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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볕이 하도 따가워 늘 사람들이 산책하는 온천천에도 사람이 없었다. 쫓기듯 달려도 풍경은 한껏 눈에 담았다. 후에, 이틀 간 미처 가리지 못한 어깨 살이 빨갛게 데어 아이스팩을 대고 있었다는, 시작과 동시에 알리는 결말.
▲ 온천천 다리 위 햇볕이 하도 따가워 늘 사람들이 산책하는 온천천에도 사람이 없었다. 쫓기듯 달려도 풍경은 한껏 눈에 담았다. 후에, 이틀 간 미처 가리지 못한 어깨 살이 빨갛게 데어 아이스팩을 대고 있었다는, 시작과 동시에 알리는 결말.
ⓒ 김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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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내 식대로 휴가' 출발 직전, 가장 무더운 오후 1시. 나는 결심했다. 3시간 반 동안 땡볕 아래의 도심을 자전거로 뚫어버리기로.  

출발 전날 급히 떠오른 휴가 계획은, 사는 도시에서 좀 벗어나는 것이었다. 피서의 메카라는 부산에 살고 있으면서도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는 쉬어지지 않을 것 같았다. 오고 싶어도 못 오시는 분들께는 얄미운 말이지만.

도심 속 생활에 지친 내가 원한 것은 두 가지였다. 평화로운 대자연, 그리고 읽고 쓸 수 있는 여유. 우선, 제일 가고 싶었던 강원도로 가지 않은 것은 펜션이 비싸서가 아니고 코로나 확산 때문이라고 해 두자. 대안으로 템플스테이를 알아봤지만 역시 인근 도시 중에는 빈방이 없었다.

'도시 탈출'인가 '체험, 도시의 현장'인가

다행히 그럴듯한 플랜 C가 떠올랐다. 서부터미널에서 탄 시외버스가 출발할 때마다 차창에 달라붙어 넋을 놓고 보던 곳. 널따란 낙동강 하구에 그저 강물과 푸른 들, 나무, 연못, 습지식물들, 벤치와 뻥 뚫린 산책길이 시야를 꽉 채우는 '삼락생태공원'이었다. 부산의 맨 끝자락에 있으니 아쉬운 대로 도시 탈출에 성공한 기분도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부산 사상역 근처의 '삼락생태공원'은 472만 2,000㎡의 '삼락강변공원'과 22만 1,614㎡의 '삼락습지생태원'으로 이루어져 있다.
▲ 부산 삼락생태공원 부산 사상역 근처의 "삼락생태공원"은 472만 2,000㎡의 "삼락강변공원"과 22만 1,614㎡의 "삼락습지생태원"으로 이루어져 있다.
ⓒ 김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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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선해지는 시간부터 해가 질 때까지 공원에서 세월아 네월아 자전거를 타고, 밤에는 모텔에서 호캉스, 아니 모캉스를 즐기기로 마음 먹었다. 밤 10시에 입실해 다음날 정오까지 묵는 '늦은 입실'은 가격도 저렴했다.

그런데, 저녁과 다음날 아침에 자전거를 타려면 대여소 자전거가 아닌 내 자전거를 써야 하고, 평일에는 지하철에 자전거를 실을 수 없게 돼 있었다. 짐을 들고 걷는 일에도 몹시 취약한 터라, '그래, 진정한 도시 탈출이란! 내 손 내 발을 부지런히 놀려 도시를 탈출하는 것이지!'라고 생각해 버렸다. 자전거로 이동하고, 넓은 공원에서 놀고, 개인실에 가서 책을 보며 쉰다. 이 정도면 코로나 맞춤형 여행 아닌가.
 
캠핑이나 차박만큼 코로나에서 안전하진 않지만, 모캉스라기엔 '늦은 입실'이지만, 가성비 여행으로서는 괜찮은 선택. 컴퓨터와 책상이 있어 책 읽고 글 쓰기 좋았다. 사장님이 자전거를 방 안에 놓으라고 하셔서 잠까지 자전거와 같이 잤다(이러다 자전거랑 한 몸 되겠다).
▲ 가성비 여행 맞긴 맞다 캠핑이나 차박만큼 코로나에서 안전하진 않지만, 모캉스라기엔 "늦은 입실"이지만, 가성비 여행으로서는 괜찮은 선택. 컴퓨터와 책상이 있어 책 읽고 글 쓰기 좋았다. 사장님이 자전거를 방 안에 놓으라고 하셔서 잠까지 자전거와 같이 잤다(이러다 자전거랑 한 몸 되겠다).
ⓒ 김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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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는 희생이 따랐다. 햇볕은 사악하여 출발한 지 15분만에 팔에 (그토록 경계하던) 잡티가 창궐했고, '자전거 불모지'라는 부산시의 오명을 새삼 실감할 만큼 자전거 도로가 없는 곳이 많았다.

그에 더해 사람들은 아무리 땡땡 종을 울려도 뚝심 있게 스마트폰에 얼굴을 묻고 걸었고, 좁은 인도를 점거한 다양한 이물질 덕분에 나는 '포복 운전', '외손외발 운전' 등 유사시에만 선보이는 곡예운전 기술을 녹슬지 않게 다듬어볼 수 있었다.
 
연제구에서 부산진구로 이어지는 길에 있는 송상현광장. 오븐에 바싹 구워진 나는 급수받는 잔디가 되기로 했다. 젖는다며 만류하는 관리요원분들께 "괜찮아요!!"라 외치며 느긋하게 자전거를 끌었다. 물줄기가 몸을 훑는 순간, 하, 이게 또 맛이로구나.
▲ 부산 서면 근처의 송상현광장 연제구에서 부산진구로 이어지는 길에 있는 송상현광장. 오븐에 바싹 구워진 나는 급수받는 잔디가 되기로 했다. 젖는다며 만류하는 관리요원분들께 "괜찮아요!!"라 외치며 느긋하게 자전거를 끌었다. 물줄기가 몸을 훑는 순간, 하, 이게 또 맛이로구나.
ⓒ 김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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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도로가 있길래 타고 올라갔는데, 갑자기 "미안, 나 여기까지만 할게~" 하며 길이 사라졌다. 흠, 길의 용도가 이게 아니었나.
▲ 갑자기 사라진 자전거 도로 자전거 도로가 있길래 타고 올라갔는데, 갑자기 "미안, 나 여기까지만 할게~" 하며 길이 사라졌다. 흠, 길의 용도가 이게 아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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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긴 도로 덕분에 노을을 파노라마로 보며 달리는 흔치 않은 기회를 얻었다.
▲ 뒤로 돌았더니 장관이 있었다 끊긴 도로 덕분에 노을을 파노라마로 보며 달리는 흔치 않은 기회를 얻었다.
ⓒ 김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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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도시 생활을 견뎌온 분노 에너지가 "놀러 간다!!!"는 흥으로 승화된 것일까. 이날 나는 지칠 줄을 몰랐다. 센텀시티의 번쩍번쩍한 아파트 단지와 시청역 앞에서 아이스커피를 기다리는 공무원들, 언제 가도 금방 상경한 시골쥐가 되고야 마는 서면의 복작복작한 교차로, 감전동 길가에 고집스럽게 늘어선 오래된 가게들을 지나고 지나, 나는 부산의 서쪽에서 동쪽 끝까지 무사히 주파해내고야 말았다.

이것은 최고의 휴가다

출발 시각으로부터 정확히 4시간이 지나 삼락생태공원에 다다른 순간, 멀리 흰 구름떼와 산떼(?)가 나를 위해 몰려오고 있었다. 사방의 대문을 열어제끼듯 시야가 탁 트였다는 느낌을 받는 것이 얼마만인지! 피로가 감동을 먹고 녹아버리는 듯했다. 쭉쭉 뻗은 붉은 바닥에 흰색으로 그려진 자전거 그림을 나는 '내 세상'이라 읽었다.
 
이렇게 서로 질세라 다양한 구름이라니. 무모하게 달려온 보람은 여기서 이미 거두었다.
▲ 구름떼 이렇게 서로 질세라 다양한 구름이라니. 무모하게 달려온 보람은 여기서 이미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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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스나 자가용에 실려서 사뿐히 도착했다면 이 맛이 났을 리 없다(그 만족감의 차이는, 비유하자면 냉장한 지 얼마 안 된 맥주와, 냉장하다가 냉동고로 옮겨 살얼음이 낀 맥주 맛의 차이 같은 것이 아닐까. 전자도 물론 좋지만, 먹어본 사람이라면 당연히 후자를 택할 거다).

잠시 마스크를 내리고 숨을 쉬었다. 간간이 인라인스케이터나 반려견과 짝을 이룬 사람들이 지나갔지만 산책로는 바람과 녹음이 채우고 있었다. 매미 소리는 쩌렁쩌렁한 정도를 넘어, 고막을 이불 붙들고 털듯 탁탁 털어 묵은 소음의 찌꺼기까지 떨어내 주었다.
 
강변공원에는 12종목의 운동이 가능한 체육시설, 잔디광장, 야생화단지와 자연학습장, 사계절꽃동산, 문화마당 등이 있지만, 버드나무 숲길 등 좀더 자연적인 느낌을 받으며 걸을 수 있는 흙길과 자연 초지, 습지도 있다.
▲ 삼락강변공원의 숲길  강변공원에는 12종목의 운동이 가능한 체육시설, 잔디광장, 야생화단지와 자연학습장, 사계절꽃동산, 문화마당 등이 있지만, 버드나무 숲길 등 좀더 자연적인 느낌을 받으며 걸을 수 있는 흙길과 자연 초지, 습지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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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근마켓에서 잘 건졌던) 내 '자'부심을 높여주는 자전거
▲ 자전거 내린 풍경 (당근마켓에서 잘 건졌던) 내 "자"부심을 높여주는 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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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서늘해진 무렵 벤치에 앉아, 보냉가방에 꾸역꾸역 담아온 것들을 꺼냈다.  청사과와 오이, 토마토는 보냉이 아니라 보온이 되어 있었지만 시원하게 먹던 맛을 뛰어넘었다. 텀블러에 담아온 커피의 구수함을 구름색에 걸치며 맛보았다. 하늘에는 김해공항에서 떠나는 비행기들이 마치 헤엄하는 물살이들처럼 느리게 지나다녔다.
 
가까운 곳에 김해공항이 있지만 비행기 소리가 들릴 만큼 가깝지는 않다. 그저 이 풍경에 감사하게 된다.
▲ 비행기와 노을 가까운 곳에 김해공항이 있지만 비행기 소리가 들릴 만큼 가깝지는 않다. 그저 이 풍경에 감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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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거다.

마음 안에 '만족'의 칸이 백 개라 치면 그 백 개의 칸이 모두 채워지는 순간이 있다. 큰 돈을 쓰거나 멀리 떠난다고 해서 반드시 그런 순간을 만나는 것은 아니다. 꼭 긴 시간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정말 제대로 쉴 수 있는' 10분여의 시간이 사람을 일어서게 하는지도 모른다.

5년 전 해외여행을 가기 쉽다는 이유로 부산에 정착한 것을 생각하면 지금의 상황이 아쉬울 법도 한데, 이제는 생각이 달라졌다. 어쩌다 보니 '피서'를 하는 게 아니라 더위에 온몸을 바치며 온 곳이지만, 내 힘으로 도심 속을 달려와서 만난 자연은 나에게 더없이 완벽했다. 
 
동남아 사람 두 명이 다리 난간에 걸터 앉아 낚시를 하고 있었다. "고기 있어요?"라고 물으니 자주 듣는 질문인 듯 "없어요.."라고 힘없이 답한다. 외국인이 많이 사는 곳이라 낚시하는 외국인이 꽤 있다. 전에 자주 보던 메콩강이 생각나 이국적인 느낌도 들었다.
▲ 자연 습지 동남아 사람 두 명이 다리 난간에 걸터 앉아 낚시를 하고 있었다. "고기 있어요?"라고 물으니 자주 듣는 질문인 듯 "없어요.."라고 힘없이 답한다. 외국인이 많이 사는 곳이라 낚시하는 외국인이 꽤 있다. 전에 자주 보던 메콩강이 생각나 이국적인 느낌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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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아침은 날이 흐려 산까지 내려온 구름과 허리안개를 볼 수 있었다.
▲ 삼락강변공원의 메타세콰이어 길 다음날 아침은 날이 흐려 산까지 내려온 구름과 허리안개를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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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지가 워낙 넓어서 그런지 고양이도 우락부락 근육질이다. 이게 다 너의 땅이로구나.
▲ 골프필드 근처에 사는 근육질 고양이 부지가 워낙 넓어서 그런지 고양이도 우락부락 근육질이다. 이게 다 너의 땅이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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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서 더 잘 사는 법?

사람이 대상을 보고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은 전형성 속에 비전형성이 어우러져 있을 때라고 한다. 건축가 유현준 교수는 책 <공간의 미래>에서 설명한다. 개성 없는 건물만 늘어서 있는 도시라면 아름답게 느끼기 어려운 이유가 그러하고, 자연 역시 나무의 모양, 나뭇잎의 크기 등 정해진 범주 속에 각기 다른 나무와 나뭇잎들이 변주를 이루어 아름답다고.

이런 생각을 해 본다. 도시에서 사는 삶이 아름답지 않다면, 전형성에 많은 에너지를 쏟으며 자신의 비전형성을 잘 드러내지 못하기 때문은 아닐까. 각기 다른 경험을 하는 것보다 같은 경험을 누가 더 빨리 하느냐가 중요하기 때문에 자신만의 삶의 방식은 충분히 살려내지 못하고, 때로는 개성마저 정량화시켜 성과로 보여주어야 하니까.
 
자전거를 세워두고 스트레칭 동작을 하다가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머리를 물구나무 서기에 가깝게 땅에 붙이고 보면, 이런 하늘이 지구 근처에서 보는 대기권처럼 보인다는 것. 어찌 사진으로 다 담을까.
▲ 처음으로 뒤집어서 본 해질녘 하늘 자전거를 세워두고 스트레칭 동작을 하다가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머리를 물구나무 서기에 가깝게 땅에 붙이고 보면, 이런 하늘이 지구 근처에서 보는 대기권처럼 보인다는 것. 어찌 사진으로 다 담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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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도시 안에서 좀 더 잘 사는 방법은 이런 게 아닐까? 비슷한 하루 곳곳에 있는 특별한 경험과 그에 대한 자신만의 시각을 스스로 소중히 여기는 것. 멀리 떠나지 않아도 새로울 수 있도록 동네마다, 길마다의 다른 점을 발견하고 들여다보는 것. 바퀴에 닿는 도시의 지면을 낱낱이 느끼고 처음 보는 골목들을 눈에 담으며 나는 이곳을 더 애정하게 됐으니.
 
너무 어두워지기 전에 숙소로 가야지, 하면서도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 강둑에 앉아 바라본 해거름 풍경 너무 어두워지기 전에 숙소로 가야지, 하면서도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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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거름의 빛이 사라질 때까지, 뜨뜻하게 달궈진 강둑에 앉아 하늘과 꽃구름을 야물게 지켜봤다. 어둑해져 숙소로 향하는데 지도 앱의 안내를 철석 같이 믿었다가 아슬아슬하게 비좁은 인도만 빙빙 돌았다. 글자 그대로 내 몸을 (길에) 부딪혀 여행을 한다는 것에 드디어 회의가 들려는 찰나, 풀숲에서 쪼르르 달려나오는 아기너구리 두 마리의 눈망울. 오, 분명 '아름다운' 날이었다.
 
잠시 쉬는 동안 자전거 안장에 신기한 벌레가 앉았다. 모래덩어리처럼 보이지만 기어다닌다. 너는 그렇게 생존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불어날렸다.
▲ 자전거 안장에 앉은 벌레 잠시 쉬는 동안 자전거 안장에 신기한 벌레가 앉았다. 모래덩어리처럼 보이지만 기어다닌다. 너는 그렇게 생존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불어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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