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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군에서 전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카드. 긴급재난지원금이 적립되는 카드형 화폐
▲ 굿뜨래 카드 부여군에서 전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카드. 긴급재난지원금이 적립되는 카드형 화폐
ⓒ 오창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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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들 카드는 소용읎다. 여기서는 여기 카드로 써야 하는겨. 굿뜨래 카드 되쥬?"

노부모님들은 자식들 앞에서 당당하게 굿뜨래 카드를 내놓았다. 부여의 맛집 계산대에서는 부자(父子) 간에 서로 음식 값을 내려는 정겨운 다툼을 벌이는 풍경이 흔해졌다. 부모님에게 맛있는 식사를 대접하러 외지에서 온 자녀들은 오히려 부모님이 사주는 갈비를 기분 좋게 먹고 돌아갔다.

부여군이 자체 예산으로 올 7월부터 재난지원금을 지급한 후, 부여의 맛집에서는 이런 정겨운 실랑이를 자주 보게 되었다. 모처럼 고향에 내려온 자녀들은 당당한 부모님의 모습에 흐뭇했다. 작은 지자체에 불과한 고향인 부여군의 통 큰 재난지원금 정책에 내심 놀라웠다.

몇 년 전 사회복지학을 새로 공부하면서도 사회복지 제도의 가장 기본적인 개념인 보편적 복지와 제도적 복지 혜택의 수혜자가 나도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해 본 적 없었다. 

전쟁과 기아도 극복한 우리에게 전염병이라는 재난이 덮쳐올 줄은 몰랐다. 재난은 지진, 해일, 화산 폭발 등의 물리적인 피해로 점철된 자연재해만 해당하는 줄 알았다. 현대 의료 기술로 정복하지 못한 전염병이 나타날 줄 누가 알았을까?

어느덧 전염병과 함께 살다 보니 '재난지원금'이라는 보편적 복지 제도의 혜택을 받게 되었다. 전염병을 국민의 기본적인 생존권을 위협하는 국가적인 재난으로 인식해 사회 통합을 위해 국가에서 국민에게 지급해주는 지원금이다.

올해는 내가 살고 있는 부여군에서 자체적으로 긴급 재난지원금을 책정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순전히 지자체 차원에서 국가에서 지급하는 것과는 별개의 예산을 편성한 것이라고 했다. 1인당 30만 원씩 지급할 재원이 마련되었다고 했다. 정부의 재난지원금에 대한 여야 합의가 끝나기도 전에 부여군에서는 한발 빠르게 움직였다.

침체된 경기도 살리고, 지역 순환까지 

부여군은 군 자체적으로 군민들에게 재난지원금을 주기 위해 지난해 본 예산 성립 과정에서 시급하지 않은 사업은 줄이고 효율적인 예산 편성으로 재원을 마련해 놓았다고 했다.

부여군 박정현 군수와 군 의회 의원들이 예비비 200억 원을 확보해서 부여 군민들이 전염병 불황의 시기를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을 고심한 결과였다. 지역 화폐인 굿뜨래 페이로 지급하는 것은 침체된 지역 경기 활성화에 기대 효과를 노리기 위해서였다.

재난지원금을 신청하고 휴대폰에 저장된 지역 화페 앱에 숫자가 뜨기를 은근히 기다렸다. 7월 중순의 어느 날, 갑자기 숫자가 풍선처럼 불어나 있었다. '꽁돈'(공돈) 같은 돈이 '굿뜨래 페이'라는 지역 순환 화폐로 찍혔다.

이 여섯 자리의 숫자는 지역에서 생활비로 요긴하게 쓸 수 있는 위력을 발휘한다. 대가를 치르지 않고 그냥 생기는 돈으로 이 만큼이면 적지 않은 숫자이다. 그것도 1인당 액수였다. 가족 수에 따라 지급되는 것이라 소소하게 들어가는 생활비로 적당하게 쓸 만큼의 액수였다.

그 숫자가 '실화인가?' 싶어 다시 보았다. 반짝이는 여섯 자리의 숫자에 마음의 여유가 생기고 안도감이 생겼다. 인간의 최소한의 생존권이 위협받지 않도록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유지하게 하는 사회복지의 기본 개념이 내게 다가왔다. 복지란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하고 긍휼히 여기는 자세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이런 지자체의 지역민으로 살고 있는 것 자체가 행운이었다.

일단 자동차 타이어를 갈아야 했다. 몫돈이 들어가는 일이라 망설이고 있던 차였다 .아이들 몫으로 받은 부분을 가지고 고기를 먹고 싶다는 아이들에게 소고기를 사줬다. 부여의 어지간한 곳에서는 지역화폐로 계산이 가능했다. 부여 안에서는 현금이나 카드를 쓸 일이 별로 없었다. 부여에서는 굿뜨래 페이가 다한다. 돈을 내는 곳, 어느 곳에서든 굿뜨래 페이로 큐알 코드를 찍거나 카드를 내밀면 다됐다.
 
굿뜨래 페이는 휴대폰에 저장해 큐알 코드로 인식해 계산을 하기도 한다,
부여군의 거의 모든 사업체에서는 굿뜨래 페이 결재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
▲ 휴대폰 앱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굿뜨래 페이는 휴대폰에 저장해 큐알 코드로 인식해 계산을 하기도 한다, 부여군의 거의 모든 사업체에서는 굿뜨래 페이 결재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
ⓒ 오창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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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뜨래 페이는 공동체 순환형으로 가맹점에서 받은 매출을 다른 가맹점에서 사용할 수 있는 독특한 구조로 운영된다. 굿뜨래 페이에 돈을 충전해서 사용하면 10%의 인센티브가 지급된다. 이런 운영 방식으로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는 방법을 도모하고 있다.

재난지원금 외에 농민 수당과 여성 농업인 바우처 등의 부여군만의 제도적 복지 혜택도 굿뜨래 카드로 적립해 지원하는 방식을 택했다. 그 결과 올해 4월 부여 굿뜨래 페이는 전국의 지역 화폐 중에서 처음으로 1000억 순환을 달성했다.

재난지원금과 농민 수당 등이 지역 화폐가 아닌 현금으로 지급됐더라면 쌈지돈으로 농협 통장이나 쌀독에 묻혀버렸을지도 모른다. 이전 세대 어른들은 '현금은 무조건 묻어놓아야 안심이 된다'고 생각하시곤 한다. 돈은 돌아야 한다는 생각은 가지고 있지만 '내 돈'만은 묻어놓고 보자는 생각이 너무 확고한 분들이다.

제도적으로 순환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 놓고 지역 화폐로 재난 지원금을 지급한 일은 잘한 일이었다. 덕분에 부여군의 시장과 식당가에서는 모처럼 굿뜨래 페이의 특수를 누리고 있다.

국가 차원의 재난지원금의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빚을 내는 것은 아닌지, 우려가 큰 상황이다. 부여군에서는 다행히 이전 군정에서 넘어 온 부채까지 다 상환하고 마련한 재원이라는 소식이었다. 군민들이 재난지원금이라는 보편적 복지 혜택을 누리면서도 부담스러워할 여건을 미리 개선해 놓았다. 전염병의 시기 중에 찾아온 부여군의 재난지원금 굿뜨래 페이를 사용하는 동안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느끼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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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부여의 시골 마을에 살고 있습니다. 조근조근하게 낮은 목소리로 재미있는 시골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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