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에서 연락이 오면 일단 가슴이 철렁한다. 보통 기사 청탁을 받는 시민기자들은 기대감에 부푼다고 하는데, 내 경우는 반대다. 

이번에도 그랬다. '쿠팡 일용직 노동, 2년의 경험'(http://omn.kr/1qfhv) 연재를 쓰고 나서 쿠팡 관련 현안이 있을 때마다 의견 기사를 요청받곤 했다. 그 현안이란 대부분 쿠팡 노동자들의 열악한 현실과 연관돼 있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쿠팡 덕평물류센터는 17일 새벽 화재가 발생했고, 이 화재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김동식 광주소방서 119구조대 구조대장이 순직하고 말았다. 당시 물류센터 현장에 있던 노동자들의 증언도 함께 쏟아져 나왔다. 먼저 휴대폰 반입을 금지해 제대로 된 신고를 할 수 없었다는 증언이 나왔다. 스프링클러 작동이 8분 정도 멈췄다는 소방재난본부의 발표 등을 미루어 보아 전형적인 인재가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쿠팡불매'라는 해시태그가 SNS에 도배되기 시작했다. 쿠팡 탈퇴와 관련한 인증 게시글이 수없이 올라왔다. 나도 그 인증 대열에 합류했다. 더 쿠팡을 이용하기 어려웠다. 

내가 쿠팡에 기대를 걸었던 이유
 
쿠팡 탈퇴 인증
 쿠팡 탈퇴 인증
ⓒ 김상현

관련사진보기

 
나는 지난해까지(2020년) 쿠팡 일용직 노동자였다. 그래서인지 쿠팡이라는 기업에 애착이 더 갔고, 이용해줘야 한다는 생각도 갖게 되었다. 그 연장선상에서 쿠팡이 지난 3월 뉴욕증시에 상장된다고 했을 때 내심 내가 이바지한 부분도 있지 않나 싶었다. 그 정도로 나는 쿠팡에서 내가 한 노동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만큼 쿠팡이 빨리 노동친화적인 기업으로 탈바꿈하기를 소망했다. 그 때문에 실망스러운 부분이 있어도 쿠팡의 대응을 인내심을 갖고 지켜봤다. 쿠팡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자신들의 권리를 행사하기를 바라는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커지는 것도 내가 쿠팡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그리는 데 영향을 준 중요한 요소였다. 
그래서 많은 사건사고에도 불구하고 나는 쿠팡의 사용을 줄이거나 끊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 쿠팡 덕평물류센터 화재를 지켜보는 과정에서 내 인내심은 한계에 다다랐다. 그 중 가장 충격적인 사건은 쿠팡 김범석 의장 소식이었다. 화재가 발생한 날 공교롭게도 사임이 공개되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처음 그 소식을 접했을 때 나는 김범석 의장이 그간의 노동자들의 사망과 관련 '모든 책임을 지고' 모든 직위에서 물러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그는 "글로벌 경영에 전념한다"면서 사퇴했다. 김범석 의장은 '한국 쿠팡'에만 한정해 사임했고, 미국 쿠팡 이사회 의장직은 유지하기로 했단다. 

이렇게 되면 어떻게 되는가? 그는 바로 내년 1월 시행될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된다. 김 의장은 이제 쿠팡에서 일어나는 중대재해의 책임자가 아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가 지난 21일 발표한 성명에서 김 의장을 두고 "가장 무책임한 행보"라고 비판한 것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쿠팡 측은 '김범석 의장이 이미 지난 5월 31일 사임했고, 공개 시점이 공교롭게 화재가 발상한 날'이라고 해명하고 있다. 내가 그의 사임을 비판하는 이유는 단순히 시기가 비극적인 인재와 겹쳤다는 데 있지 않다. 쿠팡의 최고책임자가 이번 화재를 포함해 그간의 인재를 책임지지 않는 걸 비판하는 것이다. 


내 선택은 #쿠팡탈퇴
 
지난 17일 화재가 발생한 경기도 이천 쿠팡 덕평물류센터가 5일이 지난 21일에도 연기가 나고 있다.
 지난 17일 화재가 발생한 경기도 이천 쿠팡 덕평물류센터가 5일이 지난 21일에도 연기가 나고 있다.
ⓒ 이희훈

관련사진보기

 
일련의 사건들을 보면서 쿠팡 노동자로서 가졌던 나의 자부심과 애정도 동시에 날아갔다. 노동자들은 쿠팡의 성장을 견인하기 위해 지금도 일하고 있는데, 최고 책임자는 더 안전한 작업환경을 구축하는 대신 법을 회피하는 방향의 선택을 했다. 

내가 이 사건에서 느낀 가장 큰 감정은 '배신감'이다. 쿠팡은 나의 노동, 그로 인한 나의 자부심, 쿠팡이라는 기업에 대한 애착을 모두 배신했다. 결국 나도 #쿠팡탈퇴에 동참하기로 했다. 

나의 쿠팡 불매운동이 실질적으로 어떤 성과를 거둘지 알 수 없다. 오히려 쿠팡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수익을 줄일 수 있다는 우려도 알고 있다. 그럼에도 쿠팡을 탈퇴하고 인증까지 한 이유는 더는 그 기업에 무한한 신뢰를 줄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쿠팡 불매운동이 번져가고 있지만, 쿠팡 이용자는 여전히 많다. 아마 이 시간에도 끊임없이 쿠팡에서 무언가를 주문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이는 쿠팡 물류센터 노동자들도 분주히 움직여야 한다는 소리다. 더욱이 대형 물류센터가 불타버렸으니, 다른 물류센터는 더 바빠질 가능성이 높다. 

공공운수노조 성명에 따르면 쿠팡은 외부적으로는 '직원들의 임금을 정상 지급'한다고 했지만, 덕평 물류센터에서 일하던 일용직 노동자들이 다른 센터로 출근 지원을 하자 채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또한 전환배치를 강요하고 이를 거부하면 퇴사처리를 하겠다고 했단다. 

'쿠팡에 노동조합 배송이 시작되었습니다' 

이제 누구를 믿어야 할까? 지난 7일 공공운수노조 전국물류센터지부 쿠팡물류센터지회는 노조 출범 기자회견에서 '쿠팡에 노동조합 배송이 시작되었습니다'라는 문구를 내걸었다. 

나는 이 문구를 보고 감동했다. 쿠팡이 배달 업계에 혁신을 일으켰다면, 쿠팡 노동자들은 노동환경 개선이라는 혁신을 일으키길 기대한다. 회사의 변화를 그저 기다리기보다, 변화라는 미래를 노동자들이 스스로 만들었으면 좋겠다.

노동조합 덕분에 노동자들이 더 좋은 일자리에서 일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그로인해 아마존의 제프 베이조스처럼 국제노총 선정 최악의 보스에 쿠팡 최고책임자가 오르는 일이 없기를 희망한다. 

나는 비록 쿠팡은 탈퇴했지만, 쿠팡 물류센터 노동자들과 노동조합에 대해서는 끊임없이 애정을 가지고 지켜보려고 한다. 이들이 쿠팡의 노동조건을 개선해서 쿠팡을 괜찮은 기업으로 성장시키기를 바란다. 그런 날이 온다면, 나도 기꺼이 다시 쿠팡에 가입할 의사가 있다. 

태그:#쿠팡, #쿠팡탈퇴, #노동
댓글9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