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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기자 글쓰기 그룹 '대체왜하니?'는 초4에서 중3까지 10대 사춘기 아이들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엄마 시민기자들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편집자말]
코로나19와 방학의 콜라보는 대환장 파티를 만들었다. 이럴 때 필요한 건 뭐? 심. 신. 안. 정. 나의 경우, 심신안정에 가장 도움이 되는 것은 피아노 연주를 듣는 것이다. 영롱한 피아노곡을 듣고 있으면 심적 옥타브가 높은 도에서 낮은 미 정도로 내려가는 효험이 있다.  

혹시 나와 같은 처지의 엄마들이 피아노곡을 추천해달라고 한다면 이 곡을 권하고 싶다. 일본 영화 <기쿠지로의 여름> OST에 수록된 'SUMMER(섬머)'라는 곡이다.  

이 피아노 연주를 듣고 있으면 나의 어릴 적 여름 시절이 웹툰의 한 컷, 한 컷처럼 착/착/착/ 펼쳐진다. 여름방학/ 공기놀이/ 외갓집/ 낮잠 /미숫가루 /할머니 무릎 베개/ 같은 것들... 어떤 것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또 어떤 것은 영원히 재연될 수 없다. 밝고 경쾌한 리듬의 곡이지만 왠지 모르게 슬픈 느낌이 드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10살, 12살인 내 아이가 어른이 됐을 때를 생각해 본다. 아이들이 떠올릴 여름의 이미지란 어떤 것일까? 게임/ 유튜브/ 숙제/ 학원/ 코로나19/ 마스크/ 이런 것들이려나... 괜히 측은해진다. 

세대 간 통합을 이뤄낸 놀이

아이를 키우는 일은 어린 시절의 나를 만나는 일이다. 아이의 성장과 나의 성장이 자꾸만 겹쳐 보인다. 내가 자라면서 느낀 행복을 아이에게 그대로 느끼게 해주고 싶고 내가 한 실수는 내 아이가 반복하지 않게 하고 싶다.

아이를 위하는 이 마음이 과연 아이에게도 가닿을까? 그럴리가. 아이는 그저 '엄마의 꼰대력이 점점 높아지는구나'라고 생각할 것이다. 디지털 문명이 아이들에게 끼치는 지대한 영향을 보면 나의 꼰대력은 점점 더 높아진다.

"유튜브보다 뛰어노는 게 더 재밌지 않아?" 
"게임보다 안 가본 길을 산책하는 게 더 좋지 않아?"
"핸드폰보다 엄마 무릎 베고 두런두런 얘기하는 게 더 좋지 않아?"


아이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그리고 말한다.

"엄마는 진짜 조선시대 사람 같아."  

'쳇, 나도 X세대였던 시절이 있었거덩' 하는 말이 목 끝까지 나왔다가 삼켜졌다. 하긴, 시대를 주름잡던 X세대도 다 옛말일 뿐이다. 나도 이젠 요즘 아이들을 보면 나의 웃세대 어른들이 했던 것마냥,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요즘 애들은 쯧쯧'을 남발한다. 

손가락 운동만 열심히 하는 게임 세계도 이해가 안 되고, 주물럭대기만 하는 액괴(슬라임) 영상을 하루 종일 보는 것도 좀처럼 이해할 수 없다. 그런데 얼마 전 영원히 맞닿을 수 없을 것만 같던 세대 간의 통합을 이뤄낸 놀이를 발견했다.

그것은 '말랑이 거래'라는 놀이다. 한 마디로 말랑이(만지면 말랑대는 촉감의 장난감) 물물교환. 종이에 손수 그린 버튼으로 거래 여부를 결정하며 상대방 장난감과 맞바꾸는 놀이인데 초등학생 여자아이들이 주로 많이 한다.
 
X는 거래불발,  V는 거래승인, +는 추가요청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동시에 장난감을 올려놓고 상대와 종이 위에 그려진 기호를 눌러 거래를 성사시키면 된다.
▲ 말랑이 거래중  X는 거래불발, V는 거래승인, +는 추가요청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동시에 장난감을 올려놓고 상대와 종이 위에 그려진 기호를 눌러 거래를 성사시키면 된다.
ⓒ 조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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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심심하다고 바닥을 떼굴떼굴 구르던 아이와 함께 놀아주기 위해 게임을 하려고 했다가 실패한 적이 있다. 티브이에 선을 연결하지 못해서 이십여 분을 끙끙대고 있으니 아이가 한숨을 푹 쉬며 그럴 줄 알았다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런데 말랑이 거래는 기계를 이용하는 것이 아니다. 연결선도 없다. 모니터도 없다. 그렇다면... 그날의 굴욕을 만회할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방학인데 친구를 만나지도 못하고 여행도 못 간다고 툴툴 대는 아이들을 위해 같이 놀아주며 생색을 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아이와 바닥에 양반다리를 하고 마주 앉아 '말랑이 거래'를 했다. 각자의 말랑이와 장난감을 나눈 뒤 거래 승인, 거래 불발, 추가 요청이라는 기호를 눌러 장난감을 교환했다. 내 장난감과 상대의 장난감이 바꿀 만한 것인지 빠르게 판단하고 선택해야 한다. 

이 놀이의 관건은 스피드. 은근 스릴 있다. 이것이야말로 옛날 사람 아니, X세대 취향 저격 놀이! 매일 핸드폰만 들여다보며 노는 줄 알았는데 이런 놀이가 있구나 싶어 살짝 감격스럽기까지 했다.  

이 같은 유형의 놀이는 나의 어린 시절에도 줄곧 있어왔던 놀이다. 지루하기 짝이 없는 나의 장난감과 친구의 장난감을 바꾸며 노는 놀이. 친구의 장난감이 내 것이 될 때의 쾌감! 어린 딸의 마음을 전적으로 공감하며 놀이를 하고 있으니 괜스레 마음이 몽글해졌다.

"엄마도 어릴 때 이런 거 하면서 놀았는데 "
"엄마 때도 말랑이나 이런 장난감이 있었어?"
"아니, 그땐 이런 건  없었고, 종이인형이나 돌, 색종이 같은 걸 바꾸며 놀았지."
"와아, 신기하다. 엄마랑 나랑도 통하는 게 있네~"


세대가 좋아하는 놀이 인정하기
 
유튜브 콘텐츠로 자주 만날 수 있는 말랑이 거래.
 유튜브 콘텐츠로 자주 만날 수 있는 말랑이 거래.
ⓒ 흔한남매 유튜브 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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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한다는 말도 여기까지, 요즘 아이들이 여기서 만족할 리 없다. 놀이 자체는 굉장히 아날로그적이지만 이 놀이를 소비하는 형태는 기가 막히게도 디지털적이다. 놀이 과정을 찍어서 유튜브에 올리거나 그 영상을 보며 즐거워한다. 놀이가 끝나고 아이와 함께 유튜브에서 말랑이 거래 영상을 보았다. 조회수가 백만 회가 넘는다. 이것이야말로 새로운 트렌드에 옛것을 더한 뉴트로 놀이가 아닌가...!

내가 이 놀이에 호감을 보이고 즐거워하자 딸아이가 말한다.  

"엄마, 그럼 이건 좋은 놀이야?"
"좋은 놀이?"


게임이나 슬라임 놀이를 할 때마다 내가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는데 말랑이 거래를 할 땐 내 표정이 좋아 보여서 한 말일 것이다. 나는 당황했다. 과연 좋은 놀이, 나쁜 놀이를 내가 단정 지을 수 있는 것일까? 이 놀이는 단순히 내게 익숙하고 쉬운 놀이였을 뿐, 좋고 나쁨을 가를 순 없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냥, 재밌는 놀이야."

문득  나의 어린 시절을 반추해 아이에게 좋은 것만 주고 싶었던 마음이 자칫 편협한 시선으로 아이들을 판단해 온 건 아닌지 생각해 보았다. 아이들의 놀이라는 것은 굳이 어른들의 해석이나 분석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각 시대에 맞는 놀이 문화가 있을 뿐. 그 세대가 좋아하는 놀이를 인정하고 지켜봐 주는 것이 진정 '잘 통하는 엄마'가 되는 길이 아닐까?

아이는 디지털이 익숙하고 재밌고, 나는 아날로그가 익숙하고 재밌다. 단지 그뿐이다. 그리고 가끔 우리를 통하게 해주는 놀이를 발견하면 내 안에 살고 있는 어린 아이와 내 아이가 즐거이 함께 놀면 될 것이다. 그것이 놀이의 본질이 아닐까.

group대체왜하니 http://omn.kr/group/teen_why
초4에서 중3까지 10대 사춘기 아이들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엄마 시민기자들의 콘텐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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