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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민주일반노동조합 소속 서울대학교 청소노동자들이 7일 오후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 행정관 앞에서 열린 ‘서울대학교 청소노동자 사망 관련 오세정 총장 규탄 기자회견’에 참석해 고인을 위로하며 묵념하고 있다.
 전국민주일반노동조합 소속 서울대학교 청소노동자들이 7일 오후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 행정관 앞에서 열린 ‘서울대학교 청소노동자 사망 관련 오세정 총장 규탄 기자회견’에 참석해 고인을 위로하며 묵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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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청소노동자가 또 사망했다. 지난 2019년 8월 서울대 제2공학관 휴게실에서 60대 청소노동자가 숨진 채 발견된 후 2년도 되지 않아 비슷한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서울대 청소노동자 이아무개(59)씨는 지난달 26일 서울대 여학생 기숙사 청소노동자 휴게실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이씨는 평소 지병이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2019년 서울대 청소노동자로 입사한 이씨는 여학생 기숙사 925동을 혼자 담당했다. 토요일이었던 사망 당일엔 주말근무에 맞춰 오전 8시께 출근해 쓰레기 수거 및 기숙사 청소 등의 업무를 했다. 이후 이씨는 오전 11시 48분께 딸과 통화를 했다. 이날 확인된 이씨의 정확한 행적은 딸과의 통화가 마지막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낮 12시께 퇴근할 예정이었던 이씨가 오후 10시까지 집에 돌아오지 않자, 남편은 경찰에 신고를 했다. 이후 경찰은 11시께 서울대 여학생 기숙사 925동에서 사망한 이씨를 발견했다. 경찰은 "극단적 선택을 하거나 타살 등 범죄 혐의점이 있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라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유가족과 전국민주일반노동조합(노조)은 7일 서울대 행정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청소노동자 이씨 사망과 관련해 학교 측에 대책 마련과 책임자 처벌을 촉구했다.

"'관악학생생활관' 영어와 한자로 쓰라"
 
▲ 서울대 청소노동자 또 사망... "'관악학생생활관' 영어·한자로 쓰라" 시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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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문순 전국민주일반노동조합 서울본부 법규정책국장이 7일 오후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 행정관 앞에서 열린 ‘서울대학교 청소노동자 사망 관련 오세정 총장 규탄 기자회견’에 참석해 청소노동자를 대상으로 치른 시험지를 공개하며 직장 내 갑질이 자행됐다고 지적하고 있다.
 박문순 전국민주일반노동조합 서울본부 법규정책국장이 7일 오후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 행정관 앞에서 열린 ‘서울대학교 청소노동자 사망 관련 오세정 총장 규탄 기자회견’에 참석해 청소노동자를 대상으로 치른 시험지를 공개하며 직장 내 갑질이 자행됐다고 지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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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는 지병도 없던 50대 여성이 갑자기 사망한 것은 노동 강도가 너무 센 데다, 극심한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씨가 근무한 기숙사 925동은 오래된 건물이라 엘리베이터가 없고 여학생 기숙사 중 학생수(정원 196명)가 가장 많은 것으로 알려진 곳이다. 

이로 인해 이씨는 4층 규모의 기숙사에서 발생하는 음식물과 재활용 쓰레기를 매일 계단으로 날라야 했다. 그가 하루 나른 쓰레기의 양은 100ℓ에 달하는 봉투 6~7개나 됐다. 더욱이 코로나19 사태로 비대면수업이 증가하면서 기숙사에 머무는 학생들이 증가했고, 발생하는 쓰레기 역시 폭증해 노동강도는 더욱 세졌다.

그런데 지난달 1일 안전관리팀장으로 배아무개씨가 새로 부임하면서 살인적인 노동강도 이외에 '직장 내 갑질'로 볼 수 있을 만한 일들이 자행됐다.

서울대 행정실 소속인 배 팀장은 부임과 동시에 '청소노동자들의 근무기강을 바로 잡는다'면서 매주 수요일 청소노동자 회의를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배 팀장은 남성 노동자에게는 '정장 또는 남방에 멋진 구두를 신고 올 것'을, 여성노동자들에게는 '최대한 멋진 모습으로 참석할 것'을 강요했다. 그러면서 청소노동자들이 회의에 단정한 옷을 입고 오지 않거나, 볼펜과 수첩 등을 가져오지 않으면 1점 감점해 인사고과에 반영하겠다고 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노조 등의 주장에 따르면, 배 팀장은 회의에 참석한 청소노동자를 대상으로 매주 시험을 보기 시작했다. 그는 시험이라면서 '관악학생생활관'을 영어와 한자로 쓰게 하거나 기숙사 개관년도 및 각 건물의 준공연도를 묻는 문제를 냈다. 그러면서 채점을 해 나눠주고는 누가 몇 점을 맞았는지 공개하는 등 노동자들이 모욕감을 느끼게끔 했다. 그는 또 청소노동자들에게 밥 먹는 시간까지 카카오톡 단체채팅방에 공개적으로 보고하라 하기도 했다. 

기자회견에 함께 한 고인의 동료 A씨는 "예고 없이 시험을 본 뒤 동료들 앞에서 점수를 공개해 당혹스러웠고 자괴감을 느꼈다"라고 밝혔다. 또 다른 동료 B씨도 "바퀴벌레 약을 버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경위서와 반성문까지 써서 화병이 났다"면서 "배움이 부족해 글을 잘 모르는데 무조건 강요만 해 너무 억울하고 화가 나 살 수 없는 상태"라고 한탄했다. 

"아내 사망사고로 근로자들 퇴직당하는 일 없기를"
 
전국민주일반노동조합 소속 서울대학교 청소노동자들이 7일 오후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 행정관 앞에서 열린 ‘서울대학교 청소노동자 사망 관련 오세정 총장 규탄 기자회견’에 참석해 학교 측에 대책 마련과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고 있다.
 전국민주일반노동조합 소속 서울대학교 청소노동자들이 7일 오후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 행정관 앞에서 열린 ‘서울대학교 청소노동자 사망 관련 오세정 총장 규탄 기자회견’에 참석해 학교 측에 대책 마련과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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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씨의 남편이자 함께 서울대학교에서 기계정비 노동자로 근무하는 이아무개씨도 이날 회견에 동참했다.

남편 이씨는 "아내가 하늘나라로 간지 10일이 지났는데 아직도 현실이라 느껴지지 않는다"면서 "아내는 경제지에서 오랜 시간 기자생활을 했고, (이후) 세네갈에서 엔지오(NGO) 활동을 하다 2017년 나와 함께 귀국했다. 이후 구립도서관 사서로 근무하다 2019년께 서울대에서 취업하게 됐다"라고 밝혔다.

"제 아내의 동료들이 이런 기막힌 환경에서 근로를 이어가선 안 된다는 마음으로 이 자리에서 섰다. 근로자는 적이 아니다. 강압적인 태도로 근로자를 대우하지 마라. 근로자는 근로를 하러 온 것이지 죽으러 출근한 게 아니다. 사업주는 근로자의 건강과 안전을 고려해 꼭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해달라."

박문순 노조 법규정책국장은 "고인의 사인은 급성심근경색 파열"이라면서 "직장 내 갑질로 인한 스트레스가 영향을 끼쳤다고 보고 유족과 함께 산업재해 신청을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날 노조는 "직장 내 갑질을 자행하는 관리자들을 묵인하고 비호하는 학교는 공식적인 사과와 함께 대책을 세워야 한다"면서 오세정 총장에게 항의 서한을 전달했다. 노조는 공동 산재 조사단 구성과 안전관리 팀장 파면 등을 요구했다.

서울대 "영어·한자 시험은 1000명 달하는 외국인 학생들 있어서"
 
전국민주일반노동조합 소속 서울대학교 청소노동자들이 7일 오후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 행정관 앞에서 열린 ‘서울대학교 청소노동자 사망 관련 오세정 총장 규탄 기자회견’에 참석해 학교 측에 대책 마련과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는 항의서한을 전달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전국민주일반노동조합 소속 서울대학교 청소노동자들이 7일 오후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 행정관 앞에서 열린 ‘서울대학교 청소노동자 사망 관련 오세정 총장 규탄 기자회견’에 참석해 학교 측에 대책 마련과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는 항의서한을 전달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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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관련해 서울대 관악학생생활관 관계자는 7일 오후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갑질 가해자로 알려진 배아무개 팀장에 대해 "여전히 업무를 수행 중"이라면서 "6월 1일부로 안전관리팀장으로 발령이 나 업무를 한 거다. 원래는 코로나 대응팀장이다. 지금도 (코로나 대응) 업무를 수행 중"이라고 말했다.

배 팀장이 청소노동자들을 상대로 영어-한자 시험을 보게 한 것에 대해 그는 "청소노동자나 경비들에 대해 직원교육이 한 번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면서 "서울대에는 천 명에 달하는 외국인 학생들이 있다. 일하는 '관악학생생활관'에 대해 영문 명칭을 알았으면 좋겠다는 차원으로 진행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시험 성적을 공개해 모욕감을 안겼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잘못 알려진 사실"이라면서 "1등과 2등, 3등까지만 공개를 했다. 개개별로 각각의 시험 성적을 공개한 적 없다"라고 항변했다. 사망 사고에 대한 학교 측의 공식 대응에 대해서는 "고인이 일했던 업무량과 면적 등에 대해 현재 자료를 정리 중"이라면서 "관련 내용을 공유하겠다"라고 덧붙였다.

한편 이날 기자회견 시작 전 노조와 관악학생생활관 관계자 사이에 충돌이 발생하기도 했다. 회견에 참석한 청소노동자들은 현장을 살피러 온 관계자를 발견하곤 "병원 장례식장도 한 번 안 온 사람들이 여기엔 왜 왔냐"면서 "사람이 죽었다. 무릎 꿇고 있어도 부족한데 가해자들이 뭐 잘했다고 여기에 와 감시를 하냐"라고 말했고, 이에 학교 측 관계자들이 항의하면서 고성이 오갔다. 

태그:#서울대, #사망, #노동자, #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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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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