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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년도를 시작하면서 <명심보감>을 필사하게 되었다. 배지영 작가님께 에세이쓰기를 함께 배우고 작년에 에세이집을 펴낸 선생님들과의 소모임이다. 내년 계획으로 <명심보감>을 필사하겠다는 말씀을 처음 하셨을 때에는 '그러시군요. 열심히 하세요'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나는 필사는 커녕 <명심보감>은 읽어볼 계획조차 하지 않았다. 이미 읽고 싶은 책과 읽어야 할 책이 제목만으로도 넘쳐났기 때문이다.

"80일간의 인문여행! 80일간 명심보감을 필사하며 인문여행을 함께 떠나실 분들을 모집합니다!"

세상에. 내가 이렇게 간사한 인간이다. 며칠 후 단톡에 올라온 글을 읽고 마음이 바뀌었다. '80일', '여행'이라는 글자를 읽으며 눈동자에는 힘이 빡 들어갔고, 마음을 홀딱 빼앗기고 말았다. 80일간의 세계일주가 아닌 것은 분명히 알지만, 그 닮은꼴에 심장은 이미 두근두근 반응하고 있었다. 대단한 것이 없을지라도 떠나보겠다는 그 자체로 신이 났다.

주말에는 쉬기도 하고, 어떤 날은 두 편을 몰아서 쓰기도 했다. 전체가 아닌 밑줄 그은 부분만 필사하는데도 시간이 들었다. '앞에서도 설명했지만', '지난번에도 언급했지만'에서 나는 변함없이 외쳤다.

"아니 작가님, 언제요? 어디서요?"

79번의 필사를 하면서 늘 새로울 수 있었던 이유다. 그렇게 사십 평생 처음으로 필사를 마쳤다. 80일간의 인문여행을 이끌어 주신 선생님께서는 개인적으로 시 필사도 하고 계셨는데, 5월에는 같이 해보자는 제안을 하셨다. 9일부터 딱 3주만 하자는데, 나는 그 꿍꿍이에 또다시 자석처럼 이끌렸다.

나를 위한 필사가 남을 위한 봉사가 되다니

21일 차인 29일 아침에 마지막 시 필사를 마치고, 한길문고에서 발대식이 열렸다. 그동안 함께 시 필사를 하신 분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활동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학생부터 누구나 필사봉사자로 참여할 수가 있고, 완성된 시화엽서는 무료급식소 도시락에 끼워져 전달된다는 내용이었다.

21일간 시를 필사하면서 워밍업이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틀리면 안 되는 엽서를 받고 보니 느낌이 달랐다. 노트에 써서 우리끼리 인증하는 수준이 아니기 때문이다. 일반종이와 달리 도톰한 엽서에는 네임펜으로 찰떡같은 쫀쫀한 손맛이 전해졌다.

그림에는 자신이 없어서 곤란했지만, 재능기부가 아니지 않은가. 재능기부였다면 여기 어느 축에도 내가 낄 자리는 없을 터였다. 마음 나눔이라고 생각하고 정성으로 꽃을 피워냈다. 그렇게 발대식에서 그린 첫 작품은 너무도 나를 닮아 수줍었다.

9일 아침, 드디어 필사시화엽서를 나누는 날이 되었다. 군산시 무료급식소에 도착한 나는 포장된 도시락에 엽서를 끼우는 작업을 맡았다. 내가 가져간 20장과 여러 봉사자들의 엽서가 뒤섞여 220개의 도시락에 나눠 들어갔다.
  
지금은 작업 중 도시락에 필사시화엽서로 포장하는 도시락
▲ 지금은 작업 중 도시락에 필사시화엽서로 포장하는 도시락
ⓒ 박효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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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일일이 손으로 쓴 거야? 전부 다 다르네? 나는 그냥 인쇄물 정도 들어가는 줄 알았지."

내 손을 거쳐 박스에 들어간 작품들을 보고 영양사님께서는 적잖이 놀라셨다. 작업이 끝나고 한숨 돌리면서 수고하신 이모님들께도 한 장씩 선물로 돌렸다. 옆에 앉아 계시던 이모님께서는 몇 번이고 읽어보시더니 나를 올려다보시고는 결국 눈시울을 붉히셨다.

"내가 사랑받고 있다고 느껴지네. 너무 큰 감동이고. 아이고, 나 눈물나겄네."

예상하지 못한 반응에 나도 눈이 따끔거렸다. 말없이 이모님 등을 쓸어드렸다. 배식시간이 되어 밖으로 나가 도시락을 전달했다. 드리다보니 어느 순간에는 내 엽서들이 모여 있기도 했다. 선물같은 순간이었다.

"저 분은 가족까지 하나 더. 이 분은 어디보자 그래 '이 또한 지나가리라' 그래 딱 필요한 말이네. 이 또한 지나갑니다."

속속들이 상황을 알고 계신 손순영 영양사님은 마지막까지 옆에서 도움을 주셨다. 어느 하루 반짝 하고 가는 봉사자의 눈에 그 모습이 너무 아름다웠다. 특히 연애시절 이야기까지 소녀처럼 들려주시고는 시화엽서를 다시 수거해서 전부 갖고 싶을 정도라는 말씀이 잊히지가 않는다.

식사는 어떠셨을까? 음식과 시화엽서로 몸도 마음도 건강하시기를 기도한다. 마지막으로, 필사하자는 이야기를 시작으로 어엿한 봉사로까지 연결시켜주신 창의력, 실행력 갑인 박모니카(박향숙) 선생님께 감사드린다. 선생님 또 무슨 생각하고 계시나요?
 
시화엽서도시락 영양사님과 봉사자들과 함께 기념 사진
▲ 시화엽서도시락 영양사님과 봉사자들과 함께 기념 사진
ⓒ 박효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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