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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2월 10일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일어난 김용균의 죽음 이후 2년이 되어서야 재판이 시작되었습니다. 재판정에는 원·하청 대표이사를 비롯해 14명의 피고(원·하청 법인 포함 총 16명 기소)와 그들이 고용한 대형로펌 변호사들이 나와서 그들의 책임을 부인하고 변호해주고 있습니다. 원청인 한국서부발전은 여전히 하청사에게 책임을 미루고 개인의 부주의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벌금 몇 푼에 진짜 권한 있는 책임자는 빠져나가고 말단 관리자만 처벌받는 관행을 바꾸기 위해 김용균 재판을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보고자 합니다. 재판 때마다 온라인 행동, 법원 앞 피케팅을 하면서 재판에 함께 참관해 주시는 분들의 글을 모아 차례로 싣고자 합니다. [기자말]
재판때마다 법원 앞에서 피켓을 들고, 재판 참관을 하고, 반복되는 사측 변호인단의 억지를 듣는다.
 재판때마다 법원 앞에서 피켓을 들고, 재판 참관을 하고, 반복되는 사측 변호인단의 억지를 듣는다.
ⓒ 김용균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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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용균 관련 형사재판 참관기를 쓰려는 지금, 새삼스럽지만 법이 무엇인지 고민한다. 인간이 모여 살기 시작하면서 나와 우리의 안전, 자유와 평등을 서로 보장하기 위하여 약속한 것이 법의 기원이라고 본다면, 법은 본질적으로 인간의 존엄을 지키고 존중하는 것을 내포하는 개념이다. 그렇다면 그 법이 무엇을 향하여야 하는지, 어떤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지 분명해진다. 인간이 인간으로 자유롭고 존엄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조력해야 한다.

다소 동떨어져 보이는 위 생각으로 글을 시작한 것은, 이 재판의 본질을 흐리는 모든 것을 걷어내고자 함이다. 이 재판의 쟁점은 사실 간단하다. 자유롭고 존엄한 인간 김용균을 일하다 죽게 만든 이들은 그 책임을 다하라는 것이다. 법의 용어로 바꿔 말하면, 피고인들에게 업무상과실치사와 산업안전보건법위반죄의 책임을 묻겠다는 것이다. 

사고 이후 산업안전보건공단이 재해조사를 한 결과, 사고 원인으로 ▲ 위험점에 대한 방호조치(덮개) 미설치, ▲ 2인1조 근무지침 미준수, ▲ 풀코드스위치(비상정지장치) 설치 불량, ▲ 점검 중 벨트 가동, ▲ 조도기준 위반 등이 제시되었다. 사용자가 조금만 신경을 써 인력과 자본을 투입했더라면 해결되었을 일들이다. 이에 검사는 한국서부발전주식회사(이하 한국서부발전)와 한국발전기술주식회사(이하 한국발전기술)의 책임자들을 피고인으로 법정에 세웠다. 

김용균과 근로계약을 체결한 한국발전기술은 근로계약상의 사용자로서 이 사건에 책임을 진다. 그런데 한국발전기술은 일에 관하여 독립적인 권한이 없었다. 노동자를 투입할 것인지부터 투입 시기와 인원, 벨트 가동시간, 심지어 재하도급 계약체결까지 모두 한국서부발전의 감독을 받았다.

기계의 안전만 점검해왔다

4회 기일 법정 화면에 김용균의 자격증이 첨부된, 인력 추가투입을 검토해달라는 내용의 요청서가 띄워졌다. 이어 한국서부발전이 검토 결과 적합-투입하라고 승인한 '인원등급 사정결과'도 보였다.

한국서부발전과 한국발전기술은 고용한 노동자의 안전을 고려하지 않았다. 신체 협착 등 위험 예방을 위하여 2인1조 근무가 원칙이다. 많은 기준이 2인1조로 근무할 것을 정하고, 안전검사기준에도 빠짐없이 등장하며, 당해 사업장에도 2인1조 이행에 대한 공문이 다수 있었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시행할 수 없었다.

한국발전기술은 서부발전의 검토승인을 통하여서만 노동자를 투입해왔는데, 용역비 계산 내역을 보면 애당초 2인1조로 운용될 수 없는 수의 인원만을 예정했기 때문이다. 이 사건 이후에야 용역비를 다시 계산하고 인원을 추가 투입한 점에 비추어 볼 때, 당시 회사는 2인1조로 운용할 의사가 전혀 없었다.

덮개 제거도 마찬가지였다. 유사한 벨트를 사용하는 다른 사업장에서 화재가 발생하자, 회사의 설비를 보호하기 위하여 덮개를 제거했던 사실이 드러났다. 신체 협착 위험이나 덮개 제거로 대량 발생할 분진에 관한 고려 없이, 기계가 정상 작동할 것인지만을 집중적으로 검토했다. 

물론 정기적으로 안전 검사는 했다. 실제를 전혀 반영하지 못했을 뿐이다. 2인1조 근무, 벨트 덮개 설치 점검 결과는 늘 '양호'했다. 모든 점검이 모두 이런 식으로 작업장의 노동환경을 전혀 반영하지 못한 채, 기계의 안전만을 점검해왔다.

이윤만을 추구하는 회사와 요식적인 안전 점검에 의해 2012년경부터 2017년까지 태안발전에서만 총 59명의 노동자가 재해사고를 당하였고, 그 대부분(57명)이 하청업체 소속이었다. 

이 사건으로부터 꼭 1년 전인 2017년 11월 11일에도 회전체 협착으로 노동자가 사망하는 사고가 있었다. 이 사고 후 새로 취임한 사장에게 올라간 안전보고서를 비롯한 많은 자료는 사고재발방지대책으로 2인1조 업무수행, 현장안전점검, 내부작업제외 등을 거론했다. 그러나 2012년부터 59명이 사고를 당하는 동안 계속 그래온 것처럼, 아무런 조치가 취해지지 않은 채 다시 1년이 흘러 김용균에 이르렀다.

노동 범죄 용인하는 사회

이 사건 당시 나는 분노했다. 그리고 출정이 제한되는 신입 변호사로서 방청석에 앉아 이 재판을 참관하는 지금은 참담하다. 법학과에 입학해 처음 공부를 시작하던 때부터 재판을 참관하는 지금까지, 강산이 변할 만큼의 시간이 지났다. 시간에 늘 비례하는 것은 아닐지라도 세상은 점차 나은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고 생각해왔는데, 법과 인권은 공장 앞에 멈춰있었다. 왜 아직도 우리는 일하다가 죽어야 하나? 

하루 6명 이상이 일하다가 죽는다. 우리나라의 산재 사망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위다. 사람들은 언론을 통해 비정규직, 하청업체, 공장 등 여러 현장 노동자들의 산재 사망 소식에 익숙해진다. 우리나라 사업장이 특별히 위험하기 때문일까? 우리나라 노동자들이 특별히 부주의하기 때문일까?

모든 일은 여러 가지 원인이 유기적으로 섞여 발생한다지만, 우리나라의 이 심각한 수준의 산재사망률은 '노동 범죄를 용인하는 사회'라는 점에서 연유한다고 생각한다. 

범죄가 만연한 사회에서 가해자들은 그것이 범죄인지조차 모른다. 피해자들은 그런 분위기 속에서 견디고 무뎌지다가 끝내 자신이 본래 가졌던 권리마저 잊어버리게 된다. '범죄는 하면 안 된다'라는 아주 단순한 규칙이, 다른 범죄와 달리 유독 노동 범죄 앞에서는 흐려진다.

노동자의 인권과 노동권은 어떤 경우에도 침해되어서는 안 될 헌법상의 기본권이지만, 국가 경제와 회사의 재산권·경영권 앞에서 쉽게 무시되는 것이다. 그렇게 경제발전과 산업 보호라는 추상적이고 실체 없는 논리가 국가의 비호를 받으며 노동자의 생명과 대등하게 비교되는 와중에, 여전히 노동자들은 이름 없이 일하다 죽는다. 

우리는 안다

앞으로의 세상에선 이 죽음의 고리를 끊어내야 한다. 노동 범죄가 파렴치한 범죄행위로 인식되어야 한다. 노동자 인권과 노동권이 오롯이 설 수 있어야 한다. 기업과 국가 그 무엇도 감히 노동자의 인권을 침해할 생각조차 하지 못해야 한다!

신입 변호사인 나는 미력하게나마 그런 세상으로 향하는 길에 일조하겠다는 다짐으로, 방청석에서 느낀 참담함을 의지로 치환한다. 글을 마치며 사측 변호인이 증인신문에서 한 말을 떠올린다.

"머리를 넣으면 바로 눈앞으로 벨트가 무섭게 지나가는데 어떻게 그 안에 머리를 넣을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했다. 발견 당시에도 어두운 작업장에서 핸드폰 플래시를 이용해서 문제 부위를 확인하고 있었던 김용균은 2개월 신입이었다. 안전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혼자 업무를 수행했다.

누가 그에게 '무섭게 지나가는' 벨트 아래에 몸을 넣어 사진을 촬영하도록 만들었는가? 우리는 안다.

덧붙이는 글 | 김용균재판 참관기 세번째 글은 민주노총 법률원 윤수빈 변호사가 작성해 주셨습니다.


태그:#김용균재판, #김용균, #중대재해, #화력발전, #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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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0월 26일 출범한 사단법인 김용균재단입니다. 비정규직없는 세상, 노동자가 건강하게 일하는 세상을 일구기 위하여 고 김용균노동자의 투쟁을 이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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