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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초의 농촌 모습은 상당히 대조적이다. 같이 누워있는 논바닥인데도, 한쪽은 논물 가득 찬 들판에 벼 모종이 일렬종대로 앉아 있다. 또 한쪽은 가을날 황금 벌판을 모방한 누런 보리대가 무거운 낟알을 힘겨워한다. 오늘도 양면의 얼굴을 한 논 들판을 가로지르며 군산의 변방, 옥구의 한 농가에 도착했다. 일정에 없었던 농촌 봉사를 하자고 갑자기 연락을 받았다.

"자, 여기 밀짚모자, 장갑, 있어요. 80대 노인분이 갑자기 병원에 입원했는데, 병석에서도 계속 당신 밭에 있는 참나물, 양파, 경종배추씨앗 걱정만 한대요. 동네 이장님이 센터에 의뢰했어요. 봉사자들이 그곳에 가서 밭 정리도 하고, 필요한 나물이나, 부추 가져가도 좋다고요."

군산시자원봉사 센터의 팀장이 말했다.

근거리에 있는 시댁도 벼농사와 과수원을 하는데, 해마다 일손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는다. 특히 요즘은 농촌에서 '젊네'라고 하는 나이 평균 60대를 넘어 70살을 먹어도 여전히 실버 청년이라는 소리를 듣는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도저히 알 수 없는 세상 나이다. 그럼에도 나이 80살은 농사지어도 될 만큼의 체력과 건강을 답보하지 못한다. 4년차 텃밭지기를 하다 보니, 농촌생활을 하는 사람들의 연령과 건강한 삶의 모습을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다.

트럭을 타고 논길, 밭길을 지나며, 봉사자들과 이런저런 세상 얘기를 했다. 군산에서 봉사 활동의 대모 격인 김영림(희망틔움단장)님은 말 그대로 별의별 활동에 참여했다고 했다. 뉴스에 나오는 큰 사건의 자원봉사활동은 기본이고, 약자에게 힘이 될만한 활동을 많이 했다고 주변인으로부터 자주 들었다. 자원봉사센터 1365에 기록된 그녀의 1만 시간 이상의 봉사활동 시간만 봐도 그녀의 남다른 봉사정신을 충분히 알 수 있다.

"요즘에 하는 봉사활동이 뭐가 힘드냐. 예전에는 몸으로, 손발로 하는 활동에 너나없이 참여했는데, 지금은 머리만 굴리고, 땀 흘리는 것은 아예 하려고도 안 한다. 그러니 농촌에서 누가 노인들을 도와주냐. 자식들도 떠나 살면서 부모가 해주는 먹거리만 가져가고. 하루 일당이 올라도 사람을 구할 수가 없다고 농부들이 한숨만 짓지. 너도 바쁘게 사는 사람인 줄 알아. 그래도 얼른 가서 밭 정리 좀 해주자."

이렇게 말하는 김 단장의 모습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80대 노인 수혜자의 텃밭정리 올 가을 김장용 조선파 씨를 봉사자들이 정리하는 모습
▲ 80대 노인 수혜자의 텃밭정리 올 가을 김장용 조선파 씨를 봉사자들이 정리하는 모습
ⓒ 박향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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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코로나19 이후 농촌에서 종종 보았던 외국인 근로자들의 입국 차질로 농촌 일손 부족 현상이 더해졌다고 했다. (사)군산시자원봉사센터(이사장 황진)는 지난 5월부터 6월까지 3차에 걸쳐 군산시 농업축산과 동네 이장의 추천으로 옥구읍에 있는 취약 농가를 돕고 있었다. 블루베리 하우스 정리, 경종배추 씨받이, 양파 캐기 등의 농촌봉사활동의 마지막 3차에 내가 합류한 것이다.

정리할 밭은 생각보다 작았지만 각종 작물들이 옹기종기 빼곡했고, 웃자란 작물들과 풀들이 집 안마당을 덮고 있었다. 병원 생활을 하고있는 팔순 노인의 힘으로는 한두 발자국도 내딛지 못하고 풀 속에 주저앉을 것이 분명했다.

오죽했으면 동네 이장이 나섰을까 싶었다. 경험 많은 김 단장의 지시대로 마늘, 쪽파, 참나물, 부추, 배추씨앗대 등을 정리하는데, 정말 땀이 비 오듯 했다. 사무실 그늘 속에만 있다가 사우나탕을 능가하는 더위의 참맛을 제대로 느꼈다.

뿌듯한 마음에, 신선한 농산물까지 한아름 

함께 한 봉사자들은 평소에 급식봉사를 같이하는 이모들과 올해 새로 활동한 젊은 중년, 그것도 남성봉사자들이 왔다. 다른 봉사와 달리 농촌 일은 햇빛이 깨어나지 않은 새벽부터 해야 되는데, 부득히 오전대로 시간을 잡으니, 나이 드신 이모들이 힘겨워하셨다. 남성봉사자들이 서로 나서서 집안 텃밭의 사방을 깔끔하게 정리한 덕분에 나를 포함해서 여성봉사자들이 수월하게 일을 마쳤다.
 
블루베리 농장 정리 블루베리 열매에 필요한 가지치기와 농장청소활동
▲ 블루베리 농장 정리 블루베리 열매에 필요한 가지치기와 농장청소활동
ⓒ 박향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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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점심으로 도시락이 배달되어 왔는데, 말 그대로 마당 한 켠에 앉아서 땀 범벅, 열 범벅으로 식사를 했다. 그렇지만 봉사 후의 먹거리는 어찌 그리 맛있는지 모르겠다. 특히나 열심히 일한 땀을 배신하지 않는 미각의 총기는 언제나 은혜롭기만 하다. 게다가 봉사자들끼리 나누는 담소가 밑반찬으로 곁들어지니 이 얼마나 최고의 성찬인가 싶었다.

식사 후 마당에 모인 작물들 중 부추와 참나물, 파 씨는 봉사자들이 가져가도 좋다고 했다. 생나물을 가져가도 친정엄마의 손길을 거쳐야 맛난 음식을 먹는 나로서는 가져가는 것도 부담이었다. 그런데도 마음속의 욕심이 발동해서 부추도 손으로 집어서 덥석 두세 묶음, 참나물도 봉지에 가득 담았다. 파 씨는 작년에 심어본 경험으로 얼마나 유용한 생물인지를 알았다.

집에 돌아와서 친정엄마께 부추를 가져다드리니, 일거리만 가져오는 딸을 힐긋 쳐다보셨다.

"엄마, 이 부추가 엄청 싱싱해서 부침개 해 먹으면 진짜 맛있겠어요." 말이나 못하면 좋으련만. 몇 시간 후, 엄마의 호출을 받고 가니, 부추와 양파에 갑오징어가 가득찬 노릿노릿한 부침개가 쩍 하니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맛이 있을랑가 모르겄다. 네가 가져온 이 아까운 것들을 버릴 수는 없지. 농사짓는 사람들이 얼마나 고생 했겄냐. 다른 건 몰라도 시장에 가서 농산물은 절대 깎지 말아야 한다. 김 서방이랑 학원선생님들 드시라고 해라."

역시 울엄마는 마음도 손도 큰 어부 마님이다.

돌아오는 길에 텃밭으로 향했다. 다녀간 지 겨우 이틀만인데도 풀이 무성했다. 다행히도 그만큼 열매도 덩달아 달리기 시작했다. 첫선을 보인 오이 몇 개를 따서 엄마께 드리려고 챙기고, 일분일초가 다르게 자란 상추 깻잎 쑥갓 등의 잎채소들을 따면서 머릿속으로 그렸다.

'오늘은 이분과 나눠 먹어야지.' 필사봉사단에서 나눔의 약속을 지키느라 열정을 다하는 그분의 점심 밥상 위에 내가 키운 먹거리를 놔 드리고 싶었다. 텃밭에 갈 때마다 누군가를 생각하는 일은 나의 몸과 정신을 건강하게 해주는 보약이다.

매일 최고의 건강 보약과 나의 땀이 만드는 정성을 먹고 자라는 텃밭작물 들이야말로 유기농 중의 최상급이다. 나라의 인증 마크 KS가 있는 것처럼, 조만간 내 작물에도 신뢰마크 하나를 만들어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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