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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군 공무직 노조를 만들고 지키는 분들. 왼쪽부터 김나영 분회장, 전효태 부분회장, 장정운 조직국장.
 울릉군 공무직 노조를 만들고 지키는 분들. 왼쪽부터 김나영 분회장, 전효태 부분회장, 장정운 조직국장.
ⓒ 안건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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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전체가 화산암으로 된 '신비의 섬' 울릉도. 그곳에서 공무직으로 일하는 김나영씨는 노동운동의 불모지 울릉도에 공무직 노동조합을 세웠다. 두 번이나 노조 설립에 실패했던 환경미화원 노동자들이 '아마 힘들끼라' 했지만 공무직 노동자들은 결국 성공했고 단체협약까지 체결했다. 공무직 노동조합을 세우는 데 앞장섰던 김나영씨를 만나기 위해 4박 5일 울릉도 여행을 계획했다.

지난 5월 27일 오전 9시 20분에 강릉에서 배를 탔다. 세 시간 정도 파도에 흔들린 배가 저동항에 들어섰다. 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김나영씨가 차를 주차해 놓은 채 기다리고 있었다. 김나영씨가 소개해 준 숙소는 가파른 고갯길 넘어 도동항에 있었다. 10분 정도 걸려 도착해 '독도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아주 작은 식당인데 여행객들한테 인기가 있는 식당이란다. 금방 한 듯한 밥이 정말 맛있다. 다음 날 다른 간부들 두 사람과 같이 승용차로 울릉도 순환로를 돌아보기로 하고 헤어졌다.

나는 혼자 도동항 구경을 나갔다. 도동항으로 가 보니 조그만 공원이 있고 택시 정류장, 관광버스 정류장이 있다. 공원 한쪽에는 어르신들 대여섯 분이 윷놀이를 하고 있고, 팔각정 같은 곳에서는 바둑을 두고 있다. 늘어선 포장마차 가게에서는 "오징어 사이소! 맛난 오징어 사이소!"를 외치는 목소리가 들렸다. 해안가를 따라 산을 깎아 낸 길이 보여 가 보기도 하면서 어슬렁어슬렁 동네를 돌아다녔다.

숙소 뒤쪽으로 가 보니 울릉군청 건물이 있었다. '꿈이 있는 친환경섬 건설'이라고 써 있는 정문이 보였다. 정문 오른쪽 바위와 왼쪽 담벼락에는 공무직 노동조합이 걸어 놓은 플래카드 두 개가 보였다.

"임금협약 '반쪽 이행' 울릉군은 노동법 무시 공화국"
"노동조합과 성실 대화로 풀자고 하니 김병수 군수는 싸움을 걸고 있네!"


노동자의 쉼터
 
울릉군청 앞에 걸려 있는 현수막들. 이 현수막을 지키는 것도 투쟁이다.
 울릉군청 앞에 걸려 있는 현수막들. 이 현수막을 지키는 것도 투쟁이다.
ⓒ 안건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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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동에서 넘어온 고개 쪽으로 다시 걸어 올라가 봤다. 'ZEN'(젠)이라는 호프집이 보인다. 서울에서 김나영 분회장 페이스북을 보다가 이 호프집 사진을 봤다. 김나영 분회장이 운영하는 호프집인데 노조 활동을 한 뒤부터 문을 열지 못해 거의 폐업 상태라고 했다. 문에는 '노동자의 쉼터'라는 조그만 팻말이 붙어 있었다.

5월 28일 오전 10시, 숙소 앞에서 다시 만났다. 대기하고 있는 차에 탔더니 운전석과 조수석에 남자 둘이 있다. 오늘 나 때문에 일부러 나온 조합 간부들이다. 김나영 분회장이 소개를 한다. 운전대에 앉아 있는 분은 전효태 부분회장, 조수석에 앉아 있는 분은 장정운 조직국장이었다.

"오늘 평일인데 두 분은 일 안 하십니까?" 내가 물었다. 김나영 분회장이 대신 대답한다. "네, 제가 오늘 째라 그랬어요." 하하하! '째라'는 말이 재미있어 웃음이 나왔다. 차를 타고 가는데 김나영 분회장의 전화가 울렸다. 차는 갈림길에 들어선다. 김나영씨가 전화 통화하랴 길을 알려 주랴 바쁘다. 운전하는 이에게 말하는지 전화기에 대고 말하는지 분간이 되지 않는다. 통화가 끝났다.

"군위 끝났단다. 합의한단다. 내일. 타결한답니다. 그렇잖아도 군위 지부장이 꿈에 뭘 먹어요. '단식(투쟁)하는 사람이 뭐 먹나?' 했더니 이런 소식 들으려고 그랬나? 잘됐다."

군위군지부 공무직 노조는 지난 1월부터 공무직의 기간제 경력 인정 등을 요구하며 천막 농성과 노숙을 하며 투쟁을 시작했다. 전면 파업에 돌입한 지 46일째 만에 합의를 보게 된 것이다. 우리는 모두 잘됐다, 잘됐다 하고 그 소식을 반가워했다.

"아, 군위 끝났다니까 너무 다행이다. 역시 질긴 놈이 이기는 게 맞네. 거기는 바로 노조 시작할 때 총파업을 해 가지고, 근데 흐트러지지 않고… 그분들은 독기를 품고, 쪽팔려가 (파업을 접고 그냥) 못 들어간다카더라. 결의가 대단하시더라고."

"느이가 날 선봉에 세운 거 아이가"
 
김나영씨가 근무하는 울릉군 보건의료원. 울릉군은 거의 이렇게 비탈진 길에 건물이 있다.
 김나영씨가 근무하는 울릉군 보건의료원. 울릉군은 거의 이렇게 비탈진 길에 건물이 있다.
ⓒ 안건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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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는 오른쪽으로 바다를 끼고 울릉순환로를 달린다. "아, 저게 죽도예요?" "네." 바다에서 불쑥 솟아오른 듯한 돌산이 보인다. 관음도도 보인다. 울릉도에서 한 달만 살면 걸어서 가 보고 싶은 곳이다. 끝없이 펼쳐진 청록색의 넓은 바다를 바라보니 마음이 편안해진다. 내가 이렇게 호사를 누려도 되나, 할 정도로 풍경이 아름답다. 왼쪽은 가파르고 거친 화산암 산이고 오른쪽은 끝없는 바다다.

천부항이라는 곳에서 왼쪽 산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울릉도의 유일한 평지, 나리분지라는 곳으로 간단다. 화산 폭발로 푹 꺼진 곳이라 산들이 동그랗게 감싸고 있다. 이곳은 겨울이면 폭설이 내려 고립되는 마을이다. 나리분지 한가운데에 있는 산마을 식당에서 비빔밥을 시켜 먹었다.

우리는 성인봉으로 가는 오솔길을 걸었다. 숲속을 걸으면 몸속의 노폐물이 빠져나가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참, 김나영 분회장은 암 환자다.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분회장님, 암에 걸린 지 얼마나 됐죠?"

"1년 넘었어요. 3개월에 한 번씩 검진받고 있고 항암 약 먹고 있고… 제가 쪼만해도 힘이 있었거든요. 깡도 세고 힘도 좋고. '사람들이 다 오진이다, 다른 병원 가 봐라' 했는데. 혹을 발견한 게 2018년 11월, 그때 병원 가서 검사받아야지 했는데 먹고살아야 되니까 육지 병원을 못 갔어요.

2019년 1월에 노조 결성했거든요. 2월에 병원 가니까 암인 거죠. 노조가 암 투병하는 데 오히려 큰 힘이 됐었죠. 노조를 만들고 2020년 1월에 농성을 독하게 하고 정신없이 투쟁하고, 인터넷에서 노조 (관련 내용을) 검색하다 잠이 들었거든요. 근데 다시 그때로 돌아가도 하겠냐 해도 난 돌아갈 수 있어요. 노조는 누군가가 총대를 메느냐 안 메느냐가 중요한 거 같아요."


말을 나눌수록 참 대단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산에서 내려와 다시 차를 탔다. 나리분지를 떠나 울릉순환로로 들어섰다. 전효태 부분회장에게 물었다. "김나영 분회장님은 어떤 분이세요?" 전효태 부분회장이 잠깐 뜸을 들이더니 말했다.

"성질이 불같죠. 불의를 보면 못 참고… 인맥이 넓어요. 저는 처음에 싫어했어요. 반말도 했다가. 하하. 같이 있어 보니까 안 그러면 안 되겠더라고. 원래 그런 분이 아니었구나."

"그래서 느이가 날 선봉에 세운 거 아이가." 김나영 분회장이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소리를 질렀다. 우리는 또 한 번 웃었다. 어쩌면 다른 조합원들도 진작 김나영씨를 알아봤는지 모른다. 김나영씨가 분회장이 아니었다면 울릉도 공무직 노동조합의 역사는 어떻게 흘러갔을지 모르지. 

젊은이들은 육지로 나가고 싶어 한다
 
내가 묵었던 숙소가 있는 도동항 풍경.
 내가 묵었던 숙소가 있는 도동항 풍경.
ⓒ 안건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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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영 분회장은 스물세 살 딸과 열아홉 살 아들이 있다. 큰아이는 포항에 있고 작은아이는 대구에 있다. 남편 이야기는 한 번도 하지 않기에 조심스럽게 물어봤다.

"이혼했어요. 서른두 살에요. 제가 제일 잘했는 선택도 결혼이었고, 제일 잘했는 선택도 이혼이었어요. 하지만 자식들은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었겠죠. 혼자 기저귀도 안 뗀 놈 데리고 막 키우고 그랬는데.

오늘 아침에 생각했죠. 노조 한다고 뭐도 못 해 주고, 가게를 운영 못 하니까. 원룸 세도 못 주고 있거든요. 애들한테 밥 한 끼, 용돈 못 보내는 삶이 맞는 건지 하루에도 수십 번씩 마음이 그래요. 그래도 (노조는) 가야죠. 그래도 가야 되는 건 맞는데…"


당연히 해야 할 일이지만 고민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었다. 김나영 분회장에게 물었다. "분회장님, 이 두 분을 평가한다면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요."

"농성장에 유일하게 말 안 해도 오는 사람들. 알아서 그 시간 되면 오는 거예요. 어떤 이들은 일요일에 야구 가고 싶고 축구 가고 싶어 가죠. 농성장에서 농성하는 사람이 있는데 야구를 하고 축구를 하는가. 어떨 땐 배신감도 들죠. 이분들은 한결 같애요."

전효태, 장정운씨는 둘 다 결혼을 안 하고 혼자 산단다. "왜 혼자 사세요?" "마, 육지 손님이 다 데려가뿔고 없어요." 전효태씨가 장난스럽게 대답했다. "아, 그게 무슨 뜻이에요?" 장정운씨가 설명해 준다. "노래 있잖아요. '울릉도 트위스트'."

아! 노래 가사! '울렁울렁 울렁대는 처녀 가슴. 오징어가 풍년이면 시집가요. 육지 손님 어서 와요. 트위스트. 나를 데려가세요'. 지금 생각해 보니 울릉도 사람이 듣기엔 가사가 기분 나쁠 수도 있겠다. 아니, '데려가라'는 말도 성차별적인 시각이 담겨 있지 않나.

어쨌든 여기가 고향인 젊은이들은 모두 육지로 나가고 싶어 한다. 비가 계속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드디어 울릉도를 한 바퀴 돌았다. 여기저기 구경하면 며칠 걸리겠다. 사동항을 지나 다시 도동으로 왔다.

"노조 일이 이렇게 힘들 줄 몰랐죠"
 
김나영씨가 부업으로 운영하고 있는 호프집 ‘젠’. 이 젠에서 울릉군 공무직 노조가 탄생했는데 노조 때문에 지금은 거의 문을 못 열고 있다. 문 옆에 붙어 있는 작은 간판에 ‘울릉군 공무직 노동자의 후원의 집’이라고 써 있다.
 김나영씨가 부업으로 운영하고 있는 호프집 ‘젠’. 이 젠에서 울릉군 공무직 노조가 탄생했는데 노조 때문에 지금은 거의 문을 못 열고 있다. 문 옆에 붙어 있는 작은 간판에 ‘울릉군 공무직 노동자의 후원의 집’이라고 써 있다.
ⓒ 안건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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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휴업 상태인, 김나영씨가 운영하는 호프집 젠으로 들어갔다. 들어가 보니 여섯 명이 앉을 수 있는 테이블이 네 개 있었다. 안쪽에는 조그만 방이 있었는데 컴퓨터와 텔레비전이 있었고 책상이 두 개 있었다. 이곳이 공무직 노동조합이 탄생한 아지트였다니.

"죽기 살기로 살았어요. 노조 하면서 가게가 안 돌아가는 거죠." 한 달 매상을 물어봤는데 깜짝 놀랄 정도로 많았다. 노조 일을 안 했더라면 편하게 살 수 있었다는 말인데, 왜?

"노조 일이 이렇게 힘들 줄을 몰랐죠. 제 주변에 노동조합 일을 하는 걸 봤더라면 분회장 이런 거 하면 힘들구나, 투쟁하는 것을 봤다면 안 했을 거예요. 진짜 민주노총, 한국노총이 뭔지도 모르고 시작했다니까요. 처음 여기에 열네 명보다 더 많이 왔었죠. 2019년 1월에 여기에 다 앉았어요. 다들 저를 처음 본 거예요. 이들은 올 때부터 김나영이라는 존재를 다 알고."

노조를 전혀 모르던 사람이었는데 어떻게 민주노총을 선택했는지 물었다.

"역사를 봤을 때 민주노총은 노동자들이 힘을 모아서 세상을 바꾸려고 했는 건데 우리가 가야 하는 거는 여기 아니냐 생각했죠. 그때 울릉도에는 환경미화 공무직 노조를 만들려고 두 번 했는데 두 번 다 와해됐어요. 그래서 환경미화 노동자들을 끌어들이려고 했는데, 그들이 두 번 실패했기 때문에 우리를 보고 당연히 실패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느그들도 우리처럼 끝날 거야. 응원한다, 지켜보겠다'고 하더라고. 근데 안 끝났잖아요. 우린 투쟁도 했고 호봉제도 도입이 됐고."

덕분에 노조에 가입 안 했던 환경미화 노동자들도 단체협약을 적용받을 수 있게 됐다. 물론 잘된 일이지만 김나영 분회장은 노조에 가입 안 하는 노동자들에게 서운할 수밖에 없다. 조합원들이 뼈 빠지게 싸워 따내는 열매를 가만히 앉아서 받아먹기 때문이다.

"단체협약 생기면서 취업규칙이 많이 개선됐죠. 공무원들은 병가를 60일 쓸 때 월급이 나와요. 우리는 병가를 쓸 때 월급이 안 나왔어요. 작은 거지만 차츰차츰 좋아지고. 예전에는 공무원들이 우리를 부려 먹는 사람, 명령하고 따르는 사람…. 이젠 함부로 하면 안 되는구나, 노동조합이 있으니까 함부로 하면 노조가…. (공무원들이) 이런 거를 안 거예요. 아직은 멀었지만 그래도."

* [울릉군 공무직 노조 방문기 ②] "울릉도에 빛이 보인다는 생각이 들더라"로 이어집니다. 

덧붙이는 글 | <월간 작은책> 7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태그:#울릉군, #작은책, #김나영, #울릉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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