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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머리를 감을 때마다 하수구가 까맣게 될 정도로 머리카락이 빠진다. 하루가 다르게 쑥쑥 커나가는 게 아니라 늙어가고 있는 걸 실감하는 날들을 보내다 보면 나도 모르게 '뭘 시작하기에는 늦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고는 한다. 나이 들어가는 내 얼굴은 나조차도 낯설게 느껴진다.

군산 흥남동에 있는 미원경로당에 지역예술가 단체인 미술공감채움 선생님들과 마을 사업을 가면서 내 시선에만 갇혀있으면 내 삶을 제대로 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들과 대화를 하면서 시간이 흐른 후의 내 모습을 상상하고 오늘의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

"연명치료 안 한다고 동사무소에 신고했잖여."
"동사무소에다 그걸 신고해요?"
"그려. 호스 꼽고 누워있는 거 안 한다고 신고하믄 등록증도 나온당게."


김 할머니와 내가 나눈 대화다.

"당하면 당하는 대로 살았어"

김 할머니는 21살에 결혼해서 85세가 될 때까지 64년을 한동네에서 살았다. 자식 5명을 키우고 그 자식이 자식을 낳는 것도 한자리에서 지켜봤다. 자신의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곳에서 노년을 맞이하는 것만큼 큰 복이 있을까. 나는 그 나이쯤 병원이 아니라 내 집에서 살고 있을까. 아무래도 자신이 없었다. 건강도 받쳐줘야 하고 많은 걸 견디고 나서야 찾아오는 안식일 것 같아서였다.

"당하면 당하는 대로 살았어. 무슨 일이 있어도 그냥 사는 거여. 그때는 아무리 힘들어도 자살하는 사람은 없었어."

그 시절에는 오두막에 살아도 이웃 간에 정이 있었고 무엇보다 푸근한 자연의 품 안에서 마음만은 넉넉하게 살아왔다. 지금 같은 코로나가 생기리라고는 상상도 못한 시절이었다. 팍팍한 살림이라 이웃에게 큰일이 생겨도 금전적으로 도와주지는 못했지만 대신 아파하고 울어주면서 그렇게 함께 그 시간을 통과해왔다.

이번에는 옥 할머니가 말했다.

"한번은 아들 선생님이 나를 불러서 도시락에 나물 말고 고기 같은 것도 싸주라고 그랴. 나도 해주고 잡은 디 돈이 없응게 못해주는 거여. 내가 아들 대학 시험 볼 때 떨어지라고 기도한 사람이여."

옥 할머니는 일하다가 척추가 다친 남편 대신 돈을 벌기 위해 나간 공장에서 손가락 네 개가 절단이 되는 사고를 당했다. 그런 와중에 아들이 대학을 간다고 하니 할머니는 도저히 대학 등록금이 감당이 되지 않았다. 산재보험도 없던 시절, 공장 사장에게 사정을 해서 치료비와 보상금을 받아야 했던, 듣기만 해도 가슴에 찬바람이 이는 이야기였다.

"옛날에는 너나 할 것 없이 다 고생했어."

옥 할머니가 이렇게 말을 맺자 다른 할머니들도 여기저기서 "그려, 다들 그러고 살았재"라고 했다. 그 말은 혼자만 겪는 불행이 아니라고, 괜찮다고, 그래도 살아갈 수 있다고 서로의 등을 두드려 주는 말 같았다.
 
젤네일 램프에 손을 넣는 할머니
 젤네일 램프에 손을 넣는 할머니
ⓒ 김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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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이디어로 네일아트를 준비해서 간 날, 처음에 할머니들은 손이 미워서 안 한다고 했다.

"일 많이 한 어머니 손이 진짜 예쁜 손이에요" 하면서 나와 고 선생님, 홍 선생님이 권하자 마지못해서 한 분씩 손을 내밀었다. 매번 익살스런 표정연기로 우리를 배를 잡게 만드는 최 할머니부터 네일 스티커를 붙이기 시작했고, 멀리서 구경만 하던 분들도 어느새 완강하게 버티던 손에 힘을 풀었다.

옥 할머니의 손을 내가 잡아끌었다.

"손가락도 없는 디 뭣 하러 혀."
"일하시다 다친 손이잖아요. 제가 예쁘게 해드릴게요."


할머니는 못이기는 척 손을 내밀었고 나는 제일 화려한 무늬의 스티커를 할머니의 엄지손톱에 붙였다.

"우리 어머니 너무 곱다."

어머니들 손을 만지는데 얼마나 따뜻한지. 그런 것 뭐 하러 붙이냐고 안 한다고 했지만 어느새 고운 색에 마음을 뺏기고 눈을 떼지 못하는 우리 어머니들 모습에 울컥하는 건 왜인지 모르겠다. 이렇게 예쁘고 고운 것에 마음 뺏길 여유 없이 그저 살아내기 위해 애써온 시간들이 안타까워서일 것이다.

최선을 다했다는 그 후련함, 나도 느낄 수 있을까 
 
사진 찍는다고 하니 손을 곱게 포개는 어머니
 사진 찍는다고 하니 손을 곱게 포개는 어머니
ⓒ 김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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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따뜻한 그 손으로 자식들을 품어주느라 자신은 비바람을 고스란히 맞아야했던 어머니들은 얼마나 추웠을까. 모진 풍파 다 지나가고 고요해진 어느 날 거울을 들여다보니 머리에는 하얀 서리가 내린 낯선 노인이 있는 모습을 보고 얼마나 허망했을까.

전력 질주하고 난 다음처럼, 할머니들에게는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했다는 후련함과 당당함이 있었다. 80대의 어르신들은 일제강점기, 6.25 전쟁을 거치는 중에 자식들 건사하고 악착같이 살아온 분들이다. 지금 어머니들 모습은 잔잔해진 바다 위에 떠있는 작은 배처럼 고요하고 편안해보였다.

어르신들은 나의 미래 모습이었다. 저 나이가 되었을 때 나는 자신있게 최선을 다해 살아왔다고 말할 수 있을까. 80대의 나는 40대의 나에게 이런저런 걱정 때문에 글을 쓰지 못하기보다 아무 생각 말고 매일 쓰라고 하지 않을까. 언젠가는 늙고 끝이 있는 인생 머뭇거리지 말고 원하는 대로 살아보라고 하지 않을까.

"무슨 일이 있어도 그냥 사는 거여" 그렇게 나도 큰 소리 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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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을 봐서 요리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학원밥 18년에 폐업한 뒤로 매일 나물을 무치고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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