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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일부부담금 산정특례제도'(아래 산정특례제도)는 2005년 9월, 국민건강보험법 제44조에 의거해 진료비 본인부담이 높은 암 등의 중증질환자와 희귀질환자, 중증난치질환자에 대해 의료비의 본인부담률을 경감해주는 제도다.

우리나라에서 150만 명 정도가 앓고 있는 건선환자에 대한 산정특례 적용은 중증에 한해 2017년 6월부터 시행됐다. 2021년 6월까지 산정특례제도를 신청한 중증건선환자는 4500명으로, 2만2000명 정도가 중증건선환자임을 감안하면 낮은 수치다.

의료비 혜택이 주어지는데도 중증건선환자들의 산정특례제도 신청률이 낮은 이유에 대해 한국건선협회 김성기 회장은 "진입 장벽률이 높다는 데 원인이 있다"고 말한다.

그는 "강직성척추염, 크론병 등의 경우는 보험급여 기준과 산정특례 등록 기준이 동일한 데 반해 중증건선은 보험급여 기준보다 산정특례 등록 기준이 훨씬 더 엄격하다. 중증건선은 일상생활이 어려울 정도로 매우 고통스러운 질환인데 신약인 주사 치료제로 정상적인 삶이 가능해졌다. 이런 신약들이 고가여서 본인부담률이 60%인 보험급여 적용만으로는 치료비 부담을 견딜 수 없다"고 토로했다.

중증건선 치료 중 날벼락…재등록 하려면 상태 악화 증명해라?

중증건선은 단순한 피부 질환이 아니라 면역체계 이상으로 전신에 염증이 생기는 질환으로 사망위험도 높고, 우울증과 자살률이 암환자의 경우보다 높다고 한다.

22년째 건선을 앓고 있는 장은정(44)씨는 지난 17일 서울 청어람홀에서 열린 제23회 환자샤우팅카페에서 중증건선환자로 겪는 어려움과 산정특례제도의 불합리함을 지적했다.

장씨는 "스무살 무렵 사회생활을 해야 하는 시기부터 중증건선이라는 병을 앓았다. 중증건선은 몸 전신은 물론이고 내부 장기에 생기기도 하고, 심할 경우는 관절이 접히는 부위가 찢어지기도 한다"라며 "고개를 들거나 돌릴 수도 없고, 팔을 움직이거나 걷는 게 불가능한 경우도 있다. 무엇보다 힘들었던 건 전염병인줄 알고 피하거나 대놓고 싫은 기색을 표현하는 사람들의 시선이었다. 발병 이후 왕따처럼 외롭고 고통스럽게 살았다"고 말했다. 그의 눈시울은 붉어져 있었다. 
 
중증건선환자를 대표해 제23회 환자샤우팅카페 무대에 선 장은정 씨는 중증건선환자에게 높은 장벽인 산정특례제도의 신규등록 및 재등록 문제에 대해 지적하며 개선을 요청했다.
 중증건선환자를 대표해 제23회 환자샤우팅카페 무대에 선 장은정 씨는 중증건선환자에게 높은 장벽인 산정특례제도의 신규등록 및 재등록 문제에 대해 지적하며 개선을 요청했다.
ⓒ 한국환자단체연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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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은정씨는 신약인 주사 치료제로 '새로운 삶'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삶 자체가 개선된 경험에 대해서도 털어놨다.

그는 "건선환자들이 받는 광선치료를 하려면 종합병원이나 대학병원에 가야 하는데 그러려면 직장생활 자체가 불가능했다. 그나마 효과라도 있으면 하겠지만 저 같은 경우는 부작용이 커서 치료를 할 수 없는 상태였다"라며 "그래도 죽으라는 법은 없는지, 신약으로 나온 주사 치료제 효과가 좋아서 이렇게 사람들 앞에 나설 수 있는 상태가 됐다. 그러나 보험적용을 받아도 한 달 주사값만 150만 원을 내야 해 치료를 받을 수 없을 정도로 부담이 됐는데 2017년에 산정특례 적용을 받게 되면서 지속적으로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됐다"라고 말했다.

산정특례 대상이 된지 5년이 지나면 재등록을 해야 한다. 중증건선환자들은 재등록을 하려면 치료를 중단한 후 상태가 호전됨을 '증명'해야만 가능하다. 장씨와 같은 중증건선환자들은 이와 같은 상황이 '인권침해나 다름 없다'고 표현한다.

그는 "저는 내년에 재등록을 하려면 치료를 중단해야 하는 시점에 있다. 아들이 수영장에 함께 가는 걸 좋아하는데 치료를 중단하면, 또 건선이 올라올 텐데 벌써부터 두렵다"라며 "건선환자들이 매년 하는 얘기가 있다. 다른 사람들처럼 평범하게 여름에 반팔이랑 반바지 입고 외출하고 싶다는 거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환자샤우팅카페에 자문단으로 참여한 중앙대 의대 예방의학과 이원영 교수는 "만성질환자 대부분이 그렇듯 건선환자도 면역억제제를 쓰기 때문에 꾸준하게 약물 농도를 유지해야 하는 것이 중요하다"라며 "중증건선도 어려운 병인데 치료법이 발달해서 일상생활이 가능해졌고, 그렇다면 나중에 더 큰 병이 생기기 전에 '3차 예방' 차원에서 적기 치료해 병이 더 이상 진전되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그는 "중증환자들의 정상적 사회생활을 목표로 하는 것이 정책적으로 옳은 방향이라고 본다"고 설명했다.

그간 산정특례제도의 혜택을 받아 치료가 잘 돼 건선환자들을 대표해 무대에 설 수 있었다고 하는 장은정씨는 아들이랑 한 약속을 떠올리며 눈물을 삼켰다.

"치료 중단하면 건선이 다시 올라올텐데 아이한테 어떤 말을 해줘야 할까 고민입니다. 아이와 치료 잘 받아서 같이 수영장 가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목소리 높여 얘기하고 싶어요.

정부와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처사는 환자를 사람으로 보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편하게 대중목욕탕이랑 수영장에 가게 해달라는 것이 누군가의 소원이 될 수 있을까요? 정부 당국에서는 다시 한 번 생각해 주시기 바랍니다."

 
▲ 산정특례제도 관련해 중증건선 환자의 신규등록 시 형평성 문제와 재등록 시 반인권성에 대해 샤우팅한 장은정 씨 영상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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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환자샤우팅카페, #중증건선, #산정특례제도, #한국건선협회, #한국환자단체연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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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노동자. 주로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글로 풀어내는 작업을 해왔으나 암 진단을 받은 후 2022년 <아프지만, 살아야겠어>, 2023년 <나의 낯선 친구들>(공저)을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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