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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수정 : 8월 30일 오전 10시 30분]

올여름 가깝게 지내는 분이 까닭 없이 두 차례나 쓰러져 가족, 친지, 지인들의 가슴을 쓸어내리게 했다. 의사 선생님 처방대로 힘든 일은 피하고, 골머리 아픈 일은 멀리하면서 가까스로 몸을 추스르게 됐나 보다. 걱정하는 이들에게 당신의 안녕을 알리려 했는지 며칠 전 SNS에 사진 몇 장과 함께 근황을 전해왔다. 지인의 가족이 휴식을 취한 숲길에 눈길을 주다 보니 산책로에 열린 멍석딸기가 눈에 들어왔다.

"맞다, 산딸기!"

제아무리 준비하고 계획해도 삐걱대는 하루를 버겁게 살다 보니 계절감마저 무뎌져 있었나 보다. 지난봄, 산딸기 열릴 때 한 번 더 산에 오르자 마음먹었는데, 정말이지 깜빡하고 말았다. 지인처럼 집을 떠나지 않아도 지척에 산책로가 있건만, 지난 몇 달은 산에 한 번 다녀오는 게 왜 그리 어려웠을까? 산딸기를 따올 일념으로 정말 오랜만에 동네 뒷산에 올라봤다. 

새로운 인연을 만나다

바짝바짝 타들어 가던 산자락의 농작물은 며칠 전 내린 비로 간신히 기력을 회복한 듯하다. 다행이다! 생각하며 지난봄 제일 먼저 산딸기를 발견했던 장소를 향해 걸었다. "누가 베어 버렸나?" 도착해 보니, 있어야 할 산딸기가 당최 눈에 띄지 않았다. 불쑥 불만 섞인 혼잣말이 튀어나와 버렸다. 그러자 곧바로 인기척과 함께 샛길 안쪽에서 사람 말소리가 들려왔다.
 
자매는 올봄부터 공주시 월성산 자락에서 텃밭 농사를 시작한 구순 어머니를 위해 무너진 돌담을 보수하고, 주변을 정리하고 있다.
 자매는 올봄부터 공주시 월성산 자락에서 텃밭 농사를 시작한 구순 어머니를 위해 무너진 돌담을 보수하고, 주변을 정리하고 있다.
ⓒ 박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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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길 어떻게 오셨어요?"
"지난봄에 산딸기를 본 것 같아서 왔더니만, 안 보이네요."
"우리도 지난봄부터 예서 농사짓느라 왔다 갔다 했는데, 산딸기는 못 봤는데요."


그렇게 산딸기를 찾아 나선 월성산 초입에서 올봄부터 텃밭 농사를 시작했다는 두 자매를 만나게 됐다.

자매는 인근에 사는 구순 노모를 뵈러 왔다가 월성산에 오르게 됐다고 한다. 우연히 산책로 안쪽에 자리 잡은 지금의 텃밭을 발견했고, 때마침 밭일하러 나온 땅주인과 인사를 주고받게 됐단다. 그리고 언니분은 '물에 빠진 놈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땅주인께 간곡히 부탁을 드려 봤단다.

"저희 어머니가 올해로 아흔이셔요. 사는 낙이 없으신지 매사 심드렁해 하시네요. 정말 손바닥만 한 땅이어도 좋고, 응달진 곳도 상관없으니, 상추라도 심을 수 있게 땅 한 귀퉁이만 빌려주실 수 없을까요?"

땅 주인 부부는 잠시 의논할 말미를 구하더니, 쉽사리 대답을 못 얻을 줄로 예상했던 언니분께 그 자리에서 "그러마" 허락을 하셨단다. 게다가 입구 쪽 볕 잘 드는 너른 땅을 무상으로 빌려주셨다고 하니, 심성 고운 분들 눈에 어머니 생각하는 자녀들 착한 마음이 훤히 보였나 보다. 

그렇게 올봄부터 자매의 구순 노모는 소일삼아 텃밭에 작물을 심고 가꾸기 시작하셨다. 연로하신 어머니께서 밭일을 하니, 타지 사는 자식들은 좀 더 편하게 일하시도록 텃밭 곳곳을 살피러 자주 내려오게 됐다고 한다. 

우렁 각시가 다녀간 것만 같은 밭 

수도권에 사는 사위도 팔을 걷어붙였다. 밭 주인 부부에게 고라니들한테 애써 지은 농작물을 강탈당한다는 하소연을 듣고는 울타리부터 쳤다. 울타리를 빙 둘러치고 나니 무릎이 안 좋아 거동이 불편한 밭 주인 부부가 마음에 걸렸다. 소문내지 않고, 앞뒤 재지 않고, 주인댁 밭 주변에도 빙 둘러 그물망을 쳤다. 

며칠 후, 밭 주인 부부는 감사 표시로 육고기를 끊어왔다. "엄두가 안 나서 못 하던 일을 부탁도 하기 전에 뚝딱해놨다"며 연신 고마워했다고 한다. "제일 먼저 나누고 싶었다"라며 봄에 심어 거둔 첫 수확물을 한 아름 들고 오기도 했단다.
 
며칠 전, 두 자매가 배추 모종을 심은 밭두둑이다. 동생분은 같은 날 심고, 똑같이 물을 줬는데도 양지에서 자라느냐 음지에 자라느냐에 따라 생육 속도가 다르다며 생명의 신비에 놀라워했다.
 며칠 전, 두 자매가 배추 모종을 심은 밭두둑이다. 동생분은 같은 날 심고, 똑같이 물을 줬는데도 양지에서 자라느냐 음지에 자라느냐에 따라 생육 속도가 다르다며 생명의 신비에 놀라워했다.
ⓒ 박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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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두 자매댁에서는 어머니 밭을 고르며 땅 주인 부부의 밭고랑 정리도 자청했다. 이번에도 따로 부탁받은 일은 아니었다. 당연히 주인댁에서는 우렁이 각시가 다녀간 것 마냥 정리된 고랑을 보고 깜짝 놀랐단다. 며칠 전 차광막을 치고 배추 모종을 심은 자매댁 두둑은 주인댁이 고마움의 표시로 내놓은 곳이란다. 동생분이 배추 심은 밭두둑을 가리키며 말했다.

"같은 날 심고, 똑같이 물 주는데도 양달과 응달에서 자라는 배추가 어쩜 저리도 생육이 다를까요?" 
"...."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사정을 헤아리고, 정들을 닦으며 살아가는 주인댁과 자매댁을 비유한 건지, 마음 써 준 언니 덕에 웃음을 안고 사신다는 구순 노모의 일상을 빗대어 말하고 싶었던 건지, 짧은 식견으로 심중을 헤아릴 수는 없었다. 확신할 수 있는 거라고는 '시들해진 모종이 눈에 띄었으니, 두 자매의 각별한 돌봄이 시작되겠구나!' 하는 정도였다.
 
구순 어머니의 텃밭에 돌담을 쌓고, 주변 쓰레기를 정리한 자매는 누가 먼저랄 것 없이 파이팅을 외쳤다.
 구순 어머니의 텃밭에 돌담을 쌓고, 주변 쓰레기를 정리한 자매는 누가 먼저랄 것 없이 파이팅을 외쳤다.
ⓒ 박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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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쪽에 산더미처럼 쌓였던 쓰레기를 치우고, 어머니 텃밭의 돌담을 정리하던 자매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의 손을 맞잡았다. 전후 사정을 알고 난 뒤라 그랬을까? 땡볕 아래에서 수고하고 위로를 나누는 '갈무리 의식(?)'은 장엄하고 경건하게 느껴졌다. 

간간이 글을 쓰고, 사진도 찍는다고 말해 두길 참말 잘했다. 광고판에서 일했다는 언니분은 사진 포인트도 짚어 주고, 요즘 같은 세상에 듣기도 믿기도 어려운 미담을 세세히 들려주셨다.

떠나오는 길, 자매가 이별 인사 대신 "너무 멋지게 사는 사람이라 속내를 다 드러낼 수 있었다"라고 괜스레 추켜세워 어깨를 으쓱하게 했다. '칭찬 장인'인 두 자매와 헤어지고 지인으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어! 목소리가 너무 밝은데요. 뭐 좋은 일 있었나 봐요? "
"네,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다 와서 그런가 봐요. 하하하"


시원하게 웃고 나니, 두 자매의 어머님이 되찾으셨다는 미소 띤 얼굴이 떠올랐다. 헛걸음만 하고 코빼기도 못 본 산딸기에 털끝만큼의 미련도 남지 않은 까닭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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