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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아침에 생긴 긴 자전거 줄
 일요일 아침에 생긴 긴 자전거 줄
ⓒ 윤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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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단지에 긴 자전거 줄이 생겼습니다. 무슨 일일까요. 자세히 보니 멀쩡한 자전거들로 보이진 않습니다. 바람이 빠진 자전거도 있고, 녹이 잔뜩 슬거나 안장에 먼지가 잔뜩 내려앉은 것들도 보입니다. 대체 이 많은 자전거들은 누가, 어디서 모아온 것들일까요.

오늘, 8월 1일은 아파트 단지 자전거 출장 수리를 하는 날입니다. 소식을 듣고 아침 일찍부터 주민들이 끌고 온 자전거들이 1시간도 안 돼 이렇게나 많이 모였습니다. 출장 수리를 준비한 이들도 첫 출장 수리가 있던 2주 전, 이렇게나 많은 자전거들이 몰릴 줄 미처 몰랐습니다. 그래서 두 번째 날인 오늘은 번호표를 준비해 차례대로 붙이고 자전거들이 비를 맞지 않도록 건물 안에 차곡차곡 모으느라 시작하기로 했던 아침 10시 전부터 바쁘게 움직여야 했습니다.
 
둘째 날에는 비를 피해 건물 안 빈 공간에 번호표를 붙여 차곡차곡 모아두어야 했다.
 둘째 날에는 비를 피해 건물 안 빈 공간에 번호표를 붙여 차곡차곡 모아두어야 했다.
ⓒ 윤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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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지는 자전거는 왜 이리 많을까

우리나라에서 한 해에 버려지는 자전거가 몇 대나 될까요. 행정안전부 '자전거 이용 현황'에 따르면 2019년 한해 전국에서 수거한 자전거는 3만 4609대(서울 1만 7911대)입니다. 2014년에는 1만 6585대였으니 5년 사이 두 배로 늘어난 셈입니다. 통계에 잡히지 않은 것들을 합하면 그 수는 훨씬 늘어나겠죠.

이렇게 버려지는 자전거들이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사소한 고장들을 제때 고치지 않고 방치하는 일이 많기 때문입니다. 가장 흔한 고장은 바퀴에 펑크가 나는 건데 이걸 집에서 고치긴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차에도 실리지 않는 자전거를 끌고 저 멀리 자전거 수리점까지 가려면 큰맘을 먹어야 합니다. 그렇게 한 달, 두 달이 가고 어느새 일 년, 이 년이 흐르면 더는 탈 수 없는 자전거가 돼버리고 마는 겁니다.
 
자녀들과 함께 자전거 수리 교육을 받는 주민들
 자녀들과 함께 자전거 수리 교육을 받는 주민들
ⓒ 윤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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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가 함께 나와 자전거 기초 수리 교육을 받는 모습
 부부가 함께 나와 자전거 기초 수리 교육을 받는 모습
ⓒ 윤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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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있습니다. 아이들이 타는 자전거는 아이들이 커가면서 자연스레 작아서 더 못 타게 되곤 하는데 마땅히 물려주거나 팔 곳이 없으면 이 역시 어딘가에 방치돼 잊히곤 합니다. 여기에 더해 이사라도 가게 되면 자전거는 영영 그 자리에 버려지고 맙니다. 아파트 단지와 주택가의 자전거 공용 보관대마다 버려진 자전거들이 빼곡하게 쌓여있는 이유입니다.

정부나 지자체, 또 아파트 단지 관리사무소들이 손을 놓고 있는 건 아닙니다. 올해 1월부터 시행하는 <자전거 이용 활성화에 관한 법률>은 제20조(자전거의 무단방치 금지)에서 "① 누구든지 도로, 자전거 주차장, 그 밖의 공공장소에 자전거를 무단으로 방치하여 통행을 방해해서는 아니 된다. ② 특별자치시장·특별자치도지사 또는 시장·군수·구청장은 제1항을 위반한 자전거에 대해서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이동·보관·매각이나 그 밖에 필요한 처분을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또 경기도 고양시는 <고양시 자전거이용 활성화에 관한 조례> 14조(자전거의 무단방치 금지)에서 "(시장은) 10일 이상 같은 장소에 무단으로 방치된 자전거에 대하여 이동·보관·매각·기증·공공자전거로 활용 그밖에 필요한 처분을 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많은 지자체들이 해마다 버려진 자전거들을 수거한 뒤 아주 일부이긴 하지만 다시 탈 수 있게 고쳐서 취약계층 가정이나 사회 단체에 기부를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버려진 자전거들이 이렇게 다시 자전거로 쓰이는 경우는 아주 적습니다. 몇 가지만 손보면 얼마든지 탈 수 있는 것들도 많지만 대부분은 고철로 버려지고 맙니다. 녹과 먼지, 기름때를 닦아내는 일부터 구멍 난 튜브나 체인을 가는 일까지 하나하나 전문가의 손길이 필요한 수고스런 일인 데다가 바꿔야 할 부품 가격까지 따지면 차라리 값싼 새 자전거를 사는 게 더 돈이 적게 드는 일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고철로 재활용이 된다고는 하나 오랫동안 방치된 자전거들은 곳곳에 녹이 잔뜩 슬어있는 경우가 많고 고무 바퀴나 플라스틱 부품들을 떼어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어 재활용 업체도 반기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자전거는 자전거로서 생명력을 유지할 때 가장 값어치가 있습니다.

씽씽어게인, 자전거야 다시 달리자

다시 출장 수리 이야기로 돌아가면, 이번 자전거 출장 수리는 고양시민회가 중산동 주민자치위원회와 중산동 일산아이파크동대표협의회에 제안해 함께 '경기도 자원순환마을만들기' 공모(경기도 주최, ㈔더좋은공동체 주관)에 참여해 선정된 사업입니다. 이름하여 '씽씽 어게인', 자전거를 다시 달리게 하자는 뜻이 담겼습니다.

지난 7월 10일부터 주민들의 신청을 받아 토요일마다 자전거 기초 수리 교육을 2주 코스로 두 차례(4주간) 진행했고, 7월 18일과 8월 1일 두 번의 일요일에는 출장 수리를 진행했습니다. 코로나19 상황 속에서도 7~10명의 주민들이 아이들과 함께 자전거 수리 교육에 참여해 자전거에 대한 기본 이론과 펑크 수리하는 법 등 기초 수리 교육을 이수했습니다. 교육과 수리는 ㈔사랑의자전거에서 맡아 진행했습니다.
 
자전거 출장 수리 중 장인으로부터 설명을 듣고 있는 주민
 자전거 출장 수리 중 장인으로부터 설명을 듣고 있는 주민
ⓒ 윤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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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장 수리 날에는 아침부터 60~70명의 주민들이 자전거를 끌고 모여들었습니다. 두 명의 자전거 장인들이 하루 종일 고칠 수 있는 수량에는 한계가 있어 안타깝지만 첫 날은 60대, 둘째 날에는 70대까지만 접수를 받아야 했습니다. 평소 열심히 타던 자전거를 가지고 오는 경우도 더러 있었지만 대부분은 어딘가 고장이 난 뒤로 꽤 오랫동안 타지 않던 자전거들이었습니다. 한 집에서 서너 대의 자전거를 끌고 오는 경우도 적지 않았습니다. 아마 이번 출장 수리가 아니었다면 이 많은 자전거들이 영영 어디엔가 그대로 방치됐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고장 난 바퀴의 튜브를 갈아 끼우기만 해도 자전거는 다시 살아났습니다. 헐겁던 브레이크도 조여 주고, 말을 잘 안 듣던 기어도 언제 그랬냐는 듯 레버를 조작하는 대로 척척 제자리를 찾아가게 손을 봤습니다. 아이들 자전거마다에는 번쩍번쩍 빛을 내는 후미등도 하나씩 달아주었습니다. 게다가 3만 원 이하 부품값은 받지 않았으니 대부분이 공짜로 수리를 받았습니다. 장인들의 손을 거쳐 되살아난 자전거를 받아든 사람들의 얼굴마다에는 환한 웃음이 번졌습니다. 고마운 마음에 음료수와 아이스크림을 건네고 가는 주민들도 있었습니다.   
 
자전거 수리하는 장인들과 지켜보는 주민들
 자전거 수리하는 장인들과 지켜보는 주민들
ⓒ 윤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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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이틀간 150대가 넘는 자전거들이 새 생명을 얻어 다시 달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게 끝이 아닙니다. 이번 기회에 관리사무소와 함께 아파트 단지 안에 버려진 자전거들을 모아봤더니 무려 400여 대에 달했습니다. 입주한 지 4년 밖에 안 된 아파트 단지인데도 말입니다. 조만간 이 가운데 되살릴 수 있는 것들을 골라내 다시 마법의 주문을 걸어볼 생각입니다. 한 주를 쉰 뒤에는 이웃 단지에서 기초 수리 교육과 출장 수리를 이어가고, 가을에는 '나눔 장터'를 열어 아이들이 커서 안 타게 된 자전거나 멀쩡한 채로 집에 고이 보관된 자전거, 자전거 용품들을 이웃들과 나누는 자리도 마련해볼 계획입니다.

삶의 방식을 바꾸는 길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참기 힘든 무더위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뭐든 쉽게 쓰고 함부로 버려온 우리 모두의 익숙한 삶의 방식이 지구를 덥히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어느 작은 아파트 단지에서 진행한 실험인 '씽씽 어게인'을 통해 새로운 희망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마음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 다만 그 마음을 실천에 옮기려면 약간의 계기가 필요하다는 것, 그리고 그 계기는 아주 대단하거나 멀리 있지 않다는 것을 말입니다.
 
씽씽어게인 포스터. 고양시민회와 중산동주민자치위원회, 일산아이파크동대표협의회가 함께 참여하고 있다.
 씽씽어게인 포스터. 고양시민회와 중산동주민자치위원회, 일산아이파크동대표협의회가 함께 참여하고 있다.
ⓒ 윤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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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자전거재활용, #폐자전거, #경기도자원순환마을만들기, #사랑의자전거, #고양시민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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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옆 앞 '기찻길옆골목책방' 책방지기. 서울에서 태어나 줄곧 수도권에서 살다가 2022년 2월 전라북도 익산으로 이사해 지방 소멸의 해법을 찾고 있다. <로컬꽃이 피었습니다>(2021), <슬기로운 뉴 로컬 생활>(2020), <줄리엣과 도시 광부는 어떻게 마을과 사회를 바꿀까>(2019), <나는 시민기자다>(2013)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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