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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2월, 나는 간호학과를 졸업한 직후 대학병원 내과 병동에 입사하였다. 드디어 사회인이 되었다는 설레임과 떨림 등 만감이 교차했다. 이후 3월부터 신규간호사들이 하나둘 입사하기 시작했다. '동병상련'이라고 동기들은 서로를 의지하였고 퇴근 후 자주 만나 고충을 나누었다. 동기 중에는 나처럼 졸업 직후 입사한 신규 간호사가 있었고 병원을 옮긴 경력자 간호사도 있었다.

임상 간호사 업무는 특정 시간, 특정 환자에게 이루어져야 할 업무와 갑작스럽게 응급으로 발생하는 업무로 나뉜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신속하고 정확하게 해내는 것이었다. 그중에서도 신규 간호사인 나에게 가장 어려웠던 업무는 수액을 맞는 환자에게 혈관주사를 놓는 것이었다.

반드시 한 번에 성공해야 한다는 긴장감과 부담감 그리고 실패할 경우 환자에게 주는 고통과 간호사의 고충이 있었다. 환자의 성향에 따라서 재시도를 하지만 나에게는 참 힘든 일이었다. 나이가 많거나 혈관을 찾기 힘든 환자를 접할 때마다 마음속으로 파이팅을 외치며 애쓴 기억이 역력하다.

무엇보다 어려웠던 점은 내가 할 수 없거나 도움이 필요할 때 선배 간호사에게 부탁해야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어느 선배와 함께 일을 하는지 늘 미리 파악하기도 하였다. 소위 '무서운 선배 간호사'와 일을 할 때는 바짝 긴장해서 일을 하게 되었고 되도록 부탁을 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점심시간 무렵이었다. 나는 암 환자가 있는 병실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암 환자 대상 간호행위는 일반 환자보다 더 많은 주의를 기울여야 했기에 긴장과 부담감으로 진땀을 빼며 일을 하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때였다. 선배 간호사가 그 병실 문을 빼곰히 열고 말하였다.

"점심 먹으러 가자."

나는 당시 하고 있는 일이 금방 끝날 것 같지 않아서 이렇게 말하였다.

"선생님, 저는 아직 이게 안 끝나서 지금 못 가요."

그러자 그 선배 간호사는 나를 또렷이 바라보면서 다른 간호사를 향해 이렇게 말하였다.

"00야, 우리끼리 밥 먹으러 가자. 저런 애는 밥 먹을 자격도 없어."

너무나도 서러웠고 슬펐다
 
가슴에 상처로 남는 말
 가슴에 상처로 남는 말
ⓒ 김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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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이 지난 지금도 그 선배 간호사가 왜 나에게 그런 말을 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리고 나를 바라보던 그 냉소적인 눈빛과 그 차가운 한마디가 지금도 나의 가슴에 비수처럼 꽂혀있다. 그날 실제로 나는 점심을 먹지 못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리고 너무나도 서러웠고 슬펐다.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지금도 나는 그 선배 간호사의 말을 떠올리면 가슴이 두근거린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대학 시절부터 말로만 들어왔던 간호사의 '태움'이라는 것에 깊은 관심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나와 같이 그 해 입사한 간호사들은 3개월 정도의 수습 기간이 지나면 본격적인 트레이닝을 받아야 했다. 신규 간호사들이 선배로부터 고도의 트레이닝을 받는 것은 필수코스이고 그것을 통과해야만 비로소 독립할 수 있는 것이다. 그 과정 속에는 아마추어를 전문가로 키워낸다는 미명 하에 모든 행위가 묵인되었던 것 같다.

선배 간호사들은 자신들의 신규 시절 트레이닝을 이야기하며 누가 얼마나 더 울었고, 어떤 고충을 겪었는지 웃으며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들이 신규 간호사 시절 겪었던 '태움'은 그저 추억의 소재일 뿐이었다. 반면 나에게는 '태움'의 서막을 알리는 무서운 예고편과도 같았다.

'태움'은 부당하거나 부끄러운 것이 아닌, 지금의 간호사들을 지탱해온 고유의 조직 문화 또는 하나의 현상으로 우뚝 선 것 같았다. '태움'의 과정을 이겨내고 지금의 자리까지 온 선배들은 후배에게 그 '태움'을 대물림하는 것을 선배의 의무나 업적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나는 과연 이것이 '정상'적인가 의문이 들기 시작하였고 나의 성향상 그 혹독한 트레이닝을 버틸 수 없을 것으로 생각하였다.

나의 선택과 결정

시간이 갈수록 나의 출근길 발걸음은 무거웠다. 나름의 돌파구를 찾고자 쇼핑을 하고 나를 한껏 꾸며보기도 하였다. 퇴근 후 친구나 지인을 만나서 신나게 놀아보기도 했으나 마찬가지였다. 계속하다 보면 익숙해지고 괜찮을 거라는 부모님의 말씀은 더 이상 나에게 어떤 도움도, 의미도 없었기에 나는 스스로 '퇴사'라는 선택을 하였다.

그렇게 나는 첫 사회생활, 대학병원 간호사로서 마지막 나이트 근무를 하게 되었다. 우연이었을까. '밥 먹을 자격'을 운운하던 선배 간호사와 같은 조가 되었다. 그리고 마지막 근무를 마친 후, 평생 이 병원 근처에도 오지 않으리라는 생각과 함께 후련하면서도 묘한 기분으로 병원 현관을 나섰다. 그때, 선배 간호사가 나를 향해 말했다.

"이제 진짜 너랑 마지막이네. 근데 같이 밥이라도 먹어야 하는 거 아니냐."

'밥 먹을 자격'을 운운하던 그 선배가 나에게 한 마지막 말은 아이러니하게도 '같이 밥을 먹자'는 말이었다. 나는 그와 끝내 밥을 먹지 않았다. 나는 묻고 싶다.

"당신이 했던 그 한마디의 말이 누군가의 가슴에 평생 지울 수 없는 상처로 남아있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태그:#간호사, #태움, #상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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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속 크고 작은 이야기를 전하는 행복예찬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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