호사는 윤서인씨가 SNS에 '공산주의자 홍범도'라고 남긴 것에 대해서도 "홍범도 장군이 1927년 볼셰비키당에 입당한 사실을 두고 망언을 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당시 소비에트의 지원을 받아 일본 제국주의를 상대로 무장투쟁을 벌이기 위해 부득이하게 한 일이었을 거다. 홍범도 장군이 1917년 볼셰비키 혁명을 비롯한 소련 공산당 활동에 적극 관여했다는 기록은 없다"라고 밝혔다.

"오히려 홍범도 장군은 일본군과의 무장투쟁 중에 아내와 두 아들 등 전 가족을 잃는 크나 큰 비극을 겪었다. 1937년 스탈린의 한인 강제이주 정책에 의해 머나 먼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으로 강제 이주당한 후 1943년 76세의 나이로 타계하실 때까지 외롭고 불우한 말년을 보내셨다. 볼셰비키당 입당 사실 하나를 갖고 위대한 독립투사 홍범도 장군을 능멸하고 사회적 물의를 일으켜 관심을 끌어보려던 윤서인이 간과한 사실은 1962년 박정희가 대통령이 되자마자 훈장을 추서한 독립유공자가 바로 홍범도 장군이라는 점이다."

실제로 홍범도 장군은 1920년 봉오동전투와 청산리대첩에서 크게 승리한 후 1937년 9월 스탈린에 의한 한인 강제 이주정책이 진행될 때까지 연해주 등지에서 집단농장 생활을 이어간다.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으로 이주한 뒤엔 광복 2년 전인 1943년 10월 25일 카자흐스탄 크즐오르다에서 75세를 일기로 운명할 때까지 카자흐스탄 고려극장에서 경비 업무를 봤다. 1962년 박정희 정권은 독립유공자 3급 훈장인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홍 장군의 유해를 봉환한 문재인 정부는 17일 홍 장군에게 독립유공자 1급인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다. 홍 장군의 유해는 18일 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될 예정이다.

한편 정 변호사는 지난 2월 독립유공자 후손 249명과 함께 윤서인씨를 상대로 2억 4900만 원 상당의 위자료 청구소송을 냈다. 윤씨는 지난 1월 자신의 SNS에 친일파 후손과 독립운동가 후손의 집을 비교하는 사진과 함께 "친일파 후손들이 저렇게 열심히 살 동안 독립운동가 후손들은 도대체 뭐한 걸까"라는 글을 게시했다. 윤씨가 올린 게시물 속 두 집은 친일파 이해승의 후손인 이우영 그랜드힐튼 호텔 회장의 저택과 독립운동가 조병진 선생의 후손이 살던 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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