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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5시 30분, 친정엄마의 굿모닝 벨은 수영장을 가자는 전화다. 한여름, 내 하루의 시작은 애타게 울어대는 매미의 울음소리 만큼이나 길어지니, 오히려 감사할 뿐이다. 오늘은 텃밭에 가서 고구마순과 고추를 좀 가져와서 시원하게 여름김치를 담가 주신다고. 

11년 전 아빠가 돌아가시고 혼자 사시면서 엄마의 몸무게가 늘었다. 첫째 이유는 무릎 수술로 움직임이 줄어들었고, 여러 잔병들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의사들마다 체중을 줄여야 한다고 말하지만 살을 뺀다는 것이 어디 그리 쉬운가. 상체가 큰 반면 하체가 약하다 보니, 걷기 운동도 한계가 있어서 시간 날 때마다 수영장으로 모녀는 달려간다.

나 역시도 50살이 넘어가면서 영락없이 엄마 몸매를 닮아가니, 오히려 나를 걱정하는 엄마의 말이 늘었다. 코로나가 인해, 제한을 받긴 해도 수영으로 꼭 체중을 줄여보자고 의기투합했다. 하지만 작심삼일 다짐을 연달아 하면서 이제는 서로에게 위로의 말을 건넨다.

"네 나이도 이제 작은 나이가 아니니, 살을 너무 빼도 문제다. 사람이 근력이 있어야지 삐쩍 마르기만 하면 된다냐. 보약은 못 먹을망정, 그 흔한 비타민, 오메가 같은 것도 김서방이랑 같이 먹어라."
"하긴 엄마가 뭐 그리 많이 먹어서 살이 찌나요. 하여튼 이렇게 수영장에 와서 걷기만 해도 에너지 소모가 많대요. 엄마랑 저랑은 무릎에 약하니 수영이 최고라니까요. 최소한 주 3일만 나와도 살이야 천천히 빠지겠지요."

 
고구마순 김치를 담아주신다고, 고구마줄기를 정리하심
▲ 엄마와고구마밭 고구마순 김치를 담아주신다고, 고구마줄기를 정리하심
ⓒ 박향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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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수영장 대신 텃밭으로 가면서 텃밭일이 더 힘드니 수영 운동을 한것과 진배 없다고 하셨다. 얼마 전 텃밭 산물로 아빠의 11주기 제사에도 요긴하게 썼고, 섬에 들어가서 며칠 있을 먹거리를 준비해야겠다고 하셨다. 요즘은 고구마 순과 고추가 풍작이어서 어차피 엄마가 한번 다녀가야, 밭 정리도 되고 먹거리도 나오고 할 판이었다.

작년에 고추는 잦은 비로 탄저병이 돌아서 말 그대로 완전 망했었는데 올해는 작년을 반면교사 삼아 모종을 심을 때부터, 간격 배치도 잘하고 통풍을 시원스럽게 했다. 열매를 많이 열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기본이고, 퇴비와 물주기에도 정성을 다했다.

그래서인지, 고추4종(외고추, 오이고추, 청양고추, 피망고추) 모두, 탐스럽게 열렸다. 오늘은 고추 두둑 사이에 앉아 고추 줄의 끝을 바라보니, 빨갛게 익은 고추가 푸른 고추잎 아래서 넘실넘실 거렸다. 올해는 태풍도 없고, 강수량이 적어서 각종 작물들의 수확이 풍성했다. 생고추 넣고 고구마순 김치 담아주신다는 엄마, 그 손을 얼른 잡았다.
 
고추는 첫물보다 두세물 때가 더 좋다고...본격적으로 고추를 수확에 들어간다
▲ 풍작을 이룬 햇고추 고추는 첫물보다 두세물 때가 더 좋다고...본격적으로 고추를 수확에 들어간다
ⓒ 박향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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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분담하기 위해서, 엄마는 고구마 두둑으로, 나는 고추두둑으로 갔다. 사실, 고구마 줄기의 어디까지를 따야되는지를 몰라서 자진하여 고추를 딴다 했다. 고추나무들이 자라서 두둑 사이가 좁아졌고, 고추의 매운 냄새가 가득하여, 고추 따는 것이 결코 쉽지 않았다. 그런데도 대롱대롱 가득찬 빨간 고추를 보니, 섬에서 호미질에 우수수 걸려 나온 바지락을 보듯 황홀했다. 들고 들어간 상자에 잘 익은 고추를 가득 채울 때까지 땀이 비오듯 했지만, 풍작의 기쁨이 바로 이런 것 아닌가!

엄마는 고구마 줄기를 따며, 남아있는 줄기들의 머리 방향을 햇빛이 비추는 쪽으로 돌려 놓았다. 그래야 고구마 열매들 밑이 튼실해져서 고구마를 얻는다고 하셨다. 마침 모기들이 윙윙거리는 걸 보고 한 마디 하셨다.

"오메, 웬 모기들이 뭉든 안개 피어나듯 쏟아져 나온다냐. 모기가 사방에서 물어뜯는다."
"하여튼 엄마는 역시 화술의 대가야, 모기떼를 보고, 안개를 비유하는 사람은 엄마밖에 없을 걸요. 얼마 전에도 말조심 하라고 하면서 하신 말씀이 뭐였죠? 벌써 잊었네."
"그런 기억력으로 공부는 어떻게 했다냐. 나는 이 나이까지도 전화번호를 100개도 더 외운다. 옛날부터 어른들이 말하길, 남의 말을 전하는데 조심하라는 뜻으로 남의 입술에 걸리지 말라고 했다."


옆에 있던 남편은 "이렇게 어머니랑 각시가 같이 나와서 농사 지은 거 담으며 어머니 말씀 들으니 참 좋습니다. 어머니. 그리고 당신은 글 쓴다면서 어머니 말씀 하실 때마다, 잘 새겨 들으소. 어머니 말이 아니면 알지 못할 말이 얼마나 많은가"라며 아부가 끝이 없었다.

사실 엄마의 사고와 말에는 변함없는 한가지 사실이 있다. 만상을 모두 살아있는 생물체로 비유하는 화법이다. 작년에도 엄마가 호박을 보고 하신 말씀 한 마디(호박이 제 어미를 닯아서 이쁘네)를 듣고 처음으로 에세이를 쓰겠다고 마음 먹었다. 평생을 들어온 엄마 말씀이 비슷할텐데 유독 다르게 들리는 것은 왜일까.

태양초 고추가루를 만들어 주신다고 내가 땄던 빨간 고추를 그물대에 널어놓고 하루에도 몇 번씩 발걸음을 하셨단다. 고구마 순 김치를 단기간에 맛있게 먹는 방법 중 하나가 줄기 껍질을 벗겨내고 생비린내를 없애기 위해, 살짝 데친다고 하셨다. 따온 빨간고추를 믹서기에 갈은 순고추양념과 섬에서 담아온 귀한 액젓으로 김치를 담가 보내셨다.
 
늘 새로운 엄마표 요리와 삶의 지혜를 배운다
▲ 엄마표고구마순김치 늘 새로운 엄마표 요리와 삶의 지혜를 배운다
ⓒ 박향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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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농사를 잘 지어도, 나는 생 열매들을 나눠 먹는 재주밖에 없는데, 엄마는 갖가지 요리를 해서 나눠 주신다. 심지어 커피 한 잔을 드시면서도 옆에 있는 화분의 생명들에게도 나눠주신다. 죽어가던 내 화분의 식물들을 엄마 집으로 옮겨놓으면 지체없이 생명의 꽃을 피운다. 분명 신의 조화가 아니라, 엄마가 가진 맑은 영(靈)의 조화일 거다.

오늘도 나는 두 번째 에세이집에 실릴 글들을 정리하면서 가족 스토리에 담길, 엄마의 말씀 하나를 써본다. 마치 시인 도종환씨에게 영감을 준 것 같은 말씀을 우리 형제들에게 하셨다.

"세상에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다냐. 세상에 태어나면, 다 비 맞고 바람맞고 크는 거지. 하다못해, 저 베란다의 미물도(시든 꽃을 가리킴), 뿌리 아래에서는 서로 엉키면서 힘을 받아 어려움을 견뎌내면서 꽃을 피우더라. 하물며 사람이야 오죽하겄냐. 형제간의 서로 힘 받으며 좋은일 싫은일 하나씩 풀어가며 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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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과 희망은 어디에서 올까요. 무지개 너머에서 올까요. 오는 것이 아니라 '있는 것'임을 알아요. 그것도 바로 내 안에. 내 몸과 오감이 부딪히는 곳곳에 있어요. 비록 여리더라도 한줄기 햇빛이 있는 곳. 작지만 정의의 씨앗이 움트기 하는 곳. 언제라도 부당함을 소리칠 수 있는 곳. 그곳에서 일상이 주는 행복과 희망 얘기를 공유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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