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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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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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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5월 25일은 나와 지금의 와이프가 사귀기로 약속한 날이다. 대부분의 커플이 그렇듯 첫 시작은 중요하다. 그 날짜를 기점으로 관계의 깊이와 질이 달라지니까. "이날부터 우리가 사귀기로 하는 거야"라고 이야기함으로써 어떤 확신과 다짐을 하게 된달까.

그렇게 평탄하게 사귀다가 2019년 결혼을 약속했다. 결혼 날짜를 잡는 건 신중해야 한다. 나와 와이프는 일요일보다는 토요일, 웬만하면 5월, 그렇다면 우리가 처음 사귀기로 한 날짜인 5월 25일? 하고 달력을 확인했다. 공교롭게도, 그리고 다행히도 토요일이었다. 이것은 이 날짜에 딴딴따단 결혼식을 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2019년 5월 25일 토요일, 평범하고 소박하게 결혼식을 치렀다. 그리고 처음 사귀기로 한 날과 결혼기념일을 일치시킴으로써 챙겨야 할 기념일을 하나 줄였...다고 좋아했다간 등짝 스매싱으로 끝나진 않을 것 같아 티는 내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는 신혼 생활을 시작했다. 사실 신혼 생활이라고 해봤자 크게 달라진 건 없었다. 꽤 오랜 기간 만나면서 서로의 스타일과 가치관을 이해하고 존중하려고 노력했기 때문에 싸울 일도 크게 없이 지내왔다.

결혼을 하면 주변에서 "애기는?"이라고 많이 물어보는데, "우리가 알아서", "낳고 싶을 때"라며 퉁명스럽게 대답하곤 했다. 결혼을 했더라도 다른 사람으로부터 간섭받지 않고 자유롭게 놀러 다니는 것이 더 좋았다. 캠핑도 다니고 국내 여행도 다니고, 지금은 불가능하지만 해외여행도 꼬박꼬박 다니며 추억을 쌓았다. 

그런데 와이프는 내심 아이를 가지고 싶어 했다. 그렇게 오래 만나고도 한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기란 힘든 거구나. '아이는 마음대로 가질 수 없는 것이기에 천천히 급할 것 없이 준비해보자'며 내가 둘러대며 피한 건 아니었는지 돌아보기도 했다. 결혼은 했지만 나는 좋아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이 확실하기 때문에 퇴근하고 아무리 피곤해도 취미 생활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반면 와이프는 말할 수 없는 고독감과 외로움을 느끼지 않았나 생각했다. 

화장실 앞에서 나를 기다리던 아내, 뜻밖의 말 

2021년 6월 23일 수요일, 여느 때와 다르지 않게 아침에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하고 있었다. 개운하게 샤워를 하고 있는데 평소 나보다 조금 더 늦게 일어나는 와이프가 그날따라 일찍 일어났다. 그리곤 화장실 앞에서 빤히 나를 쳐다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아마 남자라면 많이들 공감할 것 같은데 그때가 가장 무섭다. 서늘하기도 하고. 나는 분명 샤워기로 물을 뿌리고 있는 것 같은데 식은땀인 것 같기도 한 이런 두려운 경험. 내가 뭘 잘못했는지 돌아보게 하고 고해성사를 해야 할지,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겠지, 고민하게 되는 순간이 바로 아무 말 없이 빤히 나를 지켜보는 와이프의 모습을 발견했을 때다. 

나는 가장 처량한 모습과 불쌍한 목소리로 와이프에게 "왜...?"라며 슬쩍 물어보았다. 와이프는 여전히 답이 없다. 나는 샤워를 마치고 몸에 물기를 닦으며 주마등처럼 지나가는 과거를 돌아보았다. 그리곤 화장실에서 나와서 와이프에게 다시 물었다. 와이프가 손에 무언가를 들고 있었는데 그게 무엇인지는 파악이 안 됐다. 

"두 줄이야."

평소 김밥을 좋아하는 와이프인데, 최근 김밥을 못 먹었기 때문에 예민해져서 아침부터 사 오라는 건지 의아했던 나는 다시 나긋하고 순수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 어..?"

"임테기, 두 줄 나왔다고!!!"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와이프는 손을 달달 떨며 나에게 임테기를 보여주었다. 정말로 선명하게 두 줄이 찍혀 있었다.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바로 우리에게 아이가 생겼다는 것이다. 믿기지 않았다. 나는 임테기를 한동안 계속 쳐다보았고, 와이프도 옆에서 어쩔 줄 몰라 했다.

와이프가 자고 일어나서 뭔가 느낌이 이상해서 아침에 테스트를 해봤는데 결과가 그렇게 나왔다는 것이었다. 일단 출근은 해야 되서 퇴근하고 같이 병원에 가보기로 했다. 출근해서도, 아니 출근을 하면서도 너무 들떠서 주변에서 무슨 말을 하는지, 내가 뭘 하는지 집중이 잘되질 않았다. 그저 빨리 8시간이 지났으면 좋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퇴근 시간이 다가와서 나는 빠르게 컴퓨터를 끄고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안타깝게도 현재 코로나19 때문에 와이프 혼자만 산부인과 출입이 가능했고, 나는 아예 밖에서 기다려야 했다. 밖에서 초조하게 기다리며 어떤 생각을 했는지도 지금 돌이켜봐도 모르겠다.

와이프가 검사를 다 받았다고 전화를 걸어와서 바로 와이프에게 달려갔다. 와이프는 손에 종이를 펄럭펄럭 들고 나에게 뛰어왔다. 그 뛰는 모습만 봐도 '나에게 좋은 소식을 빨리 전해주고 싶은 마음'이 보여서 행복했다. 

아니나 다를까, 임신 4주 차였다. 그 종이는 초음파 사진이었고, 아기집이 정말 조그맣게 보였다. 아기가 그 조그마한 곳에서 자라고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내가 어떻게 해줄 수 없다는 안타까움도 느꼈다. 아마 와이프를 보면서 앞으로 그런 감정을 더 느끼지 않을까.

아기는 뱃속에서 점점 커지고, 그에 따라 와이프는 점점 더 아파할 거고 힘들어할 것이다. 나는 감히 짐작하지도 못할 그 고통을 감수해야 하는 와이프를 보며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대신 아파해줄 수도 없고,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손을 잡아주고 안아주고 아프지 말라고 한마디 해주는 것밖에 없어 속상하다. 
 
초음파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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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세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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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옆에 든든하게 서 있을 것이다. 와이프가 아이를 낳을 때 내 머리끄덩이라도 잡으라고 머리를 기꺼이 내줄 것이고, 아이가 태어나면 내가 받아왔던 사랑만큼, 욕심부리지 않고 아이와 와이프에게 더 쏟을 것이다.  

나는 직책이 하나 더 늘었다. 남편 그리고 아빠.

덧붙이는 글 | 개인 브런치(https://brunch.co.kr/@b2tween/33)에 게재한 글입니다.


태그:#결혼생활, #부부,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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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 축구를 하다 그만두었습니다.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아들이 좀 더 나은 세상에서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복지정책을 공부하고 연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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