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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강화도에는 여행자들을 위한 길이 있다. 선사시대부터 내려져오는 역사의 발자취부터 다양한 자연생태 환경을 보고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반짝이는 인천의 푸른 바다를 품은 길을 거닐며 안전하고 시원한 여름을 지내보자.

심도역사 문화길 - 강화나들길 1코스​​
 
강화나들길 1코스
 강화나들길 1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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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버스터미널에서 출발해 주요 문화유적지를 돌아보는 코스다. 해안 가까이에 길이 위치해 아름다운 강화의 바다풍경을 만끽할 수 있다. 소요시간은 길지만 마음에 여유를 가지고 걸으면 연미정부터 갑곶돈대까지의 깊은 역사에 대해 곱씹는 길이 짧게 느껴질 것이다.

■ 강과 바다가 만나는 연미정(월곶돈대)

연미정의 최초 건립연대는 확실하지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고려 제23대 왕 고종이 구재(九齋)의 학생들을 이곳에 모아놓고 면학하도록 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과거 서해에서 서울로 가는 배는 이 정자 아래에서 만조가 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한강으로 올라갔다.

썰물 때는 물의 흐름이 눈에 보일 정도로 물살이 세다. 한강과 임진강이 합류해 한 줄기는 서해로, 또 한 줄기는 강화해협으로 흐르는데 모양이 마치 제비꼬리 같아 연미정(燕尾亭)이라 불렸다고 한다. 연미정 속에 담긴 긴 시간의 이야기를 살펴보며, 그 뒤로 펼쳐진 끝없는 바다의 풍경까지 두 눈에 가득 담아가길 바란다.
 
연미정의 최초 건립연대는 확실하지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고려 제23대 왕 고종이 구재(九齋)의 학생들을 이곳에 모아놓고 면학하도록 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사진은 연미정에서 휴식을 즐길고 있는 관광객들.
 연미정의 최초 건립연대는 확실하지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고려 제23대 왕 고종이 구재(九齋)의 학생들을 이곳에 모아놓고 면학하도록 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사진은 연미정에서 휴식을 즐길고 있는 관광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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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미정의 최초 건립연대는 확실하지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고려 제23대 왕 고종이 구재(九齋)의 학생들을 이곳에 모아놓고 면학하도록 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사진은 연미정에서 휴식을 즐길고 있는 관광객들.
 연미정의 최초 건립연대는 확실하지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고려 제23대 왕 고종이 구재(九齋)의 학생들을 이곳에 모아놓고 면학하도록 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사진은 연미정에서 휴식을 즐길고 있는 관광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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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국돈대길 - 강화나들길 2코스​
 
강화나들길 2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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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코스는 강화해협을 따라 길게 펼쳐진 바닷길이 아름다운 도보 코스다. 또한 민족의 자긍심과 국난극복의 의지가 서린 강화도의 전적지를 살펴볼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포토존으로 인기가 높은 함민복 시인의 감성 글판을 하나하나 찾아 읽다보면 걷는 재미에 푹 빠지게 될 것이다.

■ 해안선 따라 걷는 광성보

광성보는 돌과 흙을 섞어 해협을 따라 길게 쌓은 성으로 강화해협을 지키는 중요한 요새였다. 1871년 신미양요 당시 가장 치열했던 격전지로 꼽히는 곳이기도 하다. 1976년 치열한 전투로 파괴된 시설을 복원했으며, 당시 전사한 용사들의 무덤과 장군 전적비 등을 정비했다.

광성보 안에는 광성돈대, 어재연·어재순 형제의 충절을 기리는 쌍충비각, 이름을 알 수 없는 전사 장병들을 모신 신미순의총, 손돌목돈대, 용두돈대가 있다. 특히 손돌목돈대는 강화해협에서 물살이 가장 빠르게 흐르는 천혜의 요새로 강화일대와 넓게 펼치진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곳이다.
 
광성보는 돌과 흙을 섞어 해협을 따라 길게 쌓은 성으로 강화해협을 지키는 중요한 요새였다. 1871년 신미양요 당시 가장 치열했던 격전지로 꼽히는 곳이기도 하다.
 광성보는 돌과 흙을 섞어 해협을 따라 길게 쌓은 성으로 강화해협을 지키는 중요한 요새였다. 1871년 신미양요 당시 가장 치열했던 격전지로 꼽히는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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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성보는 돌과 흙을 섞어 해협을 따라 길게 쌓은 성으로 강화해협을 지키는 중요한 요새였다. 1871년 신미양요 당시 가장 치열했던 격전지로 꼽히는 곳이기도 하다.
 광성보는 돌과 흙을 섞어 해협을 따라 길게 쌓은 성으로 강화해협을 지키는 중요한 요새였다. 1871년 신미양요 당시 가장 치열했던 격전지로 꼽히는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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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새 보러 가는 길 - 강화나들길 8코스
 
강화 나들길 8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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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고 나는 물길 위에 부드럽게 휘어진 황산도 데크길은 상쾌한 바닷바람이 반겨주는 길이다. 강화도의 갯벌과 풍요로운 들판, 산이 어우러지는 환경은 해마다 찾아오는 철새들에겐 더 없이 안성맞춤인 삶의 보금자리다. 그 철새를 관찰할 수 있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드넓은 갯벌이 만들어 내는 독특한 풍광이 눈을 즐겁게 하고, 여름엔 푸른 바다의 짠 내음이 마음을 일렁인다. 겨울에는 철새도래지인 동검도 주변에서 재두루미까지 볼 수 있는 길이다.

■ 강화의 해안선을 지키는 초지진

초지진은 강화의 해안 경계 부대인 12진보 가운데 하나다. 조선왕조실록이나 승정원일기를 통해 추정해볼 때 조선 효종 6년(1655)에 설치된 것으로 추정된다. 1870년대에 신미양요 때 미군과 충돌했던 격전지이며 일본 운요호 사건 때 상륙을 시도하는 일본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인 곳이기도 하다.

이후 초지진은 허물어졌고, 초지진이 관할했던 초지돈대만 남았다. 민족 시련의 역사적 현장이었던 이곳은 현재 호국정신의 교육장이 되도록 성곽을 보수하고 당시의 대포를 진열하고 있다. 돈대 옆 소나무에는 신미양요 혹은 운요호 사건 때 포탄 맞은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초지진은 강화의 해안 경계 부대인 12진보 가운데 하나이다. 조선왕조실록이나 승정원일기를 통해 추정해볼 때 조선 효종 6년(1655)에 설치된 것으로 추정된다.
 초지진은 강화의 해안 경계 부대인 12진보 가운데 하나이다. 조선왕조실록이나 승정원일기를 통해 추정해볼 때 조선 효종 6년(1655)에 설치된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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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지진은 강화의 해안 경계 부대인 12진보 가운데 하나이다. 조선왕조실록이나 승정원일기를 통해 추정해볼 때 조선 효종 6년(1655)에 설치된 것으로 추정된다.
 초지진은 강화의 해안 경계 부대인 12진보 가운데 하나이다. 조선왕조실록이나 승정원일기를 통해 추정해볼 때 조선 효종 6년(1655)에 설치된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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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성호, 사진 최준근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인천시 인터넷신문 'i-View'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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