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우리 연구회의 산수유 작업 두 번째 날이 밝았다. 이번엔 남편도 나와 함께 7시 45분에 마을회관 앞에 도착했다. 마당에는 갑자기 혈색이 좋아진 작업반장이 홀로 이리저리 서성대고 있었다. 우리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자, 다만 하나의 서성이는 몸짓에 지나지 않았던 반장은 우리에게로 와서 폭죽처럼 터뜨리며 피어난 산수유 꽃이 되었다.

약속이 8시인데, 8시 30분이 되자 반장의 얼굴은 붉으락푸르락 산수유 열매로 변했다. 그때까지 모인 인원이 겨우 8명이었기 때문이다. 반장은 휴대전화기를 향해 온화한 목소리로 협박조의 내용을 거침없이 내뿜었는데, 형식과 내용의 조화와 일관성을 추구하는 평소의 가치관과는 전혀 다른 통화였다.

분노한 작업반장

반장이 자신보다 연배가 높은 하씨 아저씨의 멱살을 끌고 마을회관으로 돌아왔을 때, 18명의 인원이 모두 모였고, 시간은 9시를 조금 지났다. 모든 회원을 마당에 도열시킨 반장은 눈물을 살짝 글썽이며 입을 열었다.

"이제부터 작업반장으로서 잠깐 말을 놓겠다. 한마디만 하겠다. 작업반장은 여러분에게 실망했다."

남편이 작업반장의 눈을 피해 옆에서 속삭였다.

"반장님 장교 출신인가?"
"왜?"
"저건 군대에서 많이 들었던 도입부거든."


나는 웃음을 참으며 나지막하게 대꾸를 해줬다.

"반장님 군대 면제야."

반장의 훈계가 끝난 것은 30분이 지나서였다. 만약 여름이었다면 연세가 높으신 분들은 오와 열이 맞춰진 상태에서 옆으로 픽픽 넘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반장은 관대한 분이었다. 연설이 10분 정도 지나자, 서 있기 힘든 사람은 대열을 이탈하지 말고 제자리에 앉으라고 했으니.

어쨌든 반장의 훈계에 가까운 연설은 지극히 이치에 맞는 말이었고, 인간이라면 따라야 할 도리에서 한 치의 어긋남도 없었다. 따라서 인간인 회원들은 누구도 그의 말에 반박하지 못했다. 심지어 7시 45분에 마을 회관에 도착한 나 역시 뭔가 큰 잘못을 저지른 듯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

작업반장의 당근과 채찍에도 불구하고 작업은 전날과 별로 다를 게 없었다. 당근의 개수는 너무 적었고 채찍은 많이 아팠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전날의 작업에 대한 반성과 보완의 시간을 가지지 못했던 게 가장 큰 원인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약속 엄수에 너무 방점을 찍어대는 바람에, 반장은 작업 개선에 대한 회원들 서로 간의 토론 시간을 놓쳐버린 것이다. 오전 내내 작업은 허둥지둥이었고 작업의 동선은 뒤죽박죽이었으며, 기계는 씨 없는 열매 대신 금속성의 비명을 규칙적으로 생산했다.
  
절대고수들이 선별한 산수유 열매
 절대고수들이 선별한 산수유 열매
ⓒ 노일영

관련사진보기

 
"토론 좀..." 반기를 들다

마을기업을 제안한 분이 잠시 토론을 하자고 말한 것은 각자의 집에서 점심을 해결하고 다시 모였을 때였다. 다들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특히 깔개조와 털기조는 자신을 그 조에 속하게 만든 반장에게 노골적인 반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깔개조는 반장을 바닥에다 깔아버리려 했고 털기조는 바닥에 뻗은 반장의 이빨을 털어버리고 싶은 듯했다. 마을기업을 제안한 분이 의견을 수렴해서 입을 뗐다.

"작업이 이런 식으로 계속 진행된다면, 모두 지치기만 할 뿐 생산성은 전혀 향상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이게 무슨 올림픽도 아니고, 참가하는 데 의의가 있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오늘 저녁 정도에 수확기가 도착한다고 하니, 오후에는 다시 작업 전략을 세워서 내일부터 수확기를 사용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게 내 잘못이란 말인가···요?"


반장은 반말을 하려다가, 아무튼 위축된 말투였다.

"문명은 실패를 극복하고, 그런 경험을 누적하면서 만들어졌던 거 아닐까요. 우리 연구회처럼 행동했다면 인류는 문명사회에 접어들지 못했을 겁니다."

문명사회 구축에 실패한 지도자! 반장은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당황한 표정을 감추려 했으나 그것마저 실패했다. 키가 작은 반장의 얼굴을 모두 내려다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장은 세상의 이치와 인간의 도리에 능통하신 분. 결국 회원들에게 일일이 머리 숙여 사과의 말을 전한 뒤, 새로운 작업 전략을 의논하기 시작했다.

1차 산업혁명에서 4차 산업혁명으로 이어질 때까지 엄청난 기술을 토대로 수많은 기계가 만들어졌고, 내가 사용해보지 못한 기계들도 많을 테지만, 이 시대 최고의 기계를 하나 뽑으라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과실 수확기라고 대답할 것이다.

새롭게 펼쳐진 신세계

예초기에 부착하는 이 기계는 하나의 신세계였다. 최저가 9만 5000원에서 최고가 14만 9000원의 폭넓은 가격 스펙트럼을 자랑하는 이 기계를 통해 우리 조합은 한 단계 강제로 업그레이드되었다. 생산성 곡선의 가파른 상승 따위가 문제가 아니었다.

일단 비주얼적인 면에서 회원 모두 자신감을 회복했다. 손으로 열매를 딸 때는 도로에 차가 지나가면 다들 얼굴부터 가렸다.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 농촌이 6차 산업의 선봉에 선 이 막중한 시기에, 네안데르탈인처럼 채집 경제에 종속되어 있었으니 다들 자신의 존재를 숨기고 싶었던 것이다.
  
예초기와 과실 수확기의 결합
 예초기와 과실 수확기의 결합
ⓒ 노일영

관련사진보기

 
그런데 농촌에선 아주 소중한 장비라 할 수 있는 예초기 앞에다 이제 과실 수확기까지 부착하게 되었으니, 예초기와 수확기의 결합은 6차 산업을 선도할 최첨단의 기계로 느껴진 것이다. 사실 최첨단의 기계가 아니라도 좋았다. 그저 맨손과 나뭇가지 같은 도구에서 벗어난 것만 해도 다들 흥분으로 가슴이 벅차올랐기 때문이다. 우리는 원시인이 아니라 문명인이다, 이런 느낌이었다.

작업 3일 차부터 모든 것이 획기적으로 변했다. 수확기는 열심히 나무를 흔들어댔고, 운반조는 깔깔거릴 시간도 없었고, 선별조는 거의 공중부양의 상태로 작업에 임했으며, 산수유 제피기에 길들여진 기계조는 침묵 속에서 몸을 움직였다. 나 혼자뿐인 세척조가 바빠지자 깍두기인 남편이 거들기 시작했는데, 아무리 좋게 봐주려고 해도, 이 남자는 농촌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어쨌거나 그제야 산수유나무는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있었다. 산수유나무는 마을 출신 독지가 한 분이 동네 살림에 보탬이 되라고 심었건만, 그동안 동네의 갈등에 보탬이 된 기구한 팔자였다. 나무는 꽃과 열매 때문에 가끔 주목을 받았을 뿐, 농부의 관점에서 보자면 논밭의 작물에 괴상한 그림자를 드리우는 심술궂은 존재로 여겨졌다.

물론 산수유나무는 처음에 마을로 와서 대지에 뿌리를 내릴 때만 해도 야심만만했다. 내 열매로 저 아저씨의 낫도 사주고, 이 아줌마의 자식들에게 용돈도 좀 주고, 마을 잔치 때 묵직한 금일봉도 건네고, 뭐 좀 더 해줄 것 없나, 이런 마음가짐이었다.

하지만 산수유의 야망은 시대를 잘못 만났다. 자신의 꿈을 펼치려면 공동체의 도움이 필요했는데, 마을은 존재하지만 공동체는 사라지고 있는 그런 시점이었다. 마을 주민들의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각자의 농사일을 하기도 벅찬 시기에 접어들었으므로 산수유나무의 소망은 무모한 야욕이 돼버린 것이다.

500그루가 넘는 산수유나무의 열매를 털어서, 말리거나 효소를 담고 식초를 만드는 모든 작업에는 협동체의 바지런한 손길이 필요한 법이다. 더구나 산수유 열매의 씨앗에는 독성이 있어서, 차의 재료로 만들든 효소나 식초로 만들든, 무조건 씨를 제거해야 한다. 그런데 산수유 제피기가 없다면, 이렇게 씨를 빼는 일은 바늘구멍으로 낙타를 뽑아내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작업이다.

산수유나무 오욕의 역사

아무튼 산수유나무는 거의 20년 동안 마을에서 애물단지 노릇을 톡톡히 했다. 이 열매들을 마을 공동의 소득원으로 만들 구심점이 없었던 터라, 주민들은 자신이 먹을 정도만 조금씩 땄고, 열매의 대다수를 겨우내 나무에다 남겨 두길 고집했다.

결국 봄이 올 때까지 산수유나무는 감시의 대상이었다. 누군가 산수유 열매에 다가가면, 어디선가 어김없이 이런 내용의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거기, 누군데 우리 마을 재산에 손을 댈라 카노!"

산수유 열매는 우리 마을의 경제적 재산이 아니라 관상용 자산이었다. 마을 주민들 사이에는 열매를 한 가구당 딱 한 번 따야 한다는 암묵적 규칙이 있다. 이 규칙을 깨는 순간 어떤 방식으로든 처벌의 순간이 닥쳐온다.

가장 흔하지만 강력한 처벌이 도둑질이나 하는 시시한 인간으로 회자되는 것이다. 산수유 열매를 손에 한줌 정도만 땄다고 해도, 농번기가 되면 잊히지만, 농한기에는 두고두고 좀도둑으로 입방아에 오르내려야 한다.

그래서 언젠가부터 나는 겨울이 되면 산수유나무 주변에는 아예 얼쩡거리지 않았다. 주민의 대부분도 나와 비슷하게 행동했다. 산수유 열매는 눈앞에 있는데, 손만 뻗으면 쥘 수 있는데, 남자한테 참 좋은데, 남자한테 정말 좋은데, 어떻게 표현할 방법은 없는데, 직접 말하기도 그런데, 금단의 과실이었다.

그러다 보니 내가 가질 수 없는 산수유 열매를 누가 따 가는 걸 다들 견딜 수 없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이제는 이 모든 구시대의 악습이 사라지고, 협동과 공동체의 가치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이 생성되기 시작하는 듯했다. 산수유나무의 소망이 실현되기 일보 직전이었다.

사실상 과실 수확기와 산수유 제피기 같은 기계의 승리였다. 왜냐하면 우리는 산수유 작업을 하는 도중에 분열과 내분에 빠져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인간이 진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을기업의 회원들이 기계에게 진 것이다.

댓글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