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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전 여름 차를 타고 5분이면 자연과 맞닿는 이곳으로 이사했다. 하루 종일 옮겨 앉는 햇볕에 이불과 빨래를 맘껏 널며 작은 도시에서의 한가함을 즐겼다. 한낮엔 식당 주방 같은 열기가 훅훅 들어와도 붉은색 전기를 마구 먹는 에어컨의 덮개는 그대로 둔 채 창문 밖 바닷바람을 맞아들였다. 안전망과 방충망이 있는 첫 주택 생활은 크게 불편할 것이 없었다. 열흘쯤 지나 눈앞에서 날고 있는 벌들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마루에 누워 좋아하는 한여름 쨍한 햇빛과 파란 하늘을 감상하는 데 자꾸만 프레임에 걸리는 불청객들이 있었다.

벌이었다. 그것도 한 마리가 아닌 여러 마리. 지붕 밑 어딘가에 벌집이 있는 것 같은데 현관문이나 창문을 열 때 집안으로 들어오면 어떡하나 걱정하며 먼저 살던 사람에게 물어보니 119에 신고했지만 없애기 힘들다고 해서 그냥 살았다고 했다. 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창밖에 날아다니는 벌들의 그림자만 어른거려도 덜컹 겁부터 났다. 전형적인 도시인의 모습이었다.
  
우리 집 창문으로 내다보면 보이는 벌들
▲ 창밖에서 날아다니는 벌 우리 집 창문으로 내다보면 보이는 벌들
ⓒ 박정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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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를 오면 텃밭을 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이 있었다. 첫해는 아는 사람이 빌려준 5분 거리 서너 평 남짓한 밭에 열 댓가지 채소들을 키웠고 사정이 생겨 그 밭을 그만둔 이듬해부터 현관 앞 야외 공간에 상자텃밭을 만들었다. 봄이 오자 씨를 뿌리고 모종을 심었다. 매일 관심을 주니 작은 상자 안에서도 제법 잘 자랐다.

해가 뜰 무렵 앉은뱅이 의자에 앉아 일하기 시작하면 각종 벌레들도 나와 함께 출근했다. 특히 창밖에서 날아다녀 무서웠던 벌들은 친해지니까 붕붕붕 노동요도 불러주었다. 불과 1년 전엔 모기 퇴치제라도 뿌려볼까 고민하게 했던 불청객이 아침마다 만나는 동료가 됐다. 물론 작은 공간이라 청양고추와 풋고추를 모두 매운 고추로 만들긴 했지만.

텃밭을 하기 시작하면서 벌, 거미, 잠자리, 지렁이 같은 벌레를 애지중지하게 됐다. <자연농, 느림과 기다림의 철학>(쓰지 신이치, 가와구치 요시카즈 지음, 눌민, 2015) 이라는 책에서 '자연농'이라는 단어를 처음 봤는데 잡초와 벼를 함께 키우는 농사는 신선한 충격이었고 땅과 자연을 대하는 진심을 느낄 수 있었다.

책을 통해 세 가지 길(생명의 길, 사람의 길, 자기의 길)을 알게 됐고 앞으로 어떤 일을 하든지 그 길을 실천하며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호미 한 자루 농법>(안철환 지음, 들녘, 2016)을 읽으면서 내가 실천할 수 있는 자연농 방법들을 익혔다. 자연농과 관련된 책을 읽다 보니 싫어했던 벌레들까지도 친근하게 느껴졌다. 그들이 어떤 일을 숨어서 하는지 알게 됐기 때문이다.  

해로운 벌레를 잡아먹는 거미가 언제 집으로 들어왔는지 줄을 타고 내려오다 눈이 마주쳤다. 당황하지 않고 휴지로 살짝 오므린 다음 밖으로 보내줬다. 땅을 부드럽게 만드는 지렁이는 비온 다음 날 길 위에서 만나기라도 하면 얼른 집까지 모셔다드린다. 모기나 파리도 꽃가루를 옮겨 수정을 돕는다는데 귀여워해 줄 자신은 없지만 모두 나름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게 해 준다.

비 오던 어느 날 거미를 내보내려고 방충망을 잠깐 열어둔 사이 한 지붕 두 가족인 벌이 집안으로 들어왔다. 머리 위에서 날고 있는 벌을 밝은 창가로 유인하고 문을 열었다 닫았다 하며 '007작전'을 펼쳤다. 죽지 않고 무사히 나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몇 번을 시도하다가 결국 내보내는 데 성공했다.

벌이 사라지면 끔찍한 식량난이 일어난다니 어떻게 함부로 죽일 수 있을까. 농업을 생업으로 하지 않아도 말이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현대인들이 걱정하는 성인병의 주범인 설탕과는 달리 과당과 포도당이 대부분인 천연 꿀은 충치, 당뇨와도 관련이 없고 간 건강과 탈모방지 효과도 있다는 연구결과가 있다고 한다.

또 환경을 위해 비닐 사용을 자제하려고 해도 비닐 랩 대체품이 없어 고기나 생선을 사 올 때마다 마음이 불편했는데 꿀벌에서 얻은 밀랍, 송진, 오가닉 오일과 면 등으로 만든 '허니 랩'은 자연에서 완전히 분해되는 식품 전용 랩이라고 한다(환경부 공식 블로그 참고). 

경북 칠곡군에는 '꿀벌 테마파크'가 있다. 언젠가 여행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때가 오면 방문할 계획으로 알아보니 꿀벌에 대한 정보를 알 수 있는 전시와 공연, 체험활동 등이 있다.

현재는 '찾아오는 농부이야기'라는 이름으로 농가에서 체험 프로그램을 기획, 추진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한 사업도 운영 중이다. 예약을 받고 있다고 하니 필요한 농가에서는 참고해도 좋을 것이다.(2021년 5월~12월 운영 / 문의사항: 054-979-8315, 8319)

태그:#꿀벌, #천연꿀, #허니랩, #꿀벌테마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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